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이 사건 신청을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채권자가 부담한다.
이유
기초사실
이 사건 기록 및 심문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소명된다.
채권자는 반도체소자 제조 및 판매 등을 영위하는 회사이다.
채무자는 2013.2.14.경 채권자에 입사한 후 2022년경 채권자의 핵심인재(HIPO, High Potential)로 선발되었고, HBM설계 D 부서의 파트장으로 재직 중이던 2024.4.1. 퇴직하였는데, 채무자의 채권자 재직 중 담당업무는 다음과 같다. <다음 생략>
채무자는 채권자에 재직 중이던 2022.9.21. 및 2023.1.11. 채권자에게 정보보호서약서를 각 제출하고, 퇴사 무렵인 2024.3.27. 채권자와 전직금지약정(이하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음 생략>
한편 채무자는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을 체결하면서, 그와 함께 채권자에게 ‘국가핵심기술 등의 비밀유지 경업금지 서약서’(이하 ‘이 사건 서약서’라 한다)를 제출하였는데, 해당 서약서에는 ‘채무자가 D 팀 소속으로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 LC 24G HBM3E 설계/분석 업무, LC HBM4 설계업무를 수행하였음을 확인한다’는 취지로 기재되어 있다(소갑 제13호증).
채무자는 2024.4.2.부터 2024.9.30.까지 S대학원의 위촉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2024.10.1.부터 2025.3.31.까지는 C 주식회사(이하 ‘C’라 한다)의 부속 연구원인 T에서 품질통계기술 업무를, 2025.4.1.부터는 C의 표준HBM 그룹(메모리) 부서에서 Master 직급(임원에 해당한다)으로 칩 통합설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당사자들의 주장
채권자
채무자가 채권자에 근무하며 지득한 HBM 및 D램 설계 관련 기술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이라 한다)에 따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산업기술에 해당하는 점, 채권자와 C의 HBM3, HBM3E 분야의 기술격차, 시장점유율 차이 등을 고려하면, 채무자가 채권자에 근무하며 지득한 HBM 설계 관련 기술은 채권자의 보호가치 있는 이익에 해당한다.
위와 같은 채권자의 보호가치 있는 이익과 채무자의 퇴직 전 지위, 담당업무, 지득한 정보의 내용, 채무자가 받은 대가, 퇴직 경위 등에 비추어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은 그 유효성이 인정되고, 2년의 전직금지기간이 과도하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채무자는 퇴직일로부터 2년이 도과하기 전인 2025.4.1. 채권자의 경쟁업체인 C로 전직하였으므로, 신청취지 기재와 같은 가처분을 구한다.
채무자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이 채무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체결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채권자의 보호가치 있는 이익도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의 전직금지기간은 2년으로 지나치기 장기간일 뿐만 아니라 전직금지대상도 광범위하다. 채무자는 전직금지에 대한 대가도 지급받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은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 전직금지기간은 1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피보전권리에 관한 판단
관련 법리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의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에 속하므로, 근로자가 사용자와 사이의 근로관계 종료 후 사용자의 영업부류에 속한 거래를 하거나 동종의 업무에 종사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등 경업금지약정을 한 경우에, 그 약정은 사용자의 영업비밀이나 노하우, 고객관계 등 경업금지에 의하여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 존재하고, 경업 제한의 기간과 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여부,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및 퇴직 경위, 그 밖에 공공의 이익 등 관련 사정을 종합하여 근로자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합리적인 제한으로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유효한 것으로 인정된다{대법원 2016.10.27. 선고 2015다221903(본소), 2015다221910(반소) 판결 등 참조}.
판단
이 사건 기록 및 심문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소명되는 아래와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면, 채무자가 채권자에 근무하면서 습득한 HBM 설계기술 및 그와 관련된 정보는 채권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로서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을 통하여 보호할 가치 있는 채권자의 이익에 해당한다고 보인다.
2025년 2분기를 기준으로, 채권자의 HBM 시장 점유율은 약 62%(2위인 I 약 21%, 3위인 C 약 17%)로, 채권자는 전세계 HBM 시장을 선도하는 지위에 있다.
채무자는 채권자에 입사한 이래 DRAM 회로설계 업무, HBM 회로설계 업무 등을 담당하였다.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제출한 이 사건 서약서에도 ‘채무자가 D 팀 소속으로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 LC 24G HBM3E 설계/분석 업무, LC HBM4 설계업무를 수행하였음을 확인한다’는 취지로 기재되어 있다. 이처럼 채무자는 채권자의 HBM 개발 초기부터 그 설계업무를 담당하며 경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채권자가 축적해 온 기술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이 채무자가 업무 과정에서 접근할 수 있었거나 지득할 수 있었던 정보나 자료를 구축하기 위해 채권자의 상당한 노력과 투자, 시행착오 등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그러한 정보나 자료가 경쟁업체에 유출될 경우 경쟁업체는 채권자보다 적은 노력과 비용을 투입하고도 관련 기술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이익을 얻게 되어 채권자에게 손해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D램에 해당하는 적층조립기술 및 검사기술, 30나노 이하급 D램에 해당하는 설계·공정·소자기술 및 3차원 적층형성기술은 산업기술보호법 제2조제1호 가목, 제9조 및 국가핵심기술 지정 등에 관한 고시(산업통상자원부 고시 제2021-13호, 제2021-130호) 별표에서 반도체 분야 국가핵심기술로 정한 것에 해당하므로, 이와 관련하여 채무자가 취득하거나 습득한 정보의 유출을 방지할 이익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에서 정한 2년의 전직금지기간은 합리적인 제한으로 인정되는 범위를 넘는다고 판단되고, 채무자의 퇴직일로부터 약 1년 8개월이 지난 이 사건 결정일까지도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에 따른 전직금지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
채무자가 2019.1.1.부터 2024.4.경까지 TL(Team Leader) 직급이었기는 하지만, 채권자는 2019년부터 사원, 선임, 책임, 수석연구원으로 구분되던 직책을 TL로 통합하였던 것으로 보이므로, 채무자가 중요 직급에서 장기간 근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채무자가 D 팀의 파트장으로 임명된 시기도 채무자의 퇴직 시점과 근접한 2024.1.경으로 보인다.
전직금지의무는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을 직접적으로 제약하므로, 이와 같은 기본적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근로자가 그 제약에 따라 입은 손해를 전보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반대급부(대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채무자는 채권자와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을 체결하면서 채권자로부터 그에 대한 명시적인 반대급부를 받지 못하였다.
채무자가 퇴직 의사를 밝히자,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팀장 보임, 추가 금전적인 보상, 미주 근무기회와 VP로의 승진, 유급 휴직’ 등을 제안하였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소갑 제8호증), 이는 모두 채무자가 채권자에 계속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퇴직 후 전직을 금지하기 위한 대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채무자가 특별관리대상인 핵심인재에 해당하고 그 전직 시 채권자의 영업에 큰 타격이 갈 정도의 기술유출이 우려되었다면, 상당한 매출규모나 조직구성을 갖춘 채권자로서는 채무자에게 퇴직 후의 전직을 금지하기 위한 별도의 대가를 제안할 수 있었다고 보임에도,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채무자의 퇴직을 전제로 한 전직금지의 대가를 제안하였다거나 채무자가 이를 거절하였다고 볼만한 자료는 없다.
채무자는 2024년 1월경 채권자로부터 약 1,300만 원 상당의 리텐션 보너스를 지급받기는 하였으나 퇴직 시 이를 일할 계산하여 반환하였고, 채무자의 학력 및 경력을 고려하면 채무자가 지급받은 연봉(약 1억 2천만 원)에 전직금지의 대가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채무자가 받은 혁신특허보상 30,000,000원은 발명진흥법상의 직무발명보상금 명목으로 지급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채무자에게 2년의 전직금지기간에 상응하는 정도의 직·간접적인 반대급부가 지급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미리 퇴직 의사를 알리고 정상적인 퇴직절차에 따라 퇴직하였고, 퇴사 후 곧바로 또는 단기간 내에 전직을 한 것이 아니라 약 1년이 경과하여서야 C에 입사하였다. 채무자가 퇴직 후 6개월 정도가 지나 C 부속 연구원인 T에 입사하였으나 T에서 HBM 설계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을 것이라고 볼만한 자료는 없다. 채무자가 퇴직 시점을 전후로 채권자의 기술 관련 자료를 유출하여 보관하고 있다는 사정도 보이지 아니한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채무자가 경쟁회사로의 전직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인 퇴직절차를 진행하였다거나 채무자의 퇴직 경위 및 절차에 있어 배신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채권자는 2024.3.경 최대 고객사 중 하나인 U사에 HBM3E 8단 제품을, 2024.9.경 HBM3E 12단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하였고, C는 2025.9.경 U사에 HBM3E 12단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채권자와 C의 같은 세대 제품의 최대 고객사에 대한 공급시기가 약 1년 정도 차이가 나는 점을 고려하면 양사의 HBM 관련 기술격차가 1년을 현저히 초과할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퇴직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채무자의 전직으로 인해 C가 채권자와의 기술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나아가 ① 채권자가 HBM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이유는 채권자의 독자적인 패키징 기술인 V를 채택한 데에 있다고 평가되고 있는데, C는 그와 별개의 패키징 방식인 W 기술을 채택하고 있고, 이는 차세대 HBM인 HBM4나 HBM4E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는 점, ② 채권자는 D 팀에서 설계업무를 주로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이므로, 채권자의 패키징 노하우를 직접적으로 습득하였을 것이라 보기는 어려운 점, ③ 채무자의 나이, 학력, 경력 등을 고려할 때 채무자가 반도체 설계 이외의 분야에서 취업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에서 정한 2년의 전직금지기간은 채권자의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장기간이라고 볼 여지가 크다.
채무자가 채권자에 근무하며 지득한 HBM 및 D램 설계 관련 기술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고시되어 있어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이 유효하다고 보아야 할 만한 공공의 이익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특정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었다고 하여 국가핵심기술을 보유·관리하는 대상기관이 체결한 전직금지약정을 모두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볼만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산업기술보호법 제10조제1항제1호가 정한 ‘국가핵심기술을 취급하는 전문인력의 이직 관리’에는 형식적인 전직금지약정 체결뿐만 아니라 국가핵심기술을 취급하는 근로자에 대한 전직금지 대가 지급 등 전직금지약정이 유효하도록 하는 조치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공공의 이익만으로 이 사건 전직금지약정에서 정한 2년의 전직금지기간이 전부 유효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신청은 피보전권리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
결론
이 사건 신청은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2026.1.9.
재판장 판사 김미경
판사 황일준
판사 성재혁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