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가 2019. 12. 19. 원고에 대하여 한 평균임금정정불승인 및 보험급여차액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처분의 경위
원고(B생)는 1986. 3. 1.부터 1990. 4. 30.까지 C탄광 D광업소에서 근무한 자로, 2005. 8. 4. 양쪽 귀에 ‘감각신경성 청력 소실’을 최초로 진단받은 후 2018. 2. 13. 피고에게 요양급여 및 장해급여 청구를 하였다.
피고는 2019. 5. 23. 원고에 대해 ‘소음성 난청’을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함과 동시에 장해등급 제6급을 결정하고, 그 무렵 원고에게 ‘산업재해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한다)에 따른 직업병 특례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된 장해보상일시금 60,469,050원을 지급하였다.
원고는 2019. 9. 11. 피고에게 ’장해보상일시금이 실제 임금이 아니라 한국광해관리공단이 직권으로 책정한 임금을 기초로 산정되었고 퇴직 당시 임금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므로, 고용노동부 평균임금산정특례고시 제5조에 따른 동종(유사) 근로자의 임금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하여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평균임금정정 신청 및 보험급여차액을 청구(이하 ’이 사건 신청‘이라 한다)하였다.
피고는 2019. 12. 19. 원고에 대하여 ’원고의 경우 근로기준법이 아닌 산재보험법 특례규정에 따른 평균임금이 더 높아 해당 금액이 적용되었으므로 정정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불승인하는 결정(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인정 근거] 갑 제1 내지 4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
이 법원의 심리 범위
당사자들의 주장
원고는 이 사건 소송에 이르러 이 사건 신청 당시 주장한 사유 대신 ’장해보상일시금은 진단서 발급일 당시 평균임금이 아닌 지급결정일 당시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여야 하므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의 위 주장은 이 사건 처분 당시 피고가 검토하지 않은 부분이므로, 이 사건 소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판단
행정소송법에 의무이행소송이 도입되지 않은 이상,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법원은 행정청이 거부처분을 하면서 제시한 처분사유 및 그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여 행정청이 쟁송단계에서 추가·변경한 처분사유에 한하여 심리·판단할 수 있고, 행정청이 제시하지 않은 사유까지 심리·판단하여서는 아니 된다(대법원 2013. 8. 22. 선고 2011두26589 판결 등 참조). 취소판결의 기속력과 판결의 취지에 따른 재처분의무(행정소송법 제30조 제1항, 제2항)는 확정판결에서 위법한 것으로 판단한 사유에만 미치며, 행정청은 절차적 위법사유를 보완하거나 또는 위법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지 아니한 다른 실체적 사유로 다시 거부처분을 할 수도 있다(대법원 2005. 1. 14. 선고 2003두13045 판결 등 참조).
거부처분 취소소송에 관하여 이러한 법리가 형성된 것은, 한편으로 행정청의 측면에서는 행정청이 행정절차에서 신청된 수익적 처분의 모든 요건을 일일이 심사하여 그 존부에 대한 판단 결과를 밝힐 의무가 없으므로, 행정청이 과거에 검토·판단하지 않은 사항에 관하여 행정청이 일차적으로 검토·판단할 수 있는 ‘행정의 선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행정상대방의 측면에서는 쟁송단계에서 행정청이 당초에 처분의 근거로 삼은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한 한도 내에서만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 허용함으로써 행정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하고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대법원 2003. 12. 11. 선고 2001두8827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에 의하면, 처분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처분발급이라는 종국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의 거부처분과 그에 대한 취소소송을 반복하는 상황에 처해질 수 있으므로, 그간 국민의 권리구제의 실효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많은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비판론이 제시하는 대안의 핵심은 거부처분에서는 제재처분에서와는 달리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 폭넓게 허용함으로써, 취소판결의 기속력의 범위를 확대하고 분쟁을 일회적으로 해결하자는 데에 있다. 현행 행정소송법상 행정청으로 하여금 쟁송단계에서 모든 거부사유를 주장하도록 강제할 법령상 근거가 없으나, 행정청이 과거에 그러한 사유에 관하여 이미 검토·판단하여 행정의 선결권을 행사한 바 있거나 또는 쟁송단계에서 행정의 선결권을 행사하여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을 희망하고 있고, 처분상대방인 원고도 법원이 그에 관하여 심리·판단해주길 희망하고 있다면, 행정청이 실질적으로 행정의 선결권을 행사한 사유에 관하여 법원이 심리·판단하는 것은 소송당사자 어느 쪽의 권한이나 권리를 실질적으로 침해하지 않아 위와 같은 법리의 기본정신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분쟁을 일회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므로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이 사건의 경우 당초 원고의 이 사건 신청 이유는 ‘고용노동부 평균임금산정특례고시에서 정한 동종(유사) 근로자의 임금을 평균임금으로 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으나, 이 사건 소송에 이르러서는 ‘이 사건 처분일이 아닌 진단서 발급일을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하고, 그 평균임금을 위 처분일까지 증감하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며 새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 피고는 이 사건 소장 부본을 송달받은 후 이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 ‘관련 법령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에 대한 장해급여 평균임금 산정 사유 발생일은 진단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하였고, 그로부터 약 2년 6개월이 경과한 2024. 7. 23.자 준비서면에서 비로소 ‘원고의 위 주장은 이 사건 신청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피고가 이 사건 처분 당시 검토한 바 없는 내용이므로, 이 사건 소의 판단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점, ㉡ 피고는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사건 처분과 같이 진단일과 장해급여지급결정일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다 하더라도 진단일 당시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장해급여를 산정해 왔고, 이 사건 답변서 및 2024. 7. 23.자 준비서면을 통해 위와 같은 산정방식이 옳다는 내용으로 주장하고 있는 점, ㉢ 원고도 이 사건 소장에서 새롭게 주장한 사유에 대해 법원이 심리·판단해주길 희망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는 이미 이 사건과 같은 소음성 난청의 경우 장해급여 평균임금 산정 사유 발생일을 지급결정일이 아닌 진단일로 보고 행정처분을 내리는 등 실질적으로 행정의 선결권을 행사한 바 있고, 그 선결권 행사 사유에 관하여 법원이 심리·판단하는 것은 원고와 피고 어느 한 쪽의 권한이나 권리를 실질적으로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분쟁을 일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 소송경제에 부합한다고 보인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원고가 주장하는 이 사건 처분의 위법 사유에 대해 판단하기로 한다.
이 사건 처분의 위법 여부
원고의 주장
근로기준법에서의 평균임금 및 산재보험법상 평균임금 증감 제도의 취지 등을 고려하면, 원고에 대한 장해급여는 진단일이 아닌 장해급여 지급 결정일까지 평균임금을 증감하여야 한다.
관련 법리
산재보험법 제36조 제3항 본문은 보험급여를 산정하는 경우 해당 근로자의 평균임금을 산정하여야 할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년이 지난 이후에는 매년 전체 근로자의 임금 평균액의 증감률에 따라 평균임금을 증감하되, 그 근로자의 연령이 60세에 도달한 이후에는 소비자물가변동률에 따라 평균임금을 증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평균임금의 증감 제도는 오랜 기간 보험급여를 받거나 오랜 기간이 지난 후 보험급여를 받을 때, 평균임금을 산정할 사유가 생긴 날이 재해일 또는 진단 확정일을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하여 보험급여액을 정할 경우 보험급여의 실질적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시정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대법원 2006. 9. 22. 선고 2004두2103 판결 참조).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자 하는 산재보험법의 입법 목적과 평균임금 증감 제도를 둔 취지에 아래와 같은 사정을 더하여 보면, 2010. 5. 20. 법률 제10305호로 개정된 산재보험법 시행 전에 지급 사유가 발생한 진폐에 대하여 장해보상일시금을 산정하는 경우 피고가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지급을 거부하거나 늦춤으로 인하여 보험급여의 실질적 가치가 하락한 경우에는 보험급여 지급결정일까지 평균임금을 증감해야 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24. 4. 16. 선고 2019두45616 판결 참조).
산재보험법 제36조 제3항 본문은 평균임금을 증감하여야 하는 경우를 특별히 한정하고 있지 않고, 평균임금 증감의 종기에 관해서도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피고는 ㉠ 유족보상연금이나 장해보상연금을 지급할 경우에는 평균임금 산정사유 발생일의 평균임금을 연금 지급 시까지 증감을 하고, ㉡ 유족보상일시금을 지급할 경우에는 사망 시까지 증감을 하며, ㉢ 평균임금 산정 사유 발생일 자체도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특정일로 앞당긴 후 증감을 하는(대법원 2007. 4. 26. 선고 2005두2810 판결에 따른 실무 처리) 등 보험급여의 실질적인 가치가 유지되도록 평균임금 증감의 시기나 종기를 다양하게 적용하여 평균임금을 증감하고 있다.
통상적인 경우에는 재해근로자가 장해를 진단 받아 장해보상일시금 지급사유가 발생하면 지급 신청을 하여 곧바로 피고로부터 지급결정을 받을 수 있으므로 장해 진단일부터 지급결정일까지 평균임금을 증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피고가 정당한 이유 없이 보험급여의 지급을 거부하거나 지급을 늦춘 경우에는 산재보험법은 지연보상을 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피고의 지급 거부나 지체가 불법행위에 이르지 않는 한 재해근로자가 손해를 보전 받기 어렵다. 이러한 제도 미비의 상황에서 부당한 지급거부 또는 지체 시 보험급여 지급결정일까지 평균임금을 증감하는 것은 재해근로자의 보호와 행정의 적법성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평균임금 증감 제도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판단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살피건대, 이 법원에 현저한 사실 및 앞서 본 사실관계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하거나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망인의 사망일을 기준으로 장해보상일시금을 산정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진폐근로자의 경우에는 요양 중이라도 장해급여를 지급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1999년에 선고된 바 있는데도 피고는 상당 기간 장해급여 부지급 처분을 해왔다. 피고는 2017. 5. 8.에서야 요양 중인 진폐근로자에 대하여 장해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 피고의 업무처리기준을 변경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진폐근로자에 대한 장해급여지급 청구를 거부하였다. 위와 같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선고·확정되자, 결국 피고는 2018. 2.경 내부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여 진폐근로자에게 장해급여 등을 지급하기 시작하였다.
피고의 위와 같은 업무지침은 진폐근로자 뿐만 아니라 탄광에서 근무하여 소음성 난청을 진단받은 근로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왔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원고는 2005. 8. 4. 소음성 난청을 진단받은 후 2016. 3. 24. 피고에게 최초 요양급여신청을 하였으나 피고로부터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부지급처분을 받았고, 피고의 업무지침이 변경된 이후인 2018. 2. 13. 재차 요양급여신청을 하여 2019. 5. 23. 피고로부터 장해등급결정 및 장해보상일시금지급을 받게 되었다.
원고에 대한 장해보상일시금 지급결정은 소음성 난청 진단일로부터 약 13년 9개월이 경과한 후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위와 같은 장해보상일시금 지급결정이 늦어진 이유에 정당한 사정이 있었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달리 원고의 잘못으로 지급 결정이 지체되었다고 볼 만한 사정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원고에 대한 소음성 난청 진단일과 장해보상일시금 지급결정일 사이의 시간적 간격을 감안하면, 위 진단일 당시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장해보상일시금을 산정할 경우 그 실질적 가치가 하락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인다.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손인희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