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2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이유
항소이유의 요지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피고인이 운영하는 주식회사 B(이하 'B'이라고 한다)은 피해자 주식회사 D(이하 '피해자'라고 한다)과 사이에 가설재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용인수지 E 현장(이하 '이 사건 현장'이라고 한다)에 가설재를 임차하였다.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가설재를 임차하였으므로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피해자의 가설재를 정해진 용도에 따라 사용하고 반환할 의무가 있음에도 임차한 가설재를 반환하지 않았다.
원심은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소비임치계약의 성격을 가져서 피고인이 가설재를 임차하는 순간 가설재의 소유권이 피고인에게 이전한다고 보았으나, 임대물인 가설재의 구분이 어려워 대체물로 개수를 맞추어 반환한다고 하여 가설재의 소유권이 피고인에게 이전한다고 볼 수 없다.
원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는바, 이러한 원심에는 사실을 오인하고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직권판단(공소장 변경)
검사의 항소이유에 관한 판단에 앞서 직권으로 살피건대, 검사가 당심에 이르러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아래 무죄 부분의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변경하는 공소장변경 허가신청을 하였고, 이 법원이 이를 허가함으로써 그 심판대상이 변경되었다.
원심판결은 위와 같은 직권 파기 사유가 있어 파기되어야 하지만 검사의 사실오인, 법리오해 주장은 여전히 당심의 판단 대상이 되므로 아래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항소이유에 관한 판단
원심의 판단
원심은 적법하게 채택·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피고인이 피해자의 재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취거하여 처분하였다는 가설재가 피해자 소유의 물건임을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다.
피고인은 B의 대표이사로서 2013. 5. 2. 피해자와 피해자 소유 가설재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계약서의 제목은 '가설재 임대차계약서'이고, 그 주된 내용은 '피해자가 B에 가설재를 빌려주고 B은 피해자에게 임대료를 지급한다. 임대기간이 종료하면 B은 지체 없이 가설재를 반환하여야 한다. B은 가설재를 반환할 때 본래 물건과 다른 물건으로 대체하여 반환할 수 없으나, 피해자가 인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다. 가설재는 B이 시공하는 현장 내의 용도 외에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 및 이동하지 못한다. B은 가설재의 소유권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것을 공사 관계자에게 고지하여 피해자의 소유권을 보호하여야 한다. B은 가설재에 대하여 제3자에게 권리양도, 사용수익, 전대, 담보제공 등을 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위 계약서의 기재 내용만을 두고 보면, 피고인과 피해자 간 체결된 계약은 특정된 가설재를 사용 수익케 하고 임대료를 지급받는 임대차계약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①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가설재 즉, 각파이프, 원형파이프, 유로폼, 인코너 등은 공사현장에서 재활용되는 규격화된 물건으로서, 가설재에 별도로 소유자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여러 업체가 하나의 공사현장에 가설재를 공급할 경우 어느 가설재가 어느 업체가 공급한 것인지 피고인은 물론 피해자와 같은 공급업체도 이를 전혀 알 수 없다. ② 가설재 거래업계에서는 가설재를 임대인에게 반환할 때 그것이 본래 그 임대인으로부터 임차한 것인지 따지지 않고 같은 규격·수량의 가설재만 반환하면 그 반환채무가 이행된 것으로 보는 관행이 확립되어 있다. ③ 피해자의 직원이자 고소대리인인 K도 이 법정에서 '이 사건 가설재는 어느 회사에서 들어온 것인지 물건을 봐도 알 수 없다. 서로 혼입되어 있기 때문에 나중에 회수할 때 개수만 맞춰서 가져간다.'라고 분명하게 진술하였다. ④ 이 사건 현장에는 피해자가 공급한 것 외에도 L, M, N, O 등 다른 업체가 공급한 가설재가 섞여 있었다.
이러한 실제 거래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위 임대차계약서의 형식적인 기재 내용에도 불구하고 피고인과 피해자 간에는 피고인이 모양과 규격이 일정한 대체물인 가설재를 피해자로부터 공급받고 이를 자유롭게 활용한 뒤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같은 규격·수량·품명의 물건으로 반환하면 되는 소비임치 유사 계약이 체결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그런데 소비임치의 경우 목적물의 소유권이 수치인에게 이전한다고 보아야 하므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재물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
가사 계약서의 기재대로 이 사건 계약을 순수한 의미의 임대차계약이라고 보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현장에는 여러 업체가 공급한 가설재가 뒤섞여 있었으므로, 그로부터 반출된 공소사실 기재의 가설재가 피해자 소유의 물건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피해자가 피고인과 합의한 후이기는 하나 그 합의서에는 '이 사건에 관하여 2018. 1. 12. 피고인 측(B, N) 가설재도 현장에 많이 투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기재가 있기도 하다.
당심의 판단
관련 법리
대체물이라도 일정한 목적 내지 용도를 특정하여 위탁된 경우에 이를 임의로 소비 내지 반환을 거부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02. 4. 12. 선고 2002도53 판결 참조).
인정사실
원심과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들을 인정할 수 있다.
피고인이 대표이사인 B은 2013. 5. 2. 피해자와 사이에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가설재를 임차하는 내용의 가설재 임대차계약(이하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다.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피해자는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 따라 B에 47종의 건설 가설재 총 74,980개를 임대하였는데 피고인으로부터 28,748개만 반환받고 나머지 46,232개를 반환받지 못하였다.
피고인은 이 사건 현장에서 가설재 일부를 2016. 2. 18. 공사차량 세 대에 실어 피고인의 매제가 운영하는 N의 자재보관지로 이동시켰고, 같은 달 25. 공사차량 두 대에 실어 광주시 곤지암의 모처로 이동시켰다.
이 사건의 경우
횡령죄의 성립 여부
위 법리에다가 위 인정사실 및 같은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을 보태어 볼 때 피고인은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 따라 이 사건 현장 안에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여 임차한 가설재를 사용, 보관하고, 임대차계약이 종료되면 피해자에게 이를 반환하여야 하므로 피고인이 임차한 가설재의 용도 내지 목적이 특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바, 피해자의 동의가 있어 대체물로 반환할 수 있더라도 임차물을 임의로 소비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피고인은 이 사건 현장에 있는 가설재 중 일부를 피해자에게 반환하지 않고 피고인의 지배범위 안에 있는 장소로 이동시켰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횡령죄를 구성한다.
이 사건 임대차계약 제2조 제3항, 제6항에 의하면 임대차기간이 종료한 경우 피고인은 지체 없이 피해자에게 임대한 가설재를 반환하여야 하고, 임대한 가설재를 다른 물건과 대체 반환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예외적으로 피해자가 인정한 경우에는 임차한 가설재와 같은 규격, 수량, 품명의 물건을 피해자에게 반환할 수 있으나, 이는 여러 업체의 가설재가 뒤섞여 있어 임대물을 특정하기 어려운 건설현장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피해자가 용인하는 것일 뿐이다.
이 사건 임대차계약 제4조 제1항은 임대현장 내에서만 가설재를 사용하고, 피해자의 동의 없이 다른 목적으로 임차물을 사용하거나 이동시키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같은 계약 제5조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소유권을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제1항), 피고인이 제3자에게 임대물의 권리를 양도하거나 담보제공 등 처분할 수 없고(제2항), 피해자에게 임대물을 반환할 때까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여 사용, 보관하여야 함(제3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계약 내용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대체물로 반환하는 것에 피해자가 동의하였다고 하여 임차한 가설재의 소유권이 피고인에게 이전된다고 볼 수는 없다.
피해자는 자재 관리를 위하여 공사현장별로 가설재를 임대하고, 현장별로 반환받는다. B이 공사하는 현장이 여러 군데 있었지만 피고인이 이 사건 현장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임차한 가설재는 이 사건 현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이 사건 현장에서 사용하겠다고 임차한 가설재를 피해자의 사전 동의 없이 B의 다른 공사현장으로 이동시킬 수 없다. 피고인은 먼저 전화로 피해자의 사전 동의를 구하고, 사후에 서면으로 명확히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건설현장에 가설재를 임대할 때 다른 회사의 물건과 구별하기 위하여 스프레이 등으로 가설재에 표시를 하는 경우도 존재하나, 이 사건 현장에 임대한 가설재에는 특별한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공사현장에서 특정한 규격의 유로폼 등 가설재를 많이 절단하여 사용하는 바람에 해당 가설재가 고철이나 폐기물이 되는 경우에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상호간에 많이 폐기된 유로폼의 규격 대신 다른 규격의 유로폼으로 수량을 맞춰 반환할 수 있는지 여부를 협의할 수 있는데 이러한 협의도 없었다.
공사현장의 실무를 고려하더라도 대체물로 반환하는 경우는 예외적인 경우이므로 피고인은 목적과 용도가 특정되어 있는 가설재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여 사용, 보관하여야 했다.
그런데 피고인은 2016. 2. 18. 및 같은 달 25. 총 다섯 대의 공사차량에 이 사건 현장에 있던 가설재를 실어 이동시켰고, 그 가설재 중에는 피해자 소유의 가설재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피해자가 이러한 가설재의 장소적 이동을 동의한 바 없었다.
횡령죄의 성립 범위
검사는 피해자가 임대하고도 반환받지 못한 가설재 전부를 피고인이 횡령한 것으로 주장하나,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반환받지 못한 가설재 전부를 피고인이 횡령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다만 피고인이 이 사건 현장에서 공사차량을 통해 반출한 가설재 중 상당 부분이 피해자가 임대한 가설재로 보이므로 피고인이 이를 횡령하였다고 판단된다.
이 사건 현장에는 피해자 외에도 L, M 등 여러 업체가 임대한 가설재가 있었다. B의 자금사정이 상당히 악화되었다는 소문이 돌자 B에 가설재를 임대하였던 업체들이 서둘러 자신의 가설재를 회수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임대한 가설재의 일부가 반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반환하지 못한 가설재 46,232개 전부를 불법영득의사를 가지고 횡령하였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 피고인이 2016. 2.경 두 번에 걸쳐 공사차량 다섯 대에 가설재를 싣고 옮긴 사실만이 확인될 뿐이다.
B의 자재과장으로 근무한 P은 원심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D 자재가 N의 자재보관지로 흘러들어간 것은 맞다(공판기록 81쪽). D은 자재를 제일 많이 공급한 업체이다(공판기록 83쪽)."라고 진술하였다. 실제로 피해자가 이 사건 현장에 임대한 가설재가 총 74,980개로 상당히 많은데 이 중 28,748개만 반환되고 나머지 46,232개는 반환되지 않았다.
피고인이 2015. 8.부터 피해자에게 가설재 임대료를 지급하지 못하였고, 2016. 1.~2.경에는 B과 원도급인 사이의 공사계약이 파기되었으므로 이 사건 임대차계약은 제11조 제4호, 제6호에 따라 늦어도 2016. 2. 무렵에는 해지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 무렵 피고인은 근로자의 임금도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세금체납으로 공사현장에 압류가 들어오는 등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었으며, 2016. 3.경에는 건강까지 악화되어 입원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피고인은 2016. 2.경 이 사건 현장에 있던 가설재 일부를 공사차량 다섯 대에 실어 다른 장소로 이동시켰다.
피해자의 직원 K은 2016. 3.~4.경 피해자에게 임대한 자재를 회수하기 위해 이 사건 현장을 방문하였는데 이미 피해자가 임대한 가설재가 이 사건 현장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고, 이 사건 현장에 있던 가설재 중 일부가 공사차량 다섯 대에 실려 다른 곳으로 옮겨진 사실을 확인하였다(공판기록 89쪽). 피해자는 2016. 10.경 피고인을 횡령죄로 고소하였다.
피고인은 2016. 2. 18. N 소유의 가설재를 공사차량에 실어 N의 자재보관지로 옮긴 것이라고 주장하나, N은 피고인의 매제인 W이 운영하는 업체이고, 피고인은 이 사건 현장에 투입된 N의 자재 양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피고인은 같은 달 25. O의 가설재를 공사차량에 실어 O의 자재보관지로 옮긴 것이라고 주장하나, B의 자재과장인 P은 원심에서 "2016. 2. 25. 곤지암으로 보낸 가설재가 O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곤지암에 자재를 갖다 놓아도 되는 상황으로 알고 있었다(공판기록 91쪽)."라고 진술하였고, 자재반출증에도 하차지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N"이라고 기재되어 있을 뿐이어서 피고인이 곤지암으로 옮긴 가설재가 O의 자재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피고인은 피해자를 비롯한 임대업체에 가설재를 반환하지 않고 피고인의 지배범위 안에 있는 장소로 가설재를 먼저 옮긴 것으로 보인다.
결론
원심판결에는 위와 같은 직권파기 사유가 있을 뿐 아니라 검사의 사실오인, 법리오해 주장도 일부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2항, 제6항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음과 같이 다시 판결한다.
[다시 쓰는 판결 이유]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