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법원판결

대구지방법원 2022. 6. 7. 선고 2021고단5632 판결

주문

피고인은 무죄.

이유

1.

공소사실

피고인은 2019. 3. 28.부터 대구 동구 B에 위치한 C의 원장 직무대행인 자로서 연구개발업을 경영하는 사용자이다.

가.

금품 미청산의 점

사용자는 근로자가 사망 또는 퇴직한 경우에는 그 지급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보상금, 그 밖의 모든 금품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기일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위 사업장에서 2005. 2. 15.부터 2021. 2. 18.까지 근로하고 퇴직한 피해자 D의 임금 합계 5,614,340원을 당사자 사이의 지급기일 연장에 관한 합의 없이 그 지급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하지 아니하였다.

나.

임금 전액 미지급의 점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2004. 6. 9.부터 위 사업장에서 재직 중인 피해자 E의 임금 합계 11,795,810원을 비롯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기재와 같이 근로자 6인의 임금 합계 53,726,640원을 지급하지 아니하였다.

2.

판단

가.

관련법리

기업이 불황이라는 사유만으로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한 임금 등을 체불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했어도 임금의 체불이나 미불을 방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 사회통념상 긍정할 정도가 되어 사용자에게 더 이상의 적법행위를 기대할 수 없거나 불가피한 사정이었음이 인정되는 경우, 그러한 사유는 근로기준법 제36조 위반죄의 책임조각사유가 된다(대법원 2008. 10. 9. 선고 2008도5984 판결 등 참조).

나.

구체적인 판단

이 사건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실 또는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에게 사회통념에 비추어 이 사건 근로자들의 임금을 지급기일 내에 지급할 수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판단되고, 위와 같은 사정은 책임조각사유로 인정된다.

1)

C은 산업기술혁신 촉진법 제42조에 따라 설립된 전문생산기술연구소로서 섬유·패션 산업의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 정보화지원, 인력양성, 전시기획 등의 사업을 통해 섬유·패션산업의 활성화와 국제경제력 제고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특별법상의 재단법인이다<1>. 비록 C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는 아니하였으나, 설립 근거와 목적·기능 등의 공익성에 비추어보면 여타의 사기업과는 달리 볼 필요가 있다.

2)

C의 운영 및 사업에 필요한 재원 등의 경비는 출연금, 보조금, 기부금, 차입금, 용역, 기본재산에서 생긴 과실, 기타수입으로 충당된다. C의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기관운영비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표와 같다<2>.

기관운영비 내역 중 2016년에는 18.49%, 2017년에는 15.18%를 차지하던 보조금 전입이 2018년부터 크게 삭감되었고, 이는 C의 재정이 어려워진 주된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피고인은 위와 같이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인력 누출이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 정부나 지자체의 연구과제를 수주하는데도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2020년경부터는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어려워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용역사업 수입도 줄어들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3)

앞서 본 것처럼 C은 설립근거인 산업기술혁신 촉진법이 정한 바에 따라 사업범위가 제한되고, 목적달성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한 수익사업도 대통령령으로 정한 바에 따라 시행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법인의 특성상 상당한 규모의 국비·시비 보조금이 갑자기 삭감됨으로서 발생된 재정악화 상황을 일반적인 경영 개선을 통해 단기간에 극복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C은 각 140억 원 및 45억 원 정도의 가치를 가진 본원 및 분원 건물 등 부동산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C은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 및 정관에 따라 중요재산에 해당하는 토지 및 건물을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산업통산자원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바, 위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하고 자금을 차입함으로써 재정적자를 해소하거나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는 것에도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4)

피고인은 2008년경 C에 입사하여 근무하던 중, 위와 같이 경영이 악화하던 2019년경 전임 원장이 사임하고 후임 원장이 선임되지 않자 2019. 3. 28. 마케팅팀장에서 기획경영실 실장으로 발령을 받고 정관 및 직제규정에 따라 선임부서의 장으로서 원장의 직무를 대행하기 시작하였다.

5)

피고인은 원장 직무대행으로 재직하면서 운영비 감축, 인력 구조조정, 임금동결, 수당지급 보류 등 자구책을 시행하고, 대구시와 소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보조금을 지급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호소하거나,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을 받아 건물을 담보로 자금을 차입해 일부 미지급 퇴직금을 지급하고, 효용이 적은 분원 건물의 매각을 건의하고 추진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의 재정상황은 나아지지 아니하였고, 2021. 7.경에는 C의 재정위기를 소개하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촉구하는 C 노사의 주장을 담은 기사가 언론매체에 다수 실리기도 하였다.

6)

피고인은 원장 직무대행이 되기 전에는 이 사건 고소인들과 같은 지위의 근로자였고, 이미 경영이 악화되기 시작한 상황에서 인사발령에 따라 원장의 직무를 대행하게 된 것에 불과하다. 고소한 근로자들 뿐 아니라 C의 전체 근로자들의 임금이 미지급되고 있고, 피고인 또한 다른 근로자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금액의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의 근로자들 중 상당수인 17명의 근로자가 피고인이 모두들 꺼려하는 원장 직무대행 역할을 수행해왔다면서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한다. 이러한 피고인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형벌은 책임에 기초하고 그 책임에 비례하여야 한다는 책임주의 원칙에 반한다.

3.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가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따라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피고인이 무죄판결공시에 동의하지 아니하므로 형법 제58조 제2항 단서에 따라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지 않는다.

판사 김형호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