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판결

서울행정법원 2026. 4. 16. 선고 2024구단57180 판결

요양불승인처분취소

판결요지

반도체 사업장의 몰드 공정, 식각 공정 오퍼레이터로 약 14년 근무한 원고가 유방암을 진단받은 사안에서, 업무수행 과정에서 복합적·누적적으로 노출된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의 여러 화학물질과 전리방사선, 과로 및 교대근무라는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이 유방암을 발병 또는 악화시킨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충분한 개연성이 증명되었다고 판단하여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사례.

주문

1.

피고가 2023.12.28. 원고에 대하여 한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19**.*.**.생)는 20**.*.**. B 주식회사 C사업장(이하 ‘제1사업장’이라고 한다)에 입사하여 20**.*.**.까지 약 10년 8개월 동안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몰드 공정오퍼레이터로 근무하였고, 20**.*.**. D 주식회사 E사업장의 사내하청업체인 F 주식회사(이하 ‘제2사업장’이라고 한다)에 입사하여 20**.*.**.까지 약 3년 3개월 동안 반도체 클린룸 제조라인에서 식각(Etch) 공정 등의 오퍼레이터로 근무하였다.

나.

원고는 2021.6.14. G에서 ‘상세불명의 유방의 악성 신생물(왼쪽), 상세불명의 유방의 악성 신생물(오른쪽)’ 진단을 받고(이하 ‘이 사건 상병’이라고 한다), 2023.3.2. 피고에게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다.

피고는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아래와 같은 심의결과 등에 근거하여 이 사건 상병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1항제2호에 규정된 업무상질병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23.12.28. 원고에 대하여 요양불승인처분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4, 9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위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원고는 제1, 2사업장에서의 근무기간 내내 야간노동을 수반하는 교대근무(3교대)를 수행하며 지속적으로 과로하였고, 그 과정에서 여러 화학물질에도 수시로 노출되었다. 원고는 일반적인 유방암 호발 연령보다 이른 나이인 36세에 이 사건 상병을 진단받았고, 유방암과 관련된 병력이나 유전력 등의 개인적 요인이 별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하면, 이 사건 상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할 것임에도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나.

인정사실

갑 제4 내지 7, 9, 10, 17, 18, 19, 21호증, 을 제4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각 가지번호 포함, 이하 같다)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1)

반도체 제조 공정

가)

반도체는 아래 그림과 같이 실리콘 웨이퍼(실리콘 원기둥을 얇게 절단한 후 한쪽 면을 거울같이 연마하여 만든 원판) 제조, 회로 설계 및 마스크 제작, 웨이퍼 가공, 칩조립 등의 절차를 거쳐 생산된다.

나)

웨이퍼 가공 공정은 웨이퍼 표면에 여러 종류의 막을 형성하거나 마스크를 사용하여 전자회로를 그려 넣고 특정 부분을 선택적으로 깎아내는 작업을 되풀이함으로써 전자회로를 구성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서 통상 ‘FAB(Fabrication)’이라고도 불리고, 칩 조립 공정은 웨이퍼 가공라인에서 가공된 웨이퍼를 개개의 칩으로 잘라 회로기판에 붙이고 각종 테스트를 거쳐 완제품을 생산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다)

웨이퍼 가공 공정은 ① 웨이퍼 표면에 실리콘 산화막을 형성하는 확산 공정(Diffusion), ② 웨이퍼에 감광 성질을 가지고 있는 감광액 포토레지스트(PR)를 도포한 후 마스크 패턴을 올려놓고 자외선(UV) 등의 빛을 쬐어 회로패턴을 형성하는 포토 공정(Photo lithography), ③ 웨이퍼에 형성된 회로패턴을 완성하기 위해 산·알칼리 용액 등 또는 반응성 가스를 이용하여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식각 공정(Etch), ④ 웨이퍼 표면에 화학적 또는 물리적 방법으로 전도성 또는 절연성 박막을 형성시키는 증착 공정(Deposition), ⑤ 반도체에 전도성을 부여하기 위해 비소, 인, 붕소 이온 등의 불순물(Dopant)을 주입하는 이온주입 공정(Ion Implantation), ⑥ 웨이퍼 가공 과정에서 생성된 웨이퍼 표면의 산화막 등을 화학적 또는 물리적 방법으로 연마하여 평탄하게 하는 연마공정(Chemical Mechanical Polishing) 등 6개의 세부 공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식각 공정은 무기산 및 염기성 물질을 이용하여 실리콘 산화막, 감광액 등을 식각하는 습식방법과 반응성 가스 등을 이온화하여 식각될 표면과의 충돌 및 반응 등을 통해 식각하는 건식방법으로 구분된다.

라)

칩 조립 공정은 ① 가공라인에서 가공된 웨이퍼의 뒷면을 얇게 갈아주는 후면 연마 공정(Back Grind 또는 Back Lap), ② 가공된 웨이퍼를 낱개의 칩으로 자르는 웨이퍼 절단공정(Wafer Saw), ③ 잘려진 칩을 리드프레임[Lead Frame, 반도체 칩과 외부 회로를 연결시켜 주는 전선(Lead) 역할과 반도체 패키지를 전자 회로기판에 고정시켜 주는 버팀대(Frame) 역할을 동시에 하는 재료] 등과 같은 회로기판에 붙이는 칩 접착 공정(Die Attach), ④ 외부환경으로부터 칩을 보호하기 위하여 에폭시수지, 페놀수지, 실리카 등으로 구성된 에폭시몰딩컴파운드(EMC)를 사용하여 칩을 감싸주는 몰드공정(Mold), ⑤ 레이저나 잉크를 이용하여 반도체 칩에 고유번호 등을 인쇄하는 인쇄공정(Marking), ⑥ 리드프레임(Lead Frame)의 부식을 막고 전기적 특성을 양호하게 하기 위하여 주석 등으로 도금하는 도금 공정(Plating), ⑦ 회로기판에 플럭스(Flux)를 도포하고 솔더볼(Solder Ball)을 붙여주는 솔더볼 부착 공정(Solder Ball Mount 또는 Solder Ball Attach), ⑧ 반도체 칩에 열이나 전기적 스트레스를 주면서 테스트를 하는 열적테스트 공정(Test During Bum-in 또는 Monitorung Bum-in Test) 등 8개의 세부 공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원고의 근무형태, 업무내용 등

가)

제1사업장

(1)

원고는 20**.*.**.부터 20**.*.**.까지 약 10년 8개월 동안 제1사업장에서 주로 몰드 공정 오퍼레이터로 근무하였다.

(2)

원고는 입사 후 20**년경까지 3조 3교대 형태로 근무하다가 그 후 4조 3교대 형태로 근무하였다.

(3)

원고는 오전조(6시~14시)→오후조(14시~22시)→야간조(22시~6시) 순으로 6일 간 근무한 후 2일을 쉬었고, 위 교대조는 역순으로 변경되기도 하였다.

나)

제2사업장

(1)

원고는 20**.*.**.부터 20**.*.**.까지 약 3년 3개월 동안 제2사업장에서 주로 식각 공정 오퍼레이터로 근무하였다.

(2)

원고는 제2사업장에서도 3교대제 근무를 하였다(오전조: 7시~15시, 오후조: 15시~23시, 야간조: 23시~7시).

3)

동료 근로자의 진술

20**년경부터 제1사업장의 몰드 공정에서 원고와 함께 근무한 I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4)

원고의 건강상태

가)

원고는 19**.*.**. 출생하였고, 제1, 2 사업장에서의 근무 외에 이 사건 상병과 관계된 유해물질에 노출될 위험을 내포한 업무를 수행한 이력은 발견되지 않는다.

나)

원고에게는 이 사건 상병 발병 전 그 원인이 될 수 있는 질환과 이에 대한 치료 등의 질병력이 없다. 원고는 비만이 아니며, 이 사건 상병과 관련된 가족력이나 유전자 변이도 확인되지 않는다.

다)

원고는 2020년과 2021년 특수건강진단에서 ‘허리, 팔, 다리, 어깨가 아프다.’, ‘피로감을 많이 느낀다.’라는 증상을 호소하였다.

라)

원고는 2021.6.14. 이 사건 상병을 진단받았다.

5)

반도체 공정에 관한 작업환경 연구결과

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반도체 제조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작업환경 및 유해요인 노출특성 연구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국내 반도체 제조 사업장의 웨이퍼 가공라인과 반도체 조립라인을 대상으로 공정별 화학물질, 방사선 등의 유해요인 노출특성 등을 연구하여 2012년 2월 그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반도체산업 근로자를 위한 건강관리 길잡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 반도체회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위 가)항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웨이퍼 가공 및 조립 과정에서의 화학물질과 설비들에 의한 건강상 유해위험요인을 소개하고 작업환경관리와 건강관리를 하기 위한 목적에서 2012년 9월 ‘반도체산업 근로자를 위한 건강관리 길잡이’를 발표하였다. 위 연구결과에서 지적한 웨이퍼 가공 공정 및 칩 조립 공정에서 사용, 발생되는 화학물질과 유해위험 등은 아래 표 기재와 같다.

6)

의학적 소견

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결과

나)

이 법원의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직업환경의학과)

다.

판단

1)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 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 제도는 간접적으로 근로자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개선되도록 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고, 궁극적으로 경제·산업 발전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갈등과 비용을 줄여 안정적으로 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전통적인 산업 분야에서는 산업재해 발생의 원인이 어느 정도 규명되어 있다. 그러나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작업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이른바 ‘직업병’에 대한 경험적·이론적 연구결과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첨단산업은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빈번히 바뀌고 화학물질 그 자체나 작업방식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우 산업재해의 존부와 발생의 원인을 사후적으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사업장이 개별적인 화학물질의 사용에 관한 법령상 기준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그것만으로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작업현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화학물질에서 유해한 부산물이 나오고 근로자가 이러한 화학물질 등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어 원인이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데, 이러한 위험을 미리 방지할 정도로 법령상 규제 기준이 마련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첨단산업 분야의 경우 수많은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대책이나 교육 역시 불충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사회보장제도로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대한 보호를 강화함과 동시에 규범적 차원에서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무과실 책임을 전제로 한 것으로 기업 등 사업자의 과실 유무를 묻지 않고 산업재해에 대해 보상을 하되, 사회 전체가 비용을 분담하도록 한다. 산업사회가 원활하게 유지·발전하도록 하는 윤활유와 같은 이러한 기능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첨단산업은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힐 수도 있는데, 그러한 위험을 대비하는 보험은 근로자의 희생을 보상하면서도 첨단산업의 발전을 장려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해관계 조정 등의 필요성과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사회적 기능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지급 여부에 결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하는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규범적으로 조화롭게 반영되어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 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 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4.9. 선고 2003두12530 판결, 대법원 2008.5.15. 선고 2008두3821 판결 등 참조). 위에서 보았듯이 첨단산업 분야에서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율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율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群)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율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율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8.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등 참조).

2)

구체적 판단

앞서 본 관련 법리와 헌법상 사회국가원리(헌법 제34조),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한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입법 목적, 유해물질 노출 여부나 그 노출량 등 과거의 작업환경을 근로자가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점, 피고에게는 사업장을 조사하는 등 작업환경의 불명확함을 해소할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점(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7조)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칙과 사회통념의 관점에서 보아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될 정도로만 증명되면 족하다고 할 것이다.

위 인정사실과 앞서 든 증거들, 갑 제11 내지 16, 20, 22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고려하면, 원고가 제1, 2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복합적·누적적으로 노출된 여러 유해화학물질, 전리방사선, 과로 및 교대근무 등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이 이 사건 상병을 발병 또는 악화시킨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충분한 개연성이 증명되었다고 판단된다. 업무상 질병의 인과관계 증명의 정도에 관한 위와 같은 기준에 따르면, 이 사건 상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합당하다.

가)

이 사건 상병은 그 발병원인이 명확하게 특정되지 않았고, 이 법원의 진료기록 감정의도 유해화학물질, 전리방사선, 교대근무 등이 이 사건 상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만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2년도 연구결과에 의하면, 반도체 웨이퍼 가공 공정에서 아세톤, 벤젠 등의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포름알데히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특히 식각 공정에서는 암모니아, 불산, 염산, 질산, 황산 등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이 작업에 사용되거나 부산물로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칩 조립 공정에서도 아세톤, 벤젠 등의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포름알데히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특히 몰드 공정에서는 벤젠, 포름알데히드의 농도가 다른 공정에 비해 더욱 높은 수준으로 측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유해물질들은 의학적으로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만한 발암물질로 인정되고 있거나 상당한 정도의 의심을 받고 있는 물질들이다. 제1, 2사업장의 유해화학물질의 농도가 작업환경 측정 당시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더라도, 원고가 그러한 환경에서 약 14년 동안 근무한 것임을 고려하면, 누적된 유해화학물질의 정도가 이 사건 상병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을 개연성이 존재한다. 특정한 시기에 각 공정, 작업장소마다 일회성으로 측정하는 방식을 통해 나타난 결과는 원고의 실제 작업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 있어 이러한 개연성을 배제할 정도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여기에 더하여 원고의 유해화학물질 노출 수준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사고성 노출의 가능성, 즉 작업 당시의 상황에 따라 순간적으로 고농도·다량의 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여야 한다.

나)

원고가 가장 오래 근무한 몰드 공정에서는 180°C 정도의 열로 에폭시몰딩컴파운드(EMC)를 녹여 칩에 코팅을 하는 작업이 포함되어 있어 원고는 그 구성성분인 카본블랙, 실리카, 삼산화안티몬 등과 에폭시수지나 페놀수지의 열분해 산물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에 직접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경화(Cure) 과정, 특히 오븐의 문을 여는 작업을 하면서도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원고가 제2사업장에서 담당한 식각 공정에서도 포토 공정에서 사용되었다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채 웨이퍼와 함께 전달된 감광액 포토레지스트(PR) 성분이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휘발성 유기물질 및 각종 부산물과 가스물질 및 각종 부산물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피고는 원고와 유사한 조건인 제1사업장 또는 몰드 공정에서 근무하였다가 유방암, 폐암 진단을 받은 근로자들에 대하여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주기도 하였다.

다)

나아가 반도체 사업장은 클린룸 설비와 환기시스템의 특성상 인근 공정 간에 공기의 혼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2년도 연구결과에 의하여 뒷받침된다. 이에 따르면, 원고의 경우 몰드 공정, 식각 공정 외에 다른 공정도 담당하였다는 자신의 주장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다른 공정에서 발생한 여러 유해물질에도 일부 노출되었다는 점만큼은 인정받을 수 있다.

라)

원고가 제1사업장에서 주로 몰드 공정에서 근무하기는 하였으나, X-선 검사 공정에서 근무하며 전리방사선에도 상당기간 노출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추론은 ‘오퍼레이터들이 엑스레이 작업을 하는 공간을 수시로 출입하여 검사를 하였는데, 납차폐 앞치마를 착용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오는 방사선 노출 수준은 그냥 햇빛에 노출되는 수준이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오퍼레이터들이 불량 검사 등을 하기 위해서 엑스레이실에 자재를 가져갔고, 2년 정도 엑스레이 작업을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엑스레이 작업을 하는 사람을 별도로 두었다.’라는 동료 근로자 작성의 진술서 기재내용을 통하여 가능하다. 위 진술서 기재내용을 믿게 못하게 할 사실·증거는 주장·제출된 바가 없다.

마)

또한 위 동료 근로자 작성의 진술서에 의하면, 원고가 근무할 당시 제1사업장은 악취와 분진 발생이 심하였고, 근로자들이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유해물질로 의심되는 물질들을 취급하였으며, 이오나이저가 일으키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작업을 하고, 환기장치의 고장과 경보음의 미작동에도 작업수행을 계속하는 등 작업환경이 다소 비정상적이었으며, 근로자들이 열악한 근무조건(낮은 임금 및 복지 수준, 강도높은 노동시간 등)에서 오는 상당한 정도의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 근로를 제공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제1사업장이 근로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할 안전설비 등을 충분히 갖추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불합리하다고는 볼 수 없다.

바)

주·야간 교대근무와 과로를 하는 경우 취침시간의 불규칙, 수면 부족, 생활리듬 및 생체리듬의 혼란으로 피로와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그 자체로 질병을 촉발하거나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신체의 면역력을 저하시켜 질병의 발병·악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원고는 제1, 2사업장 근무기간 동안 대부분 3교대 근무를 하였고 이른바 잔업이라는 연장근로도 빈번하게 수행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피로가 누적되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다. 국제암연구소가 주·야간 교대근무와 암 사이에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로 야간 교대제 근무를 인체발암추정물질 그룹으로 분류한 점에 비추어 보면, 원고의 근무기간 중의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고의 면역력을 약화시킴으로써 면역력과 큰 관련성을 갖는 이 사건 상병의 발병 및 진행 촉진에 중요한 인자로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함이 타당하다.

사)

피고가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시한 처분사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정당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

(1)

비록 미미한 정도라 하더라도 반도체사업장에서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물질이 검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2년도 연구 결과를 통해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원고가 수행한 몰드 공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유해물질과 노출 정도 등 제1사업장의 작업환경을 파악해보려는 노력을 별달리 기울이지 않은 채 ‘몰드 공정의 작업 내용상 신청 상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러한 판단에는 구체적인 논거가 결여되어 있다.

(2)

원고는 피고에게 제1사업장에서 엑스레이(방사선)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몰드 공정과 같은 공간에 엑스레이실이 있다.’, ‘멜라민 한 뒤에 첫 샷은 무조건 엑스레이를 봐야 하므로 최소한 하루에 한번은 엑스레이실에 방문해 엑스레이 검사 담당자에게 검사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라고 하며 그 근거도 구체적으로 진술하였다. 그런데 피고는 이러한 진술을 배척할 만한 근거도 갖추지 않은 채 원고가 주로 몰드 공정에서 근무하였다는 사정만으로 만연히 ‘방사선에 노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아)

원고는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 유방암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적 소인, 병력이나 가족력, 생활습관 등과도 무관하였다. 그 결과 ‘직업적 요인’ 이외에 원고에게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원인으로는 단지 ‘이 사건 상병이 뚜렷한 원인 없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였을 개연성’만을 상정할 수 있다(피고도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간의 인과관계를 추상적으로 부인하고 있을 뿐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만한 다른 원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에 대해서는 여러 유해화학물질, 전리방사선, 과로 및 교대근무라는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와의 연관성이 단절되지 않는 점, 원고의 동료 근로자가 한 제1사업장의 작업환경에 관한 진술, 원고가 대한민국 여성들 사이에서 유방암이 호발하는 연령대(40대 39.8%, 40세 이하 약 15%)보다 이른 만 35세라는 나이에 이 사건 상병을 진단받았던 점, 원고가 제1사업장에서 근무한 이후 그리고 제2사업장에서 근무하던 도중에 이 사건 상병을 진단받아 업무 수행과의 시간적 밀접성도 높은 점, 제1사업장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한 다수의 근로자들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백혈병, 유방암, 폐암 등이 발병하여 투병생활을 하였던 점, 제2사업장에서도 유방암 등의 직업병이 발병한 근로자들에게 지원보상을 한 점 등에 기초하여 살펴보면,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두 가지 개연성, 즉 ‘직업적 요인으로 발생하였을 개연성’과 ‘자연적으로 발생할 개연성’ 가운데 여러 구체적인 근거를 갖춘 전자의 개연성이 추상적인 근거만을 갖춘 후자의 개연성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됨이 합리적이다.

자)

더욱이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수 있는 여러 유해화학물질들과 전리방사선, 과로 및 교대근무라는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인에 원고가 복합적으로 노출되고 그것이 근무기간에 비례하여 장기간 이어진 경우에는 각각의 유해요인들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유해성이 더욱 증대되었을 가능성도 간과하기 어렵다.

차)

이 법원의 감정의는 원고에게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만한 직업적 유해요인과 개인적 요인, 원고의 작업 내용 및 근무 기간 등을 두루 고려하여 이 사건 상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의학적 소견을 제시하였다. 감정인이 법원의 촉탁에 따라 전문적인 학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출한 감정 결과는 경험칙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없는 등의 현저한 잘못이 없는 한 이를 존중하여야 하고, 감정 과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거나 그 신빙성을 명백히 탄핵할 수 있을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현출되는 경우에만 이를 배척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라.

소결론

이와 달리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