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5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이유
항소이유의 요지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피해자 한국부품·소재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 이라 한다)에 대한 범행
다음과 같은 점에서 피고인에게는 편취의 범의가 없었다.
피고인이 운영하는 주식회사 E(이하 'E'이라 한다)은 주식회사 G(이하 'G'이라 한다)으로부터 1억 6,000만 원을 빌려 민간부담금을 납입하고, 2008. 11. 27. 피해자 진흥원으로부터 2차년도 정부출연금을 지원받아 그 다음날 정부출연금으로 G에 대한 위 채무를 변제한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피고인은 처음부터 G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돈을 빌린 뒤, 정부출연금을 지원받으면 바로 변제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G이 회계처리를 위해 빌려간 돈을 갚았다가 다시 빌려갈 것을 제의하여 위와 같이 상환하였을 뿐이며, 이후 G으로부터 다시 돈을 빌려 'F' 과제(이하 '이 사건 과제'라 한다)의 연구개발비로 사용하였다.
원심은 피고인이 2008. 11. 28. 2차년도 정부출연금 중 1억 4,300만 원을 이 사건 과제가 아닌 H 개발을 위해 AC의 국내 대리점인 I 주식회사(이하 'I'라 한다)에 지급하였다고 판단하였으나, 위 1억 4,300만 원은 이 사건 과제를 위한 fab 비용이다. 피고인이 검찰에서 위 돈을 H 개발을 위해 사용하였다고 진술한 것은 수술 직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착오에 의한 것이다.
이 외에 원심이 H 개발과 관련하여 소비하였다고 본 87,889,619원 역시 사무실 임대료, 전화요금 등 운영비용으로 지출된 것일 뿐만 아니라, H(V) 기술과 이 사건
과제에 사용된 W(X) 기술은 매우 유사하고, H 기술은 W 기술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설령 위와 같은 지출이 이 사건 과제와 무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정부출연금을 일시 전용한 것에 불과하여, 행정적 제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피해자 진흥원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는 없다.
피고인이 이 사건 과제 수행을 완료하지 못한 것은 예상과 달리 최종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fab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초 공정을 계속 맡기로 한 AC가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하였고, 다른 fab을 확보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2차년도 기술개발의 최종 목표인 800만 화소 영상소자의 시제품을 제작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피해자 J 주식회사(이하 'J' 라 한다)에 대한 범행
다음과 같은 점에서 피고인에게 편취 범의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
피고인이 2010. 2. 3. 피해자 J로부터 L(이하 '이 사건 물품'이라고 한다)의 제작·공급을 위해 지급받은 착수금 954,999,650원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중 일부는 이 사건 물품 제작을 위해서도 필요한 계속적 거래관계에 있던 거래처들에게 지급하거나 이 사건 물품 개발을 위한 외자유치를 위해 사용한 것이므로 이 사건 물품과 무관하게 사용한 것이 아니고, 이후 피고인이 위 착수금 이상의 자금을 조달하여 이 사건 물품의 제작·공급을 위해 사용하였다.
피고인은 미국 Y사로부터 외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그 계획이 실패하여 자금난이 악화되었다.
피고인은 예기치 못한 기술적인 문제로 개발이 지연되어 피해자 J와 개발일정 등에 대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국방과학연구소가 2011. 5. 23. 돌연 상용화된 해외제품을 구입하기는 것으로 정책을 변경하여 그 다음날 이 사건 물품공급계약이 해지되었다. 이와 같이 피고인은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혀 이 사건 물품을 제작하지 못한 것일 뿐 처음부터 편취 범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아가 자금이 풍부하다고 하여 반드시 이 사건 물품을 기한 내에 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양형부당
이 사건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원심의 형(징역 3년)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판단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주장에 대하여
피해자 진흥원에 대한 사기 부분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는, 사실은 ① 피고인이 민간부담금을 부담할 의사나 능력이 없이 G으로부터 1억 6,000만 원을 빌려 마치 민간부담금을 부담한 것처럼 가장하고, ② 피해자 진흥원으로부터 정부출연금을 받자마자 H를 개발하기 위한 비용으로 I에 1억 4,300만 원을 송금하는 등 처음부터 정부출연금을 이 사건 과제와는 상관 없는 용도로 사용할 계획이었다는 것인바, 이하 각 기망행위별로 차례대로 살펴본다.
피고인이 민간부담금을 부담할 의사나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
관련 법리
사기죄의 요건으로서의 기망은 널리 재산상의 거래행위에 있어서 서로 지켜야 할 신의와 성실의 의무를 저버리는 적극적 및 소극적 행위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하고, 반드시 법률행위의 중요 부분에 관한 것임을 요하지 않으며 단지 상대방이 개별적 처분행위를 하기 위한 판단의 기초 사실에 관한 것이면 충분하다(대법원 1983. 2. 22. 선고 82도3139 판결, 대법원 2010. 9. 9. 선고 2010도6662 판결 등 참조). 재물편취를 내용으로 하는 사기죄에 있어서는 기망으로 인한 재물교부가 있으면 그 자체로써 피해자의 재산침해가 되어 이로써 곧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으로(대법원 2000. 7. 7. 선고 2000도1899 판결 등 참조), 이후 상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다거나 상환이 되더라도 사기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
구체적 판단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인 '산업기술혁신사업 공통운영요령' 및 '산업기술혁신사업 사업비 산정, 관리 및 사용, 정산에 관한 요령'에 의하면, 산업기술혁신사업 수행기관이 민간부담금(현금)을 부담할 경우 정부출연금을 지급받기 위해서 먼저 사업비 계좌로 현금을 입금한 다음 그 통장 사본을 첨부하여 청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피고인이 2차년도 정부출연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사업비 계좌에 민간부담금 1억 6,000만 원을 먼저 입금하고 피해자 진흥원에 통장 사본을 제출하여 이를 증명하여야 한다.
피고인은 2008. 11. 11. G으로부터 1억 6,000만 원을 빌려 E의 국민은행 계좌로 송금받은 다음, 이를 사업비 계좌인 E의 기업은행 계좌(BJ)로 이체하여 민간부담금을 입금하였다.
그런데 피고인은 2008. 11. 27. 정부출연금 7억 7,400만 원을 지급받자, 그 다음날 바로 1억 7,000만 원을 위 국민은행 계좌로 출금하여 그 중 1억 6,050만 원을 G에게 송금하였는바, 그 금액(1억 6,000만 원 + 50만 원)에 비추어 원금에 이자를 더해 갚았음을 알 수 있다. 피고인도 검찰에서 정부출연금이 입금되면 G으로부터 빌린 돈을 바로 갚으려고 했다고 진술하였다. 만약 피고인이 G으로부터 빌린 돈을 민간부담금으로 사용할 의사가 있었다면 정부출연금을 지원받자마자 곧바로 이자를 더해 갚지는 아니하였을 것으로 보인다(당시 G이 변제를 독촉하지도 아니하였다). 결국 피고인은 민간부담금을 입금한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돈을 빌렸다가 정부출연금으로 갚은 것으로 판단된다.
피고인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2008. 12. 3. 다시 G으로부터 1억 6,000만 원을 빌려 위 국민은행 계좌를 거쳐 사업비 계좌에 입금한 후, 같은 날 오후 E의 사업비 계좌(기업은행, BK)를 변경하고 그 계좌로 위 1억 6,000만 원을 이체하였다.
피고인은 검찰에서 이와 같이 G으로부터 다시 돈을 빌려 변경된 사업비 계좌로 입금한 이유에 대해 "사업비 계좌를 변경하면 피해자 진흥원에 이를 신고하여야 하는데, 그럴 경우 민간부담금을 출금한 사실이 문제될 것 같아 다시 돈을 빌렸다"라고 진술하였다. 이러한 점에서도 피고인이 당초 민간부담금을 부담할 의사가 없었음을 알 수 있고, 이후 민간부담금에 해당하는 돈을 지출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사기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
한편 피고인은 2008. 12. 15. G에 1억 6,035만 원을 송금했다가 같은 날 다시 같은 돈을 빌렸는데, 이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G이 내부적인 절차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송금해 주었다가 같은 날 다시 입금받았다"라고 진술하였다.
피해자 진흥원 소속 P은 원심 법정에서 "산업기술혁신사업 공통운영요령에 따라서 민간부담금이 입금된 사실이 확인되어야 연구비를 지급하고, E 측에서 민간 부담금을 일시적으로 입금한 후 바로 인출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연구비를 지급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이와 같은 점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당초 진정으로 민간부담금을 부담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민간부담금을 납부한 것으로 믿은 피해자 진흥원으로부터 정부출연금을 지급받은 이상 이를 기초로 수령한 정부출연금 전체에 대해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할 것이다.
피고인이 정부출연금 중 1억 4,300만 원 등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의사였는지 여부
원심의 판단
원심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피고인이 검찰에서 2008. 11. 28. I 주식회사에 송금한 1억 4,300만 원은 H 개발을 위한 칩 공정비용으로 이전부터 있던 외상대금이라 진술한 점, ② 정진 회계법인의 2013. 3. 22.경 E에 대한 현장실태조사에서 E이 이 사건 과제 수행 기간 동안 총 82회에 걸쳐 합계 568,121,347원을 전용한 후 다시 입금한 내역이 확인되었고, 피고인도 이를 인정한 점, ③ 피고인이 2013년 감사를 받으면서 '2차년도 정부출연금 중 약 5억 6,800만 원을 과제 수행과 관련 없이 회사 운영경비로 사용하거나 타 과제의 개발비로 사용하였다가 입금하는 등 전용한 사실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확인서에 서명한 점, ④ 이외에 피고인이 검찰에서 정부출연금 중 H 개발을 위해 2008. 11. 28. 주식회사 동광에스디에 748만 원을, AB에 1,084,580원을, 2008. 12. 2.경부터 2009. 1. 29.경까지 87,889,619원을 각 지급하였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기망행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당심의 판단
검사는 피고인이 정부출연금 중 H 개발을 위해 유용한 돈으로 1억 4,300만 원만 구체적으로 특정하였으므로, 이를 중심으로 피고인의 기망 여부에 대해 살펴보건대, 원심이 설시한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1억 4,300만 원을 H 개발을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원심과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위 1억 4,300만 원을 H 개발을 위해 전용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오히려 이 사건 과제를 위해 사용한 것으로 평가할 여지도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E은 2008. 7. 9. I와 Foundry 개발 및 양산공급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비명(device name): BL
적용 프로그램(application): Image Sensor
개발비 및 지불조건(제6조): 개발비 2억 원(vat 별도), 선금 7,000만 원(대금청구 후 한 달 이내에 지불), 중도금 7,000만 원(wafer 전달하고 발생 당월 말일 대금 청구 후 한 달 이내에 지불), 잔금 6,000만 원(제품인증 후 발생 당월 말일 대금 청구 후 한 달 이내에 지불)
계약해지(16조): 본 제품과 연관된 개발이 추가 4회 이상 진행되거나 개발 진행 후 1년 이상 양산 진행이 되지 않을 경우 I는 계약을 파기할 수 있음
E은 2009. 2. 11. I와 'Foundry 개발 및 양산공급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개발비 및 지불조건: 개발비 1억 원(vat 별도), 시제품 전달 후 납품 당월 이내에 1억 원을 지불'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내용은 대부분 이전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위 두 차례 계약은 모두 동일한 목적을 위해 순차적으로 체결된 것으로, 두 번째 계약은 추가비용 부담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위 각 계약을 통칭할 때는 이하 '이 사건 각 계약'이라 한다).
E은 I에게 2008. 7. 9.자 계약을 체결한 후 2008. 8. 29. 5,700만 원을, 2008. 11. 28. 2차년도 정부출연금으로 1억 4,300만 원을 각 지급하여 합계 2억 원을 지불하였고, 2009. 2. 11.자 계약 후에는 7차례에 걸쳐 합계 1억 1,000만 원을 모두 지급하였다.
E과 I의 직원들은 이 사건 각 계약 체결을 전후로 다량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E은 2008. 2. 29. I에 'F 기반의 새로운 구조의 BM 소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내용의 메일을, I는 2008. 4. 24. E에게 '제품소개: Image Sensor product, 현재 개발 중인 제품인로 AD는 타 fab에서 진행하고 F 공정에 대하여 AC 진행'이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위 각 메일의 내용은 'F'이라는 이 사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그 어디에도 H와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없다.
피고인은 피해자 진흥원으로부터 1차년도 과제에 대한 승인을 받기 전인 2008. 7. 9. I와 첫 번째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이는 당시 1차년도 과제를 승인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고 반도체 공정의 특성상 2차년도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미리 규모가 큰 fab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피고인이 I와 계약을 체결한 다음 2차년도 정부출연금을 지원받아 대금을 지급한 것에 어떠한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아울러 피고인은 검찰에서 위 1억 4,300만 원을 H 개발을 위해 사용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피고인의 주장처럼 약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장시간 조사를 받으면서 자료를 확인하지 못하여 착오로 진술하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이 사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I와 이 사건 각 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2008. 11. 28. 정부출연금 중 1억 4,300만 원을 I에 송금한 것이라는 피고인의 주장도 충분히 수긍할 만 하며, H 개발을 위해 위 돈을 유용한 것임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되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소결론
따라서 피고인이 1억 4,300만 원을 처음부터 다른 용도로 유용할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실제로 유용하지도 않았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있으나, 이는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 기망의 수단 중 일부에 대한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하고, 앞서 본 바와 같이 나머지 기망만으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에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다(다만, 기망행위의 정도가 다소 약해졌음을 양형에 있어서 고려하기로 한다).
그 밖에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사정
피고인은 정부출연금으로 정상적으로 이 사건 과제를 수행하였음에도 fab을 구하지 못했고, 결국 이러한 예상치 못한 이유로 이 사건 과제를 완료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것으로, 피고인이 민간부담금을 부담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이는 이상, 그 자체로 피해자 진흥원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한다 할 것이다.
피고인은 2010. 2. 4. 이 사건 과제를 위해 사업비 계좌로 304,557,610원을 입금하였으나, 이는 피해자 J로부터 받은 착수금을 유용한 것으로 정상적으로 조달한 자금도 아니다.
피해자 J에 대한 사기 부분
원심의 판단
피고인은 원심에서도 이 부분 항소이유와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하였고, 원심은 이에 대하여,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의 편취 범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피고인은 착수금을 지급받은 다음날인 2010. 2. 4.경부터 2010. 2. 19.경까지 착수금을 모두 사용하였고, 피고인이 착수금을 사용한 내역과 E에서 사업계획 및 개발계획을 제출 시 기재한 업체와는 일치하지 아니 하였다(이 사건 물품 공급계약서 '4. 4. 외주가공' 항목에는 협력업체로 AE, AF, AG, AH, AI, AC, AJ, AK, AL, AM, AN, AO이 기재되어 있으나, 피고인이 착수금을 사용한 내역 중 위와 같은 협력업체에 지급한 돈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물품 공급계약서에 기재된 제출일정에 의하면 37주 내로 기계적 검증모델 및 전기적 검증모델이 모두 납품되어 1단계 개발사업이 완료되어야 하지만, 피고인은 약 1년이 경과하여 제출기한을 초과한 후에도 시제품을 내놓지 못하여 피해자 측에서 2011. 4. 7.경 E에 계약이행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며, 개발이 계속 지체되자 2011. 5. 24.경 계약해지를 통보하였다.
E에서 근무하던 S은 검찰에서 '2009년경에는 회사 재정상태가 어려워져 임금을 체불하고 있었고, 피고인은 직원들에게 J 관련 사업을 따서 연구비를 받으면 이전에 체불한 임금을 전부 지급하겠다고 말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는데, E은 이 사건 물품 공급계약 체결 당시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할 정도로 회사 재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착수금을 지급받은 다음날인 2010. 2. 4. 6,700만 원을 인건비로 사용하여 이 사건 물품 공급계약상의 물품 개발과 관련 없는 기존의 체불임금을 지급하였다.
피고인은 2010. 2. 4. E의 피해자 진흥원 사업비 계좌로 피해자로부터 받은 착수금 중 304,557,610원을 보냈는데, 이는 이 사건 물품 공급계약상의 물품 개발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착수금을 지급받은 날부터 약 9일 후인 2010. 2. 12.경 착수금 중 9,433,336원가량을 건물관리비 2개월 분(7, 8월분)으로 지급하였는데, 이는 이 사건 물품 공급계약 체결 전에 E에서 사무실을 사용한 부분에 대한 관리비로 보이므로 이 사건 물품 공급계약상의 물품 개발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Q은 검찰에서 'E이 재정적으로 어려워 착수금을 지급하더라도 물품제작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회사의 채무를 변제하는 등 이 사건 물품 제작과 관계없는 곳에 착수금을 사용하고, 이후 다른 자금을 조달하여 이 사건 물품을 제작할 것을 알았다면 애초에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당심의 판단
원심이 설시한 위와 같은 사정들에,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보태어 보면, 피고인의 편취 범의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피고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잘못이 없다. 따라서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피고인은 처음부터 피해자 J로부터 지급받은 착수금을 대부분 이 사건 물품 제작 이외의 다른 곳에 사용할 의사였음에도 이를 숨기고 착수금을 지급받았는바, 이는 사회통념상 권리행사의 수단으로서 용인할 수 없는 것으로 그 행위 전체가 위법한 것이라 할 것이다. 만약 피해자 J가 이러한 사정을 알았다면 착수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였을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착수금 전체에 대해 사기죄가 성립하고, 설령 이후 차용금 등으로 그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
나아가 E은 2011. 4. 20. 기준으로 금융기관 부채가 10억 3,800만 원, 직원들에 대한 미지급 급여가 633,470,658원, 거래처 미지급금이 608,355,754원에 달하였다. E은 2008. 9.부터 자금난으로 직원인 S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였고, 금융기관 부채는 이전부터 존재하였었던 만큼 이 사건 물품 공급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도 다액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피고인과 E은 피해자 J로부터 받은 착수금 이외에는 달리 이 사건 물품을 제작·공급할 자금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을 살펴보아도, E이 미국 Y사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양형부당 주장에 대하여
피고인은 피해자들로부터 합계 약 17억 원 상당의 정부출연금 및 물품대금을 편취하였고,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회복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이 사건 범행은 그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아니하다.
한편 피고인은 근로기준법위반죄로 벌금형 1회 선고받은 외에는 달리 처벌받은 전력이 없다. 피고인은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정부출연금과 착수금 중 일부를 다른 곳에 사용하기는 하였으나, 이를 개인적으로 유용하지는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이 피고인에게 자금을 지원한 것은 피고인과 E의 기술력을 고려한 것으로, 피고인이 일부 성과를 올린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피해자 J는 피고인이 개발한 제품을 일부 활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피해자 진흥원은 감사원 감사 후에 136,091,536원에 대해서 환수조치를 하면서 장기간 유예기간을 두었고, 피해자 J는 서울보증보험 주식회사로부터 계약이행보증금 173,636,300원만 지급받은 뒤 나머지 돈에 대해서는 위 서울보증보험이나 피고인을 상대로 보험금의 지급이나 변제를 요구하고 있지 않으며 당초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아니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피해자 진흥원을 위하여 3,801만 원을 공탁하였다.
아울러 피고인은 인공위성 개발 등의 국가정책사업에 참여하여 기여하였고, 현재 방위산업체에서 영상위성 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점도 참작한다.
이러한 사정들을 비롯하여 피고인의 성행, 환경,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기록에 나타난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원심이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한 원심의 형은 그 책임에 비하여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판단되고, 이를 지적하는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있다.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