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고의 소를 각하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기초사실
당사자의 지위 등
피고 회사는 철강 제조, 도․소매업 등을 목적 사업으로 하는 법인이다.
원고는 2009. 2. 20. 피고 회사에 입사하여 2009. 8. 27. 피고 회사의 이사로 등기되었으며 2020. 3. 31. 사임하고 피고 회사에서 퇴사하였다.
원고는 퇴사 당시 피고 회사 발행 주식의 50%를 보유한 주주이자 부사장 직책으로 근무하고 있었다(나머지 50%는 대표이사인 C이 보유하고 있었다).
이 사건 주식 포기각서의 작성
원고는 2020. 4. 10. 피고 회사에 원고가 보유하고 있던 피고 회사 발행 비상장보통주식 40,000주(1주의 액면금액 10,000원, 이하 이들을 통틀어 ‘이 사건 주식’이라 한다)에 관하여 아래와 같은 내용의 주식 포기각서(이하 ‘이 사건 주식 포기각서’라고 한다)를 작성하여 주었고, 같은 날 공증인가 법무법인 D 2020년 제139호로 사서증서 인증을 받았다.
이 사건 퇴직금 포기각서의 작성
원고는 2020. 4. 13. 피고 회사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퇴직금 포기각서(이하 ‘이 사건 퇴직금 포기각서’라고 하고, 이 사건 퇴직금 포기각서로 체결된 원고와 피고 사이의 약정을 ‘이 사건 퇴직금 포기약정’이라 한다)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피고 회사의 정관내용
피고 회사 정관 중 이 사건과 관련되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호증, 을 제1 내지 4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청구원인의 요지
원고는 형식상으로는 피고 회사의 등기 이사였으나 실제로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근로자였고, 이 사건 퇴직금 포기약정은 효력이 없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퇴직하기 3개월 전 임금총액을 바탕으로 근로기준법에 따라 산정한 청구취지 기재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본안전 항변에 대한 판단
피고 회사는 먼저 원고의 소는 이 사건 퇴직금 포기약정에서 정한 부제소합의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는 취지로 항변한다.
살피건대 특정한 권리나 법률관계에 관하여 분쟁이 있어도 제소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합의를 한 경우 이에 위배되어 제기된 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고 또한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신의성실의 원칙(민사소송법 제1조 제2항)에도 어긋난다. 그러나 부제소 합의는 소송당사자에게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의 포기와 같은 중대한 소송법상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합의당사자가 처분할 권리 있는 범위 내의 것으로서 특정한 법률관계에 한정될 때 허용되고, 그 합의 시에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이어야 유효하며, 그 효력의 유무나 범위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을 수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해석한 후 이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1. 24. 선고 2017다269343 판결 등 참조).
돌이켜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원고가 2020. 4. 13. 피고 회사에 원고의 재직기간인 2009. 2. 20.부터 2020. 3. 31.까지 발생한 퇴직금 청구권을 포기하고 차후에도 이에 관한 어떠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이 사건 퇴직금 포기각서를 작성하여 교부한 사실은 위에서 본 바와 같고, 여기에다가 앞서 본 사실 및 거시 증거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장래 발생할 임금청구권을 사전에 포기하거나 사전에 그에 관한 민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부제소특약을 하는 것은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어 무효이지만(대법원 1998. 3. 27. 선고 97다49732 판결 참조), 이미 구체적으로 그 지급청구권이 발생한 임금이나 퇴직금은 근로자의 사적 재산영역으로 옮겨져 근로자의 처분에 맡겨진 것이므로 근로자가 이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점(대법원 2010. 1. 28. 선고 2009다76317 판결 참조), ② 원고는 이 사건 퇴직금 포기각서에서 자신의 퇴직으로 발생한 퇴직금 청구권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이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명시하고 그와 같은 의사표시에 이르게 된 동기까지 표시하고 있는 점, ③ 처분문서는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반증이 없는 이상 그 문서의 기재 내용에 따른 의사표시의 존재 및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며, 의사표시의 해석에 있어서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내심의 의사가 아니라 외부로 표시된 행위에 의하여 추단된 의사를 가지고 해석하여야 하는바(대법원 1997. 11. 28. 선고 97다11133 판결 참조), 이 사건 퇴직금 포기각서의 문면이 비교적 명확하여 기 발생한 퇴직금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해석에 이론이 있기 어려운 점 등을 더하여 보면, 원고와 피고 회사는 원고의 퇴사로 발생한 퇴직금에 관하여 부제소합의를 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의 이 사건 소는 위 부제소 합의에 반하여 부적법하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사기 또는 강박을 이유로 이 사건 퇴직금 포기약정을 취소한다거나 위 포기약정은 민법 제103조, 제104조에 위반되어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나,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위 퇴직금 포기약정의 효력이 없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본안에 대한 판단
설령 피고의 본안전 항변이 이유 없다고 하더라도 원고의 청구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이유 없다.
원고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
살피건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보다 근로제공관계의 실질이 근로제공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종속적인 관계인지 여부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수행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ㆍ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제공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근로제공자가 스스로 비품ㆍ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하게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근로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고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였는지, 그리고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의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18다298775, 298782 판결 등 참조).
주식회사의 업무집행권을 가진 이사 등 임원은 회사로부터 일정한 사무처리의 위임을 받고 있는 것이므로(상법 제382조 제2항 참조) 사용자의 지휘 감독 아래 일정한 근로를 제공하고 소정의 임금을 지급받는 고용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라고 할 수 없다(대법원 1992. 12. 22. 선고 92다28228 판결, 대법원 2001. 2. 23. 선고 2000다61312 판결 등 참조).
돌이켜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본 사실 및 갑 제1호증, 제2호증, 을 제3호증, 제5 내지 7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하거나 알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실 및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고는 피고 회사의 이사로서 피고 회사로부터 위임받은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인 C의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일정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에 불과하다는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원고는 이 사건 주식 포기각서를 작성할 때까지 피고 회사의 발행 주식 80,000주 중 50%에 해당하는 40,000주를 보유한 주주였다.
원고는 퇴직할 때까지 피고의 등기 이사였고 당초 스스로도 자신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님을 전제로 원고의 퇴직금 채권에 근로기준법 제49조 소정의 임금채권의 시효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피고 회사에서 원고의 직책은 부사장이었고, 피고 회사가 가입한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에도 피고 회사 대표이사 C과 함께 임원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원고의 기준급여 역시 C과 동일한 10,170,000원이었다.
원고는 피고 회사가 2012. 9. 14. E 주식회사로부터 리스한 승용차를 퇴사할 때까지 개인적으로 사용하였고, 피고 회사로부터 법인카드 2매를 발급받아 하나는 자신이, 하나는 자신의 배우자인 소외 F으로 하여금 사용하게 하였다.
원고는 피고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2017. 10.경 자신 소유의 양산시 G 토지 및 건물을 담보로 중소기업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피고 회사에 500,000,000원을 투자 내지 대여하였다.
원고가 피고 회사로부터 근무시간이나 근무장소를 엄격하게 통제받았다거나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받았다고 볼만한 자료가 전혀 없다.
원고의 퇴직금 청구권의 존부
상법 제388조에 의하면, 주식회사 이사의 보수는 정관에 그 액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를 정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바, 이사에 대한 퇴직위로금은 그 직에서 퇴임한 자에 대하여 그 재직 중 직무집행의 대가로 지급되는 보수의 일종으로 상법 제388조에 규정된 보수에 포함되고, 정관 등에서 이사의 보수 또는 퇴직금에 관하여 주주총회의 결의로 정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경우 그 금액‧지급방법‧지급시기 등에 관한 주주총회 결의가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한 이사의 보수나 퇴직금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대법원 2003. 10. 24. 선고 2003다24123 판결 참조). 한편 임시주주총회가 법령 및 정관상 요구되는 이사회의 결의 없이 또한 그 소집절차를 생략하고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주주의 의결권을 적법하게 위임받은 수임인과 다른 주주 전원이 참석하여 총회를 개최하는 데 동의하고 아무런 이의 없이 만장일치로 결의가 이루어졌다면 이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효한 것이다(대법원 1993. 2. 26. 선고 92다48727 판결 참조).
돌이켜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 회사 정관 제34조에서 임원의 보수는 주주총회의 결의로 정하고 퇴직한 임원의 퇴직금은 주주총회가 정하는 퇴직금 지급규정에 의한다고 정하고 있는 사실은 위에서 본 바와 같고, 원고의 퇴직금의 존부 및 그 액수에 관하여 피고 회사 주주총회의 결의나 퇴직금 지급규정의 정함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바,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는 피고 회사에 퇴직금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오히려 앞서 본 사실 및 거시 증거에 의하면, 원고가 피고 회사 대표이사 C에게 이 사건 퇴직금 포기각서를 작성하여 제출함으로써 피고 회사 주주 전원이 만장일치로 원고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결의를 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을 뿐이다.
(가) 이에 대하여 원고는 먼저, 이 사건 퇴직금 포기약정은 사기 또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이므로 이를 취소한다고 항변하나, 피고 회사가 실제와 달리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원고를 기망하였다거나 사직을 강요하기 위하여 원고를 업무에서 배제하고 퇴직을 종용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위 항변은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 없이 이유 없다.
다음으로 원고는 이 사건 퇴직금 포기약정은 민법 제103조 내지 제104조를 위반한 것으로 효력이 없다고 항변한다.
살피건대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로 되는 반사회질서 행위는 법률행위의 목적인 권리의무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경우, 권리의무의 내용 자체는 반사회질서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여도 법률적으로 이를 강제하거나 그 법률행위에 반사회질서적인 조건 또는 금전적 대가가 결부됨으로써 반사회질서적 성격을 띠는 경우, 표시되거나 상대방에게 알려진 법률행위의 동기가 반사회질서적인 경우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법률행위의 일방 당사자로서 경제력의 차이로 인하여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업자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자기는 부당한 이득을 얻고 상대방에게 과도한 반대급부 내지 부당한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이를 강제하는 것이 사회적 타당성이 없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 역시 이에 해당하여 무효가 된다.
민법 제104조에 의하여 법률행위의 무효를 주장하려면 주장하는 측에서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그 법률행위가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였다는 점과 상대방이 그 사정을 알고 이를 인용하여서 그 법률행위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점을 주장‧입증하여야 할 것이고, 그 법률행위가 현저하게 공정을 잃었다고 하여 곧 그것이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추정되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원고가 2017. 11.경 자신 소유이던 양산시 G 토지 및 지상 건물을 담보로 소외 중소기업은행으로부터 500,000,000원을 대출받아 이를 피고 회사에 대여 내지 투자한 사실은 위에서 본 바와 같고, 피고 회사가 원고의 퇴사 이후인 2020. 12.경에야 원고에게 위 500,000,000원을 변제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그러나 앞서 본 사실 및 거시 증거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이 사건 퇴직금 포기각서에는 원고가 피고 회사에 대한 퇴직금을 포기하게 된 동기에 관하여도 비교적 명백하게 기재되어 있는 점, ② 이 사건 퇴직금 포기각서 작성을 둘러싸고 원고와 피고 회사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점을 추단할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는 점, ③ 원고는 이 사건 퇴직금 포기각서를 작성한 이후 2년 이상이 경과한 시점에야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에서 인정한 사실만으로는 피고 회사가 위 500,000,000원의 변제를 조건으로 원고에게 이 사건 퇴직금 포기각서의 작성을 강요하였다고 추인하기에는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피고 회사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원고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웠다거나 혹은 피고 회사가 원고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이 사건 퇴직금 포기각서를 작성케 하였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원고의 위 항변도 이유 없다.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소는 부적법하므로 이를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선아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