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항소이유의 요지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피고인이 횡령한 물벼의 중량 등에 관한 사실오인
원심은 수사기관이 2001. 4. 18. 수색·검증을 하여 그 당시까지 피고인측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한 물벼의 중량을 기준으로 피고인이 횡령한 액수를 특정하였다. 그러나 피고인이 2001. 3. 30. 미국으로 출국하였기 때문에 그 이후 물벼를 추가로 횡령할 수 없었던 점, 원심이 인정한 물벼 잔량은 피해자 농협이 2001. 4. 4.경 정밀확인 한 결과보다 100만kg가량 적은 점, 피고인이 해외로 나간 후 다른 채권자들이 채권회수를 위하여 피고인이 보관하던 물벼를 반출하였을 가능성이 큰 점, 피고인 운영 회사의 관리장이었던 P이 작성한 장부에 따라 반출량을 산정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피고인이 횡령한 물벼 중량에 관한 원심의 판단에는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
2001. 2. 1. 이전 횡령 물량에 대한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피해자 농협은 2001. 2. 1. 김해시로부터 이 사건 물벼의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따라서 피고인이 2001. 2. 1. 이전에 임의반출한 물벼에 관하여 피해자 농협 소유의 물벼를 횡령하였다고 볼 수 없다. 2001. 2. 1. 이전에 임의반출한 물벼는 이 사건 횡령 범행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공소시효 관련 법리오해
피고인은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로 도피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각 공소사실의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않아 공소시효가 이미 경과되었다.
양형부당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징역 8년)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판단
물벼 중량 관련 주장에 관한 판단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로부터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임의반출하여 횡령한 물벼의 중량을 2,404,822kg으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을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은 피해자 농협으로부터 물벼 2,935,000kg(= I 주식회사 1,479,000kg + 합자회사 K 1,456,000kg)의 보관을 위탁받았다(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41, 42면).
수사기관은 2001. 4. 18. 관련자들의 참여 아래 수색검증영장을 집행하여 I 주식회사와 합자회사 K(위 두 회사를 통칭하여 '피고인 회사'라 한다)이 당시까지 보관하고 있는 물벼의 잔량을 확인하였는데, 그 결과 물벼 530,178kg(= I 주식회사 199,484kg + 합자회사 K 330,694kg)이 남아있었다(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366면).
원심은 피해자 농협이 피고인에게 보관을 위탁한 물벼 2,935,000kg에서 2001. 4. 18. 피고인 회사가 여전히 보관하고 있던 물벼 잔량 530,178kg을 공제한 2,404,822kg(= 2,935,000kg - 530,178kg)을 피고인이 횡령한 물벼 중량으로 인정하였다.
피해자 농협 직원 T이 2001. 4. 13.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으면서 '2001. 4. 4.경 신고를 받고 정밀확인을 한 결과, 피고인이 합계 37,000포(K 24,000포, I 13,000포, 1포 중량이 40kg이기 때문에 이를 kg으로 환산하면 1,480,000kg임)를 횡령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한 사실은 인정된다(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37, 38면). 그러나 T이 위와 같이 진술할 당시 임의반출량은 추정치라고 진술하였고, 2001. 4. 12. 수사기관에 제출한 고발장에도 '피고인의 소재를 파악할 수가 없어 사고물량, 사고금액을 알 수 없다'고 기재하였다(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11면).
T이 2001. 4. 4. 당시 피고인 회사의 일부 사일로(Silo, 저장탑) 내부 상단에 파이프를 통해 합판을 고정시키고 그 위에 20~30㎝ 정도의 두께로만 물벼가 적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확인하였을 뿐 이를 해체하여 정확한 물벼 잔량을 산출하지는 못하였다(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11면, 피고인 회사에 근무하였던 Y, 사일로 공사를 담당하였던 Z 등은 '2000년 11월 말경 및 2001. 3. 1.경 피고인의 지시로 피해자 회사의 사일로 내부에 수십 개의 파이프를 세우고 그 위에 합판을 빈틈없이 고정한 후 합판 위로 양곡을 40cm 정도 적재하여, 김해시 공무원, 피해자 농협 직원들이 양곡 임의반출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154, 272면 및 274면).
수사기관은 2001. 4. 18.부터 같은 달 26일까지 피고인 회사 사일로에 대한 수색·검증을 실시하면서 사일로 내부 파이프와 합판 등을 해체하고 재고조사를 하여 피고인 회사가 보관하고 있는 물벼 잔량을 확정하였다.
수사기관의 위 수색·검증 당시 피고인 회사의 관리장 P이 현장에 입회하였는데(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372면), 물벼 잔량 확정 과정에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P은 수사기관에서 "피고인 회사가 작성한 2001. 3. 22.자 재고현황(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171면)의 총매입곡 수치는 정확하나 외부반출곡, 도정곡, 재고량은 정확하지 않다. 정부곡이 5만 포(200만kg) 이상 반출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남아있는 벼잔량을 확인하여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라고 진술하였다(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165면). 이와 같은 P의 진술과 2001. 3. 22.자 재고현황 및 P이 작성한 출고현황 장부의 수치가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P이 작성한 장부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이를 토대로 피고인의 임의반출 물량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피고인은 당시 피고인의 채권자들이 사일로에 남아있던 물벼를 채권회수를 위해 임의로 가져갔을 것이라고 주장하나, 피고인이 당시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에 관한 가압류 현황 등에 의하면 대부분의 채권자가 금융기관(농협, 기술신용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이었던 것으로 보이고(공판기록 256면 이하 부동산등기부 등본 참조), 피고인이 피해자 농협과의 위탁·보관계약에 따라 보관하던 양곡은 피고인 소유가 아닐 뿐만 아니라 공매 등 절차에 의하지 않는 한 출하할 수가 없기 때문에(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163면) 이를 임의반출할 경우 형사처벌의 위험이 크다. 제3자가 채권회수를 위해 이를 반출해 갈 개연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피고인은 피고인 회사의 사일로에 피해자 농협으로부터 보관을 위탁받지 아니한 양곡도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제외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수사기관은 피고인 회사 사일로에 피해자 농협과의 위탁·보관계약에 따라 보관하는 정부곡과 피고인 회사가 별도로 농민들로부터 수매한 자체곡 632,000kg이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는 P의 진술을 받아들여 2000. 9. 26.부터 2000. 10. 20.까지 피고인 회사에서 출고된 632,000kg의 양곡을 이 사건 공소사실에 포함시키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공소제기 당시 이미 피고인측이 주장하는 자체곡은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사건 공소사실에 기재된 중량에서 자체곡 632,000kg이 다시 공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2001. 2. 1. 이전 횡령 물량 관련 주장에 관한 판단
피고인은 원심에서도 이와 동일한 주장을 하였는데 원심은 피고인이 피해자 농협과 사이에 물벼에 관한 위탁·보관계약을 체결하였고 피고인이 위 계약상 위탁관계에 기하여 이 사건 물벼를 보관하고 있었던 점, '2000년산 추곡수매요강'(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326, 337면)에 의하여 피해자 농협이 김해시가 수매하는 물벼의 수매대금을 마련하여 집행한 점,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에 관한 소유권뿐만 아니라 재물에 관한 기타 본권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본권이 침해될 위험성이 있으면 그 침해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횡령죄가 성립하는 점 등을 근거로 2001. 2. 1. 이전의 범행에 관하여도 피해자 농협에 대한 횡령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이 설시한 이유들을 증거들과 비교하여 면밀히 검토한 결과 원심의 이 부분 판단을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사실오인이나 법리오해의 위법이 발견되지 않는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공소시효 관련 법리오해 주장에 관한 판단
원심은 범인의 여러 국외체류 목적 중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포함되어 있으면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점, 피고인은 원심 1회 공판기일에 '2001년 5월경 이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입국하지 못하였다'고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〇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은 정부곡을 임의반출하면서 사일로에 위장칸막이를 설치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 피고인은 정부곡 임의반출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함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부동산 판매를 위해 미국에 갔으나 돌아오기가 두려워서 계속 있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2018고합42 증거기록 1권 19면). 피고인은 부동산 처분을 위해 해외로 나갔다는 취지로 진술하나, 국내에 있는 피고인측 부동산 매매를 위해 해외에서 장기간 체류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양형부당 주장에 관한 판단
유리한 정상
피고인은 피해자 농협에 대한 횡령 범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범행을 인정하고 있다.
피고인측이 보유한 부동산 등에 대한 경매절차를 통해 피해자 농협이 피해금액 일부를 배당받은 것으로 보인다[피고인은 2001년 1월경 피해자 농협에 정부곡 선금 16억 원을 지급하였기 때문에 위 금액이 피해금액에서 공제되거나 유리한 양형요소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피고인의 주장에 기초하여 2001년 초 무렵 피해자 농협 및 피고인 회사의 금융거래내역을 전부 조회하였으나 어느 쪽에서도 피고인이 주장하는 선금 지급을 추단케 할 만한 거래내역이 발견되지 아니하였다. 피고인은 그 당시 70억 원가량의 금융채무를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피해자 농협에 물벼 보관을 위한 보증금 7억 원도 납부하지 못하고 있었다(2018고합42 증거기록 1권 508, 513면). 그리고 만약 피고인의 주장처럼 피고인이 2001년 1월경 피해자 농협에 물벼대금 16억 원을 지급하였다면 피고인이 사일로에 칸막이를 설치하여 물벼 잔량을 위장하는 방법으로 피해자 농협 등을 속일 이유가 없었을 것으로 보이고, 2001. 2. 1. 김해시와 피해자 농협 사이에 물벼를 인수인계할 당시 최초 피해자 농협이 피고인에게 보관을 위탁할 당시와 동일한 중량의 물벼를 인계받은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41면 참조).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이 동종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다.
불리한 정상
피고인은 사일로에 위장칸막이를 설치하는 등 계획적·지능적인 방법으로 장기간 여러 차례에 걸쳐 피해자 농협이 보관을 위탁한 물벼 2,404,822kg을 횡령하였다. 피고인은 당시 피해자 회사에 근무하던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였고, 당좌수표거래 계약 없이 당좌수표를 발행하였으며, I의 주금을 가장납입하고 불실기재된 상업등기부를 작성·비치하게 하였다. 범행수법과 피해규모에 비추어 볼 때 죄질이 매우 나쁘다(특별양형인자 중 가중요소로서 범행수법이 매우 불량한 경우에 해당함).
피고인은 시가 33억 원이 넘는 물벼를 판매한 후 곧바로 미국으로 출국하여 장기간(17년간) 도피생활을 하였다.
피고인이 이 사건 물벼를 임의반출하던 무렵(2000. 10. 20.부터 2001. 3. 28.까지) 피해자 회사 계좌의 금융거래내역에 의하면(2018고합42 증거기록 1권 450면, 474면 이하), 대부분 물벼 매도대금 명목으로 입금된 돈이 당일 내지 그 다음날 대체출금 내지 현금인출의 형태로 전액 인출되었다. 피고인이 당시 70억 원가량의 금융채무를 부담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 사건 물벼를 횡령하여 판매한 후 판매대금을 인출하였고, 2001. 3. 30. 해외로 도피한 점 등을 종합해 보면, 범죄수익을 의도적으로 은닉한 것으로 보인다(특별양형인자 중 가중요소에 해당함).
그 밖에 피고인의 나이, 성행, 환경,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변론에 나타난 모든 양형조건 및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양형기준의 권고형량 범위, 제1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한 점(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도326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등을 종합해보면,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론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의하여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손지호(재판장) 김진하 안좌진
각주1) 피해자 농협 직원 T 등이 원심법정에서 경매절차를 통해 10억 원가량을 변제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으나, 2001년 4월경 무렵 이 사건 횡령금액 외에 피해자 농협에 대하여 피고인이 25억 원가량의 금융채무(일부에 대하여는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음)를 이미 부담하고 있었던 점(2018고합42 증거기록 2권 106면)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이 배당받은 10억 원가량을 이 사건 횡령금액에 대한 피해변제로 볼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아니한 면이 있다.
각주2) 피고인의 횡령총액이 33억 4,871만 원가량인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횡령한 물벼 절반가량(115만kg)에 해당하는 매매대금을 지급하였다는 취지임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