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이 사건 소를 모두 각하한다.
소송총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기초사실
이 법원이 이 부분에 관하여 적을 이유는 아래와 같이 고치는 것 외에는 제1심판결의 이유 중 “1. 기초사실” 부분 기재와 같으므로, 민사소송법 제420조 본문에 의하여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제1심판결 중 제2면 제10행부터 제14행까지를 아래와 같이 고친다.
원고는 기계장비 및 설비공사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로서, 원고에 대하여 2019. 12. 10. 대구지방법원 2019회합168호로 회생절차가 개시되어, 2020. 8. 19. 회생계획이 인가되었고, 2023. 10. 24. 회생절차가 종결되었다.
제1심판결 중 제4면 제18행부터 제19까지 중 “6차에 걸쳐서 계약금액 및 기간 연장에 관한 합의”를 “6차에 걸쳐서 계약금액 및 기간 연장에 관한 합의(이하 그 중 6차 합의를 ‘6차 계약변경합의’라 한다)”로 고친다.
당사자의 주장
원고
원고의 파나마 법인은 2016. 12. 29. 피고와 이 사건 도급계약을 체결한 후, 피고의 부당한 계약금액 인하 요구 등으로 6차 계약변경합의를 하였고, 2019. 7. 26. 피고와 ‘정액가격합의계약 및 외부탱크기계작업 건축계약’(이 사건 합의)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 합의는, 피고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원고로 하여금 향후 정산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2019. 7. 18.경 당시 자금난에 허덕이던 원고에게 일방적으로 공사타절을 통보하고 계약이행보증증권을 행사한다고 협박하여 어쩔 수 없이 합의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사건 합의는 민법 제104조에서 정한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여 무효이다. 더구나 이 사건 합의는 대표권 없는 무권한자인 B가 체결한 것일 뿐만 아니라, 수급인 명의를 계약당사자인 원고가 아닌 파나마 법인으로 해 두기로 한 것으로 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하므로, 역시 무효이다.
피고는 위와 같이 부당한 계약금액 인하를 위해 6차 계약변경합의 및 이 사건 합의를 하였고, 이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1조에서 금지하는 부당한 하도급대금 감액행위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으로 원고에게, 부당하게 감액된 공사대금 3,790,861달러 상당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데, 원고는 그 일부로서 우선 387,180달러의 지급을 구한다.
비록 이 사건 도급계약은 원고의 파나마 법인 명의로 작성되었으나, 파나마 법인은 원고의 파나마 현지 지사 또는 현장사무소로서 독립적인 법인이 아니거나 법인격부인의 대상에 불과하므로, 원고가 이 사건 도급계약의 당사자에 해당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원고는 파나마 법인의 모회사로서 자회사의 청구권을 대위행사하거나 사무관리행위로서 이 사건 청구를 한다.
피고
이 사건 소는, ① 이 사건 도급계약에서 정한 중재합의의 대상인 분쟁에 관한 것으로 중재법 제9조 제1항에 따라 부적법하거나 ② 이 사건 합의에서 정한 부제소 합의에 반하여 부적법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 사건 도급계약과 이 사건 합의의 계약당사자는 파나마 법인에 불과하므로 원고에게 청구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불공정행위나 불법행위에 해당하지도 않으므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본안 전 항변에 대한 판단
중재합의 위반 여부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도급계약 17.1항은 ”일반사항. 계약, 불법행위, 법률, 형평법 또는 기타 법률 형식을 기반으로 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본 계약의 적용, 해석, 시행 가능성, 유효성, 이행 또는 위반 또는 그로 인해 야기되거나 이와 관련된 사항과 관련하여 당사자들 간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일방 당사자는 국제 상업 회의 소(ICC)가 주관하고 당시 유효한 중재 규정에 의거하여 좌우되는 최종적이고 법적 구속력 있는 중재를 통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당 분쟁을 제출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고, 17.2항 후문은 ”당사자들은 본 계약에 따라 또는 이와 관련되거나 또는 이에 연관되어 발생하는 일체의 클레임 또는 분쟁의 중재 가능성과 관련된 사안은 법원이 아닌 중재인이 단독으로 결정해야 하는 사안임에 동의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중재합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들 사이의 특정한 법률관계에서 비롯되는 모든 분쟁을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기로 정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대법원 2007. 5. 31. 선고 2005다74344 판결 등 참조), 그와 같은 중재합의는 중재조항이 명기되어 있는 계약 자체뿐만 아니라, 그 계약의 성립과 이행 및 효력의 존부에 직접 관련되거나 밀접하게 관련된 분쟁에까지 그 효력이 미친다(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67264, 67271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원고가 구하는 청구의 실질은 이 사건 도급계약을 정산하는 의미인 이 사건 합의의 무효확인 및 이 사건 도급계약에 따라 받아야 할 공사대금을,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으로 구하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청구는 모두 위 중재합의의 효력이 미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다.
원고는, ① 위 중재합의는 원고의 국민으로서의 제소권 행사에 부담을 가하고 법원을 이용할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무효이고, ② 원고는 피고에 의존하는 종속관계 있었는데, 위 중재합의는 이러한 종속관계를 악용하여 체결된 것으로 불공정한 법률행위로 무효이며, ③ 위 중재합의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14조 제1호<1>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고 주장의 사정이나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위 중재합의가 원고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거나,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이 사건 도급계약이나 위 중재합의가 약관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부제소합의 위반 여부
이 사건 합의 2.4항은 ”하청업체는 본 계약에 대해 한국공정거래위원회 및 파나마법률 당국을 포함한 그 어떤 정부 당국에도 민사상 또는 형사상을 불문하고 이의나 항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고, 3.1항은 ”하기 섹션 3.2.에 의거해, 당사자들은 본 합의서 제2조에 명시된 의무의 수행 및 준수가 모든 관련 클레임, 반소, 조치, 분쟁, 의견 차이, 요구, 소송 절차 및 모든 클레임과 연관된 평가를 완전하게 충족시킴을 확인한다.“고 정하고 있으며, 3.3항은 ”제2조에 명시된 의무가 완료될 경우, 당사자들은 모든 클레임에 관해 당사자들 사이에 제기된 그 어떤 성격의 분쟁 및/또는 클레임도 완전하게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됨에 동의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사건 합의는 이 사건 도급계약상의 권리․의무에 관하여 정산하는 내용으로, 위 조항들로서 이 사건 도급계약에 따른 분쟁에 대하여 부제소합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사건 도급계약에 따른 공사대금을 구하는 원고의 청구(위에서 본 바와 같이, 원고는 위 공사대금 청구를 불법행위로 구성하여 구하고 있으나 실질은 공사대금청구이다)는 위 부제소합의에도 반하여 부적법하다.
소결
따라서 이 사건 소는 어느 모로 보나 부적법하여 중재법 제9조 제1항 본문<2> 등에 따라 각하되어야 하므로, 이를 지적하는 피고의 본안 전 항변은 이유 있다.
본안에 대한 판단(예비적 판단)
설령 이 사건 소가 중재합의나 부제소합의에 위반되지 아니하여 적법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
원고가 이 사건 도급계약 및 합의의 당사자인지 여부
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계약에 관여한 당사자의 의사해석 문제이다. 당사자들의 의사가 일치하는 경우에는 그 의사에 따라 계약의 당사자를 확정해야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의사가 합치되지 않는 경우에는 의사표시 상대방의 관점에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를 계약의 당사자로 이해하였을 것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 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는 서면에 사용된 문구에 구애받은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내심에 있는 의사가 어떠한지와 관계없이 서면의 기재 내용에 따라 당사자가 표시행위에 부여한 의미를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 경우 문언의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해야 한다(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6다81035 판결, 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6다237691 판결 등 참조).
앞서 인정한 사실, 갑 제8, 11, 15, 45호증, 을 제6, 7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① 파나마 법인과 피고 사이에 2016. 12. 29.자로 작성된 이 사건 도급계약서가 파나마 법인 설립 등록 이전의 날짜인 사실, ② 원고의 임직원들이 파나마 법인 설립이나 이 사건 도급계약 작성 과정에 상당 부분 관여하여 온 사실, ③ 6차 계약변경합의 과정에서 작성된 서면(갑 제8호증)에 원고의 법인명이 기재되어 있는 사실, ④ 피고와 파나마 법인 사이에 체결된 이 사건 합의에 파나마 법인 대표로 원고의 대표자인 B가 기재되어 있는 사실, ⑤ 원고의 대표자 B가 이 사건 공사현장에서 고용된 근로자들에게 임금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위반의 형사처벌(대구지방법원 2021노617)을 받기도 한 사실이 인정된다.
그러나 갑 제3, 8, 11, 14, 15, 17, 18호증, 을 제1 내지 8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도급계약과 이 사건 합의의 계약당사자는 원고와 별개 법인인 파나마 법인일 뿐이라고 할 것이고,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 인정사실이나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위와 같은 판단을 뒤집고, 원고가 이 사건 도급계약과 이 사건 합의의 계약당사자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이 사건 도급계약서 및 합의서에는 계약당사자가 파나마 법인과 피고로 명확히 기재되어 있고, 이 사건 도급계약 체결 당시 파나마 법인의 부대표(Executive Vice President) H이 파나마 법인을 대표하여 서명한 것으로 확인된다.
파나마 법인은 원고가 이 사건 공사현장인 파나마에서의 원활한 업무수행 및 세제편의 등을 위하여 별개로 설립한 법인으로서 원고의 관계회사이므로 그 설립과정 등에 원고의 관여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도급계약서는 2016. 12. 29.자로 작성되었으나, 그 이후인 2017. 2.경까지 당사자 사이에 계약내용과 관련한 협의가 이루어졌고, 파나마 법인 등록과 관련된 질의 또한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위 도급계약서는 파나마 법인 등록이 이루어진 이후에 소급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6차 계약변경합의 과정에서 작성된 서면(갑 제8호증)에는 원고의 법인명이 기재되어 있으나, 정식으로 작성된 제6차 변경계약서에는 당사자가 파나마 법인과 피고로 기재되어 있고, 파나마 법인을 대표하여 H이 서명한 것으로 확인된다.
파나마 법인이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도급계약으로 인한 기성금을 청구하였고, 그 수령 또한 파나마 법인이 한 것으로 보이며, 피고와 사이에 공문의 발신 또는 수신의 주체 또한 파나마 법인이었다.
법인격 부인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
원고는, 파나마 법인이 실체가 없는 원고의 지사 또는 현장사무소라고 주장하면서 이른바 법인격부인의 법리를 근거로 들기도 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파나마 법인은 원고가 파나마에서의 원활한 업무수행 및 세제편의 등을 위하여 별개로 설립한 법인이고, 파나마 법인이 원고의 관계회사이므로 파나마 법인의 설립과정 등에 있어 원고의 관여가 있을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제출하는 증거들만으로, 원고와 파나마 법인 사이에 재산과 업무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혼용되는 등으로 인해 파나마 법인이 이름뿐이고 실질적으로는 원고와 동일시 될 수 있을 정도로 형해화 되었거나 파나마 법인의 배후에 있는 원고가 파나마 법인의 법인격을 남용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원고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이 사건 도급계약이 통정허위표시 무효인지 여부
원고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실제로는 원고가 이 사건 도급계약을 체결하는 것임에도 수급인 명의만 파나마 법인으로 해두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으므로 이 사건 도급계약은 통정한 허위의 의사표시로서 무효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위와 같은 합의가 있었다거나, 이 사건 도급계약이 통정허위표시라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원고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청구권의 대위행사 여부
원고는, 원고가 파나마 법인의 모회사로서, 자회사인 파나마 법인의 청구권을 대위행사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원고에게 파나마 법인의 청구권을 대위행사 할 수 있는 권원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원고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사무관리 해당 여부
원고는, 원고가 파나마 법인의 모회사로서, 사무관리에 기하여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청구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무관리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우선 그 사무가 타인의 사무이고 타인을 위하여 사무를 처리하는 의사, 즉 관리의 사실상의 이익을 타인에게 귀속시키려는 의사가 있어야 함은 물론 나아가 그 사무의 처리가 본인에게 불리하거나 본인의 의사에 반한다는 것이 명백하지 아니할 것을 요한다(대법원 1994. 12. 22. 선고 94다41072, 41089 판결, 대법원 2010. 6. 10. 선고 2010다25124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원고가 자기의 이름으로 피고를 상대로 소를 제기한 것을 두고 파나마 법인을 위하여 파나마 법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소결
따라서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도급계약 및 이 사건 합의에 기한 청구를 할 수 있는 권원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여 각하하여야 한다.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이 사건 소를 모두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태현(재판장) 곽동훈 김대현
각주1) 제14조(소송 제기의 금지 등) 소송 제기 등과 관련된 약관의 내용 중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조항은 무효로 한다. 1.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소송 제기 금지 조항 또는 재판관할의 합의 조항
각주2) 제9조(중재합의와 법원에의 제소) ① 중재합의의 대상인 분쟁에 관하여 소가 제기된 경우에 피고가 중재합의가 있다는 항변(항변)을 하였을 때에는 법원은 그 소를 각하(각하)하여야 한다. 다만, 중재합의가 없거나 무효이거나 효력을 상실하였거나 그 이행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