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판결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1. 4. 8. 선고 2020고단836 판결

주문

피고인은 무죄.

이유

1.

공소사실

피고인은 경기 화성시 B, C호에서 ‘주식회사 D’이라는 상호로 철물공사업 등을 운영하는 사람이고, 피해자 E 주식회사는 철강 유통업에 종사하는 자이다.

피고인은 2014. 1. 31. 위 피고인의 회사 사무실에서 피해자 회사의 담당자인 이사 F에게 ‘철판을 공급해주면 대금을 다음 달 말일에 지급하겠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이 운영하는 주식회사 D은 2012년 후반기부터 부채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관련 업체 부도로 인한 대금회수 불능 등으로 적자 운영되고 있었고, 당시 거래처인 G과 H 등에 미지급한 철판 대금이 약 25억 원 상당 누적된 상태로 G에서의 납품이 중단된 상태였으므로, 피해자로부터 철판원자재를 공급받더라도 그 대금을 약속한 날짜에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피고인은 위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같은 날 철판 114,273,338원 상당을 교부받고, 같은 해 2. 28. 같은 방법으로 철판 75,163,946원 상당을 교부받아 총 189,437,284원 상당을 교부받았다(이하 위 거래를 통틀어 ‘이 사건 거래’라 하고, 이를 통해 거래된 철판을 ‘이 사건 철판’이라 한다).

2.

판단

가.

관련 법리

사업의 수행과정에서 이루어진 거래에 있어서 그 채무불이행이 예측된 결과라고 하여 그 기업경영자에 대한 사기죄의 성부가 문제된 경우, 그 거래시점에 그 사업체가 경영부진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사정에 따라 파산에 이를 수 있다고 예견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사기죄의 고의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발생한 결과에 따라 범죄의 성부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설사 기업경영자가 파산에 의한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태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고, 계약이행을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었을 때에는 사기죄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 1. 25. 선고 2016도18432 판결, 대법원 2001. 3. 27. 선고 2001도202 판결, 대법원 2016. 6. 9. 선고 2015도18555 판결 등 참조).

나.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인정사실 및 증거관계

1)

제출된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 회사는 2013. 12.경부터 E 주식회사(이하 ‘고소인 회사’라 한다)로부터 철판을 공급받기 시작하였고, 2013. 12. 공급분 대금 73,822,683원은 변제하였으나, 114,273,338원 상당의 2014. 1. 공급분과 75,163,946원 상당의 2014. 2. 공급분에 대해서는 철판대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사실, 피고인 회사는 고소인 회사와 거래하기 전 G과 H으로부터 철판을 공급받았으나 G은 2013. 12.경 이전에 미수금 누적을 이유로 철판공급을 중단한 상태였고, H도 미수금 누적을 이유로 대금의 (원청업체로부터의) 직불을 요구하였는데, 그 무렵 위 G과 H에 대한 철판대금미수금이 총 25억 원 상당에 이른 사실, 피고인 회사는 2014. 4. 1. 회생절차개시를 신청하였고, 그 무렵 피고인 회사는 회생담보권 약 107억 원, 회생채권 약 110억 원의합계 약 217억 원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던 사실(수사기록 1권 14쪽, 이하 권수와 쪽 수로만 특정한다), 위 회생개시절차 신청서에는 ‘피고인 회사는 2012. 7.경부터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 각종 손실이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2013년도 부채비율은 242%’라는 취지로 기재되어 있는 사실(1권 188~189쪽), 피고인 회사에 대한 기업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피고인 회사는 2012년부터 영업이익과 순이익증가율이 감소세로 돌아섰고, 2015. 1. 9. 기준으로 기업분석등급이 ‘C3’로서 ‘채무불이행 발생 가능성이 높아 향후 회복가능성이 낮고 적기 상환능력이 의심되는 수준으로 현금거래가 요망되는 위험 수준’으로 평가된 사실(1권 9~10쪽), 피고인 회사는 2019. 5. 8. 파산선고를 받았고, 파산관재인보고서상 채무자의 영업상태 및 파산선고에 이른 사정에 관하여, ‘2012년경 공장용 부지를 매수하여 제1, 2공장의 건축으로 많은 채무를 부담하였으며, 2013년경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매출감소로 금융기관에서 추가 자금 차입이 무산되어 재정적 파탄에 처했다’는 취지로 기재되어 있는 사실(1권 33쪽), 피고인 회사의 근로자들이 2012. 7.경부터 임금 체불을 이유로 피고인을 여러 차례 진정한 사실, 피고인 회사가 고소인 회사로부터 공급받은 철판은 가공절차를 거쳐 I현장과 J에 납품하였는데 그 납품대금 중 일부는 H에 직불처리 되었고, 나머지 기성금으로 종전에 미납된 거래처의 결제대금부터 변제하는 바람에 고소인 회사에 변제하지 못한 사실(1권 69쪽)이 인정되고, 고소인 회사의 이사 F은 법정에 출석하여, 자신이 2014. 3. 중순경 이 사건 철판대금의 지급을 재촉하자 피고인이, ‘늦어도 2014. 4. 10.까지 변제하겠다’고 약속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2)

위 인정사실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거래 당시 피고인이 고소인 회사 측에 이 사건 철판대금을 지급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거나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

다.

사기죄의 성립 여부

그러나, 제출된 증거 및 이 사건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해보면, 위 인정사실 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거래 당시 철판대금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에 관하여 피해자를 기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당시 피고인이 고소인 회사에 대한 철판대금 지급의무 불이행의 가능성을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태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계약이행을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이는 등 피고인이 편취의 고의로 이 사건 철판을 공급받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피고인에 대하여 기망행위나 편취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

1)

피고인 회사와 고소인 회사가 거래를 시작할 무렵 피고인이 먼저 고소인 회사 측에 철판 공급을 제안하였다고 볼 자료가 없고(피고인 측은 고소인 회사의 대표이 사가 피고인을 찾아와 철판을 공급하게 해달라며 거래를 제안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1권 70쪽), F은 법정에 출석하여, ‘피고인과 고소인 회사 대표이사가 상당한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고소인 회사의 대표이사가 자신에게 “피고인 회사에 가서 거래를 개시하라”고 지시하였는데, 위와 같은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피고인 회사의 사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지는 않고 이 사건 거래를 하게 되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으며, 당시 피고인이 다른 거래 관행과 마찬가지로 철판을 공급받은 다음 달 말일 또는 2개월 되는 달의 말일에 대금을 지급하겠다고 한 것 외에는 달리 피고인 회사의 재정상태나 사업 현황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고지하는 등 적극적으로 고소인 회사의 대표이사나 이사 F을 기망하였다고 볼 자료가 없다.

2)

한편 F은, 피고인이 어떤 기망행위를 하였는지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상행 위에서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약속한 날짜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무불이행, 2014. 4. 10.까지 변제하기로 하고 2014. 4. 1.에 회생절차를 신청한것’을 지적하였으나, ⅰ) 위 변제기일은, 이 사건 철판대금이 2014. 3.까지도 결제될 조짐이 보이지 않아 F 본인이 2014. 3. 중순경 직접 피고인을 찾아가 재촉을 하는 과정에서 들었다는 것이어서, 이를 근거로 피고인이 이 사건 철판을 공급받을 무렵 고소인 회사 측을 기망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고, ⅱ) 아래에서 보는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거래 무렵 이미 피고인 회사의 회생절차 개시를 염두에 두었다거나 이를 예상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ⅲ) 그 밖에 F 진술의 ‘피고인의 기망행위’는 경영부진 상태에 있는 기업이 존속을 위하여 사업을 계속하는 경우에 악화된 재정상태를 거래 상대방에 일일이 공개하지 않으면 사기죄 성립의 기초가 되는 기망행위에 해당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3)

회생개시절차 신청 무렵 피고인 회사의 채무가 약 217억 원의 거액에 달하였고, 이 사건 거래 당시 피고인 회사에 철판을 공급하던 G과 H에 대하여 미수금이 누적되어 있었던 사실, G의 경우 물품대금 미지급을 이유로 거래도 중단하였던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한편 피고인 회사의 위 상거래채무 중 G과 H에 대하여 부담하는 철판대금 채무 합계가 약 25억 원에 달하였으나, H에게는 피고인과 그의 처 K 소유의 토지를 담보로 제공하고 있었는바(2020. 3. 10.자 변호인 의견서 및 2020. 10. 7.자 변 호인 의견서 첨부 참고자료), 고소인 회사가 아니었더라도 H으로부터 (고소인 회사로부터 공급받은 물량 수준의) 추가적인 철판 공급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보이지 않는다.

4)

피고인은 고소인 회사로부터 공급받은 이 사건 철판을 가공하여 I 공사현장 및 J로부터 수주한 공사현장에 모두 투입하였고, 그 무렵 꾸준히 철물공사업을 영위하며 기업활동을 지속하였다. 다만, 피고인은 이 사건 철판을 공급한 현장에서 수금한 대금을 즉시 결제가 필요한 인건비나 변제기가 선도래한 물품대금 등에 지출함에 따라 고소인 회사에 변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방식의 자금 운용은 유동성 부족을 겪는 기업에서 흔히 있는 일이고, 피고인이 고소인 회사로부터 공급받은 철판의 가공판매로 발생한 매출금으로 고소인 회사에 대한 물품대금을 우선하여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고 볼 증거도 없는 이상, 위와 같은 자금운용을 근거로 고소인 회사에 대한 철판대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5)

피고인 회사가 회생절차개시를 신청한 경위에 대하여 피고인은, 2014. 3.경 G 등 채권자들이 한꺼번에 피고인 회사의 예금채권에 대하여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았고, 그중 G은 강제경매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는바, 겨울철 한파로 공사가 지연되어 기성금 회수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피고인 회사 예금계좌의 압류 등으로 위 경매절차를 중지시키지 못하게 되자 기업을 존속시키기 위해 2014. 3.말경 급하게 대리인을 선임하여 2014. 4. 1. 회생절차개시 신청을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와 달리 피고인이 이 사건 거래 무렵부터 이미 회생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볼만한 자료는 없다.

6)

피고인 회사에 대하여 2014. 6. 3. 회생개시결정이 내려졌고, 위 절차에서 채권자들에 대한 현금상환비율을 45%로 하여 2019년부터 2025년까지 7년에 걸쳐 매년 1회 현금으로 분할상환하기로 회생계획이 확정되었는데, 피고인 회사는 회생기간 중 2014년부터 2018. 10. 31.까지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을 상당 수준 달성하여 부채규모를 13,747,871,920원에서 6,464,488,042원까지 줄였다. 이후 2019년으로 예정된 현금분할상환의 시작을 2017년으로 앞당겨 미리 지급하였고, 이에 회생법원은 2017. 12. 14. 피고인 회사에 대하여 회생절차종결 결정을 하였다. 그런데 그 후 피고인 회사 매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최대 매출처 L 주식회사가 2018. 4. 26. 부도를 내고 회생절차를 신청하였는바, 이에 따라 피고인 회사는 매출채권을 회수하지 못해 자금경색이 악화되었고, 2018. 8. 20.에는 공장임대차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2018. 10. 31. 화성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을 취소하자 결국 2019. 3.경 법인파산을 신청하였다(1권 63쪽 이하).

7)

피고인 회사의 회생개시절차 신청서나 파산절차에서의 파산관재인 보고서상 피고인 회사의 재무상태가 2012년경부터 이미 상당히 악화되었고, 2013년 부채비율이 매우 높다는 취지의 기재가 있으며, 2015. 1. 9.을 기준으로 피고인 회사의 기업분석등급이 낮은 사실, 피고인에 대하여 근로자들이 임금체불을 이유로 수차례 진정을 제기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나 한편, ⅰ) 신용등급평가회사인 주식회사 M이 2013. 5. 3. 작성한 피고인 회사에 대한 신용등급은 ‘B+’로서 위 신용등급의 유효기간은 2013. 5. 3.부터 2014. 5. 2.까지로 보고되었고(2020. 10. 7.자 변호인 의견서 첨부 참고자료), ⅱ) 위 회생개시결정 무렵 피고인 회사의 채무 중 금융기관채무 등을 제외하고 유동성 위기 발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반 상거래채무는 약 58억 원 정도였으며(1권 14쪽), 피고인 측은 ‘위 채무 중 약 26억 원 정도가 조속히 변제될 필요가 있는 채무였는데(G과 H에 대한 철판대금채무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도 대부분 피고인과 처 소유의 부동산이 담보로 제공되어 있는 상태였다’고 변소하고 있다. 또한 ⅲ)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2013년까지는 회사 경영에 별 문제가 없다가 2014년 2/3분기부터 전반적인 건설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체감하였다고 진술한 바 있고(1권 78쪽), ⅳ) 회생절차개시 신청서나 파산관재인 보고서는 모두 사후적으로 회생절차개시 신청 또는 파산에 이르게 된 경과 등을 기술하는 것으로 피고인 회사의 재정상태가 악화된 시기와 원인을 특정하고 이를 부각시켜서 설명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필연적이며, ⅴ) 피고인에 대한 근로기준법위반 사건의 대부분은 회생절차개시 이후의 임금체불에 관한 것(1권 145쪽)이어서 위 각 사정을 근거로 피고인이 이 사건 거래 무렵 이미 이 사건 철판대금의 채무불이행이나 피고인 회사의 회생절차개시를 인식·예견하면서도 이를 용인 내지 감수하고 이 사건 철판을 공급받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3.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 단서에 따라 무죄판결공시의 취지는 선고하지 않는다.

판사 강신영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