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이 법원의 심판범위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으로 같은 법 제38조 제1항 제2호에 해당하는 경우 하나의 형으로 처벌하여야 함은 물론이지만 위 규정은 이를 동시에 심판하는 경우에 관한 규정인 것이고 경합범으로 동시에 기소된 사건에 대하여 일부 유죄, 일부 무죄의 선고를 하거나 일부의 죄에 대하여 징역형을, 다른 죄에 대하여 벌금형을 선고하는 등 판결주문이 수개일 때에는 그 1개의 주문에 포함된 부분을 다른 부분과 분리하여 일부상소를 할 수 있는 것이고 당사자 쌍방이 상소하지 아니한 부분은 분리 확정된다고 볼 것인바, 경합범 중 일부에 대하여 무죄, 일부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하여 검사만이 무죄 부분에 대하여 항소를 한 경우 피고인과 검사가 항소하지 아니한 유죄판결 등 부분은 항소기간이 지남으로써 확정되어 항소심에 계속된 사건은 무죄판결 부분에 대한 공소뿐이라 할 것이다(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5도7473 판결, 1992. 1. 21. 선고 91도1402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인은 공동피고인인 D와 함께 별지1, 2 기재 국가보안법 위반, 공문서변조,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의 공소사실로 기소되었고, 서울형사지방법원은 1987. 10. 2.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피고인을 징역 1년 6월 및 자격정지 1년 6월에 처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서울형사지방법원 87고합768, 이하 위 판결 중 피고인에 대한 부분을 ‘재심대상판결’이라고 한다). 위 재심대상판결은 피고인의 항소 포기로 1987. 10. 2. 확정되었다. 피고인은 그 이후 2020. 9. 4. 재심대상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였고, 원심은 2022. 5. 12. 재심대상판결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제422조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판단하여 재심개시결정을 하였다. 원심은 피고인에 대한 공문서변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의 점에 대하여 징역 6월을 선고하고, 나머지 각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에 대하여는 무죄를, 각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의 점에 관하여는 면소를 선고하였다. 그런데 검사만이 위 각 무죄 부분에 대하여 항소하였으므로, 원심판결 중 유죄 및 면소 부분은 적법한 항소가 없어 원심에서 확정되고, 이 법원의 심판범위는 검사가 항소한 무죄부분에 한정된다.
항소이유의 요지(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검찰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관련
피고인은 1987. 5. 19. 검찰로 송치되어 국군보안사령부 및 치안본부의 감시로부터 벗어났고, 검찰에서 1987. 5. 20.부터 같은 해 6. 11.까지 약 3주간 6회 조사받으면서 치안본부 조사 당시 하였던 진술을 번복‧수정하였다. 즉, 피고인에 대한 검찰 피의자신문조서는 임의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작성된 것으로서 증거능력이 있다.
G는 검찰 이전의 수사기관에서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하였다고 명확하게 주장한 반면, 검찰 조사 상황에 대하여는 ‘기억에 없다’고 진술하였다. 따라서 G에 대한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임의성을 막연히 부정하고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
각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 관련
E, G 등 J(이하 ‘J’이라 한다) 조직원들이 J의 목적에 관하여 한 진술, J 조직원들이 학습한 유인물의 내용 등에 의하면 J은 북한에 동조하여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이하 ‘NLPDR’이라 한다)을 실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북한이 제창하는 미제국주의‧반동파쇼론, 통일전술론 등 이념에 동조한 사실이 인정되는바, J은 이적단체에 해당한다. 또한 피고인이 취득하여 교부한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엔엘피디에 대하여’, ‘단결, 단결, 단결, 반종파투쟁의 기치를 높이 올리자’, ‘국제정세’라는 제목의 각 유인물(이하 ‘이 사건 각 유인물’이라 한다)은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전선 전술론, NLPDR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바, 이는 이적표현물에 해당하고 피고인의 이적목적도 충분히 인정된다. 그럼에도 피고인에 대한 각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에는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
검찰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관하여
관련 법리
피고인이 검사 이전의 수사기관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하여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하고 그 후 검사의 조사단계에서도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되어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하였다면 검사의 조사단계에서 고문 등 자백의 강요행위가 없었다고 하여도 검사 앞에서의 자백도 임의성 없는 자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대법원 1992. 11. 24. 선고 92도2409 판결 참조). 이러한 임의성에 다툼이 있을 때에는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을 해야 하고,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진술증거는 증거능력이 부정된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4도7900 판결 참조).
원심 판단의 요지
원심은 아래와 같은 사정을 들어 검사가 작성한 피고인 및 G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는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된 상태에서 작성된 것으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피고인은 1987. 4. 26. 서울 도봉구 우이동 도봉산 계곡에서 개최된 회의에 참석하였다가, 위 회의에 참석하였던 10여 명과 함께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에 의해 영장 없이 강제 연행되었고, 그때부터 1987. 5. 1.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같은 날 집행될 때까지 치안본부에 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채 구금되어 있었다. 피고인은 1987. 4. 27.부터 같은 달 30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취지의 진술서를 작성하였고, 같은 달 29일 및 30일 두 차례에 걸쳐 치안본부 수사관이 자백 취지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다.
피고인은 재심대상사건의 법정에서 ‘수사기관에서 고문을 받았고, 고문에 의하여 작성된 공소장에 근거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원심 법정에서 ‘끌려가자마자 5시간 정도 대소변을 쌀 정도로 얻어 맞았다. 제가 생각할 때 물전기를 1박 2일 정도 먹은 것 같은데, 거기가 어딘지 몰랐다. 나중에 남영동(치안본부)으로 가서야 그곳이 보안사라는 것을 알았다. 안 죽기 위해서 쓸 수밖에 없었다’, ‘남영동(치안본부) 앞에 가건물 큰 것이 있었는데, 권총을 겨누고 자술서를 쓸 때 어떤 식으로 했느냐 하면 그 때는 제가 53kg 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청년이었는데, 쇄골에 손가락을 걸고 부르는 대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쇄골을) 뽑아가지고 진짜 드득드득 하고 뺐다 끼웠다 하면서’라고 진술하였다.
치안본부는 1987. 5. 19. 피고인에 대한 사건을 서울지방검찰청으로 송치하였고, 검사는 1987. 5. 20. 서울지방검찰청에서 피고인에 대한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를, 1987. 5. 26. 제2회 피의자신문조서를, 같은 달 27일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를, 같은 달 28일 제4회 피의자신문조서를, 같은 달 29일 제5회 피의자신문조서를, 같은 해 6. 11. 제6회 피의자신문조서를 각 작성하였다. 즉, 피고인은 1987. 4. 26.부터 국군보안사령부 및 치안본부로부터 약 23일간 구금되어 있으면서 고문‧폭행 등 가혹행위를 동반한 불법수사를 받았고, 검찰로 송치된 직후 검사로부터 피의자신문을 받았는바, 검사 이전의 수사기관에서 받은 심리적 압박감이나 정신적 강압상태가 검사의 조사단계까지 계속되어 피고인이 진술하게 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검사의 피의자신문 과정에서 피고인이 이전의 수사기관에서의 일부 진술을 번복한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임의성이 확보된 상태에서의 피의자신문이 이루어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
G는 원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1987년 5월경 J사건과 관련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있다. 이 사건에 증거로 제출된 검찰 작성의 나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조사관들이 요구하는 대로 내가 적은 것에 불과하다. 나는 한밤중에 영장 제시도 없이 연행되어 남영동 대공분실로 알고 있는 곳에서 고문을 당했다. 조사관들은 각목을 내 무릎 사이에 끼웠고, 옆방에서는 비명소리가 났다. 굉장히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조사관이 다른 사람이 쓴 진술서를 갖고 와 「다 이렇게 말했으니, 너도 이런 식으로 써라」라는 식으로 조사가 진행되었다. 나는 경찰로부터 고문을 당하면서 진술서 등을 작성하였다. 검찰 단계에서의 조사과정은 기억에 없으나,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진술한 적은 없다. 경찰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썼어도 검찰에서 이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었으나「경찰에서 조사받은 것을 여기에서 뒤엎으면 돌아가서 다시 조사받은 만큼 그대로 혹은 그 이상 더 받아야 된다」라는 말을 듣고 이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진술하였다. 즉, 검사가 G에 대하여 직접적인 불법구금, 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G 역시 검사의 조사단계에서도 검사 이전의 수사기관인 치안본부의 고문으로 인한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되어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한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 법원의 판단
원심이 적절하게 설시한 위와 같은 사정들과 함께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을 이 사건 기록과 대조하여 면밀히 살펴보면, 피고인과 G가 치안본부에서 불법구금, 가혹행위 등으로 인하여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한 후 검찰 수사단계에서도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되어 같은 내용의 자백을 하였다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인정되고, 당심에 이르기까지도 여전히 그 임의성에 관한 의문점을 해소할 만한 검사의 증명이 부족하다. 따라서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검사의 주장과 같은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 검사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J의 이적단체 해당 여부(이적단체 가입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 관련)
관련법리
국가보안법 제7조 제3항이 규정하는 이른바 ’이적단체‘라 함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이하 ’반국가단체 등‘이라 한다)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하여 특정 다수인이 결성한 계속적이고 독자적인 결합체를 가리킨다. 이와 같은 이적단체 가입죄의 구성요건을 해석할 때에는,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한다‘는 국가보안법의 목적(제1조 제1항)과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이 법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국가보안법 해석․적용의 원칙(제1조 제2항), 유추해석이나 확대해석을 금지하는 죄형법정주의의 기본 정신에 비추어서 엄격히 제한하여 해석하여야 한다. 다만, 어느 단체가 표면적으로는 강령․규약 등에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동조하는 등의 활동을 목적으로 내걸지 않았더라도 그 단체가 주장하는 내용, 활동 내용, 반국가단체 등과 의사연락을 통한 연계성 여부 등을 종합하여 볼 때, 그 단체가 실질적으로 위와 같은 활동을 그 단체의 목적으로 삼았고, 그 단체의 실제 활동에서 그 단체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된다면 그 단체를 이적단체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0. 7. 23. 선고 2010도118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원심의 판단
원심은 아래와 같은 사정을 들어, J은 지역 노동자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로서 그 구성 목적이나 활동 등에 비추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동조하는 활동을 단체의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고 보이고,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단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 부분 공소사실에 기재된 J의 활동 내역을 살펴보면, ① ‘경제원론’, ‘철학의 기초이론’, ‘노동법해설’ 등을 교재로 학습하며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현장 노동자에게 인식시켜야 된다는 등의 결론을 내리고, ② 구로‧영등포 지역을 다니며 취업장소를 물색하여 ‘K 주식회사’의 견습사원으로 입사하고, ③ 지도부 모임을 개최하여 관리체계 및 업무분장을 논의하고, ④ ‘월간동향’,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하여’, ‘엔엘피디에 대하여’, ‘단결, 단결, 단결, 반종파투쟁의 가치를 높이 올리자’, ‘국제정세’ 등의 자료로 학습하고 이를 교부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J의 활동은 대부분 노동자단체를 조직하여 그들의 근로조건이나 처우개선, 권리를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단체 조직을 위한 전략적 구상으로서 조직운동이나 국정세에 관한 도서, 문건을 학습한 것인바, 노동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위장 취업 등 일부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만한 위험성 있는 활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J 조직원들이 학습교재로 사용한 위와 같은 책이나 문건은 대부분 학문적 지식이 담긴 것에 불과하고, 일부 문건에 NLPDR에 관한 언급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위 문건의 내용이 J이 추구하는 목적이라고 볼 자료도 부족하다.
J으로 활동한 G는 원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J의 성격에 대하여 ’구로 -영등포 일대 노동자들의 노동현실에서 불편한 여러 부분들을 개선시키려는 데에 도움이 되기 위하여 만들어진 학생운동과 현장에서 좀 의식 있는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다‘라고 진술하면서 ’(노동현실 외에 북한과 연결지어서 어떤 행동을 하자거나 국가를 전복시키자는) 그런 논의를 한 적이 없고, 그런 논의를 하는 조직의 모임에 가본 적도 없다. 다만, 그런 유인물 같은 것을 본 적은 있지만, 노동자들을 대하는 자세가 이렇게 되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로 보았다. J 활동을 하면서 출판한 홍보물에는 북한과 관련한 이야기는 쓰지 않았고, 주로 근로기준법 관련 이야기를 썼다. 권리를 찾기 위하여 노동자들이 나서야 된다는 취지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라고 진술하였는바, J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동조하여 NLPDR을 실현하려는 목적이나 노선을 가진 단체라고 보기 어렵다.
J의 전신으로 보이는 ’L‘의 창립자 M에 대한 1987. 11. 30.자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피고인 제출 첨부자료 참조)를 보면, M은 ’노동운동의 일환으로 근로자임금투쟁을 하던 중 무언가 체계를 잡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어 J 모임을 가게 되었다. 내가 경찰에서 작성한 자술서에 마치 내가 NLPDR에 대하여 깊이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고, 당시 그런 논의는 없었다. 단지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의 체계를 잡는다는 의미에서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을 지부 형식으로 작은 단위화하는 것을 논의하고, 노조간부 등을 교육하는 기관이나 연구회의 설립, 신문창간 등을 논의하였다‘고 진술하였고, ’경찰에서 일관되게 조직의 이념을 NLPDR의 실현으로 진술하고, 조직의 활동방향도 그런 식으로 진술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먼저 검거되었던 후배들이 그런 식으로 하여 그대로 진술을 따라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NLPDR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J 모임에서 그런 혁명론에 관한 말을 한 적이 전혀 없다‘고 진술하였으며, ’피의자가 말하는 노동운동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사회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근로자들이 근로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민주적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를 시정해나가기 위하여 노동3권을 쟁취하고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정치활동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진정한 민주주의가 된다고 본다. 그러한 활동을 노동운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고 하면서 ’나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으며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보장을 위하여 근로자들을 위한 정당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주의 사상적인 노동운동을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였는바, 이러한 진술에 의하더라도 J의 목적에 관한 공소사실의 기재가 진실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E에 대한 검사 작성의 진술조서 및 진술조서 사본의 기재(증거목록 순번 39, 42, 43)에 의하면, E은 ’나는 J을 결성하여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고, 피고인은 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J을 결성하게 된 것은 1986년 7월 중순경 새로운 노동운동 조직을 결성하는데 동참하라는 M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위 조직을 결성하기 전에는 몇몇 사람들과 노동관련 서적으로 학습을 해오고 있었는데, M으로부터「지금 당장 무슨 당적 차원의 조직을 건설하자는 것이 아니라 남한에서의 진정한 전위조직 건설의 토양을 마련하고 우리들 자신의 전위적 자질을 향상시키며 대중 속에서 정치적 선전‧선동을 행하고 경제투쟁을 지도‧지원할 수 있는 조직으로 시한적 조직의 성격을 가진다」라는 등의 말을 듣고 J을 결성하게 되었다. J의 목적은 노동자 대중 속에서 정치적 선전‧선동을 단행하고 노동자 조직의 건설과 경제투쟁을 지도‧지원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여 반제반파쇼투쟁전선에 나서게 하는 것이었다. J의 기구 중 중앙지도부는 조직전체를 지도‧관리하고 사상이론적 지도와 실천활동을 지도하는 역할을, 각 지부는 중앙지도부의 지도에 따라 소그룹 형태로 실제로 현장 활동을 수행하는 역할을, 노동자교육팀은 실제 근로자를 상대로 의식화 교육을 수행하는 기구로서 야학을 담당하는 역할을, 활동가 교육팀은 현장활동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사상이론교육과 훈련을, 횃불팀은 소식지를 제작‧배포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J은 NLPDR을 노선으로 채택한 사실이 없다. J이 목적으로 삼은 혁명은 노동자를 주력군으로 하여 파쇼를 타도하고 미제국주의를 축출하여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는 모든 투쟁에 있어 대중의 요구를 올바르게 수렴하고 대중과 함께 하는 투쟁이 되게 함에 있었다‘라고 진술하였는바, 위 진술에 의하여 인정되는 J의 목표나 하위조직의 각 역할에 비추어 보더라도 J이 노동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단체에서 더 나아가 이적단체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피고인은 재심대상사건의 제1회 공판기일인 1987. 9. 11. 법정에 출석하여 ’ 본인은 민주화 운동을 굴종시키고 있는 이 절차에 응할 수 없습니다. 내가 위장취업한 것은 노동자들의 원과 한과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들어간 것이지 공산혁명을 하기 위하여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나는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하였습니다. 고문을 통하여 만들어진 공소장에 의하여 이 재판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진술한 후 퇴정하였고, 재심대상사건의 공동피고인인 D도 ’민주화에 목숨을 건 사람들을 반파쇼, 극렬선동분자, 좌경용공세력, 위장취업자 등으로 몰아 탄압하는 것이 현 정권입니다. 또 정부대표가 북한대표와 단독대좌를 하자고 제의하였을 때, 이를 텔레비전에서 보고 이를 고소하지 않았다고 전국민이 죄인이 되는 폭력정권의 또 하나의 도구가 된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입니다. 그런 법에 의하여 재판을 받을 이유가 없어서 이 재판을 거부하고 퇴정하고자 합니다‘라고 진술한 후 퇴정하였으며, 1987. 9. 18. 열린 제2회 공판기일에서도 같은 취지로 퇴정하였다. 즉, 재심대상사건의 각 공판조서에 기재된 피고인과 D의 각 진술에는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수사기관에서 불법으로 구금되어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수집된 자백이나 진술을 토대로 공소제기가 이루어진 것이어서 실질적으로 공소사실을 부인한다는 취지가 기재되어 있다.
이 법원의 판단
원심이 적절하게 설시한 위와 같은 사정들과 함께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을 이 사건 기록과 대조하여 면밀히 살펴보면,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검사의 주장과 같은 사실오인,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검사는 E이 1987. 5. 11. 육군본부 헌병대에서 조사받은 진술조서에 J의 이적단체 해당성을 뒷받침하는 진술기재가 있다고 주장하고, 위 진술조서는 재심대상사건의 기록에 편철되어 있으나, 검사가 이에 대하여 증거신청을 하지 않아 증거로는 제출되지 않았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 중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J이 이적단체에 해당한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적표현물 반포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의 점에 관하여
관련법리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표현물의 내용이 국가보안법의 보호법익인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이어야 하고, 표현물에 이와 같은 이적성이 있는지 여부는 표현물의 전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그 작성의 동기는 물론 표현행위 자체의 태양 및 외부와의 관련사항, 표현행위 당시의 정황 등 제반사정을 종합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7. 23. 선고 2010도118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한편,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의 죄는 제1, 3, 4항에 규정된 이적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목적범임이 명백하다. 목적범에서의 목적은 범죄 성립을 위한 초과주관적 위법요소로서 고의 외에 별도로 요구되는 것이므로, 행위자가 표현물의 이적성을 인식하고 제5항 소정의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인정되지 아니하면 그 구성요건은 충족되지 않는다(대법원 2010. 7. 23. 선고 2010도118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원심의 판단
원심은 피고인이 이 사건 각 유인물을 취득하여 이를 교부한 사실, 이 사건 각 유인물의 기재 내용 중 일부는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 미 제국주의와 그로 인한 한반도의 식민지화, 폭력투쟁의 필요성, 블라디미르 레닌 사상에 대한 소개 및 그 이념을 참고하여 노동자 계급의 단결투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의 취지인 사실은 인정되나, ① 학계에서도 구한말 이후 한반도 정세에 미국이 끼친 부정적 영향에 관한 논의가 빈번하게 제기되어 왔고, 과거 군사정권이 국민들의 자유와 기본권을 억압하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민주화 이후 N의 저서는 국내에서 공식 출판되고 있는 점, ② 위 유인물의 주요내용은 선진적인 지식인들의 활동으로 노동운동을 올바르게 이끌고,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시위 농성을 원칙으로 삼으며, 노동자와 농민, 학생이 주축이 된 투쟁으로써 직선제로의 개헌과 민주적인 권리를 쟁취하자는 것으로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한다고 볼 만한 견해가 직접적으로 제시되고 있지는 않은 점, ③ J은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하여 결성된 노동단체로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적단체라고 할 수도 없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각 유인물의 내용이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공격적인 것에 이르러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J을 반국가단체로 보기 어려운 이상 피고인에게 이적행위의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 법원의 판단
원심이 적절하게 설시한 위와 같은 사정들과 함께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을 이 사건 기록과 대조하여 면밀히 살펴보면,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검사의 주장과 같은 사실오인,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
결론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따라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원범(재판장) 한기수 남우현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