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이유
기초사실
피고는 전자전기기계기구 및 관련기기와 그 부품의 제작, 판매, 수금대행 및 임대, 서비스업을 영위하는 법인이다. 망 D(이하 ‘망인’이라 한다)은 2012. 2. 23.부터 피고 회사에 고용되어 무선사업부 Camera개발그룹 내 “선행 Camera Lab”부서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였다.
망인은 2019. 12. 2. 사망하였으며(이하 ‘이 사건 사고’라고 한다), 부검 결과 사인은 ‘고도 심장동맥경화 추정’으로 판단되었다. 망인의 상속권자로는 배우자인 원고 A, 자녀인 원고 B이 있다.
원고 A는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는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유족급여 등을 청구하였으나, 2020. 7. 28.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거부처분을 받았다.
원고 A는 근로복지공단의 위 다.항 기재 거부처분에 불복하여 서울행정법원 2020구합82628호로 그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데, 위 법원의 2021. 11. 4.자 조정 권고에 따라 조정이 성립하였으며,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유족급여를 지급받았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호증 내지 5호증의 기재(각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 변론 전체의 취지
원고들 주장의 요지
피고는 망인에게 장시간 근무를 하게 하는 등 산업안전보건법 및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였고 이로 인해 망인이 사망하였으므로, 민법 제750조에 따른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 또한 피고는 고용계약상 신의칙에 기하여 근로자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함에도 이를 위반하여 망인이 사망하였으므로, 채무불이행책임을 부담한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망인의 일실수익 및 원고들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여부에 관한 판단
관련 법리
사용자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의 부수적 의무로서 피용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할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피용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질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용자의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 위반 행위가 불법행위의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책임과 경합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도 부담하게 된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60247 판결 등 참조).
다만, 산재보험법상의 산업재해보상은 업무상 사유에 의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발생한 경우에 사용자의 고의나 과실을 불문하고 법이 정하는 보상을 하도록 함에 따라 지급하는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성질을 가지고 있음에 비하여, 과실책임을 원칙으로 하는 손해배상책임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므로, 사용자에게 당해 근로로 인하여 근로자의 신체상의 재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피를 위한 별다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이 있음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고, 위와 같은 과실의 존재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근로자에게 그 증명책임이 있다(대법원 2000. 3. 10. 선고 99다60115 판결 등 참조). 또한 보호의무 위반을 원인으로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 통상의 채무불이행과 같이 채무자가 그 채무불이행에 대하여 자기에게 과실이 없음을 주장, 입증하지 않는 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나, 채권자로서도 그 급부의 불완전에 관한 주장,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것이므로 원고로서는 구체적인 보호의무의 존재와 그 위반사실을 주장, 입증하여야 한다(대법원 1994. 1. 28. 선고 93다43590 판결 등 참조).
구체적 판단
갑 제3, 10, 16호증, 을 제8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보면, 원고 A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유족급여 지급 거부처분을 받고 그에 대해 불복하는 과정에서 행정사건의 진료기록 감정의는 망인의 평균 노동시간이 주당 평균 52시간을 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사실, 망인은 평소 SNS에 과로를 호소한 적이 있고, 실제 망인은 수차례 1일 12시간 이상 근무하였으며 또한 휴일에도 피고 근무지에 출근하기도 하였던 사실이 인정된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망인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육체적 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위와 같은 사정에 망인의 연령이나 사망원인 및 경과 등을 보태어 보면,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하여 이 사건 사고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한편, 앞서 본 기초사실과 앞서 든 각 증거, 을 제1호증 내지 22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망인이 근로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하는 등의 사정으로 인해 과로를 하였다는 사실, 나아가 피고에게 망인의 과로가 이 사건 사고를 초래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회피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거나, 피고가 망인의 업무를 경감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할 신의칙상 안전배려의무를 소홀히 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러므로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들을 종합하면, 망인이 근로기준법을 초과하여 근무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피고와 수원사업장 노사협의회는 2018. 5. 23. 선택적 근로시간제 시행 합의서를 작성하였으므로, 망인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적용을 받는데, 근로복지공단이 이 사건 사고의 발생 경위를 조사한 결과(갑 제12호증 근로복지공단 재해조사서)에 의하면, 망인은 이 사건 사고 발생 전 4주 동안 1주당 평균 50시간 21분 근무하여, 1개월의 정산기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근로시간이 당사자 간의 합의로 연장된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다.
망인은 출근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절하는 등 선택적 근로시간제에 따라 업무시작 및 종료시각, 1일의 근로시간을 스스로 결정하여 근무한 것으로 보이며, 망인이 1주에 52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한 시기가 있었더라도, 1개월의 정산기간 내 총 근로시간의 한도를 초과하지 않았다.
휴게시간 등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있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나, 출퇴근 시간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있는 업무시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아파트 출입기록은 근무지까지의 거리가 상당하여 망인의 근로시간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라고 볼 수 없고, 출퇴근을 알리는 망인의 메시지 역시 실제 근로시간을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라고 할 수 없다.
망인이 회사 근처 카페에서 업무와 관련한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이거나 휴가 기간 중 피고의 직원들과 일정 시간 통화를 한 정황이 존재하나, 망인이 회사 밖에서 언제, 어떤 업무를,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 수행하였다는 것인지, 그리고 이를 피고 측이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피고의 직원이 정해진 근로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한 경우, 직원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퇴근하거나 휴가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피고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직원들의 과도한 근로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방안으로, 이를 두고 피고가 직원들의 근로기록을 통제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감정인의 감정 결과는 증거방법의 하나에 불과하고, 법관은 당해 사건에서 모든 증거를 종합하여 자유로운 심증에 의하여 특정의 감정 결과와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대법원 2006. 5. 11. 선고 2003다8503 판결 등 참조). 2020구합82628호 사건에서 감정인은 진료기록을 감정하면서 망인이 주당 평균 52시간 이상 근무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적 판단을 하고 있으나 그 추정적 판단의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위와 같은 감정촉탁 결과를 그대로 채용할 수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 제1항 제2호에 의하면, 사업주는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의 조성 및 근로조건 개선을 이행하여야 하고,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69조는 근로자의 직무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의 의무로 직무스트레스 요인에 대하여 평가하고 근로시간 단축, 장단기 순환작업 등의 개선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할 것, 작업과 휴식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등 근로시간과 관련된 근로조건을 개선할 것, 뇌혈관 및 심장질환 발병위험도를 평가하여 금연, 고혈압 관리 등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시행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피고는 매년 망인의 직무스트레스를 평가한 점,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하여 근로자 스스로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을 배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점, 망인의 건강진단결과에 따라 업무적합성을 판단하고 온라인교육을 수료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69조 등에서 정한 사업주의 의무를 상당 부분 이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망인의 연령, 피고에서의 근무기간, 업무내용 및 동료 직원들의 업무내용, 사망 무렵의 평균 근로시간 등을 종합하여 보면, 망인이 수행한 업무가 망인 혼자 담당하기에 지나치게 과중하였다고 확정하기 어렵다. 반면 망인은 피고에게 업무량이 과중하다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업무량 감소 내지 업무변경을 요청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사건 사고는 망인이 2019. 11. 29.부터 2019. 12. 3.까지 연차 휴가를 내고 가족여행을 하던 중 발생하였다.
한편 망인은 2017. 7.경 두근거림 및 불규칙한 맥박 증상이 있어 병원에 내원한 결과 조기심실수축의 소견을 받고 2017. 7. 26.부터 2017. 11. 1.까지 약물치료를 받은 사실, 2018. 12. E병원에서 기타 및 상세불명의 우각차단, 심실조기탈분극 진단을 받은 사실이 있다. 이상과 같은 망인의 기왕증이 이 사건 사고의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민철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