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항소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기초사실
피고 D 주식회사(이하 'D'이라고만 한다)는 경비업, 근로자 파견사업, 시설 관리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이고, 피고 주식회사 E(이하 'E'이라고만 한다)은 생활필수품 판매 및 중개업, 백화점, 할인점 등 운영 및 임대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로서 인천 연수구 K에 있는 F점의 일부(이하 '이 사건 백화점'이라 한다)를 임차하여 운영하고 있다. 피고 E은 피고 D과 사이에 2015. 4. 30. 영선을 도급업무로 하는 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원고는 피고 D의 피용자로서 2015. 5. 1.자로 이 사건 백화점의 영선업무 부문 책임자로 선임 및 파견되어 근무하던 자이다.
원고는 2016. 11. 2. 15:30경 이 사건 백화점에 있는 'L' 매장 정면의 파사드 기등 상부(이하 '이 사건 현장'이라 한다)에 올라가 비둘기 배설물 제거 및 도색작업을 진행하던 중 미끄러지면서 약 5m 높이에서 추락하여 좌측 근위 상완골 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다(이하 '이 사건 사고'라 한다).
근로복지공단 인천북부지사는 2018. 2. 14.경 이 사건 사고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고만 한다)상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고로 판정하고, 그 무렵 원고에게 산재보험급여 합계 65,045,790원을 지급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3, 7, 12호증, 을가 제3, 4호증, 을나 제1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당사자의 주장
원고의 주장
원고는, 피고들은 기존에 이 사건 백화점의 도색작업이 필요할 경우 높이 3m 이하 도색작업은 원고를 비롯한 피고 D 소속 직원을 통하여 하였고, 높이 3m 초과 도색작업은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여 원고 등이 높이 3m 초과 도색작업에는 숙련되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비둘기 배설물 제거 작업은 원고가 담당하는 영선업무와 관련이 없음에도, 피고 E이 자신의 사정으로 제대로 된 작업여건도 마련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원고에게 약 5m 높이의 이 사건 현장에서 비둘기 배설물 제거 및 도색작업을 할 것을 강제적으로 지시하여 원고가 위 작업을 진행하던 중 이 사건 사고를 당하게 하였으므로, 파견사업주인 피고 D은 물론 사용사업주인 피고 E 역시 연대하여 원고에 대한 보호의무와 안전배려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피고들의 주장
피고 D의 주장
피고 D은, 도색작업은 피고들 사이에 체결한 영선도급계약서(을나 제1호증)상 영선업무 범위에 명백히 명시되어 있는 작업으로, 높이 3m 초과 도색작업의 경우 외부용역을 이용한다는 피고 D의 지침이나 피고 E과의 계약내용은 존재하지 않고, 원고는 이 사건 백화점의 영선업무 부분 현장관리책임자로서 피고 D의 작업범위와 현장업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인바, 이 사건 사고 당시 이동식 유압사다리(고소작업대, 이하 '이 사건 사다리'라 한다)의 끝에 달린 캐빈 내부에서 충분히 작업할 수 있었음에도 고의 또는 중과실로 안전지침을 스스로 위반하여 임의로 위험하게 캐빈 밖으로 나와 이 사건 현장에 올라타 비둘기 배설물 제거 및 도색작업을 하려다가 추락한 것이므로, 피고 D은 원고의 청구에 응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피고 E의 주장
피고 E은, 원고는 단지 피고 D의 피용자일 뿐 원고와 피고 E 사이에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는 파견관계나 기타 계약관계 또는 법률상의 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이상 이를 전제로 한 피고 E의 사용사업주로서의 안전배려의무 및 보호의무 위반 여부의 점에 대하여는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원고의 청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판단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며,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해당 사업장의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정보를 근로자에게 제공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 및 건강을 유지·증진시킬 의무를 부담한다. 또한 사용자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의 부수적 의무로 피용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인적·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할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산재보험법상의 산업재해보상은 업무상 사유에 의한 근로자의 부상·질병· 장해 또는 사망이 발생한 경우에 사용자의 고의나 과실을 불문하고 법이 정하는 보상을 하도록 함에 따라 지급하는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성질을 가지고 있음에 비하여, 과실책임을 원칙으로 하는 손해배상책임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른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의 부수적인 의무로서 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게 근로자가 입은 신체상의 재해에 대하여 민법 제750조 소정의 불법행위책임을 지우기 위하여는 사용자에게 당해 근로로 인하여 근로자의 신체상의 재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피를 위한 별다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이 있음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고, 위와 같은 과실의 존재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근로자에게 그 입증책임이 있다(대법원 2000. 3. 10. 선고 99다60115 판결 참조). 또 보호의무 위반을 원인으로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 통상의 채무불이행과 같이 채무자가 그 채무불이행에 대하여 자기에게 과실이 없음을 주장, 입증하지 않는 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나, 채권자로서도 그 급부의 불완전에 관한 주장,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것이므로 원고로서는 구체적인 보호의무의 존재와 그 위반사실을 주장, 입증하여야 한다(대법원 1994. 1. 28. 선고 93다43590 판결 등 참조).
살피건대, 위 기초사실 및 앞서 든 증거들과 갑 제18호증의 1 내지 2(녹취파일)의 각 음성, 증인 M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 사건 사고의 원인이 된 이 사건 현장의 비둘기 배설물 제거 및 도색작업을 본인이 원고에게 직접 지시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증인 N의 증언은 쉽사리 믿기 어렵고, 이 사건 사고 당시 피고 E 소속 경영지원실장이던 위 N이 위 피고의 사정으로 인하여 직접 원고에게 연락하여 서둘러 이 사건 현장의 도색작업을 진행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원고가 이 사건 현장에서 도색작업 및 그 전제 작업으로서 비둘기 배설물 제거 작업을 하다가 추락하여 이 사건 사고를 당한 사실은 인정된다. 반면 원고의 주장에 부합하는 듯한 증인 M의 증언에 의하더라도 위 N이 원고에 대하여 이 사건 현장의 비둘기 배설물 제거 작업까지도 명시적으로 지시 내지 요청하였다거나, 원고가 피고들이나 위 N에게 위 작업은 안전장비를 갖추고 해야 된다고 이의제기를 한 사실은 인정하기 부족하고, 한편 원고가 피고 D에 피고 E 측의 업무 요청이 부당하다는 점을 보고한 사실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위 인정사실 및 앞서 는 증거들과 갑 제19호증의 1 내지 5의 각 영상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고가 주장하는 사정 및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들이 위 도색작업 등으로 인하여 원고에게 신체상의 재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피고들에게 민법 제750조 소정의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된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원고나 증인 M이 피고 E 측의 도색작업 등 업무 요청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였다면, 현장책임자인 원고로서는 피고 D 본사 직원이나 임원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원고나 증인 M이 이를 피고 D에 보고한 사실은 확인되지 아니한다.
증인 M은 위 도색작업을 하기 위한 전제로서 비둘기 배설물 등이 있을 경우 당연히 이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설령 위 N이 원고에게 도색작업 외에 비둘기 배설물 제거 작업까지 명시하여 요청하였더라도 이는 부당한 지시는 아니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원고는 이 사건 백화점의 피고 D 측 책임자로서 이 사건 사다리를 이용하여 이 사건 현장에서 도색작업을 할 것을 스스로 결정하였고, 다른 직원들에게 지시하여 위 백화점 창고에 있던 이 사건 사다리를 이동시켜 이 사건 현장 옆에 설치하였으며, 다른 작업자가 아닌 원고 본인이 직접 이 사건 사다리의 캐빈에 탑승하여 위 캐빈이 위 쪽으로 올라가도록 작동시킨 다음 위 M 등 함께 있던 피고 D 소속 직원들과는 별다른 협의 없이 원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임의로 위 캐빈에서 나와 이 사건 현장에 올라가 비둘기 배설물 제거 등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원고가 이 사건 현장에서 도색작업 등을 하면서 사용한 이 사건 사다리의 경우 사람이 손으로 밀어 이동시켜야 하고, 장소 이동이 필요한 작업의 경우 우선 이 사건 사다리에 부착한 전도방지용 바닥안전장치(아웃트리거) 4개를 떼어 내고 손으로 위 사다리를 밀어 이동시킨 다음 다시 위 바닥안전장치를 부착시키고 이를 바닥에 고정시켜 수평을 맞추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이 사건 사다리의 이동 및 재고정이 다소 번거로울 수는 있다. 그러나 갑 제19호증의 4의 영상에 의하면, 원고가 실제로 이 사건 사고 당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이 사건 사다리에서 위와 같이 바닥안전장치를 떼어내어 이를 이동시킨 다음 다시 바닥안전장치를 부착시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약 4분 정도로, 서둘러 작업을 하려는 근로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자신의 안전에 무리가 될 선택을 할 정도로 과중하게 부담을 주는 시간은 아니라고 보인다.
오히려 갑 제19호증의 1 내지 5의 각 영상에 의하면, 이 사건 사다리의 캐빈 안에서 작업을 하되, 필요한 범위에서 이 사건 사다리를 옆으로 이동시키면서 작업하는 것이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이고, 원고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이 사건 현장의 도색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였을 것으로 보여짐에도 원고는 위 작업을 서둘러 진행하기 위하여 무리하게 이 사건 사다리에서 벗어나 이 사건 현장에 올라갔던 것으로 판단된다.
원고도 이 사건 사고 당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위험이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여 도색작업 등을 이 사건 현장에 올라가지 않고 이 사건 사다리에서 처리 가능한 방향으로 진행할 수도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이 사건 사다리는 피고들이 아닌 0 건물관리팀의 소유인데, 원고가 이 사건 사고 당시 그 대여 및 사용을 주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위와 같은 사정 등을 고려하면,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원고가 이 사건 사고로 입은 신체상의 재해와 관련하여 피고들에게 구체적인 보호의무 위반이 있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피고들에게 귀책사유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원고의 청구는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하여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하여야 한다.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는 이유 없어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민소영(재판장) 임진수 신정수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