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가 2024. 2. 2. 원고에게 한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을 취소한다.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처분의 경위
원고(B생 남성)는 2012. 8. 1.부터 C 주식회사(이하 '이 사건 사업장'이라 한다) 소속으로 표면 실장 기술(Surface Mount Technology) 공정의 인쇄회로기판(PrintedCircuit Board, 이하 'PCB'라 한다) 설계, 생산, 검수 업무(납땜, 회로기판 세척)를 수행하던 중 2020. 10. 15. 충남대학교병원에서 '상세불명의 전신경화증, 역류성식도염(위- 식도 역류병, 레이노증후군'(이하 통틀어 '이 사건 상병들'이라 한다)을 진단받고 피고에게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피고는 2024. 2. 2. 원고에게 '원고가 납땜 작업을 하면서 주석과 납의 금속 성분에 낮은 수준으로 노출되었으나 현재까지 금속 성분은 전신경화증의 위험요인이 아니고, 원고가 남땜과 세척 작업을 하면서 디클로로메탄과 이소프로필알코올 성분의 유기용제에 주로 노출되었으나 유기용제 노출 수준이 매우 낮아 8년 8개월의 노출기간을 고려하더라도 유기용제 누적 노출량이 적은 것으로 판단되므로, 이 사건 상병들과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3호증, 을 제3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관계 법령
별지 기재와 같다.
이 사건 처분의 위법 여부
원고의 주장 요지
원고는 이 사건 사업장에서 장기간 PCB 설계, 생산, 검수 작업을 수행하면서 플럭스, 유연납, 유기용제(디클로로메탄, 이소프로필알코올 등)에 노출되어 이 사건 상병들이 발병하였으므로,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들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인정 사실
구체적인 업무내용과 작업 환경 등
원고는 이 사건 사업장에서 연구개발부 소속으로 반도체 PCB 설계, 생산관리 및 제품검수업무를 담당하였는데, 그 중 PCB 검수업무를 하면서 납땜 및 세척 업무를 수행하였다.
PCB 검수업무는 기판 확인, 교체·테스트를 위한 납땜, 납땜 부위 세척(면봉, 칫솔 등에 세척제를 발라서 납땜 부위를 닦아냄), 테스트 순서로 이루어지고, 필요한 경우 위 과정이 2~4회 반복되었다. 원고는 일주일에 1, 2일, 1일 2시간에서 최대 3~4시간 동안 위 업무를 수행하였고, 납땜은 1회 약 5분, 세척은 1회 약 1~2분이 소요되었다.
원고는 별도의 작업대에서 PCB 검수업무를 수행하였는데, 작업대 위에는 국소 배기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공기정화장치는 없었다. 원고의 동료 근로자였던 D, E은 '위 국소 배기장치의 흡입력이 약했고, 제조부서와 달리 연구개발부서에는 납땜 및 세척 업무 중 마스크, 보호장갑 등의 보호장구가 지급되지 않아 이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하였다(갑 제6호증).
직업환경연구원의 역학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납땜 및 세척 작업 과정및 작업 장소는 아래 사진과 같다.<1>
원고가 업무 중 사용한 유기용제 등과 관련 작업환경측정결과
원고가 납땜을 하면서 사용한 납땜 페이스트(플럭스)의 성분은 염화아연계 융제에 해당하였고, 땜납으로는 주석과 납이 포함된 유연납을 사용하였다. 원고납땜 후 세척 작업을 하면서 사용한 세척제 성분은 디클로로메탄과 이소프로필알코올이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이 사건 사업장의 제조부서에 대한 납땜 및 세척 공정의 작업환경측정결과는 다음과 같다. 원고가 소속된 연구개발 부서의 납땜과 세척 업무에 대한 작업환경측정결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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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최스최피'0호.0m84인3) 원고의 이 사건 상병들 진단 경과 등
전신경화증은 만성적인 다기관 장애로 결합조직의 과다 축적에 따른 피부의 두꺼워짐, 소화기, 폐, 심장, 신장 등 내부기관의 구조와 기능 이상을 동반하는 질환이며, 자가면역질환으로서 면역 활성화, 혈관 손상, 세포외 조직의 콜라겐 과축적이 기전으로 알려져 있다.
원고는 2020년 봄부터 손가락, 팔, 목 부위 피부가 뻣뻣해지면서 가려움증이 동반되었고, 2020. 10. 15. 얼굴 및 목, 팔에 저색소성 반점, 얼굴과 팔 피부가뻣뻣해지는 경화성 변화, 손가락에 레이노 현상(신체 말초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하여 혈액순환 장애가 생기고 이로 인해 피부 색조가 변하는 것)이 나타나 충남대학교병원에 내원하여 이 사건 상병들을 진단받았다. 이 사건 상병들 중 레이노 증후군과 역류성 식도염은 전신경화증이 식도 및 손가락에 침범하여 발생한 합병증이다.
직업환경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
직업환경연구원은 피고의 의뢰로 실시한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 결과'고온에서 이루어지는 용접과 달리 납땜에서 발생하는 주석과 납의 금속 성분에 대한흄의 발생량이 적고, 인쇄 회로 기판에 대한 1회의 납땜 작업 시간이 5분이면서 반복적으로 하루 최대 3~4시간의 납땜 작업을 하더라도 납땜을 하면서 발생하는 주석과납, 염화아연계 융제에 대한 노출 수준은 낮은 수준이다. 이에 더하여 원고는 납땜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생산 공정의 작업자와 달리 납땜 작업을 1주일에 1~2일 가량 수행하여 상시 작업에 해당하지 않았다. 세척 작업에서는 세척제 성분(디클로로메탄, 이소프로필알코올)에 노출될 수 있지만, 1회 세척 시에 사용되는 세척제의 양이 적고 1회 세척시에 1~2분 가량 적은 시간이 소요되어 하루에 여러 차례 세척을 반복하더라도 디클로로메탄과 이소프로필알코올에 대한 노출 수준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판단된다. 생산 공정 중 납땜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수동 납땜 및 세척 공정의 작업자에서도 주석의 노출 수준이 산술 평균 0.0002mg/㎡(시료 수 11개, 범위 0.00005~0.0005mg/㎡)이면서납의 노출 수준이 1개 시료에서 0.0001mg/㎡로 나타났고, 디클로로메탄의 노출 수준이 2.930ppm(시료 수 6, 범위 0.738~6.243ppm), 이소프로필알콜의 노출 수준이 1.956ppm(시료 수 8, 범위 1.096~6.036ppm)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유기용제의 노출과전신경화증 간의 연관성을 메타분석한 연구에서 전반적으로 유기용제의 노출과 전신경화증 간의 관련성이 보고되고 있으나, 낮은 수준의 유기용제 노출이나 유기용제에 대한 누적 노출량이 적은 경우에도 전신경화증과의 관련성을 담보하기에는 현재까지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종합하면, 원고는 납땜 작업을 하면서 주로 주석과 납의 금속 성분에 낮은 수준으로 노출되었으나, 현재까지 금속 성분은 전신경화증의 위험 요인이 아니다. 또한 원고가 세척 작업을 하면서 디클로로메탄과 이소프로필알콜 성분의 유기용제에 주로 노출되었으나, 작업 중 노출 수준이 매우 낮고, 8년 8개월의 노출 기간을 고려하더라도, 유기용제에 대한 전체 누적 노출량이 적어 원고에게 발생한 전신경화증과의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된다'는 취지의 역학조사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 법원 진료기록감정의의 의학적 소견
이 법원 진료기록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는 '전신경화증은 복잡한 병인과 다인성 원인을 가지고 있고, 여러 연구에서 몇 가지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들이 제시되었으며, 직업적인 요인과 관련하여 전신경화증 발병과 결정형 유리규산과 유기용제에 대한 직업적 노출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유기용제는 전신경화증의 직업적 위험요인으로 역학연구를 통해 일관되게 관련성을 보이는 화학물질이다. 유기용제와 전신경화증 발병에 대한 메커니즘은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이전 연구들에서 유기용제가 핵산 및 단백질과 결합하여 면역교란물질을 생성하고 전신경화증 발병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측하였다. 일부 연구에서는 용접 흄과 납 등중금속도 전신경화증의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아직 일관되지 않고 메타분석에서도 유의한 위험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전신경화증의 확인된 요인으로 가장 뚜렷한 요인은 결정형 실리카와 유기용제(화이트 스피릿, 방향족, 지방족 화합물, 할로겐 용제, 톨루엔, 케톤 등)이다. 원고가 노출된 세척제로서 메타크린의 디클로로메탄과 이소프로필알코올 개별 용제의 전신경화증과의 관련 보고는 없으나, 디클로로메탄의 할로겐 화합물, 이소프로필알코올의 지방족 화합물로서의 용제의 위험보고가 있어 전신경화증의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원고는 8년 8개월 동안 메타크린, 이소프로필알코올을 헝겊 또는 면봉에 묻혀서 맨손으로 회로기판 세척 업무를 수행하며 유기용제가 피부와 호흡으로 누적 노출되어 이로 인한 전신경화증 발병 위험이 높다고 판단된다. 개인 보호장비(장갑, 마스크 등)가 지급되지 않고 국소배기장치의 기능이 미흡한 작업환경은 원고의 작업 중 화학물질에 더 높게 노출될 수 있다. 이 사건 사업장의 생산공정 중 수동납땜 및 세척 공정 작업자에서도 주석 노출수준이 평균 0.002mg/㎥, 납의 노출수준은 0.0001mg/㎡로 나타났고, 디클로로메탄은 2.930ppm, 이소프로필알코올은 1.956ppm으로 노출기준 대비 매우 낮은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작업과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특성상 작업장 내 지역공기 중 측정결과는 작업지점에서의 개인 노출수준보다 낮을 수밖에 없고, 8시간 시간가중 평균치보다 단시간 내지 최고치에서 높을 수 있다. 또한 호흡을 통한 노출뿐 아니라 피부접촉에 의한 노출을 고려하여야 한다. 원고의 작업에 의한 유기용제의 노출이 매우 낮다고 판단하며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고는 전신경화증과 관련하여 어떠한 개인적 위험인자를 특정할 수 없으며, 비록 누적 노출량이 적지만 오랜 기간 동안 PCB 납땜과 세척 업무를 수행하며 다양한 유기용제(지방족, 할로겐 화합물 및 방향족 화합물)는 전신경화증의 위험요인으로 유의하게 영향을 미치는 특정물질이다. 또한 아직은 일관된 결과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용접 흄(납땜 작업)과 납 또한 전신경화증과 일부 관련성을 보이고 있다. 전신경화증은 매우 드문 희귀한 질환이나 대체적으로 직업적 노출과 관련성이 있고, 전신경화증과 관련하여 원고는 어떠한 개인적 위험인자를 특정할 수 없어 작업 중 노출된 유해 화학물질에 의하여 발병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의학적 소견을 제시하였다.
이 법원 진료기록감정의(류마티스 내과)는 '전신경화증은 원인이 명확히밝혀지지 않은 자가면역질환으로, 현재로서는 유전적 소인을 가진 개인에서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질환이 발현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환경적 인자로는 비닐클로라이드, 규진, 일부 유기용제 등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러한 인자들이 개별 환자의 발병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며, 전신경화증은 특정한 하나의 원인만으로 발병하는 질환이 아니다. 원고가 노출되었다고 보고된 납, 디클로로메탄, 이소프로필알코올이 각각 독립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전신경화증 발병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의학적 근거가 없다. 또한 이러한 물질들의 노출량과 질병 발병 간의 용량-의존적 관계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도 부족하다. 유기용제 노출이 전신경화증의 환경적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나, 이소프로필알코올, 메타크릴레이트 또는 플럭스 자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보고된 바 없어 이들 물질과 전신경화증 발병간의 인과관계를 뒷받침할 만한 의학적 근거는 현재로서는 부족하다. 15년간 3차 의료기관에서 류마티스내과 전문의로 근무하면서 납, 이소프로필알코올, 메타크릴레이트 등 노출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전신경화증이 발병한 사례를 한 건도 경험한 적이 없다. 임상의로서의 경험적 판단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들물질과 전신경화증 발병 간의 개연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된다. 만일 이러한 물질이 전신경화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유사하게 노출된 다른 사람들에서도 동일한 질환이 다수 발생하는 양상이 관찰되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그러한 보고는 없으므로 이들 유해물질이 전신경화증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은 극히 낮다고 판단된다'는 취지의 의학적 소견을 제시하였다.
[인정 근거] 앞서 든 증거, 갑 제4 내지 7호증, 을 제1, 2, 5호증의 각 기재, 이 법원의 F병원장, 부산대학교병원장에 대한 각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이 법원의 F병원장, 부산대학교병원장에 대한 각 사실조회 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구체적 판단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한다) 제5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두12530 판결, 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두3821 판결 등 참조).
근로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이른바 '직업병'에 대하여는 경험적·이론적 연구결과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산업분야에서는 산업재해 발생의 원인이 어느 정도 규명되어 있기는 하나, 그중에서도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수가 적거나, 기술의 발달 및 사업구조의 변화로 기존의 작업환경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 경우에는 인과관계를 입증할 만한 연구가 이루어지기 위한 표본 자체가 부족할 수 있고, 연구의 필요성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유해성이 인정되지 않던 요소의 위험성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산업재해의 특성상 근로자는 업무수행 과정에서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칠 수 있는데, 산업재해보상보험은 이러한 위험을 대비하는 기능을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여 사회 전체의 갈등과 비용을 줄이고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사회적 기능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지급 여부에 결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하는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규범적으로 조화롭게 반영되어야 한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일정 수준 이상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그 유해요소와 특정 질환 간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근로자의 체질이나 기초질병 및 다른 유해요인과 결합하여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 8.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대법원 2025. 1. 9. 선고 2024두45979 판결 등 참조).
위 인정사실과 앞서 든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하거나 알 수 있는 다음 사실 내지 사정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상병들과 원고의 이 사건 사업장에서의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 서 있는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원고는 PCB 검수업무 중 납땜 및 세척 업무를 수행하면서, 납, 디클로로메탄, 이소프로필알코올 등에 노출되었다. 또한 상시적으로 납땜 및 세척 업무를 수행하는 제조부서와는 달리, 원고에게는 보호장갑, 마스크 등 개인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아 세척제(디클로로메탄, 이소프로필알코올)에 피부가 직접 노출되기도 하였고, 배기시설도 미흡하였으며, 작업대의 모습이나 PCB 및 작업도구의 크기, 납땜 및 세척 작업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얼굴 및 상체를 PCB 기판에 가까이 하거나 숙인 자세로 납땜 및 세척 업무를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사업장의 제조부서에 대한 납땜및 세척 공정의 작업환경측정결과 납, 주석, 디클로로메탄, 이소프로필알코올의 노출수준은 노출기준보다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제조부서의 작업환경과 원고가 소속된 연구개발부의 작업환경이 동일하지 않아 원고의 유해물질 노출 여부 및 노출 수준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고가 납땜 및 세척 업무를 상시적으로 수행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약 8년 넘게 업무 수행과정에서 피부와 호흡으로 상당한 양의 유기용제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노출기준은 단일물질에 노출됨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원고와 같이 여러 유해물질에 복합적으로 노출된 경우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 법원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의는 전신경화증에 대한 직업적인 위험요인과 관련하여 유기용제에 대한 직업적 노출과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다양한 연구결과를 제시하였고, 직업환경연구원의 역학조사에서도 유기용제의 노출과 전신경화증 간의 연관성을 메타분석한 연구에서 전반적으로 유기용제의 노출과 전신경화증 간의 관련성이 보고되고 있다고 조사되었다. 비록 원고가 노출된 디클로로메탄, 이 소프로필알코올이 전신경화증 발병과 개별적 또는 직접적 관련성이 있는지에 관한 자료는 없으나, 디클로로메탄은 할로겐 화합물, 이소프로필알코올은 지방족 화합물로서 전신경화증과 관련성이 확인된 유기용제 범위에 포함된다. 또한 원고가 노출된 납 역시 전신경화증 발병과 관련성이 있다는 일부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디클로로메탄, 이소프로필알코올, 납 등이 이 사건 상병의 직접적인 발병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발병이나 악화에 기여하는 요인 중 하나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 법원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의는 '원고가 이 사건 사업장에서의 업무 중 유기용제, 납 등에 노출되어 전신경화증이 발병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원고는 전형적인 전신경화증 환자에서 관찰되는 임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특발성 전신경화증과 유해물질 노출에 의해 유발된 전신경화증 사이에는 뚜렷한 임상적 차이가 보고되어 있지 않으며, 임상 증상만으로 두 가지를 구분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원고는 만 32세에 전신경화증을 진단받았고, 전신경화증과 관련된 다른 개인적 위험요인은 확인되지 않으며, 건강보험 수진내역에서도 전신경화증과 관련된 병력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법원 진료기록감정의(류마티스 내과)는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들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취지의 의학적 소견을 제시하였으나, 위 감정의의 소견은 원고가 노출된 납, 디클로로메탄, 이소프로필알코올이 각각 독립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전신경화증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학적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및 위 감정의의 임상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위 감정의의 소견에 따르더라도 전신경화증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유해물질에 대한 개인적 감수성은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며,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다.
전신경화증의 발생기전이나 위험요인이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질병이다. 의학적으로는 현재까지 전신경화증의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전신경화증 및 그 합병증들인 이 사건 상병들이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원고가 약 8년 동안 이 사건 사업장에서 유기용제 등에 노출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였거나 적어도 다른 불상의 발병 원인과 겹쳐서 유발 또는 촉진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결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유영화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