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2년에 처한다.
이유
항소이유의 요지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2018. 6.경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의 점에 관하여
피고인은 차용 당시 10억 원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
피고인은 차용 당시 피해자에게 '1순위 임차권을 설정하여 원금 회수를 보장해주겠다'라고 말한 사실이 없다. 피고인은 '만일 E프라자가 경매되더라도 피해자가 임대차신고를 하여 배당을 받아감으로써 10억 원의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였을 뿐이다.
2020. 11. 17. 사기의 점에 관하여
피고인은 2020. 11. 17. 당시 변제기 유예의 대가로 피해자에게 오피스텔 1채를 줄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
2018. 6.경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의 점이 유죄로 인정된다면, 이 부분 공소사실은 앞선 사기 범행을 은폐하거나 그 편취금의 반환을 회피하려는 방편에 불과하고, 새로운 법익을 침해한 것이 아니므로 사기죄의 불가벌적 사후 행위에 해당하여 별도로 사기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양형부당
원심의 형(징역 3년 6개월)은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
직권판단
항소이유에 관한 판단에 앞서 직권으로 살펴본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2024. 11. 21.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근로기준법위반죄 등으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을 선고받았고, 그 판결이 같은 달 29. 확정된 사실이 인정된다.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범죄는 판결이 확정된 위 근로기준법위반죄등과 형법 제37조 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어 형법 제39조 제1항에 따라 이들을 동시에 판결할 경우와의 형평을 고려하여 형을 정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위 확정판결을 고려하지 않은 채 판결을 선고했는바, 이러한 점에서 원심판결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이러한 직권 파기 사유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은 여전히 이 법원의 판단대상이 되므로 아래에서 이에 관하여 살펴본다.
피고인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에 관한 판단
2018. 6.경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의 점에 관하여
원심의 판단
피고인은 원심에서도 이 부분 항소이유와 유사한 취지의 주장을 하였다. 이에 대해 원심은 적법하게 채택,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그 판시와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2018. 6.경 피해자에게 원금 회수 담보를 위한 1순위 임차권을 설정해 줄 수 없고 약속한 변제기일에 원금 및 약정 수익금을 상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를 용인한 채 위와 같이 원금 회수가 보장되거나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것처럼 피해자를 기망하여 10억 원을 교부받은 사실』 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 법원의 판단
관련 법리
사기죄의 요건인 기망은 널리 재산상의 거래관계에서 서로 지켜야 할 신의와 성실의 의무를 저버리는 모든 적극적, 소극적 행위를 말한다. 반드시 법률행위의 중요 부분에 관한 허위표시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상대방을 착오에 빠뜨려 행위자가 희망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를 하도록 하기 위한 판단의 기초가 되는 사실에 관한 것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거래의 상대방이 일정한 사정에 관한 고지를 받았더라면 거래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거래로 재물을 받는 자에게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사전에 상대방에게 그와 같은 사정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이를 고지하지 않은 것은 고지할 사실을 묵비함으로써 상대방을 기망한 것이 되어 사기죄를 구성한다(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도7828 판결 등 참조).
구체적 판단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 사정들을 종합하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차용 당시 피해자에게 '1순위 임차권'을 설정하여 원금 회수를 보장해주겠다는 취지의 말까지 하였음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부분을 지적하는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있다.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금전을 대여함에 있어 처음에는 이를 망설이다가 '1순위 임차권 설정'이라는 조건이 제시되자 원금 회수가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대여를 결정한 것이라면, 경험칙상 고소장에 기재하거나 수사 초기 단계부터 해당 조건에 대한 언급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는 피고인을 사기죄로 고소한 시점부터 경찰 조사 및 피고인과의 대질 조사 단계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이 1순위 임차권을 설정해주겠다고 기망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지 않았다.<1>
피고인이 2021. 3. 16.경 피해자에게 '피해자가 1순위 임차인이므로 E프라자가 경매에 부쳐져 저가에 낙찰되더라도 차용 원리금 20억 원 전부를 변제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은 인정된다(증거목록 순번 14, 866쪽). 그러나 위 발언은 차용일로부터 상당한 시일이 지난 이후에 있었던 것으로서, 차용 당시의 상황을 뒷받침한
다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위 발언이 피해자의 '당초 1순위 임차권을 설정해준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추궁이나 확인 요청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반복적으로 '원리금 전액을 회수할 수 있느냐'고 묻자 피고인이 회수가 가능하다면서 피해자를 안심시키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와 같은 녹취록의 내용만으로는 피고인이 차용 당시인 2018. 6경 피해자에게 '1순위 임차권'을 설정하여 원금 회수를 보장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말하거나 약속하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피고인은 제6회 피의자신문조서 작성일인 2023. 11. 17. '피해자에게 2018.6.경 "대여금 10억 원을 E프라자 3층 치과 임대차보증금으로 해줄 테니 입점하여 치과를 운영하고, 혹시 대여금 회수가 어려울 경우라도 최소한 원금에 해당하는 임대차보증금 10억 원은 1순위로 반환받을 수 있다"라고 말한 사실이 있는가요'라고 묻는 경찰관의 질문에 '네, 있습니다.'라고 진술하기는 하였다(증거순번 59 중 5쪽). 그러나 피고인의 위 진술은, 해당 발언이 있었다고 주장되는 2018. 6.경으로부터 약 5년 이상,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1순위 임차인이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2021. 3.경으로부터도 2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이루어진 진술인 점,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인이 '임대차보증금이 대여금에 대하여 일종의 담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은 인정되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2018. 6.경 당시 그러한 말을 하였는가'라는 질문에 착오로 긍정의 답변을 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사기죄의 기망행위는 널리 재산상 거래관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이 사건의 본질은 피고인이 차용 당시 주식회사 F(이하 'F'이라 한다)과 사이에 2017. 2경 체결된 신탁계약에 의하여 F과 우선수익자의 사전 동의 없이는 E프라자를 임대할 수 없어서 차용금을 E프라자 3층에 대한 임대차보증금으로 전환하여 원금이 회수될 수 있도록 해줄 능력이 없었음에도, 마치 유효한 임대차계약을 통해 최소한 원금 회수는 가능한 것처럼 피해자를 착오에 빠뜨려 10억 원을 차용하였다는 점에 있다.
원심 및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2018. 6.경 E프라자에 대하여 F 등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효한 임대차계약 체결권한이 없음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피해자에게 E프라자 3층에 임차인으로 입점하고 10억 원을 임대차보증금으로 설정하면 그 임대차보증금이 차용금에 대한 유효한 담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거짓말 하여 금원의 대여를 거절 내지 주저하던 피해자로부터 10억 원을 교부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나아가 차용 당시 피고인에게는 피해자에게 차용원리금 20억 원을 변제하거나 20억 원에 상응하는 대물로 변제할 만한 능력이 없었음도 인정된다.
피해자는 고소장 제출 시부터 원심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피고인으로부터 '10억 원을 빌려주면 2년 후 건물을 준공하여 20억 원으로 갚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였고, 이후 피고인이 '10억 원을 임대차보증금으로 설정해주겠다'는 등의 추가 조건을 제시하자 비로소 10억 원을 대여하였다고 진술하였다(증거목록 순번 1 중 4쪽, 순번 6 중 3, 6쪽, 순번 8 중 8쪽, 순번 29 중 4쪽, 원심 C 증인신문녹취서 3~4, 9쪽). 위와 같은 진술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에게는 임대차보증금이 대여 원금을 회수할 최후 수단이 될 수 있는지 여부가 피고인에 대한 10억 원 대여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중요한 고려 요소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나아가 피고인 역시 피해자가 금전 대여를 주저하자, 피해자에게 '(건물신축)사업이 잘못되더라도 피해자는 임대차보증금에서 회수하면 된다', '보증금이 일종의 담보가 되니까 투자한 건이 잘못되어도 회수할 수 있다'라는 취지로 말하며 금전을 차용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증거목록 순번 23 중 5쪽, 순번 38 중 4쪽, 이 법원의 피고인신문 녹취서 9쪽). 피고인의 위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은 피해자가 대여를 거절하거나 주저하는 상황에서 임대차보증금의 담보적 기능을 부각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거액의 금원을 대여하도록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이 2017. 2.경 F과 체결한 관리형 토지신탁계약(특약사항 제17조의1 제1항)에 따라 피고인은 F 및 우선수익자의 사전 동의 없이 E프라자에 대한 임대차행위를 할 수 없었다(증거목록 순번 13 중 32쪽). 피고인의 변호인은, F이 주식회사 H에게 사후적으로 발급한 확인서(공판기록 66쪽, 증 제1호증)를 토대로 피고인이 임대차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주장하지만, 위 확인서 기재만으로 신탁원부에 명시된 제한을 배제하고 피고인이 대외적으로 E프라자에 대한 임대 권한을 보유한다거나 F의 포괄적인 임대차계약 체결행위에 관한 사전 동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피고인 측의 위 주장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피고인에게는 E프라자에 대한 적법한 임대 권한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는 피고인과 체결한 임대차계약의 효력을 F에 대하여 주장할 수 없고, 따라서 E 프라자가 경매 또는 공매되더라도 그 절차에 참여하여 배당을 받거나 정산을 받을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았다. 피해자는 위탁자인 피고인에 대한 일반 채권자에 불과하다. 한편, 피해자는 당초 피고인으로부터 10억 원을 빌려달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였고, 이후 피고인이 임대차보증금이 일종의 담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건을 제시하자 비로소 대여에 응하였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따라서 피해자가 위와 같은 사정, 즉 피고인에게 적법한 임대 권한이 존재하지 않아 자신이 체결한 임대차계약의 유효성을 제3자에게 주장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공매 절차 등을 통해 보증금을 회수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았더라면, 피고인에게 10억 원을 대여하지 않았을 것으로 봄이 경험칙상 타당하다.
피고인은 자신에게 E프라자에 대한 적법한 임대 권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E프라자에 관하여 체결된 신탁계약의 존재 및 그 주요 내용, 우선수익자의 존재 등에 대하여 어떠한 설명도하지 않았다(증거목록 순번 38 중 4~5쪽, 순번 59 중 5쪽). 설령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피해자가 E프라자를 대상으로 한 신탁계약이 체결되어 있다는 자체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2018. 6.경 당시에는 해당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피해자가 등기부를 열람하여 신탁원부의 존재나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따라서 피해자는 피고인의 별다른 설명이나 고지가 없는 이상, 피고인에게 임대 권한이 존재하는지 여부나 그 권한에 제한이 있는지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피해자가 피고인과 체결한 임대차계약은 F과의 신탁계약이 유효하던 당시에는 F에 대하여 대항할 수 없었으나, 이후 F과의 신탁계약이 종료된 뒤, 2018. 9.경 주식회사 생보부동산신탁과 새로이 체결된 신탁계약 제10조 제1항에 따라 피해자가 위 임대차계약의 유효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다만 우선변제권은 없을 뿐 공매 절차에서 충분히 배당을 받을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F과의 신탁계약이 종료되고 다른 신탁회사와의 신탁계약이 새로 체결되었고, 새로 체결된 신탁계약에 따라 피해자가 종전 임대차계약의 유효성을 주장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사실은, 이 사건 범행이 완료된 이후 발생한 사후적·우연적 사정에 불과하므로, 이와 같은 사정이 이 사건 사기죄의 성립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고는 볼 수 없다.
2017. 2.경 체결된 E프라자에 대한 관리형 토지신탁계약상 1순위 우선수익자의 수익한도금액은 124억 8,000만 원이었고, 2018. 9.경 E프라자에 대하여 체결된 부동산 담보신탁계약에 따른 1순위 우선수익자의 수익한도금액은 162억 5,000만 원이었다.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면 E프라자를 담보로 하는 대출금이 130억 원 내지 140억 원 상당으로 파악되며(증거목록 순번 14 중 5쪽, 순번 23 중 11쪽), 피고인은 용인시에서 진행하던 I 오피스텔 신축 및 분양사업을 위한 자금 역시 대부분 차입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 또한 피고인은 2017. 9. 1.경 대부업체인 R 주식회사로부터 원금 5억 원을 이자율 연 18%, 지연손해금율 연 27%, 변제기 2018. 6. 1.로 정하여 차용하였으나, 변제기가 지난 후에도 이를 상환하지 못하였다.
반면, 주식회사 H의 2018. 12. 31. 기준 유동자산은 약 19억 7,800만 원이고, 그중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2억 6,000만 원에 불과하다. 2019. 12. 31. 기준 유동자산은 약 17억 4,800만 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2억 7,000만 원이다. 주식회사 H의 2020년 이후 현금 유동성은 이보다 더욱 악화되었다(피고인 제출 증 제41호증의1 내지 5). 즉, 피고인은 이 사건 10억 원 차용 당시 이미 다수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던 데 반해 이를 변제할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은 매우 부족한 상태였으며, 오로지 피고인의 낙관적 전망대로 I건물에 대한 분양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경우에만 채무변제가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피해자로부터 10억 원을 교부받을 당시에는 부동산 시장이 좋았으므로 I 오피스텔 분양사업이 잘 진행되면 그 분양대금으로 약정한 차용 원리금을 변제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피스텔 신축 · 분양사업은 단기간 내 분양사업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고, 오피스텔 준공이 되더라도 분양이 완료되고, 분양대금에서 사업비를 정산한 후에야 수익금이 발생할 수 있다. 피고인이 제출한 증 제38호증의 1, 2에 의하더라도, 이 사건 범행 무렵인 2018년 2/4분기의 I건물 인근 수원시 AV<3> 소재 오피스텔의 공실률은 2.3%이고, 코로나-19로 인하여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2021년 4/4분기의 공실률은 3.2%로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피고인은 I건물 분양 수익금으로 피해자에 대한 차용금을 변제한다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계획만 있었을 뿐, 분양 실적이 저조하거나 분양대금이 계획대로 수금되지 않을 경우 차용금을 변제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I 오피스텔 분양대금으로 피해자에게 차용 원금 10억 원과 이자 10억 원을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은 피고인의 단순한 기대 내지 낙관적 전망에 불과하고, 현실적인 분양 가능성과 그 시점이 불명확하였던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변제 의사나 능력을 뒷받침하는 사정으로 보기는 어렵다.
원심이 인정한 기망의 내용과 이 법원이 인정하는 기망의 내용 사이에는 세부적인 차이가 있을 뿐, 피고인이 원금 10억 원과 이자 10억 원을 지급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 임대차보증금으로 차용원금의 회수는 담보할 수 있는 것처럼 피해자를 기망하여 피해자로부터 10억 원을 교부받았다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동일하다. 아울러
이 법원이 인정한 기망의 내용은 원심이 인정한 기망의 내용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사기죄라는 단일한 범죄사실의 동일성을 해친다고 볼 수 없고, 이로 인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이 초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이 부분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 사실을 오인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수는 없으며, 이에 대한 피고인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은 이유 없다.
2020. 11. 17. 사기의 점에 관하여
원심의 판단
원심은 적법하게 채택,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 사정들을 종합하면,『피고인이 유예된 변제기일이 도래하더라도 오피스텔을 양도하거나 차용 원리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용 원리금의 변제기일을 2022. 3. 말경까지 유예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그 유예된 기한까지 지연이자 명목으로 오피스텔 1채를 양도해 주겠다고 피해자를 기망한 사실』 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2020. 11. 17.자 계약서(이하 '이 사건 계약서'라 한다) 작성 경위에 관한 피고인의 진술을 종합하면, 이 사건 계약서 작성 당시 피고인에게 유예된 변제기일까지 원리금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진정한 의사가 있었다기보다는 실제로는 유예된 변제기일이 도래하더라도 오피스텔을 양도하거나 원리금을 변제할 의사가 없었음에도 단지 피해자의 변제 독촉을 피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 사건 계약서를 작성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실제 피고인은 이 사건 계약서 작성 이후 피해자에게 I 오피스텔을 양도하기 위해 필요한 후속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2022. 6.경 I 오피스텔이 준공된 이후에도 피해자에게 오피스텔을 분양하거나 그 소유권을 이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고인은 2022. 6.경 피해자에게 이전하기로 하였던 I 오피스텔 J호를 그 무렵 미지급한 광고비 채권자에게 대물변제로 지급하기로 합의하고 소유권을 이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계약서에서는 변제기일을 2022. 3. 말로 정하였으나, 오피스텔 분양사업은 오피스텔 준공 및 분양이 완료된 후 분양대금에서 사업비를 정산한 후에야 수익금이 발생할 수 있고 당시 피고인에게는 달리 현금 유동성이 없었으므로, 피고인이 위 약정기일까지 원리금 변제를 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가 불확실하였다. 오피스텔 준공이 예정보다 조금이라도 지연될 경우에는 2022. 3. 말까지 지연손해금 지급수단으로써 오피스텔을 양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은 피고인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은 I건물 사업과 관련하여 100억 원 이상의 담보대출을 포함한 다수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고, 그중 일부는 변제기가 도래하였음에도변제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재정상황은 이 사건 계약서 작성일 및 유예된 변제기일까지도 특별히 개선되지 못하였다. 피고인은 구체적인 변제 계획이나 자력 없이 향후 오피스텔 분양이 이루어지면 그 분양대금을 정산한 후 남은 수익금으로 피해자에게 변제하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피해자에게 변제기 유예를 요청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 법원의 판단
변제기 유예의 대가로 오피스텔 1채를 지급하거나 차용 원리금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
원심이 적절하게 설시한 사정들에다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 사정을 보태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약속한 차용원리금과 오피스텔 1채를 2022. 3. 말경까지 변제 및 양도할 수 없을 가능성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였음에도 이를 용인하고 피해자를 기망하여 위와 같이 종전채무의 변제기를 유예 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피고인과 피해자가 이 사건 계약서를 작성한 2020. 11. 17. 무렵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이미 일정 부분 진행된 이후의 시점으로서, 피고인 역시 이러한 사정을 바탕으로 부동산 시장 및 분양사업의 침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하여, 피고인이 기존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여 주식회사 H의 채권자인 R 주식회사가 2021. 10.경 주식회사 H의 예금채권 및 E프라자 임차인들에 대한 임대료채권 등에 대하여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은 사실까지 종합하여 보면(증거목록 순번 10), 피고인의 당시 자금 사정은 오히려 2018. 6.경보다 더욱 악화된 상태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으로서는 유예된 변제기인 2022. 3. 말이 도래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차용 원리금 20억 원과 오피스텔 1채를 지급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의 변호인 또한 항소이유서에서, 'I건물는 2022. 1. 4. 사용승인을 받고 2022. 2. 9. S 주식회사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경료된바, 피고인은 우선수익자의 동의 없이 위 오피스텔의 소유권을 타인에게 이전할 수 없었고, 피고인이 이 사건 계약서를 작성한 뜻은 위 오피스텔이 분양되어 우선수익자의 대출금을 모두 상환하고도 잔여 물건이 있을 경우 이를 대물변제하겠다는 의미였다'라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피고인이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피해자에게 오피스텔 1채의 소유권을 이전해주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주장이라고 할 것이다.
피고인은 이 사건 계약서를 작성함에 있어 피해자에게 I건물에 관한 신탁계약이 체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나 그 구체적인 내용에 관하여 어떠한 고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불가벌적 사후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피고인은 기존 차용금의 변제기를 유예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기존 차용관계의 불가벌적 사후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기죄에 있어서 채무이행을 연기받는 것도 재산상의 이익이 되고(대법원 1986. 10. 14. 선고 86도1501 판결 참조), 피해자를 기망하여 차용금 명목으로 재물을 교부받음으로써 이미 재물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하였다고 할지라도 다른 기망행위에 의하여 그 채무변제의 유예를 받거나 채무를 면제받는 경우 등 피해자의 별개의 처분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재산상 이익편취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05. 11. 24. 선고 2005도7481 판결 참조).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은 변제기 유예의 대가로 2020. 10. 21.부터 2022. 3. 말경까지의 지연이자 명목으로 I 오피스텔 1채를 추가로 제공하겠다는 새로운 이익의 제공까지 약속하였다. 이처럼 피고인이 변제기 유예라는 재산상 이익을 얻는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유인행위까지 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기존의 차용금 편취와는 별개의 독립된 기망행위로서, 별도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결론
피고인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은 이유 없으나, 원심판결에는 앞서 본 직권파기사유가 있으므로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2항에 따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다시 쓰는 판결 이유]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