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는 원고에게 24,108,620원과 이에 대하여 2009. 7. 5.부터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 중 10%는 원고가,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이유
기초사실
원고는 2005. 8. 1.경 피고 회사(변경 전 주식회사 D)에 고용되어 항공기 조종사로 근무하다가 2009. 6. 20.경 퇴직하였다.
피고 회사는 2009. 9. 24.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개시결정(같은 법원 2009회합136호)을 받아 회생절차가 진행되다가 2010. 3. 5. 회생계획이 인가되었고, 2010. 4. 29. 회생절차 종결결정을 받았다.
원고는 2009. 11. 9.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체당금 명목으로 합계 9,417,450원을 지급받았다.
한편, 원고는 피고 회사와 사이에 원고의 미지급 임금채권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합의(이하 ‘이 사건 합의’라 한다)하였다.
피고 회사의 회생절차개시 신청일인 2009. 8. 31. 기준으로 원고가 피고 회사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임금은 총 44,390,370원(이하 ‘임금총액’)이다.
피고 회사의 회생절차개시 신청일인 2009. 8. 31. 기준으로 원고 개인이 납부해야 할 근로소득세 및 4대 보험료 등의 공제금액은 총 2,642,700원이다.
피고 회사는 원고에게 임금총액의 45.690%에 해당하는 20,281,750원(이하 ‘지급금’)을 피고 회사의 회생계획안에서 정한 시기에 지급하기로 한다.
피고 회사는 원고 개인이 부담해야 할 근로소득세 및 4대 보험료 등의 합계 금액인 2,642,700원(이하 ‘납부금’)을 원고를 위하여 피고 회사의 회생계획안에서 정한 시기에 관계기관에 납부하여야 한다.
원고는 임금총액에서 지급금을 공제한 금원에 대하여는 피고 회사의 지급의무를 면제하기로 한다.
만일 원고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체당금을 수령하였거나 수령할 예정인 경우 원고가 수령하였거나 수령할 예정인 체당금은 지급금에 포함된다.
피고 회사는 위 합의에 따라 원고가 납부해야 할 근로소득세 및 4대 보험료 등 합계 2,642,700원을 국민연금공단 및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납부하고, 2010. 4. 6. 원고에게 위 20,281,750원에서 체당금 9,417,450원과 위와 같이 납부한 2,642,700원을 공제한 나머지 8,221,600원을 송금하였다.
[인정근거 : 다툼 없는 사실, 을제1~5호증(가지번호 포함), 변론 전체의 취지]
판단
원고의 주장
원고가 피고 회사로부터 지급받아야 할 체불임금 중 일부를 포기하기로 하는 내용의 이 사건 합의는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어 원칙적으로 무효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민법상 불공정한 법률행위, 비진의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무효이거나, 착오 또는 사기를 이유로 이를 취소할 수 있다. 따라서, 피고 회사는 원고에게 이 사건 합의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미지급된 임금 및 퇴직금 등을 전액 지급할 의무가 있다.
판단
임금의 포기와 관련된 법률관계 고찰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은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을 하여 임금전액불의 원칙을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지급요건이 성립되어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는 임금을 근로자가 사후에 포기하였다고 하여 지급을 하지 않는 것이 위 임금전액불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이미 구체적으로 그 지급청구권이 발생한 임금(상여금 포함)이나 퇴직금은 근로자의 사적 재산영역으로 옮겨져 근로자의 처분에 맡겨진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근로자들로부터 개별적인 동의나 수권을 받지 않는 이상, 사용자와 사이의 단체협약만으로 이에 대한 포기나 지급유예와 같은 처분행위를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0. 9. 29. 선고 99다67536 판결)는 법리에 비추어, 이미 발생한 임금이나 퇴직금은 근로자가 사후에 이를 포기할 수 있다고 보인다(이른바 ‘유효설’).
이러한 ‘유효설’에도 두 가지의 견해가 있는데, 근로자가 자유로운 의사에 기한 것으로 인정될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등의 경우에만 유효하다고 하는 견해와 특별한 요건을 요구하지 않고 무조건 유효하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이 중 특별한 요건을 요구하지 않고 유효하다고 하는 것은 근로자의 보호에 매우 미흡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해석을 하게 된다면 사용자는 일단 근로자의 동의가 있었다는 사실만을 입증하면 되고, 근로자는 이와 같은 동의를 효력을 부정하기 위하여 의사표시의 성립과정에 하자가 있었다(불공정한 법률행위, 비진의 의사표시, 착오, 사기 등)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입증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일반 사법관계에서와 같은 의사표시의 성립과정에 하자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들이고, 이러한 견해는 결국 임금 채권·채무 관계가 이미 구체적으로 성립하였다면 그와 같은 관계는 노동법의 규율을 전혀 받지 않고 서로 대등한 사인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일반 사법관계로 바뀐다는 견해로서 실질적으로 대등하지 않은 양 당사자 사이를 대등한 관계로 의제하는 것으로서 옳지 못하다.
그러므로, 근로자의 보호에 소홀함이 없이 구체적인 타당성을 추구할 수 있는,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이 있을 경우에만 유효라고 하는 견해가 타당해 보이고, 그 합리적·객관적 이유의 존재에 관한 주장 및 입증책임은 사용자가 진다고 할 것이다.
임금의 포기가 유효하기 위한 요건
앞서 본 바와 같이 근로자의 임금의 포기가 유효하려면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판단하기 위한 요건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서는 아래 하급심 판결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주지방법원 1998. 8. 14. 선고 97가단7157 판결 : 근로자가 사용자에 대하여 그 임금채권을 포기하거나 이를 사용자에게 증여하는 행위 역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가 사용자에 대하여 그 임금채권을 포기하거나 이를 사용자에게 증여하더라도, ① 자신과 그 가족의 생계를 위협할 위험이 없고, ② 그 같은 행위를 할 만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이 있으며, ③ 사용자의 강압적인 개입이 없이 그것이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한 것이라면, 사법관계에 있어서 각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여 이른바 사적자치를 최대한 허용하고 있는 우리의 법제상 이를 무조건적으로 금할 일은 아니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건에서와 같이, 근로자가 일하고 있는 직장의 경영이 악화되어 단기적으로는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 지급이 어려운 사정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정상화가 가능하고 그 이후에는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지급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며, 근로자들이 장차 회사의 갱생을 바라고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기로 하여 자발적으로 체납된 임금을 포기하는 등으로 회사의 갱생에 나서는 경우에, 이를 일률적으로 법으로써 금지한다면 오히려 근로자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약화시켜 그 생계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 판결에서 언급한 ① 자신과 그 가족의 생계를 위협할 위험이 없고, ② 그 같은 행위를 할 만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이 있으며, ③ 사용자의 강압적인 개입이 없이 그것이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한 것이라는 요건을 참고로 하여 이 사건 합의의 유효성 여부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물론, 그 입증책임이 피고에게 있음은 앞서 살핀 바와 같다.
구체적 검토
위 인정사실에 앞서 든 증거들 및 갑제2~9호증, 을제6~8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이 사건 합의가 이루어질 당시는 피고 회사가 회생절차가 개시되어 관리인으로 소외 E가 선임되어 있었고, 피고 회사의 회생을 위하여는 새로운 투자자인 F 주식회사(이하 ‘F’라 한다)가 추진 중인 M&A의 기준에 맞추어야 피고 회사가 회생이 가능한 상태였던 점, ② 이 사건 합의의 기준이 되었던 임금 포기의 정도(50% 정도)도 원고와 피고 회사가 자유로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F에서 제시한 임금포기 기준에 이를 맞춘 것(갑제6호증 참조)인 점, ③ 관리인 E 및 피고 회사 관계자들이 지속적으로 원고를 비롯한 퇴직자들에게 임금 포기를 종용하였던 점, ④ 원고와 같은 임금채권자의 경우 공익채권에 해당하여 그 변제가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고, 더구나 피고 회사와의 관계에서는 근로자에 불과한 원고 입장에서 자신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포기하면서까지 피고 회사를 회생시킬 합리적이고도 객관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점, ⑤ 오히려, 원고 입장에서 피고 회사가 회생하기 위하여 꼭 필요하다는 이 사건 합의를 해 준 이유는 피고 회사가 다시 살아나 원고 등 퇴직 근로자들이 다시 복직하여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적인 점, ⑥ 당시 관리인 E 등 피고 회사 관계자들은 근로자들이 임금 포기만 해 주면 회생계획안이 통과될 것이고, 그리하여 피고 회사가 살아나면 퇴직 근로자들을 상대로 재취업 의사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빠른 시일 내에 재고용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하였던 점, ⑦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 회사는 일반적인 경력직 채용공고를 하는 것 외에 원고 및 퇴직 근로자들을 상대로 직접 개인적으로 재취업 의사를 묻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경력직 채용에 있어서도 다른 항공사 출신의 경력직을 배제하고 오직 피고 회사의 퇴직 근로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재고용의 기회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합의 당시 ① 자신과 그 가족의 생계를 위협할 위험이 있고(재고용이 보장되지 않았음), ② 그 같은 행위를 할 만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이 없으며(재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피고 회사가 F로 인수합병되어 살아남아도 원고에게 아무런 이익도 없음), ③ 사용자의 강압적인 개입이 없이 그것이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고, 피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합의가 원고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이 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자료가 없으므로, 이 사건 합의는 무효이다(피고는 퇴직 전의 근로자와 달리 퇴직 후의 근로자는 자유로이 임금을 포기할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이를 퇴직 전후에 따라 달리 볼 것은 아니고, 다만 퇴직 후에는 사용자와의 고용관계가 해소된 만큼 그 대등적 지위와 자유로운 의사결정의 범위를 더 넓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소결
따라서, 이 사건 합의가 유효함을 전제로 한 원고의 나머지 주장들은 더 살필 필요가 없고, 피고는 원고에게 미지급 임금 등 합계액 44,390,370원에서 체당금 9,417,450원, 피고 회사가 대납한 근로소득세 등 보험료 2,642,700원 및 피고 회사가 원고에게 송금한 8,221,600원을 공제한 나머지 24,108,620원과 이에 대하여 원고가 피고 회사를 그만 둔 후 14일이 경과한 다음날인 2009. 7. 5.부터 갚는 날까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으므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맹현무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