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처분의 경위
원고는 주식회사 B 소속 퀵서비스기사로, 2024. 8. 31. 15:20경 오토바이를 운전하여 배달 업무를 하던 중 경기 시흥시 배곧1로 28-25 사거리 교차로에서 전방 적색신호에 교차로에 진입하였다.
마침 원고 진행방향 우측편에서 정상신호를 받고 직진하던 차량(이하 '상대방 차량'이라 한다)이 제한속도 30km/h를 초과하여 약 55.8km/h로 별지 1 그림과 같이 원고의 진행방향 우측에서 교차로에 진입하였고, 원고가 운행하던 오토바이 우측면을 충돌하는 사고(이하 '이 사건 사고'라고 한다)가 발생하였다.
원고는 이 사건 사고로 '우측 다리의 으깸손상, 우측 엄지발가락의 골절(개방성), 좌측 견쇄관절의 염좌 및 긴장, 경추의 염좌 및 긴장, 우측족부 탈장갑손상, 양측 무릎의 염좌 및 긴장, 양측 수부 좌상, 안면부 좌상'을 진단받고, 2025. 7. 1. 피고에게 최초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피고는 2025. 7. 11. '이 사건 사고는 원고의 범죄행위(신호위반)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고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최초요양급여 불승인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2, 3, 4호증, 을 제1, 2, 3호증의 기재 및 영상, 변론 전체의 취지
관계 법령
별지 2 기재와 같다.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원고 주장의 요지
이 사건 사고에는 상대방 차량의 과실도 일부 기여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사고가 전적으로 원고의 범죄행위(신호위반)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사건 사고가 단순히 원고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이라고 보아 이 사건 사고로 인한 상해를 업무상 재해라고 보지 않은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판단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한다) 제37조 제2항에서는 근로자의 고의 · 자해행위,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재해는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범죄행위에는 과실에 의한 범죄행위도 포함되고, 형법에 한 범죄행위가 포함되는 것은 물론 특별법령에 의해 처벌되는 행위도 제외되지 않으며, 도로교통법상 범칙행위도 범죄행위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된다(대법원 1990.2. 9. 선고 89누2295 판결의 취지 참조).
근로자가 업무수행을 위하여 운전을 하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하여 부상을 당한 경우, 해당 사고가 근로자의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사고가 신호 또는 표지 위반 등으로 일어났다는 사정만으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 되고, 사고의 발생 경위와 양상, 운전자의 운전 능력 등과 같은 사고 발생 당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2. 5. 26. 선고 2022두30072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이 고의 · 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등에 따른 부상등을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 것은, 그 부상은 업무에 내재되거나 통상 수반될 수 있는 위험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라 업무와 무관한 원인으로 발생한 것으로서 업무와 부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이고, 나아가 그 원인이 범죄행위에서 비롯된 경우라면 보험사고 자체의 위법성에 대한 징벌이 필요한 경우로서 보험급여를 행하지 않겠다는 정책적인 고려에 따른 것이다(대법원 1990. 2. 9. 선고 89누2295 판결, 대법원1995. 1. 24. 선고 94누8587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재해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보험가입자인 사업주가 납부하는 보험료와 국고부담을 재원으로 하여 근로자에게 발생하는 업무상 재해라는 사회적 위험을 보험방식에 의하여 대처하는 사회보험제도로서(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3두27159 판결 참조),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대법원 2017. 8.29. 선고 2015두3867 판결 참조). 따라서 산업재해보상보험급여의 재원은 사회구성원들 전체의 기여를 통해 형성된 공공재라 할 것이므로, 이를 통해 근로자의 손해를 전보하는 것에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공익적 타당성도 갖추어야 한다고 봄이 옳다. 그런데 법령이 금지하는 행위, 특히 형사상 범죄행위로 규정된 행위로 인하여 재해가 발생한 경우까지도 그 행위의 법정형이나 비난가능성이 가볍다는 이유만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를 통해 그로 인한 손해를 전보하게 된다면, 이는 개인의 범죄행위로 초래된 손해를 공동체 전체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되어 공익에 부합한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근로자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용인하거나 이를 조장하게 될 우려도 있다. 또한 위 손해가 근로자 개인의 사적 보험으로 전보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므로, 이를 공적 보험급여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하여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할 수도 없다.
이 사건의 경우
앞서 본 사실들과 앞서 든 증거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들을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사고는 원고의 신호위반 범죄행위를 주된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것으로서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 따라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할 당시 원고가 진행하는 방향의 신호기는 적색 등화로서 '진행금지 신호'였고, 상대방 차량 쪽의 신호기는 직진 및 좌회전 녹색등화로서 직진과 좌회전이 가능한 신호였다. 또한 상대방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제2호증)에 의하면, 상대방 차량 진행 방향의 신호는 영상 시작 시점부터 사고 시점까지 8초가량 유지되고 있었다. 이에 의할 때 원고의 진향방향 쪽은 적어도 8초 전부터 적색신호였을 것 으로 보이는데, 원고는 정지하지 않고 그대로 위 교차로에 진입하였다.
이 사건 사고 당시는 맑은 날씨의 오후 15:20경이었으므로, 원고가 전방의 정지신호를 식별하기 곤란하거나 오인·혼동할 상황이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원고는 정지신호에 정지선을 넘어 진행하다가 상대방 차량보다 앞서 직진 · 좌회전 녹색등 화 신호에 따라 좌회전 하던 차량과 마주치기도 하였다(을 제2호증). 이러한 점에 비춰봤을 때 당시 원고가 신호가 바뀐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그럼에도 원고는 위 선행 차량을 옆으로 피한 채 계속해서 직진하여 교차로에 진입하다가 이 사건 사고를 당하였다. 이러한 원고의 위험한 운전행태는 고의 내지 주의의무위반 정도가 무거운 중과실에 기한 신호위반 행위라고 판단된다.
도로교통법 제5조 제1항은 '도로를 통행하는 보행자, 차마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는 교통안전시설이 표시하는 신호 또는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156조 제1호는 '제5조를 위반한 차마의 운전자는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와 같은 원고의 신호위반 행위는 그 자체로 도로교통법에 의하여 처벌되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이 사건 사고가 원고의 업무 수행 중에 발생한 것이기는 하나, 다른 차량이 모두 정지신호를 준수하고 있는 가운데 원고만이 신호위반을 하다 발생한 것이고, 사고 당시 원고가 신호위반을 하면서 직진해서 가야만 할 불가피한 업무상 사정이 있었다고 볼 자료도 없다.
신호등에 의하여 교통정리가 행하여지고 있는 교차로를 진행신호에 따라 진행하는 차량의 운전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차량들도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믿고 운전하면 충분하고, 다른 차량이 신호를 위반하고 자신의 진로를 가로질러 진행하여 오거나 자신의 차량을 들이받을 경우까지 예상하여 그에 따른 사고발생을 미리 방지할 특별한 조치까지 강구할 주의의무는 없다. 나아가 설령 상대방 차량이 제한속도를 위반한 과실이 이 사건 사고에 어느 정도 원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은 사고의 경위와 당시 상황 등에 비추어 보면, 이는 공평 내지 신의칙의 견지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 피해자(상대방 차량 운전자)의 과실을 침작하는 과실상계에서의 과실 정도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를 이유로 이 사건 사고의 직접 원인이 원고의 신호위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고, 적어도 이 사건 사고는 주로 원고의 신호위반 등의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오토바이로 배달업무를 하는 경우 도로교통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에 노출될 수는 있으나, 그 위험은 근로자가 도로교통에 관한 법령을 위반하지 않고 운전업무를 하는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의미하는 것이지, 근로자가 도로교통에 관한 법령을 고의 또는 중과실로 위반함에 따라 발생하는 위험까지도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위험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교통사고처럼 원고의 범죄행위에서 비롯된 교통사고는 원고의 업무에 통상 수반되는 범위 내의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결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신옥영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