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이유
기초 사실
원고들은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제품의 개발 등을 영위하는 피고의 엔지니어들이다. 원고 A, D, J은 PFE(Premier Field Engineering) 부서 소속으로 피고가 판매한 소프트웨어에 장애가 발생할 경우 고객을 직접 방문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업무를 수행하였고(이하 'PFE 소속 원고들'이라 한다), 나머지 원고들은 CSS(Customer Service Support) 부서 소속으로 자신의 컴퓨터 등을 통해 원격으로 그와 같은 업무를 수행하였다(이하 'CSS 소속 원고들'이라 한다).
원고들은 부서별로 정규근로 시간(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후인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 또는 휴일에 장애해결 업무를 담당할 엔지니어를 정해두었고, 실제로 그 시간에 장애가 접수되면 해당 엔지니어가 방문 또는 원격으로 장애해결 업무를 수행하였다(이하 전반적으로 이를 지칭할 때 '대기근무'라 한다).
피고는 대기근무와 관련하여 원고들에게 평일 1만 원, 휴일 3만 원의 대기수당을 지급하였고, 실제로 장애해결 업무를 수행할 경우 그 시간에 대하여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을 모두 지급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3, 16 내지 18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당사자들의 주장 요지
원고들
원고들은 정규 근로시간 이후 피고의 지휘, 감독 하에 대기근무를 하였다. 통상근무 대비 평균 40%의 장애해결 업무를 수행하는 등 노동의 강도가 결코 통상근무보다 낮다고 볼 수 없었고, 항상 노트북을 지참하고 고속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환경에 있을 필요가 있는 등 유의미한 장소적 제약이 존재하여 실제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대기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원고들이 대기근무 중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대기한 시간은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에 따라 근로시간에 해당하므로, 피고는 이에 대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
피고
원고들은 대기근무 시 피고의 지휘, 감독 하에 있지 않았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환경은 특별한 장소적 제약에 해당하지 않는다. 원고들이 대기근무 시 수행한 장애해결 업무는 통상근무에 비해 단속적으로 발생하였을 뿐이므로,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볼 수 없고, 실제 근로를 수행한 시간에 대해서만 임금을 지급하면 충분하다.
판단
근로시간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근로계약에 따른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을 말하고, 휴게시간이란 근로시간 도중에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부터 해방되어 근로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작업시간 도중에 실제로 작업에 종사하지 않은 휴식시간이나 대기시간이라 하더라도 근로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근로계약에서 정한 휴식시간이나 대기시간이 근로시간에 속하는지 휴게시간에 속하는지는 특정 업종이나 업무의 종류에 따라 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다. 이는 근로계약의 내용이나 해당 사업장에 적용되는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의 규정, 근로자가 제공하는 업무의 내용과 해당 사업장에서의 구체적 업무 방식, 휴게 중인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간섭이나 감독 여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휴게 장소의 구비 여부, 그 밖에 근로자의 실질적 휴식을 방해하거나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인정할 만한 사정이 있는지와 그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3다60807 판결 등 참조).
다음과 같은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앞서 든 증거, 갑 제4, 6, 7, 9 내지 12, 14, 21, 22호증, 을 제1 내지 4, 7 내지 9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이를 모두 포함)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다.
통상근무 시, CSS 소속 원고들은 피고의 지정된 좌석에서 근무하면서, 약 70%의 시간을 원격 지원을 통한 장애해결 업무 수행에 사용하고, 행정업무, 회의 참석, 자격증 습득, 교육 참여 등 다른 업무도 수행한다. PFE 소속 원고들은 주로 고객의 사업장에서 프로젝트 내지 케이스 별로 업무를 수행한다.
원고들은 대기근무 시 지정된 장소에서 근무하지 않고, 피고가 지급한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지참한다. 피고의 콜센터에 고객의 장애상황이 접수되면 콜센터 직원이 CSS 소속 원고들에게 이를 알리고, CSS 소속 원고들은 고객에게 전화로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인지, 다음 날 통상근무 시 해결되어도 괜찮은 것인지를 확인한 다음 즉시 해결이 필요한 경우에만 노트북 등을 통해 회사 업무프로그램에 접속하여 원격으로 문제 해결 작업을 시작한다(간단히 통화로 해결이 가능한 경우는 이를 통해 해결한다). 피고 내부에서 작성된 업무 가이드에 따르면, 고객과 접촉은 1시간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CSS 소속 원고들은 2시간 이내에 원격 지원으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거나 원격 지원이 불가능한 경우, '듀티 TAM'이라는 피고의 고객 관리 담당 매니저에게 연락을 취한다. 듀티 TAM은 PFE 소속 원고들 중 대기근무 순번인 사람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해당 엔지니어가 고객을 방문하여 장애해결 업무를 수행한다.
CSS 소속 원고들은 2015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34개월간, PFE 소속 원고들은 2015년 3월부터 2017년 1월까지 23개월간 대기근무를 하였다. 원고들이 수행한 대기근무일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접수 건수를 기준으로,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처리 건수 및 시간을 기준으로,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다만 CSS 소속 원고들의 경우, 자료를 추출한 원천이 달라 5)항에서 본 접수 건수보다 더 많이 처리한 경우가 발견되는 등, 5)항 기재와 같이 접수된 건수를 아래대로 처리했다는 의미로 볼 수는 없다].
피고는 원고들의 인사고과에 대기근무 시 처리된 업무에 관한 고객의 만족도를 반영하였고, 대기근무 시 휴대전화를 제대로 받지 않은 사례에 관하여 관리자가 해당 엔지니어에게 주의를 환기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기도 하였다.
피고는 원고들이 대기근무 중 실제로 장애해결 업무를 수행한 경우 그 시간에 대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모두 지급하였다. 원고들의 주장대로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대기한 시간까지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보려면, 장애해결 업무의 발생 빈도 및 강도가 통상근무와 마찬가지이고, 사실상 그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어 피고의 지휘·감독 아래 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본 사실과 앞서 든 증거, 을 제6호증의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정 등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들이 대기근무 시 업무를 수행하지 않은 시간까지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원고들이 통상근무 시 수행하는 업무와 비교할 때, 그 내용과 질이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
CSS 소속 원고들에게 3년간 평일 주간 합계 4,532건, 평일 야간 합계 376건, 주말 합계 160건이 접수되었다. 접수가 진행되는 시간 자체가 평일 야간이나 주말이 더 많다는 사실을 굳이 고려하지 않더라도[1주일에 평일 주간은 45시간(= 9시간 × 5일), 평일 야간은 75시간(= 15시간 × 5일), 주말은 48시간이다], 대기근무 시 접수 건수는 통상근무 시의 1/10에도 미치지 못한다.
CSS 소속 원고들은 통상근무 시 회사로 출근하여 지정된 좌석에서 지속적으로 다양한 난이도의 장애해결 업무를 수행하고, 그 외에도 행정업무, 회의 참석, 자격증 습득, 교육 참여 등 업무를 수행한다. 반면 대기근무 시에는 출근할 필요가 없고, 접수된 것 중 즉시 해결해야하는 장애 관련 업무만을 수행하였다. CSS 소속 원고들은 평균적으로 1달에 평일 야간 약 2.94일, 주말 약 1.88일의 대기근무를 수행하였는데, 1달의 대기근무 중 접수된 사건은 평일 야간 약 1.22건(≒ 376건 ÷ 9명 ÷ 34개월), 주말 약 0.52건(≒ 160건 ÷ 9명 ÷ 34개월)으로, 2, 3번의 대기근무당 1번의 업무가 접수되는 정도이므로, 장애해결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대기근무도 자주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고들이 일부 오류가 있는 통계에 따라 정리한 자료(갑 제12호증)이기는 하지만, 이에 따르더라도 대기근무 중 1일 평균 접수건수는 다음과 같이 약 0.3건 정도이다.
나. 6)항의 자료에 따르면, CSS 소속 원고들은 3년간 평일 야간에 656.6시간 동안 합계 291건을, 주말에 569.56시간 동안 184건을 처리했다. 건당 평균 처리시간은 평일 야간 약 2.25시간, 주말 약 3.09시간, 종합적으로 약 2.58시간에 불과하다. 결국 CSS 소속 원고들은 대기근무 시 장애해결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었고 업무가 발생하더라도 평균적으로 약 2.58시간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PFE 소속 원고들은 접수 건수와 처리 건수가 일치하므로 나.항에 표시된 자료를 함께 활용할 수 있다. PFE 소속 원고들은 23개월간 평일 야간 합계 318일, 주말 합계 140일 대기근무를 하였는데, 접수 및 처리된 것은 평일 야간 30건, 주말 18건에 그친다. 즉, 평균적으로 평일 야간에는 10번 근무에 1번도 업무가 발생하지 않았고, 주말에는 8번 근무에 1번 정도 업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 평균으로 보아도 1년 동안 평일 야간 10건, 주말 6건의 업무를 처리한 것에 불과하다. 건당 처리시간이 평균적으로 평일 야간 약 5.03시간(총 150.9시간 동안 30건 처리), 주말 약 7.76시간(총 139.8시간 동안 18건 처리)으로 적지는 않지만, 발생 빈도에 비추어 통상근무 시 수행하는 업무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원고들은 대기근무 시 다소간의 제약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 활용 또는 휴식이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보이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 시간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원고들은 대기근무 시 특정한 장소에 머무를 의무가 없었다. 원고들이 퇴근 후 주거지에 있다면 인터넷 접속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외출을 하더라도 노트북을 지참하여 인터넷 연결 커넥터나 휴대전화의 데이터 공유를 통해 업무 수행이 충분히 가능하므로, 비행기 탑승 등 장애해결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면 별다른 제한 없이 이동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근무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숙·일직 근무조차 근로시간으로 평가되지 않는 점에 비추어 보면(대법원 1995. 1. 20. 선고 93다46254 판결, 대법원 2000. 9. 22. 선고 99다7367 판결 등 참조), 원고들은 그보다 훨씬 자유로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장애해결 업무의 발생 빈도가 상당했다면, 원고들이 대기근무 시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그 빈도는 그리 높지 않았고 업무가 접수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으며, 발생하더라도 건당 평균적인 처리시간은 약 2~3시간 정도였다. 고객을 응대하기까지 1시간의 여유가 있었으므로, 다소간의 제약이 있더라도 시간의 자유로운 이용이 충분히 가능하고,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거나 휴식, 수면을 방해받을 정도의 대기 상태로 보기 어렵다. 실제로 음주가 가능한 피고 행사에 대기근무 중인 엔지니어가 참석한 예도 발견된다.
피고가 고객만족도를 평가하여 원고들의 고과를 매기거나 대기근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아 문제가 생겼을 때 관리자가 이에 관한 언급을 하는 것은 근로관계에서 당연히 가능한 것으로, 특별히 대기근무 시에 피고가 지휘·감독을 한다고 볼 만한 사정이라 하기 어렵다.
원고들은 경비원이나 고시원 총무 등의 예를 들며 대기근무 시간이 근로시간이라고도 주장하지만, 본래의 업무가 감시적, 단속적, 대기적 성격을 갖는 경비원 등을 원고들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원고들의 대기근무 형태는, 전체적으로는 근무의 밀도가 낮은 대기 업무에 가까우면서도 실제 장애해결 업무를 수행할 때에는 통상근무와 큰 차이가 없는, 대학병원의 당직근무자들과 유사하다(대법원 1996. 6. 28. 선고 94다14742 판결 등 참조, 피고는 이와 같은 대법원 판례 등 법률 검토를 거쳐 대기근무 제도를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들이 대기근무 중 실제로 근무한 시간에 대해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하면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결론
원고들의 청구는 모두 이유 없으므로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최형표(재판장) 박수진 배인영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