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판결

서울행정법원 2026. 3. 26. 선고 2025구단53412 판결

주문

1.

피고가 2025. 5. 16. 원고에게 한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는 주식회사 B 용인성복지점에 소속된 배달기사로, 2025. 2. 16. 12:00경 이륜자동차를 운행하여 배달업무를 수행하던 중 용인시 수지구 진산로 106 교차로에서 전방 적색 신호를 위반하여 직진하다가 원고의 우측에서 좌측으로 직진하던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를 일으켰다(이하 '이 사건 사고'라고 한다).

나.

원고는 이 사건 사고로 '대퇴골 골절, 다발성 타박상, 찰과상, 여러 신체부위를 침범한 기타 명시된 손상'(이하 통틀어 '이 사건 상병'이라고 한다) 진단을 받고,2025. 4. 21. 피고에게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다.

피고는 2025. 5. 16. 원고에게 '이 사건 사고는 원고의 신호위반 행위가 주된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이고, 이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2항 제1호 위반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한다) 제37조 제2항에 따라 이 사건 상병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라는 이유로 요양급여 불승인결정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6호증, 을 제1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위법 여부

가.

관련 법리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1> 여기서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

이 되어 발생한 부상'이라 함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부상 등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근로자가 업무수행을 위하여 운전을 하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하여 부상을 입은 경우, 해당 사고가 근로자의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사고가 신호위반 등으로 일어났다는 사정만으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아니 되고, 사고의 발생 경위와 양상, 운전자의 운전 능력 등과 같은 사고 발생 당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2. 5. 26. 선고 2022두30072 판결 등 참조).

나.

구체적 판단

1)

원고의 신호위반이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

도로교통법 제5조 제1항은 도로를 통행하는 보행자와 차마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는 교통안전시설이 표시하는 신호 또는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156조 제1호는 제5조를 위반한 차마의 운전자는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 사고 당시의 원고의 신호위반 행위는 도로교통법 제156조 제1호, 제5조 제1항에 의하여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다만, 상대방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던 사람이 상해를 입게 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이 사건에서 원고의 행위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1항, 형법 제268조'에 의하여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것인지 여부는 분명하게 판단할 수 없다).

2)

원고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이 사건 상병이 발생하였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그러나 앞서 든 증거들과 을 제2, 6, 10호증의 각 기재 및 영상,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사고는 원고의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2>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상병이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서 정한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에 해당한다고 평가되기는 어렵다.

가)

자신을 향하여 요청된 배달 콜을 급하게 잡으려다가 신호를 미처 보지 못하였다는 신호위반 경위에 관한 원고의 주장은 신빙성이 있다. 원고는 2025. 2. 16. 11:51경C매장에서 자신이 처음 배달 콜을 접수한 상품을 픽업하였고, 배달을 하던 중인 11:59경 C매장에서 재차 전송한 배달 콜을 접수하였다. 원고가 배달 콜을 다시 접수한 시점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기 바로 직전이었던 점,<3> 원고가 배달 프로그램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 외에 신호위반 행위를 할 다른 동기를 찾을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에게 전송된 배달 콜은 원고의 주의력을 순간적으로 분산시켜<4> 원고로 하여금 신호위반 행위를 하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나)

원고의 신호위반 행위는 산재보험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업무와의 사이의 관련성이 부정될 만한 사유가 아니다. 원고의 신호위반 행위와 그로 인하여 최종적으로 발생된 결과인 이 사건 상병은 원고가 수행한 배달운전 업무와 그 과정에서 이용해야 하는 배달 프로그램에 내재되어 있는 아래와 같은 여러 특성에서 기인한 것으로,<5> 원고의

업무에 통상 수반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1)

원고는 배달업체에 소속된 배달기사로, 배달 프로그램을 통해 배달 의뢰 업체가 불특정 다수의 배달기사에게 전송하는 배달 콜을 '배차' 버튼을 누르는 방식으로 접수하여 배달업무를 수행하고, 그 실적에 비례하여 소득을 얻는다. 배달 콜이 전송되는 시점은 전적으로 배달 의뢰 업체의 사정에 따라 결정되는 사항으로, 배달기사의 입장에서는 배달 콜의 전송이 불규칙적으로 이루어지게 되고 그 전송시점을 예상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2)

배달기사가 상품을 픽업하여 주문자에게 배달을 시작한 후에 배달되어야 할 상품이 누락된 것을 파악한 배달 의뢰 업체는 그 배달기사를 점포로 다시 돌아오게 할 때 통상 새로운 배달 콜을 전송하면서 그와 함께 그 배달기사의 이름이 배달 프로그램에 노출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3)

새로운 배달 콜은 그 배달기사에게만 전송되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배달기사들도 새로운 배달 콜을 접수할 수 있다. 다른 배달기사가 배달 콜을 접수한 경우 처음배달 콜을 접수하였던 배달기사가 새로운 배달 콜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다른 배달 기사에게 별도로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한 후 배달 콜을 양보해달라고 허락을 구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4)

배달기사들은 이러한 과정을 피하기 위해서 평소 배달 프로그램을 주시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나타날 경우 그 배달 콜을 급하게 잡아야 할 필요성이 높았고, 이러한 상황은 운전을 하고 있는 중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5)

이 사건 사고 직전 C매장에서도 운전을 하여 배달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원고의 이름을 함께 띄우면서 배달 콜을 전송하였다.

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는 '차의 운전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로 인하여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를 범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여 중과실이 아닌 경과실로 교통신호를 위반하는 경우도 있음을 예정하고 있다. 이 사건 사고 당시 원고가 순간적으로 신호를 보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다고는 할 수 있으나, 적색 신호 상태임을 명백히 인식하였음에도 신호위반 행위를 감행하였다는 등 산재보험법에 의한 보호의 범위에서 제외할 정도의 중대한 귀책사유로 신호위반 행위를 하였다고 평가할 만한 자료는 부족하다.

다.

소결론

이 사건 상병이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서 정한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에 해당한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조대현

각주1)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는 19세기 후반 무렵 독일 비스마르크 시대에 도입된 사회보험 제도에 기원을 두고 있다. 독일 현행 사회보험법은 '업무상 재해(Arbeitsunfall)'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① 피보험자의 행위와 보험이 적용되는 활동 사이에 내적 또는 객관적 관련성(innerer oder sachicherZusammenhang)이 존재하는지, ② 그 행위가 보험사고를 초래하였는지(Unfallkausalitat), ③ 그 보험사고가상병의 객관적이고도 규범적으로 본질적인 원인(objektive und rechtich wesentliche Ursache)이 되었는지를 고려하도록 정하고 있다[독일 사회법전 제7편(SGB Ⅶ) 제8조 제1항, 그 요건을 해석한 독일 연방노동법원의 판례로 BSG, Urteil vom 6. 5. 2021 - B 2 U 15/19 R 등 참조].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이 업무상 재해의 범위에서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을 제외한¦

각주2) 취지는 근로자의 범죄행위와 산재보험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업무 사이에는 통상 내적 또는 객관적 관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된다.

각주3) 다만, 이 사건 사고가 상대방 차량 운전자의 과실이 경합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각주4) 사고영상(을 제10호증) 상단에 나타난 파일명(전방 2025_0216_115923_EVT_FILE)으로 미루어 보면, 이 사건 사고는 정확히 11시 59분 23초 무렵에 발생한 것으로 추단된다.

각주5) 피고는 원고의 피로도가 상당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나, 원고는 신호위반 행위가 피로 때문이라는사유는 내세우고 있지 않다.

각주6) 피고는 이러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재된 이 사건 소장 부본을 송달받고도 이에 관해서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았으므로, 원고가 수행한 배달운전 업무와 그 과정에서 이용한 배달 프로그램의 특성에 관한 원고의 사실주장은 이를 진실한 것이라고 판단함이 합리적이다.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