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가 2015. 10. 1. 원고에 대하여 한 해고는 무효임을 확인한다.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기초사실
당사자들의 지위
피고는 철강 제조 및 판매업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이고, 원고는 1997. 1. 23. 피고에 입사하여 피고 당진공장의 연구개발팀에서 대리로 근무하다가 2015. 10. 1.자로 퇴직한 사람이다.
원고의 퇴직 경위
피고는 2015. 8. 31. 열린 임원회의에서 지속적인 경영악화로 인한 인력감축 방안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같은 날 각 부서별로 팀장이 이를 소속 팀원들에게 설명한 후 가급적 과장대리급 이상의 모든 근로자들로부터 퇴직원(사직서)을 제출받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피고는 소속 근로자들로부터 퇴직원을 제출받았는데, 과장대리급 이상의 직원 98명 중 87명이 퇴직원을 제출하였고, 퇴직원 제출 대상이 아니었던 대리급 이하 직원 10명도 퇴직원을 제출하였다.
한편, 피고는 2015. 9. 30. 담당 팀장을 통하여 위와 같은 일괄적인 퇴직원 제출대상이 아니었던 원고, 소외 C, D에게 원고, C, D이 저성과자로 선정되었다는 점 등을 들어 사직을 권고하였고, 같은 날 원고, C, D으로부터 퇴직원을 제출받았다.
피고는 2015. 9. 30. 위 2)항 및 3)항 기재와 같이 퇴직원을 제출한 직원들 중 원고, C, D을 포함한 15명(과장대리급 이상 10명, 대리급 이하 5명)을 선별하여 해고대상자로 결정하였고, 같은 날 담당 팀장들을 통하여 해고대상자들의 퇴직원이 수리되었음을 구두로 통지하였다.
피고는 2015. 10. 5. 원고를 포함한 15명의 근로자들이 2015. 10. 1.자로 퇴직하였음을 알리는 인사발령을 회사전산망에 게시하여 공지하였다(이하 피고의 위와 같은 퇴직처분을 ‘이 사건 퇴직처분’이라 한다).
관련 사건 경과
이 사건 퇴직처분으로 퇴직한 근로자들 중 일부가 2015. 10. 23.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E)을 하였고, 위 위원회는 2015. 12. 18. 이 사건 퇴직처분이 부당해고라는 판단 아래 위 근로자들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판정을 내렸다(이하 ‘관련 구제신청 사건’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2016. 1. 29.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였으나, 2016. 4. 22. 기각 판정을 받았다(F).
이 사건 퇴직처분으로 퇴직한 근로자들 중 위 구제신청을 하지 않았던 나머지 근로자들 중 5명은 이 사건 퇴직처분이 실질적으로 해고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 법원 2017가합559174, 523783(병합)으로 해고 무효의 확인 및 미지급 임금의 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고, 위 법원은 2017. 12. 12. ‘위 근로자들이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희망퇴직을 신청하였다거나 사직권고를 받아들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위 근로자들에 대한 퇴직처분은 피고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따라 근로관계를 종료시킨 것으로 사실상 해고에 해당하므로 위 근로자들에 대한 퇴직처분은 부당해고로서 무효임을 확인하고, 피고는 위 근로자들에게 해고기간 동안의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위 판결에 대하여 피고가 서울고등법원 2018나2005452, 2018나2005469(병합)로 항소하였으나, 서울고등법원은 2018. 10. 5.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이에 피고가 대법원 2018다283421, 2018다283438(병합)로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이 2019. 1. 31.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이하 ’선행소송‘이라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4 내지 9, 11 내지 13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당사자들의 주장
원고의 주장
원고는 퇴직할 의사가 없었음에도 피고의 일방적인 퇴직원 제출 요구에 따라 퇴직원을 제출하였고, 피고가 원고의 퇴직원을 수리하는 이 사건 퇴직처분을 함으로써 퇴직하였는데, 이는 실질적으로는 피고의 일방적 의사에 의한 부당해고이다. 따라서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퇴직처분의 무효 확인을 구한다.
피고의 주장
본안전 항변
원고는 자발적으로 퇴직원을 제출한 이후 아무런 이의 없이 법정퇴직금과 월급 3개월 분의 퇴직위로금까지 수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로부터 무려 4년 6개월이 경과한 시점, 특히 다른 근로자들이 희망퇴직 또는 권고사직의 효력을 다투어 선행소송 판결이 확정된 후 1년 3월이 경과한 시점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으므로 이 사건 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 및 실효의 원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
본안에 관한 주장
원고는 피고의 사직권고에 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자발적으로 퇴직원을 제출함으로써 피고로부터 사직한 것일 뿐 피고의 강요나 종용으로 퇴직원을 제출한 것이 아니므로, 이 사건 퇴직처분은 해고에 해당하지 않는다.
판단
본안전항변에 관한 판단
관련 법리
일반적으로 권리의 행사는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하고 권리는 남용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권리자가 실제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도록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여 의무자인 상대방으로서도 이제는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신뢰할 만한 정당한 기대를 가지게 된 다음에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법질서 전체를 지배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결과가 될 때에는 이른바 실효의 원칙에 따라 그 권리의 행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하여 필요한 요건으로서의 실효기간(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길이와 의무자인 상대방이 권리가 행사되지 아니하리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우마다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장단과 함께 권리자측과 상대방측 쌍방의 사정 및 객관적으로 존재한 사정 등을 모두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다45827 판결 등 참조).
다만 사용자의 부당한 해고에 대해 실효의 원칙을 널리 적용할 경우, 해고에 정당한 이유를 요구하여 사용자의 해고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근로계약관계의 존속을 보장하고자 하는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제23조 등 해고제한 규정의 규범력을 떨어뜨릴 수 있고, 노사관계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근로계약관계를 규율하는 강행규정보다 실효의 원칙을 우선하여 적용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에는 근로계약관계의 존속을 보장하고자 하는 근로기준법의 해고제한 규정 등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사용자로부터 해고된 근로자가 퇴직금 등을 수령하면서 아무런 이의의 유보나 조건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해고의 효력을 인정하였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그로부터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 그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소를 제기하는 것은 신의칙이나 금반언의 원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으나, 다만 이와 같은 경우라도 해고의 효력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이를 다투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사정이 있다거나 그 외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상황 하에서 이를 수령하는 등 반대의 사정이 있음이 엿보이는 때에는, 명시적인 이의를 유보함이 없이 퇴직금을 수령한 경우라고 하여도 일률적으로 해고의 효력을 인정하였다고 보아서는 안된다(대법원 1996. 3. 8. 선고 95다51847 판결, 대법원 2003. 10. 10. 선고 2001다76229 판결, 대법원 2005. 11. 25. 선고 2005다38270 판결 등 참조).
구체적 검토
원고가 2015. 10. 1. 이 사건 퇴직처분 이후 퇴직금 및 퇴직위로금을 수령하였고 이로부터 약 4년 6개월 정도 경과하여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으며, 선행소송의 제1심판결이 선고된 2017. 12. 12.부터도 약 2년 4개월, 선행소송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도 약 1년 3개월이 경과하여서야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사실, 원고나 원고의 남편이 관련 구제신청 사건 또는 선행소송에서 근로자 측에 유리한 내용의 진술서 등을 제출하지 않은 사실, 원고가 이 사건 소 제기 이전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퇴직처분의 효력에 이의를 제기한 바 없는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거나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그러나 앞서 인정한 사실, 앞서 든 증거 및 갑 제2, 3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원고가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도록 퇴직원 제출의 효력 내지는 해고의 효력을 다투지 않았고, 상대방인 피고가 원고가 이를 다투지 아니할 것으로 신뢰할 만한 정당한 기대를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소제기가 신의칙이나 실효의 원칙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고 볼 수 없다.
실효기간 요건에 대한 평가
아래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가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길이가 원고의 권리를 실효시킬 정도의 기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 퇴직처분 당시 원고의 남편인 G이 피고의 당진공장에서 설비팀 과장대리로 근무 중이었는데, 원고로서는 이 사건 퇴직처분에 대하여 소제기 등의 권리행사를 할 경우 G에게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적어도 G이 피고를 퇴직한 2016. 3. 18.까지는 원고가 소제기 등의 권리행사를 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고와 함께 이 사건 퇴직처분으로 퇴직한 근로자들 중 일부가 관련 구제신청 사건을 제기하였기 때문에 원고로서는 이에 대한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기다릴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피고의 재심신청을 기각한 판단이 내려진 이후에도 피고가 복직한 일부 근로자들에 대하여 화장실 앞에 책상을 배치해놓고 근무하게 하거나 회의실에서 홀로 근무하게 하거나 업무에서 차별을 하였다는 점과 관련하여 고용노동부가 서울고용노동청에 피고에 대한 실태조사 등을 지시하는 등 피고의 부당처우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어 사회적 물의가 빚어졌고, 이로 인하여 원고 등 나머지 근로자들로서는 이 사건 퇴직처분에 대한 사법적 구제가 이루어지더라도 복직 등의 실효성에 관하여 의문이 제기되어 소제기 등을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원고와 함께 이 사건 퇴직처분으로 퇴직한 근로자들 중 일부가 위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 이후에 선행소송을 제기하였기 때문에(2016. 10. 4. 또는 2017. 4. 7. 소가 제기되었다), 이 사건 퇴직처분에 대한 법원의 사법적 판단을 기다릴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특히 위 근로자들 중에는 원고와 같이 권고사직의 방식으로 퇴직하였던 C, D이 포함되어 있어 퇴직처분의 정당성이 다투어지고 있었으므로 위 근로자들이 다투는 쟁점과 실질적으로 같은 쟁점을 가지고 있는 원고가 이에 관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린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으며, 위 근로자들이 대부분 승소한 제1심판결에 대하여 피고가 항소를 제기하였고,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 항소심판결에 대하여도 상고를 제기함으로써 법원의 사법적 판단이 확정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을 기다려 신중하게 권리행사를 한 것에 대하여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할 수 있다.
선행소송의 상고심 판결이 선고되어 선행소송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약 1년 3개월이 경과하여 이 사건 소가 제기되었는데, 그 기간의 간격이 원고의 이 사건 소제기가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정도로 긴 기간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원고가 위 상고심 판결이 선고되어 선행소송 판결이 확정된 사실을 바로 알았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 나) 신뢰부여 요건에 대한 평가
아래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는 이 사건 소제기를 예상할 수 있었고,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소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부여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 퇴직처분은 피고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피고는 사무직 전체 근로자의 절반, 퇴직원을 제출할 수 있는 과장대리급 이상 대부분 근로자로부터 일괄적으로 퇴직원을 징구하였으나, 퇴직원 징구와 수리 과정에서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여러 방법이 동원되었다.
피고의 퇴직처분에 따라 퇴직한 근로자들 중 일부는 그 직후인 2015. 10. 23.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하였다. 위 관련 구제신청 사건에서 구제신청을 하지 않았던 근로자들도 피고의 퇴직처분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하여 노동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위 구제신청을 제기하지 않았던 피고의 근로자들 중 5명은 위와 같은 피고의 퇴직처분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해고무효확인 등의 소를 제기하였는데, 위 근로자들 중에는 원고와 같이 권고사직의 방식으로 퇴직하였던 C, D이 포함되어 있었다.
① 이 사건 퇴직처분이 피고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이루어진 점, ② 관련 구제신청 사건이나 선행소송에서 이 사건 퇴직처분에 대하여 일관되게 부정적 평가가 이루어진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사건 퇴직처분의 부당함의 정도가 대단히 컸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③ 퇴직처분 직후부터 이 사건 퇴직처분의 적법성이 크게 문제 되었고, 실제로 일부 근로자들이 이를 문제 삼아 노동위원회에 대한 구제신청, 소제기 등이 잇달았는데, 피고가 위 구제신청과 선행소송에서 모두 패소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로서는 C, D과 같이 권고사직의 방식으로 퇴직하였던 원고의 이 사건 소제기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피고에게 원고가 더 이상 이 사건 퇴직처분의 효력을 다투지 않으리라는 신뢰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
피고는 원고의 남편인 G이 관련 구제신청 사건의 신청인으로부터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받고도 이를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였다는 점을 들어 원고의 소제기를 예상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나, 당시 G이 피고에 근무하고 있는 상황으로 인하여 위와 같은 요청에 응하는 것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피고가 주장하는 위 사유나 을 제30 내지 32호증의 각 기재만으로는 피고가 원고의 소제기를 예상할 수 없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
본안에 관한 판단
관련 법리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고 이를 수리하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다고 할지라도 사직의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게 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하고,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조치는 부당해고라고 할 것이다(대법원 1991. 7. 12. 선고 90다11554 판결, 대법원 1992. 3. 13. 선고 91다39085 판결, 대법원 1992. 7. 10. 선고 92다3809 판결 등 참조).
나아가 ‘의원면직이 실질적으로 해고에 해당하는지’는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하게 된 경위, 사직서의 기재 내용과 회사의 관행, 사용자 측의 퇴직권유 또는 종용의 방법, 강도 및 횟수,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불이익의 정도, 사직서 제출에 따른 경제적 이익의 제공 여부, 사직서 제출 전후 근로자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4다52575 판결, 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다255910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퇴직처분이 해고에 해당하는지 여부
원고를 포함한 피고의 근로자들에 대한 이 사건 퇴직처분은 피고의 구조조정 일환으로 ‘희망퇴직’ 또는 ‘권고사직’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희망퇴직 또는 권고사직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통상의 경우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근로자의 자발적인 퇴직을 유도한다’는 데 목적이 있지만, 근로자의 자발적인 의사에만 기대어서는 사용자가 구조조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계속 근무하기를 원하는 근로자는 퇴직하고 퇴직하기를 원하는 근로자는 계속 근무하게 되는’ 비효율적인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미리 퇴직대상자를 정해 놓고 퇴직을 권유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고지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또한, 사용자가 희망퇴직 또는 권고사직의 이름으로 해고사유와 방법 등을 엄격히 정한 근로기준법의 내용과 취지를 잠탈할 수도 있는 점에서, 퇴직의사의 ‘자발성’, ‘진의성’ 여부는 신중히 살필 필요가 있다.
앞서 든 각 증거, 갑 제10, 16, 17호증, 을 제18 내지 21호증의 각 기재, 증인 H, G의 각 증언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인정되는 다음 사정을 종합할 때, 원고가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사직권고를 받아들였다고 보기 어렵고, 원고에 대한 이 사건 퇴직처분은 피고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따라 근로관계를 종료시킨 것으로 실질적으로 해고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 사건 퇴직처분은 피고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이루어졌고, 피고의 요구에 따라 사무직 근로자의 절반, 희망퇴직대상자로 삼은 과장대리급 이상 근로자 대부분이 퇴직원을 제출하였다. 피고는 2015. 8. 31.(근로자들로부터 퇴직원을 접수하기 시작한 날) 이전에 소속 근로자에게 희망퇴직의 시행 여부나 조건, 희망퇴직대상자의 선정 기준 등을 고지한 적이 없고, 대부분의 근로자가 희망퇴직 시행을 통보받은 당일(2015. 8. 31.) 또는 그 다음 날 퇴직원을 제출하였다. 원고를 비롯하여 사직을 권고받은 근로자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위와 같은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의 실시 경위에 비추어 그 당시 직원들에게 퇴직원 제출 여부를 숙고할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피고의 근로자들이 제출한 퇴직원은 피고가 일률적으로 배부한 양식에 따라 작성되었고 퇴직사유 역시 대부분 “개인사유(사정)” 등으로 간단히 기재되었는데, 이는 원고의 경우도 동일하였다.
원고와 C, D의 경우 다른 근로자들과 달리 피고가 미리 퇴직대상자로 선정한 다음 사직을 권고하는 방식으로 퇴직원 제출을 요구하였다. 피고는 2015. 9. 30. 어떠한 예고나 사전 안내도 없는 상태에서 소속 팀장을 통하여 저성과자로 선정되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하여 원고가 해고대상자로 선정되었음을 통보하면서 원고에게 퇴직원 제출을 요구하였다. 원고는 피고로부터 위와 같은 통보를 받은 후 퇴직원을 제출하지 아니한 채 바로 귀가하였는데, 원고로서는 당초 퇴직원 제출 대상이 아니었으므로 위와 같은 통보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보이고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원고가 귀가하자 피고는 I 팀장을 통하여 원고의 남편인 G에게 원고로부터 퇴직원을 받아올 것을 요구하였으나 G이 이를 거절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일 원고에게 해고대상자로 선정되었음을 통보하며 사직을 권고한 피고 당진공장 연구개발팀장 H은 J와 함께 원고의 집에 찾아가 원고에게 퇴직원의 작성·제출을 종용하였고, 이에 따라 원고가 피고에게 퇴직원을 제출하였다. 한편 관련 구제신청 사건에서 피고의 대리인은 원고와 C, D과 관련하여 ‘피고 회사가 이들에게 강요해서 퇴직원을 받은 면이 있다’라고 진술하였다. 이와 같은 점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퇴직원을 제출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사직을 권고한 날에 집으로 돌아간 근로자의 집을 사직을 권고한 팀장 등이 방문하여 퇴직원을 받아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서 그 행위 자체로 퇴직 의사의 자발성을 인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특별한 사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피고는 ‘3년간 종합평가와 최근 역량평가를 각 50%씩 반영한 평가결과’에 따라 희망퇴직대상자 또는 권고사직대상자를 선정했다고 주장하지만, 취업규칙에도 규정되지 않은 ‘최근 역량평가’의 내용이나 방법이 사전에 근로자에게 제시되지 않았던 점이나 피고가 상당수의 퇴직원을 접수한 이후에 ‘최근 역량평가’를 시행하였던 점에서, 대부분 근로자가 ‘자신이 퇴직대상자에 해당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퇴직원을 제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피고는 퇴직원을 제출한 직원들 중 저성과자인 과장대리급 이상 10명과 대리급 이하 5명 합계 15명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퇴직원을 수리하였고, 출산휴가 직전 또는 출산휴가 이후 수개월 내인 여직원들이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대리급 이하 직원 5명은 원고를 포함하여 모두 여직원인데, 피고는 원고가 ‘저성과자’로 분류된 이유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평가기준 및 그 결과, 퇴직원 수리 기준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납득할만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원고는 주로 엔지니어로 구성된 연구개발팀에서 사무보조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원고는 저성과자여서가 아니라 사무보조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직 권고를 받은 것으로 보일 뿐이다).
피고는 희망퇴직을 기획하면서 ‘퇴직원을 제출하지 않은 근로자에 대해서는 평가결과에 따라 권고사직 형태로 근로관계를 종료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피고의 소속 팀장들은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을 경우, 연말에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안내하거나, ‘희망퇴직원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구조조정 대상자 선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바 있다. 피고는 원고에게 퇴직원 제출을 요구하면서 ‘원고가 저성과자로 평가되었다는 점, 퇴직원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구조조정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였다. 이와 같이 퇴직원을 제출하지 않게 될 경우 원고가 입게 될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로서는 퇴직원을 제출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는 다른 근로자들과 달리 원고의 경우 일괄적인 희망퇴직이 아닌 권고사직의 방식으로 퇴직하였고, 원고와 개별적, 구체적 협의의 과정을 거쳤으므로 이 사건 퇴직처분을 함에 있어 원고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주장하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퇴직처분이 피고의 일방적인 방침에 따른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자발적인 의사결정이 결여된 상태에서 퇴직원을 제출하였으며 이는 권고사직의 방식으로 퇴직한 원고나 C, D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선행소송에서 퇴직 의사의 자발성 등과 관련하여 희망퇴직한 근로자들과 권고사직의 방식으로 퇴직한 C, D에 대한 판단이 다르지 않았다), 특히 원고의 경우 원고가 퇴직원을 제출하지 아니한 채 귀가하자 피고는 연구개발팀 팀장 등을 통하여 원고에게 퇴직원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등의 추가적인 압박을 가하였고, 원고로서는 피고의 요구에 응하지 아니할 경우 향후 피고에 계속 근무해야 할 G에게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C이나 D의 경우 팀장으로부터 퇴직원 제출을 요구받고 즉시 퇴직원을 작성한 것과 달리 원고는 집으로 돌아간 후 퇴직원을 작성하였는데, 그 사이에 연구개발팀 팀장 등의 방문 등을 통한 추가적인 압박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사유를 원고의 자발적 의사를 추인하는 사정으로 볼 수는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다른 근로자들과 달리 일괄적인 희망퇴직이 아닌 권고사직의 방식으로 퇴직하는 과정에서 원고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피고는 원고에게 사직을 권고할 당시 원고의 남편 G이 이미 포항에 소재한 K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원고 역시 포항으로 주거를 이전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원고가 권고사직으로 퇴직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될 경제적인 불이익 등이 크다고 볼 수 없고, 원고는 회사의 사정, 자신과 가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모두 고려하여 그 당시 상황에서 퇴직원을 제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 사건 퇴직처분 당시 G이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거나 원고가 G과 함께 포항으로 주거를 이전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는 점, 피고는 원고가 권고사직 대상자라는 점을 고지하면서 퇴직금 외에 퇴직위로금으로 얼마를 지급할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던 점, 이후 피고가 지급하기로 한 퇴직위로금은 3개월 월급 정도에 불과하고, 위와 같이 피고가 제시한 경제적 이익의 정도는 퇴직에 따른 원고의 불이익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큰 것으로는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원고가 사직권고에 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자발적으로 퇴직원을 제출하여 사직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앞서 본 것처럼 퇴직 직후부터 피고의 일부 근로자들은 피고 관계자에게 피고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지침에 따라 이루어진 퇴직처분의 부당함을 강하게 호소하면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였던 점, 피고가 사직할 의사가 없는 원고에게 퇴직원 제출을 종용하여 퇴직원을 제출받았던 점 등을 고려하여 볼 때, 피고로서는 원고가 진정한 의사로 퇴직원을 제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해고가 정당한지 여부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의 원고에 대한 이 사건 퇴직처분이 관련 법령 및 피고의 취업규칙의 해고사유에 해당하고, 해고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는 등 관련 절차를 준수하여 실체적 또는 절차적인 면에서 정당한 이유가 있다거나 정리해고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소결론
따라서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한 2015. 10. 1.자 이 사건 퇴직처분은 부당해고로서 무효이고, 피고가 이를 다투는 이상 원고로서는 그 무효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마은혁(재판장) 장민경 오주훈
각주1) 신의칙을 위반한 소제기는 권리보호의 가치가 없는 소송으로서 소의 이익이 부인되므로, 피고의 신의칙 및 실효의 원칙 위배 주장을 본안전 항변으로 보고 판단한다(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다45827 판결 등 참조).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