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가 2024. 5. 24. 원고에게 한 유족급여 및 장례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처분의 경위
원고의 남편 B(C생)은 D조합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였다.
B은 2022. 10. 29. 정신과 약물을 복용한 후 자택에서 엎드려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이하 B을 '고인'이라 한다).
원고는 고인이 업무상 사망하였다고 주장하며 유족급여 및 장례비를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2024. 5. 24. '신청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부지급 결정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심사청구를 하였으나, 피고는 2024. 9. 이를 기각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4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당사자들의 주장 요지
원고
고인은 고혈압과 우울증을 가진 상태에서 직장상사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인해위 증상이 악화되어 자살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고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피고
고인은 직장상사와 사소한 갈등상황은 있었으나,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악화시켜 자살에 이르게 할 만한 구체적인 정황은 확인되지 않으며, 통상의 범위를 넘어서 부당한 업무지시, 폭언, 갈등 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고인의 업무상 스트레스의 정도가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하여 자살을 할 정도라고 보기는 미흡하다. 고인의 업무와 재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
관계 법령
별지 기재와 같다.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한지 여부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 · 질병 · 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고,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6두58840 판결 등 참조).
인정사실
갑 제5 내지 7, 11호증, 을 제2호증의 각 기재, 증인 E의 일부 증언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아래의 사실이 인정된다.
고인은 1998. 3. 1.부터 현 직장에 근무하였고, 사망 당시 부장으로서 전무 F, 부장 G, 대리 E와 함께 근무하였다.
고인은 2019. 7. 2.부터 강원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였고, 2019. 7.2.부터 2020. 10. 7.까지는 적응장애, 2020. 11. 4.부터 2022. 3. 3.까지는 중증도 우울 에피소드로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받았다. 의료기록지에는 아래와 같은 고인의 진술이 기록되어 있다.
고인이 2019. 8. 21. 강원대학교병원에서 받은 심리검사결과지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고인은 사망 당일 원고에게 "잘 살어 더 이상 볼 것도 없는 몸이랑 아니다 뭔말이 더 필요하냐", "이제 다 끝났다 털어 넣었다 난 정말 여기가 끝인갑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이후 한 달 치 이상 분량의 정신과 약을 한 번에 복용하고 사망하였다.
구체적인 판단
앞서 인정한 사실과, 앞서 든 증거, 갑 제9, 10호증, 을 제1호증의 각 기재, 이 법원의 서울대학교병원에 대한 감정촉탁 결과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의 사정을 종합하여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고인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발현 및 악화된 우울증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된다. 결국 고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고인의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나 고인이 임의로 약물 투약을 중단한 것이 자살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달리 볼 수 없다.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고인의 정신건강의학과 내원 기록에는 최초의 방문에서부터, 직장 내에서 직장상사와의 의견 차이와 업무상 질책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후의 기록에도 '상사를 보면 겁부터 나면서 두근거린다. 상사가 (고인이) 다시 병원에 다니는걸 알고 좀조용해졌다', '중간자가 내년에 그만두면 상무랑 둘만 남게 되어서 그만 둘 생각', '직장상사를 죽여 버리고 싶다. 흘려들으려고 하는데 들었던 이야기가 자꾸 머리에 남는다', '2019년 사표 냈더니 내 대신 윗사람에게 폭발하고, 그 사람이 나간다고 하니 또 작년 10월부터 나에게 막말', '내 밑에 들어온 지 5년 된 여직원 대리, 25년째 있던 곳이고 여기서 문제제기 하면 그 동안 쌓아온 사람들, 직장 나가야 할 수도 있어서 경제적인 문제 등 버티기 해야 하는 상황', '상사랑 어제 한번 붙었다고 함' 등의 내용이 있다. 이에 따르면, 고인의 직장 상사와의 갈등 상황, 상사의 업무방식으로 인한 스트레스 및 압박, 상사에 대한 적개심 등이 분명히 인정되고, 그로 인해 고인이 받았을 개인적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것으로 충분히 추인할 수 있다.
고인에 대한 심리생리검사지에 의하더라도, 고인은 스트레스와 고통이 심했을 때 부주의해지고 실수가 잦아져 업무상 비난을 받았고, 그로 인해 자기 확신감과 효능감이 저하되어 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 또다시 비난받고 원성을 사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심리상태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고는, '회사 전무가 고인을 무시하고 인격모독을 하는 등 계속해서 괴롭혔고, 고인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이 점점 심해졌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과도하고 전무의 괴롭힘으로 고인 스스로 이러다 큰일이 나겠다고 생각하여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고인은 2021. 7.~8.경 계속 다니다가는 죽겠다고 이야기하며 사직서를 제출하여 일주일은 출근하지 않았는데, 회사가 제출한 사직서를 반려하고 계속 출근하라고 재촉하여 고인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복귀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고인의 지인인 I도 '고인과 2014년경부터 꾸준히 만났는데, 고인이 전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굉장히 고통스러워했고, 더 이상 참고 있으면 문제가 되겠다면서 정신과를 다녀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전무가 고인을 여직원 앞에서 벌레 취급하면서 무시하고, 다른 직원이 있든 말든 고인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인신공격을 하여 엄청 괴로워했다'고 진술하였다.
한편 직장 내에서 고인에게 구체적으로 부당한 지시, 폭언, 인격모독 등이 있었음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가 제출되어 있지는 않고, 고인의 직장 후배였던 E는 이 법정에서, 'F 전무가 다른 직원들이 있는 공개된 장소에서 고인을 큰 소리로 질책하거나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고 진술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E는 'F가 고인에게 언성을 높였던 기억이 있는 것 같고, 고인이 한숨을 푹푹 쉬는 등 힘들어 할 때가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E는 2022. 11.17. 원고에게 "안녕하세요 어제 통화 후 생각을 많이 해 봤습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마음이 더 무거운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제가 노무사 분에게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 책임감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께도 자문을 구했는데 어쩔 수 없이 제 걱정을 하시고요.. 어제 성급하게 대답을 드린 것 같아 이런 말을 전달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위 문자메시지를 보낸 전후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고인과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관한 E의 진술에는 일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E는 고인의 업무 처리가 꼼꼼하지 못하였다고도 진술하였다).
나아가 직장 내 상하관계에서 부당한 지시 또는 폭언이나 인격모독 등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도, 상사의 업무방식이나 성격의 차이 등으로 인해 하급자로서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고, 반드시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이 존재하거나 구체적으로 증명되어야만 그러한 스트레스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고인이 정신건강의학과에 자발적으로 내원하게 된 경위, 의료기록 및 심리생리검사서에 담긴 내용과 그 구체성 등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고인에게 우울증을 발병시키고 중증도로 악화하게 할 정도로 직장 상사와의 갈등상황이 존재했고 그로 인해 고인이큰 스트레스를 받았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고인의 근무지는 4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소규모의 사업장이었고 장기간 같은 인적 구성이 계속되었다. 고인은 갈등이 있었던 전무와 기존에 20년 이상 함께 근무하였고, 그 후로도 상당 기간 함께 근무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또한 위에서 본 것처럼 고인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경제적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껴왔고, 한번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나 그 사직서가 반려된 적도 있었다. 이처럼 고인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 내 환경은 큰 변화 없이 긴 기간 그대로 유지되었고(이는 고인이 우울증약의 복용을 잠시 중단한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고인의 우울증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한편 고인의 사망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E를 제외한 다른 임직원들은 모두 퇴사하였다).
고인은 아버지, 장모 등 가족들과의 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 것으로 보이나, 의료기록상 그와 관련된 내용은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부분에 비해 미미하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외에 고인을 자해행위에 이르게 할 정도의 다른 요인이 있었다고 볼 만한 구체적인 사정이 밝혀져 있지도 않다.
한편 고인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 당시 소량의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로 비교적 짧은 기간에 증상의 호전을 보였음에도,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스스로 증상을 극복해 보려고 하다가 증상이 악화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위에서 본 여러 사정에 비추어 고인에게 우울증이 발병 및 악화된 것은 고인의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것임이 분명하다. 고인이 정신건강의학과에 자발적으로 내원하여 치료를 받은 것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한 고인의 노력이었고, 고인은 투약을 중단하였다가 상태가 나빠지자 다시 내원하여 약을 처방받기도 하였다. 비록 고인이 스스로 우울증을 이겨내겠다며 내원 및 투약을 중단한 것이 고인에게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고, 그로 인하여 악화된 우울증이 자해행위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는 고인의 업무와 우울증 및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볼 수 없다.
결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한다.
판사 강우찬(재판장) 신옥영 이주일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