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는 원고 A에게 20,000,000원, 원고 B에게 60,000,000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2025. 9. 17.부터 2025. 10. 22.까지 연 5%, 그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 중 70%는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이유
인정사실
대한청소년개척단의 설립 및 운영 등
1961. 5. 16. C 전 대통령이 주도한 군사정변으로 만들어진 피고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 주도하에 1961. 11. 14.경 전국에 고아, 부랑인, 우범자, 윤락여성 등 800여 명을 충남 서산군 D에 집단 이주시켜 폐염전을 개간, 농지를 조성·분배할 목적으로 E을 단장으로 한 대한청소년개척단(이하 '개척단'이라 한다)을 설립하였다. 이에 따라 개척단은 무의탁 부랑자, 우범자, 출감자, 윤락여성 등 남녀를 집단으로 수용하고, 구호양곡인 밀가루를 지급하는 등 집단급식을 하면서 자조근로 사업을 통하여 1967년 3월경까지 그들로 하여금 폐염전부지이던 충남 서산군 F지구 토지 일대를 농경지로 개간하도록 하였다.
개척단에는 1961. 11. 14. 1차로 68명의 개척단원이 입주하였고, 이어서 1963년 서울지역 부랑아, 윤락여성 등 288명, 1964년 충남지역 우범자, 윤락여성 등 606명이 정부 정책으로 개척단에 집단 이송되었다. 이후 전국에서 89차에 걸쳐 최대 2,241명이 개척단에 수용되었다가 상당수의 단원들이 이탈하여 1965. 10.경에는 약 1,700여 명의 단원만이 남았다. 1966. 9. 1. 보건사회부는 E 단장을 해임하고, 서산군수에게 개척단 운영권을 이관하였으며, 개척단의 명칭도 '서산자활정착사업장'으로 변경하였는데, 위 무렵에는 단원이 809명으로 줄어있었다.
개척단원들의 합동결혼, 개척단원이 개간한 농지의 가분배 등
보건사회부의 주도하에 1960년대 개척단원들을 교화하고 정착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합동결혼식이 이루어졌다. 1963. 9. 26. 개척단 운동장에서 남자 개척단원과 서울및 충남지역에서 보내진 여성 125쌍이 제1차 합동결혼식을 하였고, 1964. 11. 24.에는 G회관 대강당에서 H 당시 서울시장의 주례로 남자 개척단원과 서울시립부녀보호소에 수용된 여성 225쌍이 결혼하였다. 1965. 4. 10. 서울특별시 윤락여성 선도대책위원회가 개척단에서 합동결혼한 부부들의 생활동태에 대하여 실태조사를 하였는데, 합동결혼한350쌍 중 결혼생활이 위태로운 부부가 135쌍(38.6%)에 이를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편 피고의 보건사회부가 1966. 3. 11. 작성한 자조근로사업 실시요령 제8조는 "본 사업의 실시계획에 따라 새로 조성되는 농지가 있을 때는 취로자인 무토지 영세민의 경우 논 6천 평 이하, 밭 3천 평 이하를 기준으로 농지를 분배하도록 하며, 취로자에게 분배되는 농지는 합법적인 소유권이 이전될 수 있도록 해당 시장, 군수가 행정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서산군은 1968. 6. 1. 개척단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농지 분배위원을 추천하도록 한 후, 이렇게 만들어진 분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1968년경부터 1971년까지 총 5차례에 걸쳐 정착 원주민, 영세민, 난민 등 293세대에총 263.5ha의 농지를 가분배하였다. 그중 개척단에서 개간 노역을 한 개척단원 출신정착 원주민 186세대는 1968. 8. 26. 1차 가분배 시기에 총 182.5ha의 토지를 가분배받았다(이하 개척단이 조직되어 해체되기까지 운영되면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개척단 사건'이라 한다). 그러나 피고의 가분배된 토지에 대한 소유권 이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아서 이에 주민들은 1990년경 I위원회를 조직하여 피고를 상대로 여러 차례 토지소유권 관련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모두 패소하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 등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에 따라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라 한다)는 J 외 286명(원고들도 신청인들에 포함되어 있다)의 진실규명신청을 접수하여 위 사건을 조사하였다. 진화위는 2022. 5. 10. "개척단 사건은 보건사회부 주도하에 국가조직이 동원되어 국민을 강제수용한 후 감독의 소홀 등으로 인해 감금 및 폭행, 강제노역, 강제결혼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였고, 나아가 재산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함으로써 국가기관이 국민의 인권을 총체적으로 침해한 사건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이라 한다).
원고들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에서 피해자로 인정되었다.
원고 A의 가족관계 원고 A은 망 K(L생, 1975. 11. 2. 사망, 이하 '망인'이라 한다)과 배우자인 M과 사이에 출생한 장남으로 원고 A 위로 장녀 N, 아래로 차녀 O, 차남 P이 있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3, 8, 15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각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원고들 주장 요지 가. 망인과 원고들은 개척단에 강제로 수용되어 개척단에서 임의로 이탈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강제노역, 폭행 및 가혹행위 등을 당했고, 원고 B의 경우 개척단장의 권유에 따라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였다. 이는 국가기관인 피고가 망인과 원고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한 위법한 행위이고, 이로 인해 망인 및 원고들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따라서 피고는 위와 같은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로 개척단에 수용된 기간 1일당 300,000원을 기준으로 산정한 바에 따라 원고 A에게 288,750,000원(= 망인으로부터 상속받은 위자료 78,750,000원 + 고유위자료 210,000,000원), 원고 B에게 379,500,00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각 지급할 의무가 있다.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피고의 불법행위책임 발생 여부
관련 규정, 판단 방법, 근거 등
구 대한민국헌법(1969. 10. 21. 헌법 제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헌법'이라고 한다) 제8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이를 위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에 관한 내용으로 제10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강제노역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제12조에서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또한 제28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고(제1항) 의무를 진다(제2항)고 함께 정하면서,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제2항후단). 근로조건의 기준은 법률로 정한다(제2항). 여자와 소년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제3항)."고 정한다.
한편 원고들이 주장하는 불법행위 발생일인 1960년대로부터 60년 가까운 오랜 세월이 지났으므로, 일반적인 불법행위 사건과 같이 객관적인 증거에 기초하여 원고들의 피해 사실을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실제로 이를 밝힐만한 객관적인 자료(개척단에 생활한 사람들에 대한 수용대장 등)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원고들이 실제 개척단에서 생활했는지, 그 입소 경위는 어떠한지나 개척단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등을 밝히는데 원고들 및 관련자들의 진술에 상당 정도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위와 같은 관련 규정 및 이 사건의 특수성에 비추어, 이하 원고별로 주장하는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되는지에 관하여 위 인정사실, 앞서 든 증거들, 갑 제10,13, 14, 23 내지 25, 28 내지 31호증, 을 제1호증의 각 기재 및 영상, 이 법원의 U중학교, 충청남도 서산교육지원청(이하 '서산교육청'이라 한다)에 대한 각 사실조회결과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해 살펴본다.
망인 및 원고 A의 경우 다음 사실 및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고 A(Q생)이 망인과 함께 1964년경부터 개척단에서 생활한 사실이 인정되고, 개척단에 있는 동안 원고 A이 강제로 노역을 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 망인에 대한 강제수용, 자유로운 이탈금지, 폭행이나 가혹행위 및 원고 A에 대한 강제수용, 자유로운 이탈금지, 폭행 등의 다른 위법행위가 있었다는 원고 A의 주장은,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원고 A은 진화위 조사에서 1964년경 개척단에 들어갔다고 하면서 "R초등학교 2학년으로 들어가서 5학년까지 다녔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는데(갑14, 3쪽), 이는 객관적 자료인 원고 A에 대한 생활기록부(을1<1>)에 기재된 "원고 A이 1967. 4. 9. S국민학교에서 T국민학교로 전학하였다."는 내용과는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진화위 조사를 거쳐 원고 A도 피해자로 인정되었고, 여기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나 사정을 종합하면 위 생활기록부의 기재 내용은 오기로 봄이 타당하므로, 원고 A이 실제 개척단에서 생활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❶ 원고 A의 누나인 N가 1964. 10. 1. 개척단 근처에 있는 R국민학교로 전학하였다는 내용(서산교육청의 2025. 7. 14. 자 사실조회회신), N가1965. 3. 4. 개척단 근처에 있는 U중학교에 입학하였다는 내용(갑30, U중학교에 대한 사실조회결과)이 각 기재된 객관적인 자료가 있다. 원고 A이 Q생으로 1964년경 불과9세밖에 되지 않은 미성년자였던 사실을 고려하면, 망인이 장남인 원고 A을 두고 N만 개척단으로 데려갔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❷ 원고 A의 생활기록부(을1)에 기재된 3, 4학년 학급담임은 V, W인데, 위 V, W이 그 무렵 R국민학교에서 3, 4학년 학급담임을 맡았다는 객관적인 자료(서산교육청 2025. 8. 8. 자 사실조회회신)가 있다. ❸ 원고 A이 R국민학교에 다니던 무렵 촬영한 사진(갑31)이 있다. 원고 A은 영등포에 거주하였던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원고 A이 S국민학교가 소재한 영등포 근처에서 거주한 사실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없다.
원고 A은 진화위 조사에서 "학교를 갔다 오면 아이들만 불러서 단체노동을 시켰다. 물건을 나르는 일도 하고 밭에서 농사를 짓거나, 리어카를 뒤에서 미는 등의시키는 일을 했다."고 진술하였다(갑14). 이러한 원고 A의 진술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에서 확인된 개척단 사건의 내용 및 다음과 같은 다른 신청인들의 개척단에서 있었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노역에 관한 진술 내용과 그 취지가 부합하여 신빙성이 있 다. ❶ Y는 "아주 어린 애들을 제외하고는 아이들도 어른과 같은 강도로 노역에 동원되어 일을 했다"고 진술하였다(갑1-1, 30쪽). 원고 A은 1964년경 9세이고 이후 12세 무렵까지 개척단에서 생활한 것으로 보여서 노역에서 제외될 정도의 아주 어린 아이는 아니었다. ❷ Z은 "당시 국민학생이었는데 오빠와 돌산에서 리어카에 돌을 실어다가 염전에 둑을 쌓는 곳에 날랐다. 할당량이 있어서 학교를 갔다 와서도 일을 했다."고 진술하였다(갑1-1, 31쪽). 이처럼 국민학생인데도 노역을 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다른 피해자도 있다. ❸ AA(AB생)도 "14세이던 1964년에 개척단에 들어갔는데, 개척단에서 갯벌에 나가서 둑을 쌓고 저수지를 만드는 작업과 멜빵을 만들어서 돌을 짊어지고 나르는 노역을 했다."고 진술하였다(갑23-3, 5~6쪽).
그러나 원고 A이 주장하는 망인 및 원고 A에 대한 나머지 위법행위는, 다음과 같이 원고 A이 진화위에서 스스로 한 진술 내용(갑14, 이하 아래의 쪽수는 갑14의쪽수이다)에 의해도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
원고 A은 진화위 조사에서 "행방불명되었던 아버지(망인)가 10년 만에 찾아와서 개척단으로 같이 가자고 해서 가족과 외삼촌까지 전부 아버지를 따라서 1964년에 개척단에 가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2쪽). 이러한 진술에 의하면, 망인과 원고 A은 본인 및 보호자(부친)의 의사에 따라 개척단에 입소한 것이므로, 입소과정에서 강제력이나 불법이 동원되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한편 원고 A은 진화위 조사에서 부친인 망인이 단속되어 개척단에 이송되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이나(갑14에 기재된 진술중에는 그런 내용이 없으나, 갑1-1 결정서 13쪽에 그러한 취지의 기재가 있다), 원고 A이 주장하는 망인이 행방불명된 시기(1954년경)와 개척단의 설립시기(1961년 말경)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극이 있는 점, 망인이 단속되어 개척단에 강제수용된 것이라면 개척단에서 자유롭게 이탈하여 가족인 원고 A 등을 데리러 나올 수도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달리 망인이 단속되어 개척단에 강제수용되었던 사실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도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망인이 단속되어 개척단에 강제로 수용되었던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원고 A의 위 진술과 같이 망인이 1964년경 서울 AC에 살던 배우자, 자녀들 및 처남(AD)에게 찾아와서 함께 개척단에 가자고 권유한 것에 비추어, 망인이 그 무렵 개척단에서 자유롭게 이탈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원고 A도 위와 같은 상태에 있던 망인의 자녀로, 망인이 원고 A과 함께 개척단에서 이탈하고자 하였다면 충분히 자유로운 이탈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원고 A이 진화위 조사에서 "개척단 주변에 지어진 초소에서 감시자들이 개척단 사람들이 도망을 못 가게 24시간 내내 지키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는 하였으나, 이는 개척단의 일반적인 운영상황을 진술한 것에 불과하고, 이로 인해 본인이 혼자 또는 망인과 함께 개척단을 이탈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하였다거나 이탈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못했다는 등의 본인과 관련한 구체적인 진술은 하지 않았다.
원고 A은, "개척단에서 학교는 (고아들이라도) 다 갈 수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차별이나 피해는 절대 없었다. 학년별로 1반씩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다른 마을 아이들과도 사이좋게 지냈고, 선생님도 무시하거나 차별도 없고 때리지도 않았다. 나는 개척단에서 맞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4쪽). 이러한 원고 A의 진술에 의하면, 원고 A은 개척단에서 폭행을 당하지 않았음이 명백하고, 또한 원고 A의 개척단에서의 생활은 학교를 다녀온 후 일부 노역을 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어려움도 없었던 것으로 보여서(그 외 "식사도 보리밥에 된장국 간장 정도로 겨우 허기만 면할 정도로 나와서 개척단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고 진술했으나, 1960년대의 어려웠던 사회 일반의 생활환경을 고려할 때 식사가 부실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 개척단에서 나오려고 했으나 나오지 못했다고 인정할 만한 동기도 찾기 어렵다.
원고 A의 진술에 의하면, 망인은 개척단 발전실에서만 근무를 하고 노역을 하지 않았고(3쪽), 원고 A이 망인이 개척단 간부들로부터 폭행 및 가혹행위를 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실도 없어 보인다(4쪽). 다만 원고 A은 "망인도 개척단 처음에 혼자 지낼 때 많이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하였으나(4쪽), 1 이는 원고 A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고 망인에게서 들었다는 취지에 불과한 점, 2 망인은 개척단에서 나온 후 개척단 단장이었던 E이 운영하던 택시회사에서 3년 동안 택시운전을 하였는데(8쪽), 망인이 개척단에서 폭행 및 가혹행위 등을 당했다면 개척단에서 나온후 해당 침해행위의 실무책임자인 E이 운영하던 택시회사에 굳이 다시 입사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3 원고 A의 위 진술에 의하면, 적어도 망인이 원고 A과 함께 개척단에서 생활할 때는 폭행 등을 당한 적이 없다는 것인 점 등에 비추어, 원고 A의 위와 같은 진술만으로 망인이 개척단에서 폭행이나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망인 또한 개척단에서 나오기를 원했을 만한 특별한 동기를 찾기 어렵다.
망인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에서 피해자로 인정된 것도 아니다. 원고들은 망인이 위 진실규명결정에서 피해자로 인정되었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원고들이 제출한 결정서에 의해도 원고 A은 피해자 유족이 아닌 피해자 본인 자격에서 진실규명을 신청한 것이므로(갑1-3, 3쪽 표 순번 284에 기재된 피해유형 참조), 비고란에 적힌 것에 불과한 망인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원고 A도 이 사건 소송에서 본인의 피해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을 청구하다가, 소 제기 후 거의 2년이 지나서 아버지인 망인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상속받은 망인의 위자료 채권까지 포함하여 청구를 확장하였다.
원고 B의 경우 다음 사실 및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고 B(AE생)은 1963년 1월경부터 개척단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보이고, 개척단에서 생활하는 동안 폭행 등의 강제력이 수반된 노역을 한 사실 및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원고 B이 개척단에 강제로 수용되어 이탈을 하지 못하는 등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당하였다는 주장은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원고 B은 2025. 4. 17. 작성한 진술청취질문서(갑24, 이하 '진술서'라고만 한다)에서, 1963년 1월 즈음 23살 때 개척단에 들어가서 1970년 12월경 퇴거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원고 B이 진실규명신청을 하여 피해자로 인정받았고(다만 뒤에서 보는 것 같이 원고 B은 진화위에서 조사받지 않아서 어떠한 근거로 피해자로 인정받았는지 알기 어렵다), 위 진술서에서 개척단에서의 경험을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면서 개척단에서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의 이름도 기재한 점 등에 비추어, 개척단에서 생활한 사실이 인정된다.
원고 B은 진술서에서, "1 매일 아침 식사 후 작업현장에 가서 노역에 종사하였다. 단체생활로 인한 반강제였고 일을 안 하면 얻어맞거나 밥을 안 주었다. 논을 개척하기 위해서 바다에 나가서 엄청 고생하였다. 저수지를 막기 위해 산에서 돌을 손수 나르게 했다. 2 개척단에서 생활하면서 잘못한 게 있으면 폭행이 있었다. 3 개척단 단장의 권유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였다. 결혼생활은 원만하지 않았고, 5년 정도 혼인기간 후 같이 살지 않는다."고 진술하였다(갑24). 이러한 원고 B의 진술은 특히 노역에 종사한 내용이나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한 것에 관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울 정도의 구체성이 있고,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에서 확인된 개척단 사건의 내용및 다음과 같은 다른 신청인들의 진술 내용과도 부합하여 신빙성이 있다.
J은 진화위 조사에서(갑23-1), "개척단에 들어가서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노역을 하였으며, 중대장 등 간부 단원들에게 수시로 폭행당했다."(4~5, 7쪽), "남자들이 순번을 받아서 나가면 여자들이 부녀자대기소에서 한 명씩 나와서 부부로 정해졌다, 70대 남자가 20대 여자랑 결혼하기도 하는 등 결혼을 거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9쪽)고 진술하였다.
AF은 진화위 조사에서(갑23-2), "개척단원들이 둑을 막는 등 고된 노역에 동원되었다."(4쪽), "1963년, 1964년 두 차례 합동결혼식이 있었는데, 남자 단원들이 일방적으로 결혼할 여자들을 선택할 수 있었다."(5~6쪽)고 진술하였다.
AA은 진화위 조사에서(갑23-3), "개척단에서 주로 갯벌에 나가서 둑을 쌓고 저수지를 만드는 전지 작업을 했고, 멜빵을 만들어서 돌을 짊어지고 나르는 작업도 했다."(5쪽), "개척단에 온 여자들 대부분 합동결혼을 했는데, 분위기가 결혼을 거부할 수 없었다."(6쪽)고 진술하였다.
AG은 진화위 조사에서(갑23-4), "개척단에서 산에 가서 돌을 주어다가 옮겨서 수로 및 둑을 쌓는 노역을 하였다."(4쪽), "합동결혼식 후 AH에서 피로연을 했는데 결혼한 여자 2명이 도망치는 일도 있었다."(8쪽)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원고 B이 스스로 작성한 진술서에 의해도, 원고 B이 강제로 개척단에 수용되었고, 개척단에서 이탈할 수 없는 등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받았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
원고 B은 진술서(갑24, 이하 아래의 쪽수는 갑24의 쪽수이다)에서 "1 종로3가에서 암표 장사를 하다가 단속되어서 개척단 단장에게 보내진 후 단장이 개척단에 데려갔다. 개척단 단장이 그곳에 가면 집과 땅을 준다고 했다(2쪽). 2 개척단 내부 사방에 막사가 있어 불침번을 서며 감시를 했다(4쪽)."고 진술하였다.
이러한 진술에 의하면, 원고 B은 단속을 당하여 개척단에 들어간 것이어서 순전히 자발적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나, 개척단으로 가게 된 날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달라는 질문에는 답변이 없고(2쪽), 개척단에 들어갈 때 맞거나 위협을 당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어서(3쪽) 강제력이 동원된 것도 아니며, 반면 집과 땅을 준다고 해서 갔다는 진술 및 당시 원고 B은 23세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이었던 점에 비추어 자발성이 없이 강제적으로만 갔다고 보기는 부족하다. 또한 실제로 원고 B은 개척단이 서산자활정착사업장으로 변경된 후 농지를 가분배 받은 사실이 인정되므로(갑10-6,13-4, 13-11. 원고 B도 인정하고 있다), 입소 과정에서 개척단 단장으로부터 기망당하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개척단에서 단원들이 이탈하지 못하도록 감시와 통제 등을 했던 것으로는 보이나, 망인처럼 개척단에서 자유롭게 이탈할 수 있는 상황인 사람도 있었고, 개척단원의 수도 최대 2,241명이었다가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이탈하여 1965. 10.경에는 약 1,700명만이 남았으며, 개척단이 명칭이 바뀌어 서산군으로 이관될 무렵인 1966. 9.경에는 809명으로 줄어들었다. 위와 같이 이탈한 사람들의 이탈 사유가 무엇인지 일일이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 개척단에서 생활한 모든 사람들이 무조건 자유롭게 나갈 수 없어서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받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특히 원고 B의 진술에 의하면, 원고 B은 개척단에서 탈출하거나 탈출을 시도한 사실은 없고(4쪽), 그 이유는 갈곳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어서(5쪽), 개척단에서의 강제적인 통제 등으로 개척단을 이탈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정에다가 원고 B은 개척단이 서산군으로 이관되면서 강제성 등이 약해졌을 것으로 보이는 1966. 9.경 이후에도 1970년 12월경까지 개척단(명칭이 변경된 '서산자활정착사업장'일 것이다)에서 있었다고 진술한 점이나 이처럼 개척단에서 정착 원주민으로 살면서 농지를 가분배받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앞서 본 것 같이 원고 B이 개척단에 입소한 경위에 개간한 농지를 분배받으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보이는 점까지 더하여 볼 때, 원고 B이 개척단에서 생활했다고 해서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받았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의 '신청인 진술조사 현황(갑1-3의 4쪽)'에 원고 B은없고, 이 사건 소송에서도 원고 B의 진화위 진술조서는 제출하지 못하고 있어서 원고 B은 진화위에서 조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원고 B이 고령(진화위 조사가 있었던 2021년경 82세)인 것을 고려하더라도, 자녀들을 통해 진술을 듣는 등(원고들 소송대리인은 앞서 본 진술서도 원고 B의 자손이 원고 B의 진술을 받아적은 것이라고 한다)의 다른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자료도 없어서 원고 B에 대해 어떠한 사실확인을 하여 진화위에서 피해자로 인정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이에 비추어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에서 원고 B이 피해자로 되어있다는 사실만으로 진실규명결정에서 인정한 인권침해행위가 원고 B에게도 모두 똑같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피고의 불법행위책임
피고가 그 산하 보건사회부 소관으로 개척단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이처럼개척단은 피고가 직접 운영하였으므로 이하 그 소속 공무원들 등과 피고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표현한다) 자조근로사업이라는 명목하에 원고들을 비롯한 개척단원들의 노동력을 폐염전의 개간 등에 강제로 투입한 것은 누구든지 강제노역을 당하지 아니할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여 노동력을 착취한 것이어서 위법한 행위에 해당한다. 1 원고 A의 경우 그 진술에 의할 때 투입한 노동력의 정도가 다른 개척단원들의 진술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경미해보이기는 하나(뒤의 책임의 범위 부분 참조), 당시 원고 A이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한 아동이었던 점에 비추어 이러한 미성년자에게 강제노역을 시킨 행위는 위법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2 원고 B의 경우 이후 농지를 가분배받기는 했지만, 그 소유권을 취득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고, 반면 개척단에서 생활하는 동안 계속해서 상당한 노동을 했던 것으로 보여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척단에서 강제로 노역에 종사하게 하면서 피고가 그 내용과 조건, 기준 등을 구 헌법 제28조 제2, 3항이 정한 바에 따라 법률로 정한 것도 아니다(1966. 3. 11.에야 보건사회부 실시요령으로 기준 정도만을 정했을 뿐이다). 또한 설령 농지의 가분배로 일부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았다고 보더라도 폭행 등이 수반되어 강제되는 노동행위를 정당화하기는 어렵고, 이는 1953. 5. 10. 법률 제286호로 제정된 구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사용자는 폭행, 협박, 감금 기타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고 정하여 강제근로의 금지를 명한 것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이기도 하다.
나아가 피고는 보건사회부의 주도하에 개척단에서 2차례의 합동결혼식을 개최하게 하면서 개척단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혼인을 강요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원고 B도 원하지 않는 혼인을 하였다. 이는 구 헌법 제8조에서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서 도출되는 개인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피고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할 임무를 저버린 위법한 행위이다.
피고의 위와 같은 위법행위로 원고들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은 경험칙상 명백하다. 따라서 피고는 이러한 불법행위(이하 '이 사건 불법행위'라 한다)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원고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판단
피고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채권은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주장한다(피고의 주장 취지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장기소멸시효와 단기소멸시효를 모두 주장한 것으로 본다).2)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헌법재판소는 2018. 8. 30.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 중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48 등 결정). 따라서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민법 제766조 제2항에 따른 10년의 소멸시효 또는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구 예산회계법(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71조 제2항]에 따른 5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대법원 2023. 2. 2. 선고 2020다270633 판결 등 참조). 앞서 본 바와 같이, 개척단 사건은 피고가 원고들을 포함한 개척단원들을 개척단에 수용한 후 상당한 기간 강제노역을 시키는 등으로 개척단원들의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적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한 행위이다. 이 사건 불법행위는 이러한 개척단 사건의 일환으로 발생한 것으로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가 규정하는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하므로, 그로 인한 원고들의 손해배상채권에 대해서는 장기소멸시효의 규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따라서 피고의 장기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에 대한 증명책임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이익을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9다220526 판결 등 참조). 한편, 진화위가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의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에 대하여 진실규명결정을 한 경우 그 피해자 및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와 관련하여 '손해 발생 및 가해자를 안 날'은 진실규명결정일이 아닌 그 진실규명결정 통지서가 송달된 날을 의미하고, 그 송달된 때가 불명확하더라도 적어도 위 결정일부터 3년 이내에 소가 제기되었음은 분명한 이상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는다(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05455 판결 등 참조). 앞서 든 증거들, 갑 제4, 5, 7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 사실 및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원고들이 이 사건 소제기일로부터 3년 이전에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피고의 단기소멸시효완성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원고들을 피해자로 인정한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은 2022. 5. 10. 이루어졌다. 위 결정이 원고들에게 송달된 날을 인정할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으나, 최소한 그 송달일이 위 날보다 빠를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사건 소는 위 결정일로부터 3년이 지나기 전인 2023. 6. 19.에 제기되었다.
피고는 원고들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1990년경부터 개척단이 개간한 토지에 관하여 무상분배를 요구하며 다수의 소송(갑4, 5, 7)을 제기하여 판결을 받았으므로, 그 무렵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로 인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피고의 단기소멸시효완성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원고들을 피해자로 인정한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은 2022. 5. 10. 이루어졌다. 위 결정이 원고들에게 송달된 날을 인정할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으나, 최소한 그 송달일이 위 날보다 빠를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사건 소는 위 결정일로부터 3년이 지나기 전인 2023. 6. 19.에 제기되었다.
피고는 원고들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1990년경부터 개척단이 개간한 토지에 관하여 무상분배를 요구하며 다수의 소송(갑4, 5, 7)을 제기하여 판결을 받았으므로, 그 무렵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 원고들이 위 관련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자료가 없는 점(익명화된 판결문만이 제출되었다), 설령 원고들이 위 관련 소송의 당사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위 관련 소송의 청구원인(가분배 받은 토지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거나 이에 관한 변상금 부과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이다)이 이 사건과 다른 이상 관련 소송 제기 사실만을 근거로 원고들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위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위자료 액수에 관한 판단
관련 법리
불법행위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액수에 관하여는 사실심 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이를 확정할 수 있다. 법원이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연령, 직업, 사회적 지위, 재산 및 생활상태, 피해로 입은 고통의 정도, 피해자의 과실 정도 등 피해자 측의 사정에 가해자의 고의, 과실의 정도, 가해행위의 동기, 원인, 가해자의 재산상태, 사회적 지위, 연령, 사고 후의 가해자의 태도 등 가해자 측의 사정까지 함께 참작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 부담이라는 손해배상의 원칙에 부합한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7다77149 판결 등 참조).
또한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 사실심 변론종결일부터 기산된다고 보아야 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그 채무가 성립한 불법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즉시 지급함이 적절하다고 보이는 액수의 위자료에 대한 배상이 변론종결 시까지 장기간 지연된 사정을 참작하여 변론종결 시의 위자료 원금을 적절히 증액 산정할 필요가 있고, 나아가 공무원들에 의하여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중대한 인권침해행위가 자행된 경우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억제 · 예방할 필요성 등도 위자료를 산정하면서 중요한 참작사유로 고려되어야 한다(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다38325 판결 등 참조).
구체적 판단 위 인정사실, 앞서 든 증거들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비롯한 원고별 피해의 내용과 정도, 유사사례와의 형평성 등을 두루 고려하여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를 원고 A은 20,000,000원, 원고 B은60,000,000원으로 각 정한다.
이 사건 불법행위는 국민을 보호할 책무가 있는 피고 소속 공무원들에 의한 인권침해행위로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억제·예방할 필요성을 고려하여야 한다. 또한 이 사건 불법행위 이후 약 60년이 지나면서 위자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국민소득 수준이나 통화가치 등이 불법행위 시와 비교하여 크게 상승하였으므로, 이를 고려하여 위자료원금을 적절히 증액 산정할 필요가 있다.
원고 A의 경우 본인의 진술에 의해도 노역을 하였다는 내용이 중하지 않아 보이고(다른 진화위 신청인들이 '어른과 같은 강도', '돌을 날랐다'는 등의 진술을 구체적으로 한 것에 비추어, 원고 A은 '물건을 나르거나 리어카를 미는 일' 정도를 했다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밭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진술했으나, 개척단에서 개척단원들에게시킨 노역이 농사짓는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6·25 전쟁 이후 1960년대에도 여전히 상당히 어려웠던 당시의 생활환경 등을 고려할 때(이에 미성년자여도 근로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권리의 침해받은 정도가 중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되, 당시 원고 A이 10세 전후에 불과한 아동이었던 점을 함께 고려하고,앞서 본 바와 같은 통화가치 등의 상승을 반영하여 위자료를 정한다.
원고 B은 개척단에서 상당한 강제노역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폭행도 당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개척단 단장의 권유로 원하지 않는 결혼도 하였던 점 등 이 사건 불법행위로 입은 피해의 정도가 가볍지 않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개척단에서의 생활 기간 전부를 통틀어 기본적 인권을 침해받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정당한 대가는 아니더라도 농지를 가분배받기는 하였으므로, 이를 함께 참작한다. 다만 원고 B이 가분배받은 농지를 경작하거나 이를 타에 매각하여 실질적인 이득을 얻은 사실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없으므로(다른 개척단 피해자의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인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가합74043 사건에서는 개척단에 입소한 피해자가 가분배 받은 농지를 1976년경에 타에 매각하여 이득을 얻은 사실을 인정하여 이에 농지 가분배 사실을 위자료 산정에 참작한 것으로 보인다), 농지를 가분배받았다고 해서 이를 크게 고려할 것은 아니다.
한편 원고들은 원고들의 개척단 수용기간에 비례하여 위자료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앞서 본 것처럼 원고들이 개척단에 강제로 수용된 사실이나 개척단에서 이탈하지 못하여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받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수용기간에 비례하여 위자료를 인정할 것은 아니다.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원고 A에게 20,000,000원, 원고 B에게 60,000,000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25. 9. 17.부터 피고가 이행의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판결 선고일인 2025. 10. 22.까지 민법이 정한 연 5%, 그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각 지급할 의무가 있다(원고들은 2025. 8. 28. 자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송달일 다음 날부터의 지연손해금을 구하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위자료를 산정하므로, 이 사건 변론종결일 전날까지의 지연손해금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최규연(재판장) 김태훈 양우현 각주1) 생년월일이 X로 원고 A(Q생)과 다르게 기재되어 있으나, 기재된 출생지, 부친의 성명, 가족관계 등이 원고 A과 일치하여서위 생년월일(X) 기재는 오기로 보인다.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