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이유
항소 이유의 요지
사실오인
피고인이 이 사건 하도급 계약 체결 당시를 기준으로 공사대금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에게 편취의 범의도 없었다.
양형부당
원심의 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사실오인 주장에 관한 판단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나주시 D에 있는 E의 대표이사이다.
피고인은 2015. 7. 1.경 광주 남구 F에 있는 피고인이 운영하는 E의 사무실에서, G을 운영하는 피해자 H에게 '순천시에서 발주한 I 개보수공사 중 조경공사를 수주받았는데 2억 8,000만 원에 위 공사를 하도급 해 줄 테니 조경공사를 기간 내 마무리해주면, 틀림없이 공사대금을 지불하겠다'는 취지로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은 당시 J 등 12명에 대해 약 9억 원 상당의 채무와 약 1억 원 상당의 체납이 있는 등 10억 원에 달하는 채무가 있었고, 2015. 6. 25.경부터 채권자들에 의한 압류 및 가압류가 시작되어 위 하도급 약정 무렵에는 이미 약 6억 8,000만 원 상당이 압류 및 가압류되어있는 상태였으므로 피해자가 조경공사를 기간 내에 마무리하더라도 위 압류 등으로 인해 순천시로부터 공사대금이 전액 지불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고, 피고인으로서도 이를 조기에 해결하여 피해자에게 공사대금 전액을 지불받게 할 능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2015. 7. 2.경부터 2015. 11. 19.경까지 조경공사를 하게 한 뒤, 순천시로부터 노무비 1억 7,0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공사대금 1억 1,000만 원을 지불되지 아니하게 함으로써 같은 액수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
원심의 판단
이에 대하여 원심은 2015. 7. 1. 당시 피고인이 운영하던 E의 채무가 40억 원에 이르고 근로자의 임금이 체불되는 등 공사대금을 변제할 능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당심의 판단
사기죄가 성립하는지는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6. 4. 2. 선고 2012도14516 판결 등 참조). 따라서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는 해당 금원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그 이후에 사정의 변화로 해당 금원을 변제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한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에 불과할 뿐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대법원 1997. 4. 11. 선고 97도249 판결 등 참조). 특히 사업의 수행과정에서 이루어진 거래에 있어서 그 채무불이행이 사전에 예측된 결과라고 하여 그 사업경영자에 대한 사기죄의 성부가 문제가 된 경우에, 거래 시점에서 그 사업체가 경영부진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사정에 따라서는 도산에 이를 수 있다고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곧바로 사기죄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하는 것은 발생한 결과에 의하여 범죄의 성립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현실의 경제사회의 실정에도 합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경영자들이 도산에 의한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태를 피할 가능성이 상당한 정도로 있다고 믿고, 성실하게 계약이행을 위한 노력을 할 의사가 있었을 때는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대법원 2001. 3. 27. 선고 2001도202 판결 참조).
그런데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2015. 7. 1. 당시를 기준으로 피해자에게 공사대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었다거나 피고인이 그와 같은 사정을 인식하면서도 피해자를 기망하여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인의 사실오인 주장은 이유 있어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피해자는 관급공사를 진행하는 건설회사로부터 하도급을 받기 위해 공공입찰사이트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I 개보수공사 건을 알게 되었고, 그중 조경공사 부분을 피고인의 회사로부터 하도급받기 위하여 담당 공무원을 통해 피고인의 회사에 하도급 계약 체결 요청을 하였으며, 이에 피고인의 회사는 2015. 7. 1. 피해자의 회사와 위 조경공사에 관하여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처럼 피고인은 당시 피해자에게 하도급 공사대금을 줄 테니 하도급 공사를 해 달라고 먼저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이 아니었고, 단지 피해자의 하도급 계약 체결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하였던 것일 뿐이다.
피해자가 위와 같이 먼저 피고인 측에 하도급 계약의 체결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였던 것은, 피고인의 회사가 진행하던 개보수공사가 순천시로부터 수급받은 관급공사로서 공사대금의 지급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회사가 하수급인으로서 하도급 보호 법령에 따라 순천시로부터 직접 자신의 하도급 공사대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피해자는 2015. 8. 14. 무렵 피고인의 회사가 순천시에 대하여 가지는 개보수공사 공사대금채권(이하 '이 사건 공사대금채권'이라 한다)에 대하여 해당 채권 금액을 초과하는 압류 및 가압류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되자 피고인의 회사가 아니라 순천시에 직접 하도급 대금 지급 가능 여부를 문의하였고(피해자는 당시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하도급 대금은 직접 지급 대상이므로 하도급 대금 지급은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었다), 이후 피해자 회사의 기성금 청구가 위 압류 및 가압류로 인하여 거절되어 하도급 공사를 중단하였을 무렵에도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다른 대금지급대책에 대한 언급은 없이 이 사건 공사대금채권에 걸린 압류 및 가압류를 해제하겠다고 약속하자 바로 하도급 공사를 재개하는 등으로, 이 사건 공사대금채권의 지급 여부에만 관심을 보였다.
나아가 피고인의 수사기관 진술을 살펴보면, 관급공사를 여러 차례 한 바 있는 피고인 역시도 피해자가 피고인이 순천시에 대하여 가지는 이 사건 공사대금채권을 통하여 피해자의 피고인에 대한 하도급 대금의 만족을 얻으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공소사실은, 위와 같은 상황들을 전제로 하여, 피고인과 피해자가하도급 계약을 체결할 무렵 이 사건 공사대금채권에는 이미 6억 8,000여만 원의 압류 및 가압류가 되어 있어 피해자가 이 사건 공사대금채권을 통하여 자신의 하도급 대금을 받을 수 없었고 피고인도 그와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피고인이 2015. 7. 1. 피해자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함으로서 하도급 공사대금을 지급할 것처럼 피해자를 기망하였다는 취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피고인의 회사가 순천시에 대하여 가지는 이 사건 공사대금채권에 대한 압류 및 가압류 내역을 살펴보면, 피고인과 피해자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2015. 7. 1. 당시를 기준으로 제3채무자인 순천시에 대하여 압류 또는 가압류의 효력이 실제로 발생한 건은 2015. 6. 25.에 순천시에 접수된 J의 채권압류 및 추심 115,121,311원과 2016. 6. 29.에 순천시에 접수된 S의 채권압류 및 추심 268,485,710원 2건에 불과하고, 나아가 위 2건의 채권압류 및 추심 사실이 피고인의 회사에 통지된 것은 2015. 7. 2. 및 2015. 7. 6.로서 피고인이 피해자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2015. 7. 1. 이후의 시점이며, 나머지 압류 또는 가압류 건은 피고인이 피해자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2015. 7. 1. 이후에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할 당시인 2015. 7. 1.까지만 하더라도 이 사건 공사대금채권에 압류나 가압류가 되어 있음을 알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바(피고인이 그 밖에 다른 경로를 통하여 이미 위 2건의 채권압류 및 추심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인정할 다른 증거도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 측의 적극적인 하도급 계약 체결 요구에 응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공사대금채권을 통하여 피해자가 하도급 공사대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피해자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으로 보일 뿐이고, 나아가 피고인이 하도급 계약 체결 당시 이 사건 공사대금채권에 대한 압류 또는 가압류 등이 임박한 상황이었음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는 점을 추단할 만한 증거도 달리 나타나 있지 않다.
설령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하도급 계약 체결 당시 이 사건 공사대금채권에 압류 및 가압류가 들어오리라는 점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① 피고인의 회사는 2014년을 기준으로 시공능력평가액이 328억여 원에 이르는 상당한 규모의 회사이고, 2015. 7. 1. 당시를 기준으로 이 사건 개보수공사 외에도 여러 건의 관급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점(증 제4호증에 의하면, 2015년 하반기 완공을 예정으로 한 관급공사만 하더라도 40억 원을 상회하고 있었다), ② 2015. 7. 1. 이후에도 피고인의 회사가 건설공제조합으로부터 계약이행과 관련된 보증서를 발급받는 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③ 비록 피고인의 회사가 그 당시 10억여 원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기는 하였으나, 피고인의 회사의 규모에 비추어 볼 때 그와 같은 규모의 채무 액수가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의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점, ④ 당시 피고인의 회사의 채무 액수가 10억여 원 정도였다는 것 외에는 피고인의 회사의 자산 규모, 회계 장부 등 피고인의 회사의 재무 상태를 알 수 있는 별다른 자료가 나타나 있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2015. 7. 1. 당시의 상황에서는 E은 정상적인 경영상태였다고 보일 뿐이고 피고인이 이 사건 공사대금채권에 걸린 압류 및 가압류를 해결하고 피해자에게 하도급 공사대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었다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에 따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다시 쓰는 판결 이유]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위 제2의 가항 기재와 같은바, 이는 위 제2의 다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이유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영식(재판장) 이유빈 박동욱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