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기초사실
다음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 내지 5호증, 을 제1, 6 내지 10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보면 인정할 수 있다.
원고(2017. 5. 26. 변경 전 상호 주식회사 E)와 피고 주식회사 B(이하 '피고회사'라 한다.)은 레미콘 및 아스콘 제조업을 영위하는 회사이다. 원고와 피고회사 및 F 주식회사의 레미콘 부분인 G(이하 'G'이라 하고, 이하 위 3사를 통틀어 '레미콘 3사'라 한다.)은 2016. 12. 8.경까지 H이 대주주로서 사실상 소유하였다.
레미콘 3사는 별개의 법인으로 구분되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통합된 조직체계와 결재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레미콘 3사의 임직원들 또한 각 회사에서 가지는 직위와는 별도로 레미콘 3사 차원에서 부여되는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피고 D는 G의 대표이사이자 레미콘 3사의 통합관리사장, 피고회사의 대표이사인 피고 C은 레미콘 3사의 전무이자 본부장, I은 원고의 대표이사이면서 레미콘 3사의 상무보이자 공장장의 지위에 있었다. 또한 레미콘 3사 간에는 인사이동이 빈번하였고, 근무지변경이나 보직변경, 승진, 급여 인상, 연봉 조정 등도 레미콘 3사 차원에서 결정되었다.
J은 원고의 공장에서 공장장으로서 근무하다가 2012. 2. 13. 레미콘 3사 차원에서 B의 언양공장에서 '보좌역'으로 근무할 것을 명하는 인사명령(이하 '이 사건 인사명령'이라 한다.)에 따라 위 언양공장으로 이동하여 그 무렵부터 2015. 9. 15.까지 피고 D의 보좌역으로 근무하였다. 이후 J은 2015. 9. 16. 레미콘 3사 차원에서 대기발령(이하 '이 사건 대기발령'이라 한다)을 받았다가 2016. 3.경 원고로부터 당연퇴직 처리되었다.
J은 2012. 2. 13.부터 2016. 3.경까지 원고로부터 급여, 상여금,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아래와 같이 지급받았다.
2014. 7. 1. 시행된 원고의 취업규칙(이하 '이 사건 취업규칙'이라 한다)은 제21조에서 대기발령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H은 2016. 12. 8. K 주식회사 및 L 주식회사(이하 'K' 및 'L'이라고 하고, 두 회사를 통틀어 'K 등'이라고 한다.)에게 원고 주식 전부를 매매대금 22,000,000,000원에 매도하였으나, K 등이 매매대금 22,000,000,000원 중 21,000,000,000원만을 지급하고 나머지 1,000,000,000원의 지급을 지체함에 따라 H은 잔금지급기일인 2016. 12. 28. 이후에도 원고를 계속 운영하게 되었다.
H과 K 등 사이에서 매매대금 및 운영지원금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하여 K은 H을 상대로 매매대금반환의 소(울산지방법원 2016가합24778호)를 제기하였고, H은 K을 상대로 매매대금청구의 소(울산지방법원 2017가합20858호)를 반소로 제기하였다. 위 소송 계속 중 H, K 등의 실질적인 경영자인 M 및 K 등은 2017. 5. 24. 위 주식대금 지급과 관련한 합의(이하 '이 사건 합의'라고 한다.)를 하고, 다음 날 위 각 소를 취하하였다. 이 사건 합의 중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부분은 아래와 같다.
원고는 I과 J을 상대로 울산지방법원 2020가합13041호로 J이 원고를 위하여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도 원고로부터 급여를 받은 것은 부당이득이 되고, I은 원고 대표이사로서 원고가 J에게 근로 제공 없이 급여를 지급하여 원고가 손해를 입게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부당이득의 반환 또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으로서 공동하여 J에게 지급된 급여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2021. 12. 15. 위 법원에서 '원고가 J에게 이 사건 인사명령을 한 것이 J과 사이의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J이 그 무렵 원고에게 퇴직의 의사를 표시하지도 않았으므로 J이 원고와의 계약관계를 유지하면서 피고회사 언양공장에서 파견 근무를 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원고는 J에게 급여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받았고, 원고가 I에 대하여 상소한 부산고등법원(울산) 2022나10251 사건에서 2023. 7. 12. 항소기각 판결을 받아 위 판결은 확정되었다(이하 위 1심 판결과 항소심판결을 통틀어 '이 사건 확정판결'이라 한다).
피고들의 본안전항변에 대한 판단
피고들은 원고의 이 사건 소 제기는 이 사건 합의서에 명시한 부제소 합의에 반하는 것으로서 부적법하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신의칙을 위반한 위법한 소제기라고 본안전항변을 한다.
살피건대, 부제소 합의는 소송당사자에게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의 포기와 같은 중대한 소송법상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으로서 그 합의 시에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이어야 유효하고, 그 효력의 유무나 범위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을 수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해석한 후 이를 판단하여야 하고(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80449 판결), 소극적 소송요건의 하나인 부제소 합의는 당사자가 처분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만 허용된다고 할 것인데(대법원 1977. 4. 12. 선고 76다2920 판결 참조), 주식회사는 주주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주식회사에 속하는 권리를 처분할 수 있는 것은 주주가 아닌 주식회사라고 봄이 상당하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는 이 사건 합의의 당사자가 아니고, 이 사건 합의의 당사자인 K 등은 원고의 주주가 되려고 하는 법인(이 사건 합의 당시 주식의 명의개서절차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이고, M은 K 등을 실질적으로 경영하는 사람에 불과하여, 그와 같은 지위에 있는 K 등과 M이 원고에게 속하는 권리를 처분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 합의의 효력이 당연히 원고에게도 미친다고 할 수 없고, 피고들이 주장하는 사유만으로는 이 사건 합의의 당사자가 아닌 원고가 피고들을 상대로 자신의 손해배상채권을 행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거나 소권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본안에 대한 판단
청구원인의 요지
J은 이 사건 인사명령을 받아 피고회사의 언양공장으로 출근하면서 피고회사에게 근로를 제공하였음에도 원고로부터 급여를 수령하였으므로, 원고는 J의 급여 상당액의 손해를 입게 되었고, 피고회사는 그 금액 상당의 이익을 부당하게 얻었으므로 원고에게 부당이득으로서 이를 반환할 의무가 있다.
또한 피고 C은 위 기간 동안 피고회사의 대표이사로서, 피고 D는 레미콘 3사의 총괄사장으로서 공모하여 위와 같은 부당한 인사명령으로 원고에게 손해를 입게 하였으므로, 공동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판단
피고회사에 대한 청구에 관한 판단
민사재판에 있어서는 다른 민사사건 등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에 구속을 받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확정된 관련 민사사건에서 인정된 사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가 되는 것이어서 별다른 합리적 이유 설시 없이 이를 배척할 수 없다[대법원 1987. 4. 28. 선고 86다카1757 판결, 대법원 1991. 1. 15. 선고 88다카19002, 19019(반소) 판결 등 참조].
살피건대, 이 사건 확정판결에서 'J이 이 사건 인사명령을 받아 피고회사 언양공장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원고와의 근로계약 관계가 유지되는 상태에서 원고의 지시를 받아 근무하게 된 것이므로 원고가 원인 없이 J에게 급여를 지급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원고의 J과 I에 대한 청구가 기각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은바, 위 사건에서 인정한 사실을 배척할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고, 원고가 제출한 모든 증거들을 보태어 보더라도 원고는 J의 사용자로서 J에게 급여 지급의무가 있다.
설령 원고의 주장을 피고회사가 원고 소속 직원의 노무를 제공받아 그에 상당하는 이익을 얻었다는 취지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위에서 거시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또는 사정들 즉, ① J은 원고에 입사 이전 다른 업종에서 근무하다가 원고의 공장장으로 근무하였으나 레미콘 관련 지식이 부족하고 공장장으로서 근무역량이 저조하다고 평가받게 된 사실, ② J은 원고 경영진으로부터 퇴직 권고를 받았으나 이를 거부한 사실, ③ 원고 경영진으로서는 J에 대한 징계해고 사유가 없는 이상 J을 사실상 징계발령 명목으로 '보좌역'이라는 전에 없던 직급을 만들어 이 사건 인사명령을 한 사실, ④ J은 피고회사 언양공장으로 인사명령을 받은 후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다 치우고 혼자 몇 개월 근무하였고, 어느 시점 지나서 피고회사 안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혼자 3년 이상 있었던 사실, ⑤ J이 피고회사 언양공장으로 출근하였으나 J의 휴가 사용, 연장근로 등에 대하여 원고의 근태관리가 이루어졌던 사실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인사명령에 따라 D의 보좌역으로 근무하도록 한 것은, 공장장으로서 J의 업무수행능력 부족을 이유로 한, 징계해고 대신의 임시적 조치로 인정될 뿐 J이 피고 회사에게 실질적인 노무를 제공하여 피고회사가 그로 인하여 어떠한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원고의 피고회사에 대한 청구는 이유 없다.
피고 C, D에 대한 청구에 관한 판단
원고의 이 부분 청구는 J이 원고로부터 급여를 받은 것에 법률상 원인이 없다는 점을 전제로 피고들이 공동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인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위 전제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 역시 이유 없다.
또한 사정이 위와 같다면 이 사건 인사명령이 피고회사 또는 피고 D를 이롭게 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졌거나 피고회사 또는 피고 D가 실질적인 이익을 얻었다고 할 수도 없는 점, 대기발령을 포함한 인사명령은 원칙적으로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고유권한에 속한다 할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인사명령에 대하여는 업무상 필요한 범위 안에서 사용자에게 상당한 재량을 인정하여야 하며, 이것이 근로기준법에 위반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법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인데, 원고가 J의 업무수행능력 부족을 이유로 임시적 조치로서 이 사건 인사명령을 하게된 경위와 내용에 위법하게 볼 사정이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피고들이 이 사건 인사명령을 한 것이 원고에 대하여 불법행위가 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원고의 청구는 어느 모로 보나 이유 없다.
결 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판사 오규희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