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1. 9. 21. 선고 2011가합37631 판결

주문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1.

기초사실

가.

1960 ~ 1970년대의 언론 탄압

(1)

1961. 5. 16. 쿠데타에 성공한 군사정부는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포고령을 통하여 '언론·출판·보도의 사전 검열'과 '보도금지 조항'조치를 발표하여 언론의 사전 검열을 실시하였고, 1961. 5. 27. 비상계엄의 해제와 동시에 신문 등에 대한 사전검열제를 철폐했으나 1962. 12. 6.까지 경비계엄을 유지하였다. 이후 선거에서 승리한 B 정권은 1964. 6. 3. '대일 굴욕외교 반대 시위'를 계기로 다시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계엄법 개정안과 공안보장법에 언론규제 조항을 삽입하는 등으로 비판 언론에 대한 규제에 나섰다.

(2)

B 정권은 1972. 11. 21.에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내용의 침해금지를 규정한 기존 헌법 제18조를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지 아니한다'는 내용의 개별적인 법률유보조항으로 개정한 유신헌법을 국민투표를 통하여 통과시켰고, 1974. 1. 8.에는 '위와 같이 개정된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와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 및 위와 같은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의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하고,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하여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 수색할 수 있으며, 비상 군법회의에서 심판하되,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의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를, 1975. 5. 13.에는 '집회·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 등 공중전파수단이나 문서, 도화 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와 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 및 위와 같은 내용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배포·판매·소지 또는 전시하는 행위를 금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주무부장관은 위반자 소속 단체나 사업체 또는 그 대표자나 장에 대하여 소속 임직원 해임을 명하거나 직접 대표자나 장·소속 임직원의 해임 조치 및 위와 같은 내용의 방송·보도·제작·판매 또는 배포의 금지조치를 취할 수 있고,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으며,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의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를 공포·시행하였다.

나.

원고 소속 언론인들의 C를 위한 움직임

(1)

위와 같이 언론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원고 소속 기자들은 1971. 4. 15. '기자적 양심에 따라 사실을 진실대로 보도하고, 외부로부터 직·간접으로 가해지는 부당한 압력을 일치단결하여 배격하며, 명예를 걸고 기관원의 사내 상주 또는 출입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으로 제1차 C을 하였고, 위 C은 한국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방송, 동화통신 등 전국 각지 14개 신문, 방송, 통신사 소속 언론인들의 C으로 이어졌다.

(2)

제1차 C에도 B 정권이 1972. 10. 17.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1972. 11. 21. 언론의 자유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유신헌법을 국민투표의 형식을 빌려 확정짓자, 경향신문 수습기자들의 1973. 10. 19.자 결의문을 필두로 한국일보, 조선일보 소속 언론인들 제2차 C이 이어졌는바, 이에 원고 소속 언론인들도 1973. 11. 20. '정부의 언론에 대한 부당한 간섭의 중지 요구, 외부의 압력 배격, 언론의 자유 확보' 등에 대하여 결의하고, '보도해야 할 중요한 기사가 누락되었을 때에 그 누락 경위를 알아보고 그날 밤으로 편집국에 모여 가능한 모든 대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선후배동료가 기사와 관련, 부당하게 연행되었을 때 이 사실을 즉시 보도하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편집국에서 기다리기로 한다'는 행동강령을 세우는 등 제2차 C을 하였다.

(3)

그런데 정부가 '국내외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을 인식하고 유신체제나 안보에 위해가 되는 기사는 싣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의 '자율방침'을 마련하여 언론사 발행인들로 하여금 이에 서명하도록 종용하는 등 언론 탄압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원고 소속 언론인들은 제2차 C에 이어 1973. 12. 3. '위와 같은 발행인 서명공작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만약 본사 발행인이 당국의 강압에 못이겨 끝내 자율방침에 서명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신문제작과 방송뉴스의 보도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제3차 C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4)

이후 중앙정보부에서 A에 게재된 'D'라는 기사와 관련하여 1974. 10. 23. 원고 소속 편집국장 E, 사회부장인 F, 지방부장인 G을 연행하여 가자, 다음날인 1974. 10. 24. 원고의 편집국·방송국·출판국 기자 등 180여 명은 A 사옥에 모여 '자유언론에 역행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민주사회 존립의 기본 요건인 H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선언하고 C에서의 행동강령을 재확인하는 등 'H'을 하고, I를 구성하여 실천사항을 점검하는 등 기존 C보다 더 구체적인 실천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으며, 위 운동에 동참한 신문, 방송, 통신사들은 한국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KBS, MBC 등 35개 사에 달했다.

다.

원고에 대한 광고 탄압

(1)

위와 같은 H이 이어지자, 중앙정보부는 1974. 12. 초경부터 원고의 주요 광고주 또는 광고책임자들을 중앙정보부로 불러 '앞으로 A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인쇄된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고, 이들이 A에 다시 광고를 게재하는 경우 임의로 연행해 가는 등 원고의 주요 광고주들에 대하여 광고해약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2)

그 결과 원고의 주요 광고주인 한일약품이 광고동판을 회수해 간 1974. 12. 20.을 시작으로 1974. 12. 24.에 이르러는 롯데그룹, 미도파백화점, 일동제약, 종근당, 태평양화학 등 원고의 광고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8개의 대광고주들이 일시에 광고계약을 철회하였고, 1974. 12. 26.에는 대한비타민, 현대자동차가 광고계약 해약을 통보하는 등 1975. 1. 23.까지 대광고주 20여 개 사를 포함하여 A의 평상시의 상품광고의 98%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여(J도 원고와 마찬가지로 1974. 12. 20.부터 광고가 무더기로 해약되기 시작하여 1975. 1. 11.까지 사이에 전체 광고방송의 84%가 해약되었다), 원고는 1974. 12. 26.부터 일부 광고지면을 백지인 상태로 내보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이하 'A 광고탄압 사건'이라 한다).

(3)

이에 1974. 12. 30.부터 K정당,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등의 단체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언론탄압의 해제를 촉구하는 내용에서 개인광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의 격려광고를 A에 게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격려광고의 수는 1만 352건에 이르렀고 판매부수도 12만 부 증가하였다.

라.

원고 소속 기자들에 대한 해직처분 등

(1)

이러한 상황에서 1975. 2. 3. L M정당 정책위의장이 UPI와의 기자회견에서 A 광고해약 사태에 관하여, 신문사와 광고주들 사이의 문제라고 언급하면서도 "A는 지금 기자들의 지배 아래 있다. 우리는 A가 발행인이나 편집인들의 지배 아래 놓여지기를 바란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사태 해결을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A의 주장이 통일되고 규율이 잡히기 전에는 아무도 이니시어티브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발언하였다.

(2)

이후 원고는 1975. 2. 28. 제49회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임기 만료된 이사·감사진을 개편하고 N을 새로운 주필로 선임하면서, "첫째, 일부 사원들의 거듭되는 사규문란 행동을 주시하면서 모든 방법을 다하여 조속히 사내의 질서와 기강을 확립할 것을 요망한다. 둘째, 경제난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불요불급한 사업과 기구를 정비하고 기타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경영을 합리화할 것을 요망한다."고 결의하였고, N은 1975. 3. 3. 취임인사말을 통해 사내질서 문제를 집중 거론하였으며, 1975. 3. 5.에는 '근무시간 내외를 막론하고 회사의 허가 없는 사내 집회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원고의 '인사규정'과 '복무규정'이 새로 만들어졌다.

(3)

제49회 정기주주총회를 통하여 새로이 취임한 원고의 경영진은 1975. 3. 8. 경영악화를 이유로 심의실, 편집국의 기획부, 과학부, 출판국의 출판부 등 1실 3부를 폐지하고 그 소속 사원 18명(여기에는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있어 핵심 인물인 O, A노동조합지부장인 P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을 해고하였고, 같은 달 10.에는 위 해고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내용의 유인물 '알림'을 회사의 허가 없이 배포하였음을 이유로 기자인 Q을, 집회에서 N을 모욕하는 발언을 하였음을 이유로 기자인 R을 각 추가로 해고하였다.

(4)

이에 원고의 경영진이 정권의 언론 탄압에 굴복하여 기자들을 해고한 것이라 판단한 원고 소속 기자 등 언론인들은 1975. 3. 12.부터 '해직사원 20여 명의 복직과 N의 즉각 퇴진이 관철될 때까지 신문·방송·잡지의 제작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편집국, 공무국을 점거하고 신문과 방송의 제작을 거부하는 농성을 시작하였다.

(5)

원고는 제작거부가 시작된 1975. 3. 12. S T협회 A분회장과 UT협회 부분회장 등 17명을 추가로 해고한 다음, 1975. 3. 17. 야간통행금지 시간대인 새벽 3시 15분경 경비, 직원 등 200여 명을 동원하여 위와 같은 기자들의 농성을 강제로 해산시킨 후 1975. 6. 24.까지 무려 49명의 언론인을 해고하고 84명의 언론인을 무기정직 시켰다. 그런데 무기정직 당한 사원들의 대부분은 원고로부터 복직명령을 받지 못해 자동해임 되었다[이하 위 (3)항 내지 (5)항의 해고 또는 무기정직에 따른 해임을 통틀어 '이 사건 해직처분'이라 한다].

(6)

중앙정보부 V담당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A 광고탄압사건을 주도하였던 W은 1975. 7. 11. 원고의 사장 X과 만나서 광고탄압을 풀어주기로 협상하면서, 원고의 편집국장 등 주요 간부들의 인사에 관하여 사전에 중앙정보부와 협의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후 원고에 대한 광고탄압이 해제되었다.

(7)

한편, 이 사건 해직처분으로 해직된 언론인(이하 '이 사건 해직 언론인'이라 한다)들이 해고 및 무기정직처분의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였는데, 1심은 5명에 대한 해고 또는 무기정직은 정당한 사유가 없어 무효이나,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해고 또는 무기정직은 경영상 이유 또는 징계사유가 존재하여 유효하다고 판단하였고(서울지방법원 75가합2448), 2심은 1심에서 무효확인을 받은 것을 포함하여 모든 해고 또는 무기정직 처분이 유효하다고 판단하였으며(서울고등법원 76나2374), 위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었다(대법원 78다304, 이하 '이 사건 확정판결'이라 한다).

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1)

피고는 군사정권이 종식한 이후인 2005. 5. 31.에, 일제강점기 이후 국력을 신장시킨 해외동포사, 광복 이후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은폐된 진실을 밝혀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국민통합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여 2005. 12. 1.부터 시행하였고, 그에 따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라 한다)를 설치하였다.

(2)

진실화해위는 2006. 4. 18. 이 사건 해직처분의 대상자였던 AB 외 49명으로부터 원고에 대한 광고탄압 및 이에 항거한 언론인들에 대한 위 해직처분에 부당한 공권력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하여 진실규명을 해달라는 신청을 받고, 2년 이상의 기간 동안 조사한 끝에 2008. 10. 21. '피고는 광고 수주를 차단하여 경영상의 압박을 가함으로써 사주를 굴복시키는, 광고탄압이라는 방법으로 원고를 탄압하였고, 원고 역시 위법한 공권력의 압력에 굴복·순응하여 정부의 요구에 따라 언론자유 수호에 앞장선 언론인들을 대량으로 해고 또는 무기정직 시켰다. 따라서 광고탄압과 언론인 해임은 B 정권의 언론탄압정책에 따라 자행된,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이다'라는 취지의 진실규명결정과 피고에 대하여 원고 및 해임된 언론인들에 대한 사과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원고에 대하여 해임된 언론인들에 대한 사과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결정을 하였다. 위 결정요지 중 원고와 관련된 부분은 아래와 같다(이하 '이 사건 결정'이라 한다).

마.

원고는 비록 광고탄압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야기된 경영상의 압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A의 명예와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해 왔던 자사 언론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정권의 요구대로 해임함으로써 유신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

사.

원고는 비록 정부의 편집권에 대한 간섭과 물리적인 압력, 그리고 광고탄압을 통한 경영상의 압력 등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의 처지에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또 정부 압력을 기화로 언론인들을 대량 해임시킨 책임이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그럼에도 이후 민주화의 진전으로 언론자유과 신장되었고, 권력의 간섭이 사라진 후에도 이들에 대한 아무런 구제조치도 취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법률적 의무 여부를 떠나 피해자인 해직된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3)

진실화해위는 2008. 10. 29. 언론사들에게 이 사건 결정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하였고, 언론사들은 위 결정내용을 그대로 보도하였다.

(4)

이에 원고는 2009. 1. 5. 이 사건 결정에 대하여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진실화해위는 2009. 3. 5. 이의신청을 각하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1호증의 1 내지 갑 7호증, 갑 18호증의 1, 2, 을 3호증 내지 을 13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과거사법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판단

가.

원고의 주장

이 사건 해직처분은 원고와 원고 소속 언론인들 사이의 민사적 고용관계의 문제일 뿐 국가의 공권력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이 아니고, 위 해직처분에 관한 무효소송이 제기되어 이미 판결이 확정된 바 있고 거기에 재심사유가 존재하지도 아니하므로, 이는 과거사법상의 진실규명대상에 속하지 아니함에도, 진실화해위가 과거사법을 위반하여 이 사건 해직처분에 대한 이 사건 결정을 한 것은 위법하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으므로, 원고는 손해배상액 중 일부로서 1억 1,000만 원의 지급을 구한다.

나.

판단

(1)

과거사법은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대상으로 ① 일제 강점기 또는 그 직전에 행한 항일독립운동, ② 일제 강점기 이후 이 법 시행일까지 우리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국력을 신장시키는 등의 해외동포사, ③ 1945. 8. 15.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④ 1945. 8. 15.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⑤ 1945. 8. 15.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⑥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서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진실화해위가 과거사법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을 규정하면서(제2조 제1항), 다만 위 진실규명 범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도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하되(제2조 제2항 본문), 진실화해위의 의결로 민사소송법 및 형사소송법에 의한 재심사유에 해당하여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진실규명대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2조 제2항 단서).

(2)

먼저, 국가가 아닌 원고의 행위인 이 사건 해직처분이 과거사법 제2조 제1항 중 위 ④항 또는 ⑥항에 해당하는지 보건대, 갑 5호증 내지 갑 7호증, 을 3호증 내지 13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는 1975. 3. 8. 경영악화를 이유로 자사 언론인들을 해고하기 시작하였고, 위 경영악화가 초래된 주된 이유는 중앙정보부의 원고에 대한 광고탄압이었으며, 위 해고가 광고탄압에 대한 굴복이라고 판단한 원고 소속 언론인들이 사옥을 점거하고 제작거부 농성에 돌입함으로써 추가로 해고 또는 무기정직 처분을 받았으므로, 이 사건 해직처분의 근본적 원인은 광고탄압으로서 이는 위 ④항에서 규정된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또한, 과거사법이 '국가는 진실규명사건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가해자에 대하여 적절한 법적·정치적 화해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국민 화해와 통합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제34조), 정부의 피해 및 명예회복, 희생자들에 대한 특별사면·복권 등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을 뿐(제36, 37조), 국가 이외의 가해자가 따라야 할 의무에 관하여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위원회와 정부는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유족의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해자와 피해자·유족간의 화해를 적극 권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제39조), 위 규정을 종합하면, 진실화해위에게 국가가 아닌 가해자의 행위에 관하여는 진실규명의 권한이 없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해당 가해자에게 어떠한 법적 의무를 부가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화해를 권유할 권한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중앙정보부의 원고에 대한 광고탄압을 원인으로 이루어진 원고의 이 사건 해직처분은 과거사법 제2조 제1항 중 위 ④항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 진실화해위가 원고에 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은 내용의 이 사건 결정을 한 것은 적법한 권한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된다.

(3)

다음으로, 해고무효확인의 소에 관한 확정판결이 존재함에도 이 사건 결정을 한 것이 위법 제2조 제2항 본문을 위반한 것인지 보건대, 갑 6호증의 1 내지 3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이 사건 확정판결은 원고 소속 언론인들에 대한 이 사건 해직처분이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및 징계해고 또는 무기정직으로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및 징계에 필요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서만 판단하였을 뿐 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또는 징계 대상이 되는 행위가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서 정부의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판단한 바 없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반면에 이 사건 결정은 위 결정문을 전체적으로 볼 때, 광고탄압이라고 하는 부당한 공권력의 개입으로 인하여 원고에게 자사 소속 언론인들을 해고하여야만 하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생겼고, 이로 인하여 원고 소속 언론인들이 원고의 사옥을 점거하고 제작거부 농성에 돌입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원고가 위 언론인들을 끝까지 보호하지 못하고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결과적으로 그 압력을 기화로 대량 해임하였으므로, 위 각 해고의 유무효 및 그에 따른 법률상의 보상의무에 관계없이 과거사법의 입법취지에 따라 이 사건 해직처분에 있어 원고가 역사적인 가해자의 하나가 되었음을 밝히고, 나아가 원고와 피해자인 해직 언론인들과의 화해를 권고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 결정이 위 확정판결에 반하는 것으로서 과거사법 제2조 제2항 본문을 위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

소결론

따라서 원고의 과거사법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나머지 점에 관하여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3.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청구

가.

원고의 주장

원고가 경영상의 필요 또는 징계사유의 발생으로 해직 언론인들을 해임하였을 뿐 정권의 요구에 따라 해임한 바 없고, 이 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위 조사관도 그러한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하였음에도, 진실화해위는 자의적으로 원고의 사주가 광고탄압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위법한 공권력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위 압력을 기화로 자사의 언론인들을 해임하였다고 결론짓고 그와 같은 내용의 이 사건 결정을 한 뒤 위 결정을 공표함으로써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였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

이 사건 결정의 위법여부

과거사법은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되었고(제1조), 위 목적 달성을 위하여 진실화해위를 설치하고(제3조 제1항), ① 조사대상 선정 및 그에 따른 조사개시결정, ② 조사의 진행, ③ 조사결과 진상규명결정 및 진상규명불능결정, ④ 화해를 위한 방안 연구활동 등 그 밖에 위 원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업무를 할 권한을 부여하였으며(제3조 제2항), 위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하여 수행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보장하였다(제3조 제3항).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는 신청에 의하거나 직권으로 진실규명 조사 대상을 선정하여 조사개시결정을 하고(제19조, 제22조), 조사개시결정이 이루어지면 담당 조사국을 통하여 자료조사, 조사대상자 및 참고인의 진술 청취 및 면담 등의 조사과정을 거친 뒤(제23조 내지 제25조), 조사가 종료되어 진실규명이 된 경우 진실규명 조사결과를 의결로써 결정하고(제26조), 진실규명 조사결과 진실을 밝히지 못하거나 밝힐 수 없는 경우 진실규명 불능임과 그 사유를 기재한 결정을 하도록 되어 있다(제27조). 나아가 조사개시결정, 진실규명결정 및 진실규명불능결정 등은 결정 후 지체 없이 그 사유를 명시하여 이를 진실규명 신청인, 조사대상자, 참고인에게 통지하면서 이의신청의 제기 및 그 절차와 기간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알리고, 위 통지를 받은 자는 통지받은 내용에 이의가 있는 경우 통지를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위원회에 서면으로 이의신청을 할 수 있으며, 진실화해위는 이의신청을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이의신청에 대하여 결정하고 그 결과를 이의신청인에게 지체 없이 서면으로 통지하게 되어 있다(제28조).

이처럼 진실화해위는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합의제 독립 기관으로서 진실규명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하여는 진실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의결권을 부여받고 있고, 그 결정에 관하여 나름의 불복절차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진실화해위에서 그 조사대상이 되는 사건에 관하여 위와 같은 절차를 거쳐 적법하게 조사·의결이 이루어졌다면, 이는 국가기관의 적법한 권한행사에 따른 것이므로, 설령 그 의결의 내용에 실제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결정에서 진실이라고 의결한 것에 어떠한 위법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이 사건 해직처분이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대상에 해당함은 앞서 본 바와 같고, 다툼 없는 사실, 을 3호증 내지 13호증, 갑 1호증의 1 내지 갑 7호증, 갑 18호증의 1, 2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 해직처분에 관하여 AB 외 49명으로부터 진실규명 신청을 받고, 담당 조사관으로 하여금 2년 이상의 기간 동안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보고서를 작성·제출하도록 하였으며, 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15인으로 구성된 전원위원회에 상정한 결과 2008. 10. 21. 진실규명 결정을 의결한 사실, 담당 조사관은 위 보고서에서, '1975. 2. 28. 원고의 주주총회를 통하여 회사의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1975. 3. 8. 18명을 해고한 것은 중앙정보부의 광고 탄압이 원인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광고 재개 과정에서 이루어진 원고와 중앙정보부 사이의 협상 과정에서 국가 정보기관이 언론사를 구조적으로 종속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이나, 협상 전에 행해진 언론인들의 집단 해고 및 무기정직에서도 공권력이 직·간접적으로 개입이 있었고, 여기에 원고가 굴복하고 편승하였다고 단정할 만한 구체적인 실증 자료가 없어 판단하기 어렵다'라는 의견을 개진한 사실, 이에 따라 2008. 10. 21.자 전원위원회에서는 위 보고서를 검토한 위원들 사이의 활발한 토론을 통하여, ① M정당 L의 발언, ② 정부 동원 인력에 의한 제작거부 농성의 강제 해산, ③ 해고 및 무기정직 이후에 이루어진 중앙정보부와 원고 사이의 협상에서 원고의 인사문제가 거론된 점, ④ 해임을 주도하였던 N이 1975. 3. 8.자 해고는 원고 책임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인터뷰 내용, ⑤ 같은 시기에 있었던 조선일보의 대량해임 사건 등을 이유로, 담당 조사관의 의견과 다르게, 해임과정에서 정부의 압력이 있었고, 원고가 위 압력에 굴복하고, 또한 압력을 기화로 언론인들을 대량 해임시켰다는 내용의 이 사건 결정을 도출하여 의결한 사실, 원고는 2008. 11. 24. 이 사건 결정에 관하여 '이 사건 결정은 과거사법의 조사대상이 아닌 사안에 관한 것이고, 확정판결에 저촉되는 것으로 위법·부당하며, 위 결정내용의 판단근거 및 이유도 부당하다'는 취지로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진실화해위는 2009. 3. 5. '원고의 주장이 이유 없고, 원고는 과거사법상의 이의신청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이의신청을 각하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처럼 이 사건 결정은 과거사법에 의한 위원회의 적법한 합의절차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므로, 위 결정내용을 의결한 행위는 의결내용의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적법하다 할 것이다.

다.

공표의 위법여부

다만 이 사건 결정은 원고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진실화해위가 위 결정내용에 관하여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위 결정내용을 공표한 행위가 위법한지 보건대, 과거사법이 국가의 안전보장, 국민화해와 민주발전을 위하여 불가피하다고 위원회에서 결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사보고서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고(제32조 제6항), 조사가 종료되지 아니한 사건에 관하여 조사내용을 공표하여서는 아니된다(제32조 제7항)고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사가 종료된 사건에 대하여는 조사내용의 공표를 예정하고 있다고 보이는 점, 과거사법의 제정 목적이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것'에 있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진실로 규명된 사항에 관해서는 설령 그것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위원회에서 비공개를 결정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공표하여 그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과거사법의 입법취지에 부합한다고 풀이되므로, 진실화해위가 이 사건 결정 내용을 공표한 행위에 어떠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라.

소결론

따라서 원고가 이 사건 결정의 의결 및 공표로 인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은 나머지 점에 관하여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노만경(재판장) 차동경 최미영

각주1) Q, R, Y, Z, AA

각주2) 나머지 항들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각주3) 실제로도 진실화해위는 ① 1950. 7.부터 1950. 9.까지의 기간 동안 김제에서 AC 등 수십 명이 적대세력이었던 지방 좌익 및 인민군에 의해 죽음을 당한 "김제에서 AC 등이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 ② 1950. 9. 9.부터 1050. 9. 28.까지의 기간 동안 예산군에서 AD 등 수십 명이 지방 좌익 및 인민군에 의해 죽음을 당한 "예산지역에서 AD 등 26명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의 건", ③ 전북 경찰국 제18전투대대 AE 지휘관 AF이 마을 주민 89명을 집단 총살한 "고창 월림 집단희생 사건", ④ 유신정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정보기관을 동원하여 대학 내 사찰을 진행하고 분담지도교수제와 교수재임용제를 통하여 교수들을 학원 통제에 이용하였으며, 학생자치 활동을 했던 학생들을 강제지도휴학 및 강제징집한 "유신체제하 학원통제 사건" 등 국가가 아닌 가해자의 행위로 인한 사건에 관하여 각 진실규명을 한 바 있다.

각주4) 이 사건 결정 사.항에는 '법률적 의무 여부를 떠나'라고 기재되어 있다.

각주5) 「MBC "AG" - H N 인터뷰(AH.)」녹취록 13~14쪽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