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7. 9. 선고 2013가합544379 판결

주문

1.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이유

1.

기초사실

가.

대통령긴급조치의 발령

1)

1974. 1. 8. 당시의 대한민국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유신헌법'이라 한다) 제53조에 따라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이하 '긴급조치 제1호'라 한다)가 발령되었다.

2)

긴급조치 제1호는 ①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유신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② 긴급조치 제1호를 위반한 자와 긴급조치 제1호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되(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처단하도록 규정하였다.

3)

한편 1974. 1. 8. 대통령긴급조치에 위반한 자를 심판하기 위한 비상군법회의 설치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대통령긴급조치 제2호(이하 '긴급조치 제2호'라 한다)가 발령되었다.

나.

G에 대한 수사 및 재판 과정

1)

중앙정보부 소속 일반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G은 1974. 7.경 별지 2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긴급조치 제1호 위반 혐의로 영장 없이 체포되어 수사를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가족인 원고들에게 체포의 이유나 장소 등이 통지되지 아니하였으며, 1974. 7. 13. 구속됨과 아울러 중앙정보부에서 파면되었다.

2)

원고 A은 1974. 8. 5.경 서대문구치소로부터 G에 관한 구속통지를 받았다.

3)

G은 별지 2 기재와 같은 공소사실로 구속기소(비상보통군법회의 74비보군형공 제64호)되었고, 1974. 9. 7. 위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되어 긴급조치 제1호 위반죄로 징역 15년 및 자격정지 15년에 처하는 제1심 판결(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이 선고되었다.

4)

이에 G이 항소(비상고등군법회의 74비고군형항 제56호) 및 상고(74도3492호)하였으나, 1974. 10. 11. 항소가, 1975. 1. 28. 상고가 각 기각되어 재심대상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5)

G은 1975. 2. 15.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고, 1978. 12. 27. 특별사면되었으며 1980. 2. 29. 복권되었다.

다.

G의 사망으로 인한 상속관계

G이 1998. 10. 18. 사망함에 따라 그 재산을 배우자인 원고 A이 3/13, 자녀들인 원고 B, C, D, E, F이 각 2/13씩 공동상속하였다.

라.

재심판결의 확정 및 형사보상결정

1)

G의 아들인 원고 F이 2013. 9. 2.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청구(서울중앙지방법원 2013재고합32호)하여 2013. 9. 24. 재심개시결정이 내려지고, 2013. 10. 7. "긴급조치 제1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긴급조치 제1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배되어 위헌·무효이고, 나아가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헌·무효이어서 G에 대한 공소사실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의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한다."라는 이유로 무죄판결(이하 '재심판결'이라 한다)이 선고되어 그 무렵 확정되었다.

2)

원고들은 2014. 3. 7. G의 상속인 지위에서 형사보상결정(서울중앙지방법원 2013코598호)을 받아 2014. 6. 30. 원고 A은 9,779,810원을, 나머지 원고들은 각 6,519,870원을 각 수령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7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원고 A 본인신문 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2.

수사 및 재판 관련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판단

가.

원고들의 주장

1)

① 피고 소속 대통령은 국회의 승인 없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긴급조치 제1호를 제정하는 위법행위를 저질렀고, ② 피고 소속 수사기관은 위 헌·무효인 긴급조치 제1호에 근거하여 영장 없이 G을 불법 체포·구금하였으며, 체포 과정에서도 G에게 범죄사실의 요지 및 변호인 선임권 등을 고지하지 아니하였고, 원고들에게도 1974. 8. 5.까지 G의 체포·구금사실을 적법하게 통지하지 아니하였으며, ③ 재심대상판결은 그 자체로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2호에 근거하여 설치된 비상군법 회의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므로 재판권이 없는 기관에 의하여 이루어진 위법한 판결이고, 나아가 피고 소속 법관들은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1호를 만연히 합헌이라고 인정하고 이를 적용하여 G에게 유죄를 인정하는 내용의 재심대상판결을 선고하고 그에 대한 상소를 모두 기각하였다.

2)

G은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1974. 7. 13. 구속된 후 1975. 2. 15. 형집행정지로 석방될 때까지 218일 동안 구금되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가혹행위와 장기간의 불법구금으로 정신적 피해 및 외상을 입었으며,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직에서 파면되어 일실수입 상당의 손해를 입었고, 그로 인하여 가족인 원고들도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3)

따라서 피고는 G의 상속인인 원고들에게 위와 같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여부

1)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가)

긴급조치 제1호의 발령행위 자체가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

긴급조치 제1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긴급조치 제1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배되어 위헌이고, 나아가 긴급조치 제1호에 의하여 침해된 위 각 기본권의 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헌이다(대법원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러나 긴급조치 제1호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되었다고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 참조).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나)

수사 및 재판 자체의 불법행위 여부

(1)

형벌에 관한 법령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였거나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된 경우, 그 법령이 위헌으로 선언되기 전에 그 법령에 기초하여 수사가 개시되어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

긴급조치 제1호가 위헌·무효임은 앞서 본 바와 같으나, 당시 시행 중이던 긴급조치 제1호에 의하여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하여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긴급조치 제1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는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이 "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긴급조치 제1호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아니하였던 이상,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한편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로 수집한 증거에 기초하여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의 확정판결까지 받았으나 재심절차에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의 '피고 사건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여 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는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긴급조치 제1호 위반의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절차에서 피고인에게 적용된 형벌에 관한 법령인 긴급조치 제1호가 위헌·무효라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로 인하여 재심대상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된 경우라고 볼 수 없으므로, 그와 같은 내용의 재심무죄판결이 확정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이 곧바로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그러한 복역 등으로 인한 손해를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로 인한 손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하기 어렵다. 이 경우에는 국가기관이 수사 과정에서 한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별도로 심리하여 그에 따라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의 인정 여부를 정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의 내용, 유죄를 인정할 증거의 유무, 재심개시결정의 이유, 사건 관련자가 재심무죄판결을 받게 된 경위 및 그 이유 등을 종합하여, 긴급조치 제1호의 위헌·무효 등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없었더라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있었음에 관하여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증명이 이루어진 때에는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에 대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참조).

(2)

이러한 법리에 따라 피고 소속 수사기관이 G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하고, 피고 소속 법관들이 긴급조치 제2호에 근거하여 설치된 비상군법회의에 의하여 긴급조치 제1호를 적용하여 G에게 유죄를 인정하는 내용의 재심대상판결을 선고하고 그에 대한 상소를 모두 기각한 것이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에 관하여 보건대, 긴급조치 제1호에 의하여 영장 없이 G을 체포·구금하여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긴급조치 제1, 2호에 근거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는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이 "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긴급조치 제1, 2호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아니하였던 이상,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나아가 긴급조치 제1호의 위헌·무효 등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없었더라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있었음에 관하여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루어진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본 기초사실에다가 갑 제1호증의 1, 2, 3, 갑 제4호증의 1, 갑 제8호증의 1, 2, 3, 갑 제9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갑 제1호증의 1, 2, 3, 갑 제3호증, 갑 제4호증의 1, 2, 갑 제6호증의 1 내지 6, 갑 제8호증의 1, 2, 3, 갑 제9호증의 각 기재와 원고 A 본인신문 결과만으로는 G에게 별지 2 기재 공소사실과 관련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있었음에 관한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①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판결이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G에 대하여 적용된 형벌법령인 긴급조치 제1호가 위헌·무효라는 것뿐이다.

②

재심대상판결은 G과 H을 포함한 5명의 피고인들에 대한 것인데, 위 판결은 유죄의 증거로 'G, H 등 위 5명의 피고인들의 각 법정진술, 검찰관 및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위 5명의 피고인들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진술기재, 검찰관이 작성한 H 등에 대한 각 진술조서의 진술기재, 압수된 증 제1호 내지 제15호의 현존' 등을 들고 있고, 그 중 G에 대한 공소사실과 관련된 주된 증거는 G, H의 각 법정진술, 검찰관 및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G, H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검찰관이 작성한 H에 대한 진술조서로 보인다. 그런데 재심대상판결에 대한 재심절차에서, 검찰관 및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G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의 경우에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거나 G이 그 내용을 부인하는 등의 이유로 증거능력이 부정될 여지가 있으나, 별지 2 기재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검찰관 및 사법경찰관 작성의 H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검찰관 작성의 H에 대한 진술조서의 경우 그 증거능력이나 증명력을 배척할만한 근거가 없어서 이를 G에 대한 유죄 인정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3)

따라서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다)

기타 수사과정에서의 불법행위 여부

(1)

G이 체포될 당시 시행되고 있던 구 형사소송법(1980. 12. 18. 법률 제328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209조에 의하여 준용되는 같은 법 제87조, 제89조에 의하면, 피의자를 구속할 때 변호인이 없는 경우에는 피의자의 가족 중 피의자가 지정한 사람에게 피의자의 구속일로부터 3일 이내에 서면으로 피의사건명, 구속일시, 장소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는 취지를 알려야 하고(제87조 제1, 2항), 구속된 피의자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타인과 접견하고 서류 또는 물건을 수수하며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제89조).

피고 소속 수사관들이 1974. 7.경 무렵 G을 체포하여 수사하는 과정에서 1974. 8. 5.까지 가족인 원고들에게 체포의 이유나 장소 등을 통지하지 아니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이에 의하면 피고 소속 수사관들의 위와 같은 행위는 위 구 형사소송법 규정에 위배되므로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

(2)

다음으로, 피고 소속 수사관들이 G을 체포하면서 범죄사실의 요지 및 변호인 선임권 등을 고지하지 아니하였는지에 관하여 보건대, 갑 제1호증의 1, 2, 3, 갑 제3호증, 갑 제4호증의 1, 2, 갑 제6호증의 1 내지 6, 갑 제8호증의 1, 2, 3, 갑 제9호증의 각 기재와 원고 A 본인신문 결과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라)

소결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그 소속 수사관들의 위 다)의 (1)항과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G 및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2)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판단

가)

피고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채권은 5년의 소멸시효기간이 도과되어 시효로 소멸하였다는 취지의 항변을 한다.

살피건대, 원고들의 손해배상채권은 금전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에 대한 권리로서, 구 예산회계법(2006. 10. 4. 법률 제8050호 국가재정법 부칙 제2조로 폐지) 제96조에 의하여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는바, G이 1974. 7.경 체포되었다가 재심대상판결을 선고받은 후 1975. 2. 15.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사실은 앞서 기초사실에서 본 바와 같고, 원고들의 이 사건 소가 위 석방일로부터 5년이 지난 뒤인 2013. 9. 17. 제기된 사실은 기록상 명백하므로,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은 시효로 소멸하였다. 따라서 피고의 위 항변은 이유 있다.

나)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2010. 12. 16. 긴급조치 제1호가 위헌·무효라는 최초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는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고, 그로부터 3년 이내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으므로,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재항변한다.

살피건대,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소멸시효 완성 전에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어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음에도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1994. 12. 9. 선고 93다27604 판결 등 참조).

그런데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G을 긴급조치 제1호에 근거하여 체포·구속·수사·재판한 행위 자체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면 이 부분에 대하여는 재심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원고들이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에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앞서 본 바와 같이 불법행위로 인정되는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행위는 G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구 형사소송법을 위반하여 원고들에게 G에 대한 체포사실 등을 통지하지 아니한 행위에 한하고,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재심대상판결에 대한 재심절차를 거쳐야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G이 석방된 후 이 사건 소 제기시까지 30년 이상이 경과하였고,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사회적·정치적 분위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하면, 앞서 인정된 불법행위와 관련하여서는 원고들이 피고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원고들의 위 재항변은 이유 없다.

3.

부당해고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판단

가.

원고들의 주장

피고가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G에 대하여 한 파면처분은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1호에 기하여 이루어진 재심대상판결에 의한 것이어서 당연무효로서 부당해고에 해당하고, 이는 G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하므로, 피고는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G이 입은 일실수입 및 일실퇴직금 상당의 재산상 손해와 G과 그 가족들인 원고들이 받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손해를 원고들에게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판단

1)

법률에 근거하여 행정처분이 발하여진 후에 헌법재판소가 그 행정처분의 근거가 된 법률을 위헌으로 결정하였다면 결과적으로 위 행정처분은 법률의 근거가 없이 행하여진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하자가 있는 것이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자 있는 행정처분이 당연무효가 되기 위하여는 그 하자가 중대할 뿐만 아니라 명백한 것이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법률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사정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있기 전에는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전에 행정처분의 근거되는 당해 법률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사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행정처분의 취소소송의 전제가 될 수 있을 뿐 당연무효사유는 아니라고 봄이 상당하다. 그리고 이처럼 위헌인 법률에 근거한 행정처분이 당연무효인지의 여부는 위헌결정의 소급효와는 별개의 문제로서, 위헌결정의 소급효가 인정된다고 하여 위헌인 법률에 근거한 행정처분이 당연무효가 된다고는 할 수 없고 오히려 이미 취소소송의 제기기간을 경과하여 확정력이 발생한 행정처분에는 위헌결정의 소급효가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1두24057 판결 등 참조).

한편,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근로자를 징계해고한 것이 정당하지 못하여 무효로 판단되는 경우 그 해고가 무효로 되었다는 사유만에 의하여 곧바로 그 해고가 불법행위를 구성하게 된다고 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고 하겠으나, 사용자가 근로자를 징계해고 할 만한 사유가 전혀 없는데도 오로지 근로자를 사업장에서 몰아내려는 의도하에 고의로 어떤 명목상의 해고사유를 만들거나 내세워 징계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해고한 경우나, 해고의 이유로 된 어느 사실이 소정의 해고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하거나 해고사유로 삼을 수 없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와 같은 사정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도 그것을 이유로 징계해고에 나아간 경우 등 징계권의 남용이 우리의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한 경우에 있어서는 그 해고가 근로기준법 제2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정당성을 갖지 못하여 효력이 부정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법하게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이 되어 근로자에 대한 관계에서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대법원 1993. 10. 12. 선고 92다43586 판결 참조).

2)

이러한 법리에 따라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본 기초사실에다가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피고가 1974. 7. 13. G에 대하여 파면처분을 한 것이 G에 대한 관계에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①

구 국가공무원법(1978. 12. 5. 법률 제315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2조 제2항 제4호에 의하면 중앙정보부의 부장·차장 및 직원은 별정직 공무원에 해당하고, 구 중앙정보부법(1980. 12. 31. 법률 제3313호로 전부개정되기 전의 것)에서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의 징계에 관하여 달리 규정하지 아니한 이상,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의 경우 구 국가공무원법에서 정한 바에 따라 징계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구 국가공무원법은 제78조에서 '공무원이 징계사유가 있을 때에는 징계의결의 요구를 하여야 하고 그 징계의결의 결과에 따라 징계처분을 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징계사유로는 '1. 이 법 및 이 법에 의한 명령에 위반하였을 때, 2. 직무상의 의무에 위반하거나 직무를 태만하였을 때, 3.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체면 또는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한 때'를 규정하고 있으며, 제79조에서는 징계의 종류로 '파면, 감봉, 견책'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G은 별지 2 공소사실에 기재된 바와 같은 행위를 한 것 자체로 인하여 구 국가공무원법에서 정한 징계사유가 있다고 인정되어 구 국가공무원법에 근거하여 파면처분을 받은 것이므로, 긴급조치 제1호나 재심대상판결이 직접적으로 위 파면처분의 근거가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원고들이 위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국가보위입법회의법 부칙 제4항 후단에 의한 면직처분의 경우 위 부칙 규정이 직접적으로 면직처분의 근거가 된 사안이므로 이 사건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②

가사 긴급조치 제1호가 G에 대한 파면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라고 보더라도, 피고가 G에 대하여 한 파면처분은 긴급조치 제1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이미 취소소송의 제소기간이 도과되어 확정력이 발생하였으므로 위 위헌결정의 소급효가 위 파면처분에는 미치지 않고, 따라서 위 파면처분이 당연무효라고 볼 수도 없다.

③

공무원인 피징계자에게 징계사유가 있어서 징계처분을 하는 경우 어떠한 처분을 할 것인가는 징계권자의 재량에 맡긴 것이고, 다만 징계권자가 재량권의 행사로서 한 징계처분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징계권자에게 맡긴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그 처분을 위법하다 할 것인데, 공무원에 대한 징계처분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었다고 하려면 구체적인 사례에 따라 징계의 원인이 된 비위사실의 내용과 성질, 징계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행정목적, 징계 양정의 기준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하여 판단할 때에 그 징계 내용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경우라야 한다(대법원 2010. 11. 11. 선고 2010두16172 판결 등 참조). 그런데 국가안전보장업무를 수행하는 중앙정보부 및 그 소속 공무원들의 업무적 특수성 등을 고려할 때, 별지 2 공소사실과 같은 행위를 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던 G에 대하여 피고가 파면처분을 한 것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할 정도로 현저하게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정인숙(재판장) 이선말 곽용헌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