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이유
기초사실
당사자의 지위
원고 A은 E(F생)의 배우자이고, 원고 B, C은 E의 자녀들이며, 피고는 보험사로서 G과 사이에 보험계약을 체결한 자이다.
보험계약의 체결
G은 2008. 2. 29. 피고와 사이에 E를 피보험자, G을 수익자로 하여 재해사망특약(가입금액 5,000만 원)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 H(이하 '이 사건 보험'이라 한다)계약을 체결하였고, 그 후 위 보험계약의 사망시 수익자는 법정상속인으로 변경되었다.
사망사고의 발생
E는 이 사건 보험기간 내인 2020. 12. 23. 06:40경 자택에서 목을 메어 사망하였다(이하 위 사망사고를 '이 사건 사고'라 하고, E를 '망인'이라 한다).
이 사건 보험약관상 면책사유 및 예외규정
이 사건 보험 중 재해사망특약의 약관(이하 '이 사건 약관'이라 한다) 가운데 이 사건과 관련된 부분은 아래와 같다.
보험금청구 및 지급거절
원고 A은 2023. 12. 4.경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약관에 따라 이 사건 사고에 관한 재해사망보험금을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망인이 이 사건 약관에서 정한 재해(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망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 위 보험금의 지급을 거절하였다(다만, 피고는 망인의 사망과 관련하여 이 사건 보험계약의 주계약 약관에서 정한 사망보험금 3,000만 원은 이를 지급하였다).
[인정 근거] 일부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2, 3호증, 을 제1, 2호증(가지번호를 따로 표시하지 아니하는 것은 각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2. 당사자의 주장
원고들
망인이 비록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업무로 인한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것으로서 이 사건 약관 제12조 제1항 제1호 단서에서 정한 면책사유의 예외인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는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정한 재해사망특약의 보험금을 보험수익자인 원고들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다.
피고
이 사건 사고일 전 1개월 동안의 망인의 행적이나 진료기록 등을 살펴보면, 망인이 사망한 이 사건 사고는 '사고의 원인이 고의적 자해인 경우' 및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하고,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판단
관련 법리
피보험자가 자살하였다면 그것이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보험자의 면책사유에 해당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사망이었는지 여부는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심리상황, 그 정신질환의 발병 시기, 그 진행 경과와 정도 및 자살에 즈음한 시점에서의 구체적인 상태,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 상황과 자살 무렵의 자살자의 행태, 자살행위의 시기 및 장소, 기타 자살의 동기, 그 경위와 방법 및 태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1. 4. 28. 선고 2009다97772 판결 등 참조).
한편, 보험계약의 보험약관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하기 위하여서는 위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을 증명할 책임이 있으나(대법원 2006. 4. 14. 선고 2005다70540 판결 등 참조), 피보험자가 자살한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이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보험자의 면책대상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그 면책대상의 예외사유를 주장하면서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람이 증명하여야 한다.
판단
위 법리를 고려하여 살피건대, 앞서 인정한 사실 및 앞서 든 증거와 갑 제4, 5, 8 내지 16, 19호증, 을 제3 내지 6호증의 각 기재, 이 법원의 I협회 의료감정원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정 및 망인의 신체적 · 정신적 심리상황, 주위 상황, 자살 무렵의 행태, 자살의 동기,그 경위와 방법 등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망인이 이 사건 사고로 사망할 당시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망인은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수의사로서 종전에는 수산, 양봉, 축산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다 2020년 과장 승진 이후로 애완동물 관련 신제품 개발업무(기능성 사료)를 추가로 담당하게 되었는데, 제품의 성분 외 디자인이나 마케팅 관련 측면이 크게 강조된 업무 적응에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20년 말경 근무하던 회사의 신제품 출시 과정에서 제품의 주요 성분인 오메가3 성분의 함량 표시와 관련된 문제 등으로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우울증 및 잠을 깊게 자지 못하는 등의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사고는 2020. 12. 23. 발생하였는데, 망인은 같은 달 초순경부터 1)항 기재와 같은 문제로 인한 우울증을 호소하여 2020. 12. 5. J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최초 방문(통원)한 뒤 진료를 받기 시작하였다. 진료기록상 2020. 12. 5. 당시 '잠이 금방 깬다, 회사 일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 내 실수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확인을 더 하게 된다' 등의 자신의 증상을 언급하였고, 그 이후 방문한 2020. 12. 12. 및 2020. 12. 19.<1>에는 '수면이 유지가 된 것은 아니지만 두근거림은 전보다 완화, 일 마치고 나면 너무 힘들다, 내 증상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다, 정신과 약이 중독되지는 않는가?, 이전보다는 잠 잘 잔다, 중간에 별로 깨지 않는다, K병원 정신과 예약(했다)' 등의 진술을 하였고, 위 의원은 망인의 증상을 '중간정도 우울증 의심'으로 진단하였다. 이와 같이 망인이 중간정도의 우울증으로 이 사건 사고 이전 위와 같이 통
원하며 치료받은 기간은 채 1개월에 미치지 못하고, 통원 당시에도 망인은 자신의 증상, 처한 상황 및 약을 먹고 개선된 부분과 약에 중독될 경우의 염려까지 하는 등 정상인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진술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망인의 사후 위 병원에서 발급한 소견서는 원고측의 요청을 반영하였을 개연성이 있어 이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그 밖에 망인에 대한 진료기록상 망인의 의식의 혼탁, 지남력 손상 등을 의심할 만한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고, 환각과 망상, 난폭한 충동행동이 관찰되지 아니하여, 망인이 자살할 당시 섬망, 환각, 망상 등의 심리상태에 있었다고 볼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
이 사건 사고발생(자살<2>) 직전 망인의 동태, 자살에 이른 과정 등을 살펴본다. 망인은 이 사건 사고 전날인 2020. 12. 22. 가족들 및 처가부모님이 음식을 갖고 와서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망인은 같이 먹기 불편하다고 해서 밖에 있다가 원고 A이 부모님과 저녁을 먹고 부모님이 20:30경에 집으로 가신 뒤에 망인이 위 원고에게 연락하여 21;00경에 집으로 들어와 귀가하였고, 위와 같이 귀가한 망인은 당시 밖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하여, 위 원고가 밥을 차려주었으며, 당시 망인은 '높은 곳에 올라가 고 싶다'는 말을 해서 무언가 심각해 보여 위 원고가 '다 얘기해 보라'고 하고 망인과위 원고가 이야기를 한 후 망인은 작은 방에서 혼자 잠을 잤고 원고들을 염두해 둔 유서를 자필로 작성하여 책상에 놓아두고, 다음 날 06:30~40경에 주거지 아파트의 화장실 출입문 안쪽면 도어 스토퍼에 위 줄넘기 줄을 걸어 목을 매었지만 스토퍼가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자살에 이르지 못하자, 목을 맬 곳을 바꾸어 새로이 위 문 모서리 상단부의 충격방지 구조물에 줄넘기 줄을 이용하여 다시 목을 맴으로써 자살에 이
르렀다.
이와 같은 망인의 동태 및 신변정리를 하며 자살에 이른 과정과 방법 등을 볼 때, 망인의 자살 역시 일반적으로 자신의 삶을 비관하여 자살에 이르는 경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사건 사고 후 남겨진 유족들의 존재와 추후 망인의 회사업무가 한결 개선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망인이 갑작스레 자살을 한 것을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으로 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와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으로 보이는 측면을 망인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가능한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추정하는 근거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자살이 매우안타까운 사실이라는 것과 별개로 이 사건 약관에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자살'과 '그에 해당하지 않는 자살'을 구별하고 있고, 후자의 경우에도 삶을 끝내는 무거운 선택을 함에 있어서는 당연히 일정한 스트레스나 절망적인 심리상태가 원인 내지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인 만큼, 후자가 아닌 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기 위해서는 피보험자가 심한 스트레스나 절망적 심리 상태만이 아니라 그러한 사정들로 인하여 '삶의 지속여부에 대한 의사결정 능력이 상실되었다고 할 정도의 정신의학적 상태'에 이르렀음이 입증되어야 할 것인데, 이 사건 사고 전날 망인의 동태, 자살방법(2차에 걸쳐 시도한 자살방법을 고려할 때, 망인이 당시 인지능력과 판단능력을 상실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유서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보면, 심한 스트레스나 절망적인 심리상태 등이 망인의 자살의 원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고, 이 사건 사고 당일 무렵에 망인이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었다거나 망인의 자살이 우발적이거나 순간적인 충동에 의한 행동이라는 것을 인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망인의 의무기록이나 진료기록에 망인이 심신상실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볼 만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고, 이 법원의 진료기록감정 촉탁결과도 '망인이 자살 무렵 망상, 환청 등 정신병적 증상으로 현실검증력이 상실되었다고 볼 내역이 확인되지 않고,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고 회신되었다.
원고들은 서울행정법원 2021구합89282 사건에서 망인의 자살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 업무상 재해임이 확인되었고, 다른 보험회사는 이 사건 사고에 대한 보험금을 원고들에게 지급하였다는 점을 들어 이 사건 보험금 청구도 인용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위험으로 담보하는 '업무상 재해'라 함은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해 또는 사망'을 말하는 것으로서 업무상의 사유와 사망 등의 결과가 인과관계가 있는지가 주된 판단대상이 될 뿐, 그 업무상 재해가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 인한 것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근로자의 기초질병이나 기존질병이 반복된 업무로 인한 피로의 누적으로 유발·악화되어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상해 등이 발병하였더라도 근로자의 질병 등과 반복된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있으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것이지만(대법원 1993. 2. 23. 선고 92누15819 판결 참조),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담보되는 '재해'는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로 인한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에 따라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았다고 하여,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의 '사고의 우발성, 외래성' 및 장해라는 결과와 사이의 인과관계 등에 대한 입증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다른 보험회사가 같은 보험사고에 대하여 이미 보험금을 지급하였다는 사정 역시 이와 같은 규범적인 판단이 이루어진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참고할 수준에 불과하다고 보인다.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한다.
판사 박창우
각주1) 자살일로부터 4일전이다.
각주2) 한편, 이 사건 약관에서 인용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는, '자살(기도)'을 '고의적 자해'에 포함하고, 고의적 자해를 'X60부터X84까지' 분류하면서, '목맴, 압박 및 질식에 의한 의도적 자해(X70)' 등을 고의적 자해로 분류하고 있다.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