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가 2023. 6. 12. 원고에 대하여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소송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처분의 경위 및 원고의 주장 요지
이 법원이 이 부분에 적을 내용은 제1심판결 해당 부분에 아래와 같이 추가하는 외에는 제1심판결 이유 제1항 및 제2의 가항 기재와 같으므로, 민사소송법 제420조 본문에 의하여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추가하는 부분]
2면 6행의 "시설관리사업소" 다음에 "(이하 '이 사건 사업장'이라고 한다)"를 추가한다.
판단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고 한다) 제3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고,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7.5. 31. 선고 2016두58840 판결 등 참조). 그와 같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질병이나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심리적 상황, 근로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사망의 원인이 된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 재해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21. 10. 14. 선고 2021두34275 판결 등 참조).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여러 개의 사업장을 옮겨 다니며 근무한 근로자가 업무상의 질병에 걸리고 그 2 이상의 사업장에서 당해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던 경우에 있어서의 업무상 질병을 인정할 때는 당해 근로자가 복수의 사용자 아래서 경험한 모든 업무를 포함시켜 그 자료로 삼아야 한다(대법원 1992. 5. 12. 선고 91누10466 판결 등 참조).
망인의 업무와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인정 여부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갑 제2 내지 9호증, 을 제4, 6, 7, 9호증의 각 기재, 제1심법원의 F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 감정촉탁결과, 이 법원의 F병원 정신건강의학과 H 교수(이하 '감정의'라고 한다)에 대한 사실조회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할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망인의 자살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기 전 I 주식회사(이하 'I'이라고 한다)에서 근무하면서 전기계량기 검침, 전기요금청구서 전달, 전기요금 미납요금에 대한 요금납부 독려 및 요금 미납자에 대한 단전조치 등의 업무(이하 '단전 등 업무'라고 한다)를 수행하였다. 망인은 I에서 근무 중이던 2012. 7. 23. D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멍한 상태이다. 강박증이 심하다.'는 등의 증상을 호소하였고,2013. 7.경부터는 E병원에서 '상세불명의 우울에피소드'로 진단받아 치료를 받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 망인이 2012. 7.경 D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의무기록에는 망인의 업무 내용과 함께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망인의 증상 호소가 기재되어 있는 점(갑 제4호증 제3면 참조), ㉡ 망인이 2013. 7. 3. E병원에서 초진을 받을 당시에도 단전 등 업무로 인한 부담감을 호소하였고(갑 제3호증의 1 제10면 참조), 그 이후로도망인이 E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업무에 대한 부담감을 여러 차례에 걸쳐 호소한 점, ㉡ 망인에 대하여 2013. 7. 10. 임상심리검사를 진행한 임상심리사는 그 검사결과를 통해 '망인은 업무 상황에서 과도하고 지나친 불안과 긴장감을 경험해왔던 것 같고, 이를 해소하고자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강박행동을 발달시켜 온 것으로 여겨진다', '망인의 성격특성으로 인해 직업적인 측면에서도 지나치게 규칙과 완벽을 추구하고 쉽게 불안감에 압도되면서 직업상 곤란이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한 점 (갑 제3호증의 1 제3, 5면 참조), ㉣ 망인의 진료기록을 감정한 감정의가 '요금 미납자에 대한 단전조치 업무는 미납자의 반복적인 폭언과 물리적 저항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직무로서 이러한 업무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는 망인의 우울증 및 강박증을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점(2026. 4. 1. 자 사실조회 회신 6, 7면 참조) 등을 더하여 보면, 망인이 생전에 치료를 받아 왔던 우울증과 강박증은 단전 등 업무에 따른 정신적인 부담감이나 압박감,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발생하였거나 또는 이로 인해 악화되었다고 볼 수 있고, 망인의 개인적인 취약성이 발병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여 달리 보기는 어렵다.
망인이 2013. 7. 3. E병원에 최초 방문하여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을 당시부터 업무로 인한 부담감을 호소하면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였다고 의무기록에 기재되어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갑 제3호증의 1 제10면 참조), 그 진단 초기부터 망인의 우울증은 매우 심각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망인은 2014년경 I에서 퇴사하여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를 시작한 이후 사망할 무렵까지도 우울증과 강박증 등 정신질환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치료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망인의 증상이 악화와 호전이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기는 하였으나,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한 이후로도 치료를 받으면서 아래와 같이 업무상의 부담을 지속적으로 호소하였던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사업장에서의 근무 역시 망인의 증상 악화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망인은 사망하기 전 2021. 11. 29. E병원에서 마지막으로 진료를 받을 당시에 '불필요한 걱정이 지속된다', '중학시절 친구의 연락이 와도 불안하다'는 등의 증상을 호소하였고, 사망 이틀 전에는 누나에게 전화를 하여 많이 힘들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망인은 평소에는 안방에서 가족들과 함께 잠을 잤으나 사망 당일에는 잠이 오지않는다는 이유로 혼자 작은 방으로 건너간 후에 새벽 05:35경 거실 베란다에 있던 에어컨실외기를 밟고 아래로 투신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 같은 망인의 사망 무렵의 언동에 비추어 보면, 그 무렵 망인은 우울증이나 강박증의 증상이 악화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인식능력 등이 저하된 상황에 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와 관련하여, 망인의 주치의였던 E병원 소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J는 '업무상 부담감, 스트레스가 망인의 자살 행동을 유발한 정신질환 등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사료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고, 정신건강의학과 자문의 K 역시 '망인은 우울증 증상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을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이 사건 처분일 당시 시행 중이던 현행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단서 및 동법 시행령 제36조 제1호에서는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근로자가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에서 한 자해행위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에는 그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본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다.<1> 망인이 사망할 무렵까지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우울증 등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고, 그로 인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인식능력 등이 낮아진 상태에서 자살을 하게 되었음은 앞서 본 것과 같으므로, 망인의 자살로 인한 사망은 위 규정에서 요구하는 업무상 재해의 요건에도 부합한다.
피고는, 망인이 I에서 이 사건 사업장으로 이직하여 단전 등 업무를 더 이상 수행하지 않게 됨에 따라 망인에게 업무상 스트레스를 유발할 요인이 소멸하였고,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으로 이직한 이후로는 특별한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였으며, 망인의 자살은 I에서의 근무가 종료한 때로부터 약 8년 이상 지난 시점에 발생한 점에 비추어, 망인의 업무와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으로 이직한 이후로도 우울증 및 강박증 증상으로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왔고,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업무상 부담감을 호소한 점, ㉡ 이 사건 사업장으로 이직한 이후로도 망인의 우울증 및 강박증 증상은 완치되지 않은 채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였던 점, ㉢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에서 수행한 업무가 통상적인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심한 우울증과 강박증을 앓고 있었던 망인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을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가 주장하는 사유만으로는 망인의 업무와 자살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소결
따라서 망인의 자살이 망인의 업무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음을 전제로 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하여야 한다.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판결을 취소함과 아울러 이 사건 처분을 취소하기로 한다.
판사 최환(재판장) 김다혜 양철순
각주1) 구 산재보험법 시행령(2020. 1. 7. 대통령령 제30334호로 일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36조 제3호에서는 정신적 이상 상태와 자해행위 사이의 '의학적'인 인과관계를 요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현행 산재보험법 시행령에서는 그 문언상의 인과관계 요건을 '상당인과관계'로 완화하여 자해행위에 대한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호범위를 확대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이와 같이 개정하였다(위와 같이 일부개정된 산재보험법 시행령의 개정이유 참조).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