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인은 무죄.
이유
I. 공소사실<1>
피고인은 전남 신안군 B 소재 토목공사 등을 목적으로 하는 C 주식회사(이하 '피고인 운영 회사'라 한다)의 대표이사이고, 피해자 D 주식회사(이하 '피해 회사'라 한다. 대표이사 E)는 광주 광산구 F 소재 철근 도소매 등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이다.
피고인은 2023. 3. 초순경 피고인 운영 회사 사무실에서 피해 회사의 부사장 G에게
"양평 H 건립사업에 필요한 H형강을 당신 회사에서 공사현장으로 납품해 달라. 대금은 공급이 완료되는 직후에 발주처인 I에 물품공급대금을 청구해서 받으면 그 돈으로 바로 지급해 주겠다."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은 당시 피고인 운영 회사가 I으로부터 받은 선급금을 다른 공사현장의 기존 채무변제 등으로 이미 사용하였고 달리 보유한 현금 등 재산이 없었으므로, 약속대로 물품대금을 제때 변제할 만한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피해 회사의 부사장 G을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 회사로부터 2023. 3. 29.경 2,281,500원 상당의 H형강을 공급받은 것을 비롯하여, 그 때부터 2023. 6. 8.경까지 별지 범죄일람표 순번 1~79 각 기재와 같이 총 79회에 걸쳐 합계 1,534,933,460원 상당의 물품을 공급받거나 순번 80 기재와 같이 358,000원 상당의 운반비를 지급하지 아니함으로써 합계 1,535,291,460원 상당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
Ⅱ. 피고인과 변호인 주장의 요지
피고인은 피해 회사를 기망하거나 기망할 고의가 없었다. 또한 피고인 운영 회사는 피해 회사와의 계약 체결 당시 신용 상태가 양호했고 다수의 납품 및 건축 공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피해 회사에 물품대금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
Ⅲ. 판단
관련 법리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20. 4. 9. 선고 2019도17838 판결 등 참조).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그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그 행위 이후의 경제사정의 변화 등으로 인하여 피고인이 채무불이행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하여 이를 사기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8. 9. 25. 선고 2008도5618 판결 등 참조). 다. 사업의 수행과정에서 이루어진 거래에 있어서 그 채무불이행이 예측된 결과라고 하여 기업경영자에 대한 사기죄의 성부가 문제된 경우, 그 거래시점에서 사업체가 경영부진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사정에 따라 파산에 이를 수 있다고 예견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사기죄의 고의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발생한 결과에 따라 범죄의 성부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설사 기업경영자가 파산에 의한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태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믿었고, 계약이행을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었을 때에는 사기죄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6. 6. 9. 선고 2015도18555 판결 등 참조).
인정사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피고인 운영 회사는 2022. 8. 31. J 건축공사 관급자재(철골자재) 구매 입찰공고에서 낙찰자로 선정되어 2022. 9. 2.경 K에 2023. 12. 31.까지 약 4,500톤의 철골 자재를 6,337,462,900원에 납품하는 내용의 '충북 J 건축공사 관급자재(철골 자재) 구매계약(이하 'J 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계약 체결 후 2023. 3.경까지 피고인 운영 회사와 K 사이에는 BH형강을 제조하여 납품하여야 하는지 여부, 단가 및 비용부담 등에 관하여 계속해서 이견이 있었고, 이로 인해 피고인 운영 회사의 J 계약에 따른 철골 자재 납품의 이행이 지연되었다. 이에 K는 2023. 5. 18. 피고인 운영 회사의 귀책사유를 들어 J 계약의 해지 및 계약 정산금액이 1,268,777,300원임을 통지하였다.
피고인 운영 회사는 2022. 12. 22.경 I에 2023. 5. 21.까지 철골 자재를 1,625,381,540원에 납품하는 내용의 '양평 H 건립사업 관급자재(H형강, 후판) 구매 계약(이하 '양평 H 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피고인 운영 회사는 I에 위 계약의 선급금을 지급할 것을 요청하여 2022. 12. 30.경 서울지방조달청으로부터 선급금487,600,000원을 지급받고, 이를 대금 결제, 채무변제 등에 사용하였다.
이후 피고인 운영 회사는 2023. 3. 15.경 피해 회사와 양평 H 계약에 납품할 철골자재를 공급받기로 하는 내용의 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고, 피해 회사로부터 철골 자재를 공급받아 I에 납품하였다. 그리고 피고인 운영 회사는 2023.5. 12.경 피해 회사 부사장 G의 요청에 따라, 양평 H 계약의 대금을 지급받는 즉시 피해 회사에 이 사건 계약상 물품대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확약서를 작성해주었다.
피고인 운영 회사는 2023. 6. 15. 양평 H 계약에 따른 철골 자재를 완납하고 서울지방조달청으로부터 잔금 1,137,781,540원을 지급받아 같은 날 잔금 중 700,000,000원을 이 사건 계약의 물품대금으로 피해 회사에 지급하였다.
구체적 판단
위 인정사실과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을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변제 의사 및 능력 없이 피해 회사의 부사장 G을 기망하였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피해 회사의 부사장 G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 사건 계약서에는 정기 결제로 운영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통상적으로 조달 물품의 경우에는 물건 납품이 완료되어 납품자가 조달청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피해 회사에게 대금을 지급하였다.", "(양평 H 건립사업에 필요한 H형강 공급은) 규모가 큰 편이지만, 국가기관에서 돈을 지급하므로 대금 회수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여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증인 G에 대한 녹취록 3, 4면).
또한 피고인 운영 회사의 직원으로 납품 관리 및 수금을 담당했던 L도 수사기관에서 "5월 말이면 발주처(I)에서 돈이 나올 것이고 그때 곧바로 피해 회사에 대금을 지급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피고인 운영 회사가 기성금을 받으면 이를 다른 곳에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피해 회사에 재입금 시켜주는 것이다.", "물품 공급을 하기 이전에 피해 회사와 금액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피해 회사가 직불로 받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아마도 피해 회사 쪽에서 직불 처리를 해달라는 요구를 했을 것 같고,그래서 제가 I에 직불 처리가 가능한지 알아보았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증거기록 3책 중 1권 38, 39면).
위 각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물품 공급 완료 후 I에서 대금을 받으면 그 돈을 피해 회사에 지급하겠다고 말한 사실이 인정되고, 당시 피고인이 I에서 받은 선급금을 다른 곳에 사용한 상태였던 점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또한 피고인이 확약서를 작성한 2023. 5. 12. 이후 서울지방조달청으로부터 양평H 계약금액을 지급받을 계좌를 M은행 계좌에서 기업은행 계좌로 변경한 사실, 2023. 6. 15. 잔금을 지급받자 피해 회사에 변제한 700,000,000원을 제외한 나머지437,781,540원을 ㈜N· O · P · Q 등으로 이체한 사실, 조류발전 공사 현장에 지급하려던 700,000,000원도 G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비로소 피해 회사에 지급된 사실, 2023.5.경부터 피고인 운영 회사 및 피고인이 운영하는 R 주식회사의 직원들에게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못한 사실에 비추어 2023. 3. 이후 피고인 및 피고인 운영 회사의 변제의사 및 변제능력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만으로 곧바로 피고인에게 이 사건 계약 체결 무렵인 2023. 3.경 사기죄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추단하는 것은 발생한 결과에 의하여 범죄의 성부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부당하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피해 회사에 물품대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이 G을 기망하였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편취의 범의나 기망행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피고인이 이 사건 계약 당시 선급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피해 회사를 기망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피고인은 관급자재 납품, 공사 등을 통해 물품대금을 변제할 계획이었고, 당시 피고인과 피고인 운영 회사에 대금 지급연체나 신용문제가 있었다는 자료도 없다. 피고인은 이 사건 계약 전에도 관급자재 납품을 위해 피해 회사와 여러 건의 계약을 체결하고 2023. 3.까지 대금을 모두 지급한 바 있었다.
피고인은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할 무렵인 2023. 3.경에는 J 계약을 비롯한 다수의 납품 및 건축 공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피해 회사에 물품대금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으나, 이후 J 계약이 부당하게 해지되어 피고인 운영 회사가 자금난에 빠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K가 J 계약을 해지한 시점은 2023. 5. 18.경이었고, 2023.3.경까지만 하더라도 K는 피고인 운영 회사에 J 계약의 이행을 촉구하며 '잔여 물량의 사급 전환 등의 조치가 불가피하고 이로 인한 피고인 운영 회사와의 계약 물량이 차감됨'을 경고할 뿐 계약을 전면적으로 해지할 움직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피고인이 2023. 3.경 J 계약이 전면적으로 해지되어 피고인 운영 회사가 자금난에 빠지게 될 가능성에 대해 인식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며, 달리 이 무렵 피고인이 피고인 운영 회사가 자금난에 빠질 것을 인식했다고 인정할 만한 정황도 없다.
만일 피고인이 다수의 납품 및 건축 공사를 통해 지급받은 계약금액을 피해 회사에 대한 물품대금 변제에 사용하지 않고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등 피해 회사에 그 대금을 지급할 의사가 없었다고 볼만한 사후적인 정황이 있다면 피해 회사에 대한 편취의 범의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은 양평 H 계약 및 J 계약을 통해 지급받은 대금의 대부분을 피해 회사를 비롯한 거래처에 물품대금 등을 변제한 것으로 보이고, 달리 피고인이 지급받은 대금을 개인적으로 처분 · 은닉하였다고 볼만한 정황도 없다.
G은 이 법정에서 "통상적인 철강재의 물품거래는 월별로 물품을 납품하고, 그다음 달에 납품한 물품만큼 대금을 지급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으며, 실제로 이 사건 계약과 관련하여 작성된 물품거래약정서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G의 위 진술을 뒷받침한다.
피고인은 J 계약이 해지되어 피고인 운영 회사가 사급 전환을 준비하며 미리 발주해둔 철골 자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이를 손해로 부담하게 됨에 따라 피고인 운영 회사가 자금난에 빠지게 된 상황에서, 철강재 물품거래 방식에 따른 대금 지급 청구기일이 다가오자 우선적으로 S · ㈜N 등에 물품대금을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피고인의 행위는 자금난에 빠진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여 채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피해 회사에 대한 물품대금 지급 채무의 이행이 지연된 것으로서, 채무를 민사상으로 불이행한 것에 불과할 뿐 형사상 사기죄의 기망행위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⑤ 검사가 제출한 피고인에 대한 근로기준법위반 약식명령에 의하면, 2023. 5.경부터 피고인 운영 회사 및 피고인이 운영하는 R 주식회사에서 직원들의 급여 및 퇴직금 지급을 연체한 사실이 확인된다. 이 시점은 2023. 5. 18.경 J 계약이 전면적으로 해지됨에 따라 피고인 운영 회사가 사급 전환을 준비하며 미리 발주해둔 철골 자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이를 손해로 부담하게 된 시점과 일치하고, 그 이전까지는 직원들에 대한 급여 및 퇴직금 지급이 연체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 운영 회사의 2023. 12. 31.경 전년 동기 대비 부채총계가 452,613,715원에서 1,015,923,077원으로 크게 증가하기는 하였으나, 2022. 12. 31.경에는 전년 동기 대비 부채총계가 391,785,950원에서 452,613,715원으로 소폭 증가한 점에 비추어도, 2023.5. 18.경 J 계약의 전면적인 해지에 따라 일시적으로 부채가 증가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2024. 12. 31.경에는 전년 동기 대비 부채총계가 1,015,923,077원에서663,035,848원으로 대폭 감소하며 회사가 정상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2023. 5. 18.경 J 계약 해지는 피고인 운영 회사의 재정 건전성을 상당부분 해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이 사건 계약의 체결 시점인 2023. 3. 이후에 발생한 사정에 해당한다.
위와 같이 계약 체결 후 발생한 사정으로 피고인 운영 회사에 자금 경색이 발생하여 나머지 물품대금의 지급이 늦어졌으나, 뒤늦게나마 피고인 운영 회사의 대금채권, 예금채권 등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과 변제로 피해 회사에 미지급 물품대금이 모두 지급되었는바, 이 사건 계약 당시 피고인에게 물품대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Ⅳ.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판사 김송현(재판장) 장유나 김정환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