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인은 무죄.
이유
공소사실
피고인은 시흥시 B에서 'C'라는 상호로 볼트 등 도·소매업을 운영하는 사람이고, 피해자 D는 영천시 E에서 '주식회사 F'라는 상호로 제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피고인은 2019. 9.경 위 주식회사 F 사무실에서 피해자에게 "중국에 있는 볼트 제조업체와 거래를 하고 있는데, 대금을 미리 주면 볼트를 저렴하게 구입해 주겠다."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피고인은 보유하고 있는 별다른 재산이 없었고,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기존 거래처들에 대한 물품 대금 및 근로자들의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로부터 대금을 지급받더라도 이를 대부분 다른 거래처에 대한 채무변제, 직원 급여, 생활비 등으로 사용할 생각이었을 뿐, 피해자에게 볼트를 제대로 공급해줄 능력이나 의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위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2019. 10. 1.경 피고인이 사용하는 G 명의 기업은행 계좌(계좌번호 1 생략)로 1,500만 원을 송금받은 것을 비롯하여, 그 무렵부터 2020. 4. 1.경까지 별지 범죄일람표 기재와 같이 피해자로부터 총 6회에 걸쳐 합계 7,500만 원을 송금받았다.
판단
관련 법리
물품대금의 편취에 의한 사기죄의 성립여부는 대금을 받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피고인이 대금을 받을 당시에는 물품을 공급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그 이후에 경제사정의 변화로 물품을 공급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한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에 불과할 뿐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한편 사기죄의 주관적 구성요건인 편취의 범의는 피고인이 자백하지 아니하는 한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재력, 환경, 범행의 내용, 거래의 이행과정, 피해자와의 관계 등과 같은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사건과 같이 사업의 수행과정에서 이루어진 물품공급거래에 있어서 채무불이행이 사전에 예측된 결과라고 하여 사업경영자에 대한 사기죄의 성부가 문제가 된 경우에, 대금을 받은 시점에서 사업체가 경영부진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사정에 따라서는 도산에 이를 수 있다고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곧바로 사기죄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하는 것은 발생한 결과에 의하여 범죄의 성부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현실의 경제사회의 실정에도 합치하지 않는다. 기업경영자로서 자금조달에 곤란을 겪고 있어서 한걸음을 잘못 디디면 도산이라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고 하더라도 기업을 존속시키기 위하여 노력을 계속하려고 하면 그만큼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계속하여 받지 않을 수 없다. 물품대금을 받으면서 도산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리는 것은 스스로 신용을 저하시켜 사태를 악화시키는 결과가 되므로 마지못하여 이를 숨기고 거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행위가 모두 사기죄로 처벌된다고 하면 일단 경영부진으로 도산할 우려가 생긴 기업은 거의 대부분 기업의 존속을 위한 모든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경우에 기업경영자들이 도산에 의한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태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한 정도로 있다고 믿고, 성실하게 계약이행을 위한 노력을 할 의사가 있었을 때에는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대법원 2001. 3. 27. 선고 2001도202 판결 참조, 같은 취지의 후속 판결들인 대법원 2008. 6. 12. 선고 2008도2893 판결, 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5도1809 판결, 대법원 2016. 2. 18. 선고 2015도14187 판결, 대법원 2016. 6. 9. 선고 2015도18555 판결, 대법원 2017. 1. 25. 선고 2016도18432 판결, 대법원 2018. 4. 24. 선고 2018도2464 판결, 대법원 2022. 5. 26. 선고 2022도1804 판결 등도 참조).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따라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사기죄의 주관적 요소인 범의를 인정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대법원 2015. 12. 23. 선고 2015도14858 판결 참조).
구체적인 판단
검사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피고인이 물품대금을 받을 당시 피해자에게볼트를 제대로 공급해줄 능력이나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피고인은 보유하고 있는 별다른 재산이 없었다.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기존 거래처들에 대한 물품대금 및 근로자들의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해자로부터 물품대금을 지급받더라도 이를 대부분 다른 거래처에 대한 채무변제, 직원 급여, 생활비 등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피해자도 피고인으로부터 53,890,936원 상당의 물품을 공급받은 후 일부를 불량 처리하고 37,306,092원을 공급받은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수사기록 36쪽).그러므로 피고인이 계약 이행을 위해 노력을 했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다.
검사는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송금한 계좌 및 그에 연결된 계좌의 입출금내역을 분석하여 '무역대전 송금' 명목으로 지출한 금액이 2,975만 원에 불과하고, 상당한 금액이 운전자금 또는 다른 거래처에 지급할 자금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편취 범의의 주요한 근거로 들고 있다(수사기록 211쪽).
그런데 한편, 피고인 및 변호인은 공판기록에 편철된 여러 서면, 증거서류, 참고자료 등을 통해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송금한 계좌 및 그에 연결된 계좌'에서 출금하는 방법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중국의 제조업체에게 이 사건 피해금액 7,500만 원을 상회하는 물품대금을 지급하였고, 중국의 제조업체로부터 피해자에게 납품할 물품을 공급받고자 하였으나 경제사정의 변화 등으로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전부 공급하지는 못하였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또한 피고인 및 변호인은 그 과정에서 'H'라는 직원이 깊게 관여하였고,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고단1021 근로기준법위반 사건(피고인이 H에게 지급하지 아니한 임금이 있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되었다)에서, H가 중국의 제조업체로부터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책임을 일부 부담하여 피고인이 H에게 300만 원만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져 공소기각판결이 선고되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받은 금전이 용도가 특정된 것이 아닌 이상 사용하는 방법은 피고인에게 맡겨져 있다. 피고인이 자신의 다른 자금을 동원하거나 혹은 다른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충분히 물품을 공급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이는 편취의 고의와 쉽게 양립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상과 같은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을 모두 다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검사의 주요 논거 즉 '피해자로부터 물품대금을 지급받더라도 이를 대부분 다른 거래처에 대한 채무변제, 직원 급여, 생활비 등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를 선뜻 믿게 어렵게 하기는 충분하다.
또한 검사는 '피고인은 보유하고 있는 별다른 재산이 없었다. 경영상의 어려움 으로 인해 기존 거래처들에 대한 물품대금 및 근로자들의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었다.'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에게 물품을 공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그 밖에 인정할 증거가 없다(관련 법리 부분에서 인용한 대법원 판결들의 사실관계도 참조).
결론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 형법 제58조 제2항 단서에 따라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지 아니한다.
판사 이지훈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