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는 원고들에게 별지 1 '원고별 인용금액' 표의 '인용금액(원)'란에 기재된 각 돈및 이에 대하여 2026. 5. 15.부터 2026. 6. 12.까지는 연 5%, 그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원고들의 각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별지 1 '원고별 인용금액' 표의 '소송비용 부담비율'란 기재와 같이 부담한다.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이유
기초사실
원고들의 지위
원고 A, B, H, I(이하 '이 사건 해직교사들'이라 한다)은 권위주의 정권 시기 교육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P노동조합(이하 'P조합'라 한다)'의 조합원으로 활동하였던 자들이고, 나머지 원고들은 이 사건 해직교사들의 가족들이다.
P조합 결성 경위와 피고의 P조합 와해·탈퇴 공작 과정<1>
1980년대 교육현장은 국가의 중앙집권적 통제체제 아래 놓여 있었다. 중앙정부는 교육법에서 부여하는 지휘·감독권과 인사권을 통해 교육행정 전반과 교육내용을 통제할 수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교사의 자율성은 크게 제한되었다. 이러한 체제에 대항하여 1980년대 초반부터 'Q 협의회' 등 소모임을 중심으로 교원들의 교육 개혁운동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교원들의 활동은 1986. 5. 10. '교육민주화 선언' 이래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에 정부는 'Q 협의회' 등 교직단체에 가입하여 교육민주화운동 활동을 하거나 정부의 교육방침에 비판적인 교사들을 '문제교사'로 규정한 다음 위 교사들의 활동 동향을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상설화하였고, 그럼에도1987.경 R협의회(이하 'R단체'이라 한다)가 결성되어 전국적인 교사단체로 성장해나가자 '교원전담실'을 설치하여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라 한다)의 주도하에 문교당국, 보안사, 검찰, 치안본부 등을 동원하여 '문제교사'들의 활동을 광범위하게 사찰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R단체은 1989. 초부터 P조합의 결성을 준비해나갔다. R단체이 노동조합의 결성을 추진하게 된 데에는 제13대 국회에서 발의된 노동조합법 개정안의 영향도 있었는데, '6급 이하 공무원을 포함한 근로자는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고 단체교섭을 행할 수 있다. 단 현역군인,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교정공무원은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내용의 위 개정안은 1988. 3. 7. 발의되어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하였으나 같은 달 22.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함에 따라 실제 입법으로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정부는 1989. 초부터 교원노조 결성에 참여하는 교사들을 '의식화 교사'로 규정한 다음 이들에 대한 엄정 대응을 천명하고, 교원에 대한 사찰을 지속하면서 공안합동수사본부로 하여금 R단체을 비롯한 교사단체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도록 하는 등 P 조합 결성 운동을 공안사건화 하였다. 같은 시기 문교부로부터 지시를 받은 각 시·도교육위원회는 노동조합결성 운동에 참여한 교사들 일부를 징계하고,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였는데, 검찰은 위와 같이 고발된 교사들에 대해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연행하여 조사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P조합 결성 운동의 핵심 간부들 중 불구속 입건된 교사들에 대하여는 격리차원에서 재연행, 밤샘 조사를 할 것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89. 5. 28. P조합 결성대회가 S대에서 개최된 것을 시작으로, 1989. 6.경 전국 시·도 지부 등 P조합의 하부조직이 결성되었다. 경찰은 1989. 5.28. P조합 결성 대회 당일 대규모로 경력을 동원하여 교사들을 연행하였고, P조합 본부 또는 지부가 주최하는 집회·행사의 전후로 교사들의 자택이나 학교 등에 방문하여 행사에 참여하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동행과 감금, 물리력의 행사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정부는 1989. 5.경부터 P조합 활동을 반정부·반체제 운동으로 규정한 다음 청와대, 안기부, 감사원, 경제기획원, 내무부, 치안본부, 법무부, 군 정보기구 등 광범위한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P조합를 비방하는 홍보물을 제작·배포하거나, P조합 가입교사를 연행하고 P조합 지부·지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주동자에 대하여 강력한 사법 조치를 하고, 해직교원 소청을 엄격하게 처리하는 등 조직적·전방위적인 P조합 와해 및 탈퇴 공작을 실시하였다. 나아가 정부는 1989. 중순경 전국 시·도 교육위원회 등 공무원과 일선학교 교장·교감 등 다양한 경로로 P조합 가입 교사들에게 P조합 탈퇴를 종용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교사 가족에게 이혼을 요구하도록 하는 등 탈법적인 방법이 동원되기도 하였다.
문교부는 1989. 5. 31. 'P조합 결성·활동에 주도적으로 가담한 교사는 형사고발과 파면 등 중징계, 단순가담자는 감봉·견책 등 경징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가, 같은 해 7. 1. 청와대 측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단순가담교사에 대하여도 파면 또는 해임처분을 하는 것으로 그 방침을 변경하고 7. 8. 각 시·도 교육위원회에 P조합 교사 처리기준<2>을 시달하여, 1989. 중순경 전국적으로 약 1,500명의 공·사립학교 교사들이 파면·해임되거나 직권면직되었다.
한편,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라고 한다)는 1989. 6.경부터 1990. 9. 30.까지 P조합 주요 간부들에 대한 대공혐의점을 찾기 위해 P조합 관련 교사뿐만 아니라그 가족들과 지인들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며 민간인 사찰을 하였다.
이 사건 해직교사들의 P조합 관련활동과 위 교사들에 대한 해임 처분 등
원고 A
원고 A는 1986. 4. 7. 공립학교 교사로 신규 임용되어 T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89. P조합에 가입하였고 같은 해 6. 7. P조합 U 분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T중학교장은 구 교육공무원법(1996. 12. 30. 법률 제520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1조 제1항<3>에 따라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 교육공무원 일반징계위원회(이하 '이 사건 징계위원회'라 한다)에 원고 A에 대한 중징계 의결을 요구하였다. 이 사건 징계위원회는 "원고 A는 학교장이 P조합 결성의 불법성을 주지시키고 동 조합결성에 참여하지 말도록 지시하였음에도 P조합 U 분회결성에 참가하고, 'P조합와 함께 참교육실천'이라는 구호가 기재된 리본을 패용하거나 동일한 내용이 기재된 명패지를 책상위에 붙여놓았다"는 이유로 구 국가공무원법(1973. 2. 5. 법률 제2460호로 개정되고 2008. 3. 28. 법률 제899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국가공무원법'이라 한다) 제66조 제1항(집단행위의 금지)<4>, 제78조 제1항<5>에 근거하여 위 원고에 대한 해임처분을 의결하였고, 이에 따라 원고 A는 1989. 8. 1. 직위해제되어 같은 해 9. 26. 해임되었다.
원고 B
원고 B은 1986. 11. 11. 서울시 교육감으로부터 V고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아교직공무원의 지위를 취득하고 1989. 3. 1. W고등학교 교사로 전보하여 근무하던 중 같은 해 6. P조합 X 분회를 결성하였다.
이 사건 징계위원회는 1989. 9. 22. '원고 B은 P조합에 가입하거나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경고를 수차 받았음에도 P조합 X 분회 결성에 참여함으로써 구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의무)<6>, 제57조(복종의 의무)<7> 및 제66조(집단행위의 금지)등 실정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위 원고에 대한 해임처분을 의결하였다. 이에 따라 원고 B은 1989. 8. 1. 직위해제되어 같은 해 9. 22. 해임되었다.
원고 H
원고 H는 1988.경 사립학교인 Y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89. 5. 14.P조합 발기인대회에 참석하였고 P조합 결성을 위한 Z 준비위원회의 정책실장으로 피선되었으며, 같은 해 6. 14. 창립된 P조합 Z지부의 정책실장으로 피선되었다.
경기도교육위원회는 1989. 6.경 '원고 H가 P조합 Z지부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자행하고 동 지부의 간부로 피선되는 등 사립학교에 준용되는 구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의무), 제57조(복종의 의무), 제66조(집단행위의 금지)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구 사립학교법(1981. 2. 28. 법률 제3373호로 개정되고 1990. 4. 7. 법률 제422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4조 제3항<8>에 따라 Y고등학교장에게 위 원고에 대한 중징계 의결을 요구하였다. 곧이어 AA학원 일반교원 징계위원회는 1989. 7. 28. 위 원고에 대한 해임처분을 의결하였고, 원고 H는 같은 날 해임되었다.
원고 I
원고 I은 1980. 4. 1.부터 사립학교인 AB중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89.5. P조합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같은 해 6. AC노동조합 연합분회를 결성하였다.
원고 I은 1989. 8. 16. P조합 활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구 사립학교법(1981. 2. 28. 법률 제3373호로 개정되고 2020. 12. 22. 법률 제17659호로 일부개정되기 전의 것) 제58조 제1항 제4호<9>의 규정에 의해 직권면직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 해직교사들의 복직,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등
교육부장관은 1993. 7.경 P조합 관련 해임 교원들에 대하여 P조합를 탈퇴하는 경우 임용권자의 심사에 따라 특별채용(신규임용)하는 방식으로 복직시킨다는 방침을 발표하였고, 그에 따라 이 사건 해직교사들은 모두 1994. 3. 1. 특별신규채용에 의하여 개별 학교의 교사로 복직되었다.
1999. 1. 29.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교원노조법'이라 한다)'이 제정되어 교원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 인정됨으로써 P조합가 합법화되었고, 2000. 1. 12.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화보상법'이라 한다)'의 제정에 따라 설립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라 한다)'는 2002. 4.경 이 사건 해직교사들을 '민주화보상법 제2조 제2호 라목에 의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였다.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설치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1. 2. 18. 247명의 P조합해직 교사들로부터 'P조합 결성 및 해직 과정에서의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신청을 접수하여 2021. 5. 27. 조사개시결정을 하고,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후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2. 12. 8. '국가는 P조합 참여 교사인 신청인들에 대해 사찰·탈퇴종용·불법감금·사법처리·해직 등의 전방위적인 P조합 탈퇴 공작을 실행하였고, 이는 신청인들의 노동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직업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다. P조합 탈퇴 공작에 관여하여 공권력을 부당·위법하게 행사한 국가기관은 대통령·안기부·문교부·보안사·경찰 등이다.'라는 내용을 포함한 진실규명결정(이하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이라 한다)을 하였다.
당사자들의 가족관계
원고 A가 해임처분을 받을 당시 위 원고의 어머니인 망 AD, 아버지인 망 AE는 모두 생존해있었으나, 망 AD은 2009. 6. 11. 사망하였고, 망 AF는 2018. 7. 28. 사망하였다. 그리고 망 AD, 망 AF가 각 사망할 당시 위 각 망인의 직계비속으로는 AG, AH, AI, AJ, AK, AL, 원고 A가 있었다.
원고 C, D은 각각 원고 B의 아버지, 어머니이고, 원고 E은 원고 B의 배우자이다. 원고 F, G는 원고 B과 원고 E 사이의 자녀들인데, 원고 B이 해임처분을 받을 당시 원고 F은 만 3세였고, 원고 G는 만 1세가 되기 전이었다.
원고 H가 해임처분을 받을 당시 위 원고의 어머니인 망 AM, 아버지인 망 AN는 모두 생존해있었으나, 망 AN는 2010. 6. 8. 사망하였고, 망 AM은 2022. 4. 14. 사망하였다. 그리고 망 AN, AM이 각 사망할 당시 위 각 망인의 직계비속으로는 AO, AP, AQ, 원고 H, AR, AS가 있었다.
원고 I이 직권면직될 당시 위 원고의 가족으로는 어머니 망 AT를 비롯하여 형제자매인 원고 J, K, L, M, N, O 및 망 AU이 있었으나, 망 AU은 2012. 9. 15. 사망하였고, 망 AT는 2023. 6. 6. 사망하였다.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