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기초사실
피고는 경북 경산시 C에서 ‘D’라는 상호로 가구물류업에 종사하고 있고, 원고는 (차량번호 1 생략) 1톤 포터 차량을 피고에게 지입시켜 2020. 2. 19. 별지 ‘근로계약서’(이하 ‘이 사건 근로계약서’라 함) 기재와 같은 내용의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그때부터 경북 구미 지역을 전담하는 비정규직(수습사원) 배송기사로서 가구의 배송 및 설치일을 해 왔다.
원고는 2020. 4. 15. 아침에 출근하여 당일 배송할 물품을 (차량번호 1 생략) 1톤포터 차량(이하 ‘이 사건 차량’이라 함)에 실은 다음 그날 09:00경부터 12:00경까지 다른 근로자들과 함께 배송의뢰되어 온 물품에 대한 하차 및 입고 작업을 하였다. 그런 다음 원고는 그날 12:00경 이 사건 차량을 운전하여 가구 배송 및 설치작업을 위해 구미지역으로 갔다.
원고는 구미에서의 일을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 이 사건 차량을 운전하여 경부고 속도로 하행선 부산기점 140.1㎞ 도로의 편도 4차로의 도로 중 3차로를 주행하던 중 2020. 4. 15. 17:05경 이 사건 차량을 앞서가던 차량을 추돌하였고, 그로 인해 이 사건 차량은 가드레일을 충돌하고 전복되었다. 이 사건 차량이 전복되는 과정에 원고는 이 사건 차량 밖으로 튕겨 나갔고, 그로 인해 경추 등에 손상을 입는 상해를 입었다(이하 ‘이 사건 사고’라 함). 경찰서 및 보험사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사건 사고는 원고의 과실이 100%인 것으로 판정되었다.
원고는 이 사건 사고 후 제4-5, 5-6, 6-7 경추간판 제거술 및 골유합술을 받았으나 “경수손상, 사지마비, 다발성 경추체 골절(경추 제5, 6번), 미천골부 3단계 압박궤양,우측 대전자부 단계를 알 수 없는 압박궤양, 좌측 대전자부 1단계 압박궤양, 신경인성 방광, 요도손상” 진단을 받고 사지 완전마비라는 장해를 입고 입원치료 중에 있다.
[인정근거] 다툼없는 사실, 갑제1호증 내지 갑제5호증, 을제1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각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음)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피고의 본안 전 항변에 대한 판단
항변 내용
원고는 피고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회사 밖에서의 부상 또는 질병에 관하여는 피고가 책임을 지지 않기로 합의하였으므로, 이 사건 소송은 이와 같은 부제소합의 반하는 것이어서 부적법하여 각하되어야 한다.
관련 법리
부제소합의는 소송당사자에게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의 포기와 같은 중대한 소송법상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합의의 존부 판단에 따라 당사자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리게 되는 소송행위에 관한 당사자의 의사를 해석할 때는 표시된 문언의 내용이 불분명하여 당사자의 의사해석에 관한 주장이 대립할 소지가 있고 나아가 당사자의 의사를 참작한 객관적·합리적 의사해석과 외부로 표시된 행위에 의하여 추단되는 당사자의 의사조차도 불분명하다면, 가급적 소극적 입장에서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권리의무의 주체인 당사자 간에서의 부제소합의라도 그 당사자가 처분할 수 있는 특정된 법률관계에 관한 것으로서 그 합의 당시 각 당사자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이어야 유효하게 된다(대법원 2019. 8. 14. 선고 2017다217151 판결 참조).
판단
갑제2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원고는 피고와 사이에 이 사건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5. 업무와 관련하여 부상 또는 질병에 걸린 경우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또는 근로기준법에 정한 기준에 따라 보상한다. * 회사 안에서만 적용한다. 이외 배송 시 사고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는 약정(이하 ‘이 사건 약정’이라 함)을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 사건 사고가 회사 밖에서 발생한 사실은 제1항에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나 이 사건 약정 문구만으로 원고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의 분쟁에 관하여 피고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인지 특정할 수 없는 점, 원고가 피고에게 이 사건 약정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한 바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의 사정을 관련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약정은 원고와 피고가 구체적인 분쟁이 생기기 전에 재판청구권을 미리 일률적으로 포기한 것으로서 부제소합의 제도의 취지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본안에 대한 판단
원고의 주장
피고는 원고에게 하루 최소한 14시간 이상씩 근로를 시켰고, 휴게시간 및 유급휴일을 제공하지 않고 근로를 시켰으며,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근로환경도 제공하지 않았다. 더구나 피고는 원고에게 일일 정산하여 급여를 지급하였는데, 이러한 경우 통상 근로들이 더 많은 급여를 받기 위해 최소한의 휴무일을 가진다는 것과 원고와 같은 차량배송일을 처음으로 하는 신입사원의 경우에는 스스로 그의 업무량이 과도한 것인지,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피고는 차량배송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용자로서 근로자들에게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거나 안전교육 등을 실시하고, 근로자들의 적정한 업무 강도의 유지를 위해 회사 내규상 이를 규정해두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아니하였고, 원고가 장시간의 운행 및 휴식의 부재로 원고에게 교통사고 발생의 위험이 있다는 점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피를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과도한 업무를 강요하였으며, 근로자가 과로와 수면부족 등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추가 인원을 배치하거나, 배당물량을 줄이거나,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은 휴무하도록 권고를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피고의 주의의무위반으로 말미암아 원고는 과로와 수면부족이 누적되었고, 이로 인해 이 사건 사고 당일 가구배송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원인 불명의 의식 소실 상태에서 이 사건 사고를 발생시켰다.
그렇다면, 이 사건 사고는 피고의 안전배려의무위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할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사고에 따른 재산적 손해 합계 11억 30,899,928원(=기왕치료비 35,289,050원 + 향후치료비 41,984,713원 + 개호비 4억 6,391,961원 + 일실수입 5억 18,758,170원 + 일실퇴직금 43,841,191원 + 보조구 구입비용 84,634,843원)의 일부인 1억 4,500원 및 위자료 5,000만 원 합계 1억 9,500만 원(=1억 4,500만 원 + 5,000만 원)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
관련 법리
사용자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의 부수적 의무로서 피용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인적·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할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사용자에게 근로자가 입은 신체상의 재해에 대하여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당해 근로로 인하여 근로자의 신체상 재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피를 위하여 별다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이 인정되어야 하고(대법원 2000. 3. 10. 선고 99다60115 판결,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60247 판결 등 참조), 더불어 그 근로와 재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며 이는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한다.
판단
원고의 근로자성 여부에 대한 판단
피고는 원고가 피고가 운영하는 회사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나, 제1항에서 인정한 바와 같이 원고와 피고가 이 사건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점, 원고가 2020. 2. 19.부터 이 사건 사고 발생일까지 가구배송일을 해 온 점과 갑제3호증의 기재에 의하여 인정되는 사정, 즉 원고가 가구설치를 위한 별도의 원자재 등을 구입하여 사용하지 않은 점, 업무 수행 시 사업주인 피고의 지시에 대한 거부가 불가능하였던 점, 가구의 설치 방법, 시간, 장소 등은 피고에 의하여 정해진 점, 구체적인 업무내용은 피고가 지정했던 점, 피고가 근로복지공단 재해조사 당시 원고의 수습기간이 종료될 경우 4대 보험 가입을 예정하고 있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모두 종합하면 원고는 비록 이 사건 사고 당시 수습사원이기는 하였으나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 한다.
피고의 안전배려의무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
갑제3호증, 갑제10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① 원고의 하루 근무시간은 06:00부터 18:00까지 11시간인 사실, ② 원고는 아침에 사업장에 출근하여 이 사건 차량에 당일 배송해야 할 가구를 싣고 피고의 작업지시에 따라(작업지시에 대한 거부는 불가함) 지정된 배송장소로 가서 가구 배송 및 설치 작업을 실시하고, 업무가 빨리 끝날 경우는 바로 퇴근이 가능하며 연장근무는 따로 없는 사실, ③ 원고의 근무와 관련하여 출퇴근기록은 없는 사실, ④ 가구의 설치 방법, 시간, 장소 등은 사용자에 의해 정해지고, 설치 방법은 가구의 종류에 따라 정해지며, 원고가 수행하는 업무는 단순 설치 작업이고, 가구의 설치를 위해 제3자를 고용하는 것은 피고의 자율에 맡겨져 있는 사실, ⑤ 원고는 당일 배송한 배송금을 일일 정산하여 급여로 지급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제1항에서 인정한 사실 및 적시한 증거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하거나 알 수 있는 사실 및 사정, 즉 ① 이 사건 교통사고 당일 원고가 배송을 나간 지역은 경북 구미지역으로 출발지인 사업장이 소재한 경산과는 비교적 가깝고, 이 사건 사고 당일 원고의 업무가 특별히 과중하였다고 볼 자료가 없는 점에서 보면 원고가 경산에서 당일 낮 12시경 출발하였으므로 귀가 시간은 16:00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보이는 점, ②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17:05이고이나 사고 당일의 원고의 가구 배송 및 설치 업무가 언제 마쳤는지에 관해서는 원고가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고 있는 점, ③ 사고발생일의 일몰 시간은 19:34이고, 사고발생장소가 고속도로이었으므로 사고가 발생한 시각에는 차량을 운전함에 있어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④ 구미에서 대구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퇴근하는 경우 고속도로 휴게소 등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휴식할 수 있었던 점, ⑤ 이 사건 사고 당일이나 그 전날에 원고의 업무가 평시보다 과중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사고 당일 업무와 관련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의 발생이나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는 없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에서 본 사실만으로는 피고의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이 원인이 되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소결론
결국 원고의 청구는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하여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 없이 이유 없다.
결론
따라서서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기각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천종호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