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원고가 당심에서 추가한 예비적 청구를 기각한다.
항소비용과 예비적 청구로 인한 소송비용은 모두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기초사실
원고는 2001. 1. 10.부터 피고의 건설장비사업본부 수원경기지사 B으로 근무하면서 건설장비 판매 등의 업무를 담당하다가 2004. 3. 25. 퇴직하였다.
그런데 2004년 3월 경 피고의 조사 과정에서, 원고가 법인고객을 유치하기 차원에서 중고건설장비연계 조건(피고의 건설장비를 신규로 구입하는 고객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중고 건설장비를 피고가 인수하는 방식의 거래를 말한다. 이 경우 원고 등 판매직원은 건설장비의 판매대금에서 위 중고건설장비의 인수대금을 공제한 나머지 대금만을 우선 피고에게 입금하고 이후 위 인수한 중고건설장비를 다른 곳에 처분하여 그 판매대금을 피고에게 입금시킴으로써 피고는 관련 비용을 회수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의 거래가 아님에도 중고건설장비연계 조건인 것처럼 관련 서류를 작성하여 피고로부터 중고장비구입 수수료를 받은 후 거래 상대방의 구매담당자에게 위 수수료를 교부함으로써 이익을 제공하고, 이후 피고에게 해당 중고장비의 처분대금 명목으로 용인중장비 발행의 약속어음을 교부하였는데 위 약속어음이 부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에 원고는 2004. 3. 16. 피고에게, 위와 같이 피고의 중고차처리지침을 위반하게 된 경위에 관한 보고서(을 제4호증), 위 위법행위로 인한 피고의 미수금(이하 '이 사건 미수금'이라 한다)에 관한 내역서(을 제5호증) 및 '영업활동의 과정에서 중고차 처리지침을 위반하였으며 B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규정을 어긴 것에 대하여 깊은 반성과 함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는 취지로 기재한 시말서(을 제3호증) 등을 작성하여 교부하였다.
또한 원고는 2014. 3. 16. 피고에게 아래와 같이 원고의 퇴직금채권과 이 사건 미수금을 상계하고 부족한 금원은 직접 현금으로 입금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 사건 미수금을 상환하겠다는 내용의 입금각서(이하 '이 사건 각서'라 한다)를 작성하여 주었다.
원고는 2004. 3. 17. 이 사건 각서 상의 용인중장비 지급금 2,000만 원을 피고에게 송금하였다.
피고는 2004. 5. 11. 원고에게 퇴직급여 총 24,875,529원(원고의 법정퇴직금과 미지급 급여 및 상여 등을 합한 금액이다)에서 가지급금 11,210,863원과 원고가 부담하여야 하는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 본인 부담부분 등을 공제한 후 나머지 13,123,799원을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하였는데, 위와 같이 공제된 가지급금에는 원고가 이 사건 각서에 따라 피고에게 지급하기로 한 C에 대한 미수채권 1,050만 원(이하 '이 사건 제1공제금'이라 한다)이 포함되어 있었다.
피고는 2004. 10. 19.자 내용증명우편으로 원고에게 2004. 10. 30.까지 D과 E의 미수금채권 합계 43,970,000원을 입금할 것을 요구하였고, 원고는 2005. 1. 31. 그 중 14,391,000원(이하 '이 사건 회수금'이라 한다)을 피고의 계좌로 이체하여 주었다.
한편, 원고는 퇴직 후 피고의 G대리점을 운영하였는데, 피고는 원고에 대한 2005년 5월분부터 같은 해 8월분까지의 대리점 수수료 합계 167,602,487원 중 합계 33,854,727원(원고가 청구취지에 기재한 '33,800,727원'은 '33,854,727원'을 잘못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이하 '이 사건 제2공제금'이라 하고, 위 제1, 2공제금을 통틀어 '이 사건 각 공제금'이라 한다)을 공제하고 2005. 6. 7.부터 2005. 9. 23.까지 합계 133,747,760원을 원고에게 지급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3 내지 7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 을 제1 내지 5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원고의 주장
주위적 청구원인에 대한 주장
피고는 원고가 재직 당시 피고의 중고차 처리지침을 위반하여 업무를 처리함에 따라 피고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그 손해배상채권으로 원고의 피고에 대한 퇴직금 및 수수료채권과 상계하여 이 사건 각 공제금을 뺀 나머지만을 지급하였고, 2005. 1. 31. 원고로부터 이 사건 회수금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원고는 재직 당시 피고의 업무지침을 위반한 사실이 없고, 피고가 이 사건 각 공제금을 공제하고 원고로부터 이 사건 회수금을 지급받은 것은 피고가 회수하지 못한 미수금을 원고에게 전가한 것인바, 피고의 위와 같은 상계는 그 자동채권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고로부터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동의를 받은 바 없어 임금 전액지급의 원칙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 및 임금 지급사유 발생일로부터 14일 이내의 금품청산 원칙을 규정한 같은 법 제36조에 위반하여 무효이고, 위 상계 및 이 사건 회수금의 회수는 피고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강압적으로 행한 것으로서 민법 제103조에서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에 해당하고, 피고와의 대리점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는 원고의 궁박한 상황을 이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민법 제104조에서 정한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여 무효이다.
피고는 이와 같은 무효인 상계 및 이 사건 회수금의 회수를 통하여 법률상 원인 없이 이 사건 각 공제금 및 회수금 상당액의 이익을 얻고 원고에게 손해를 입혔으므로, 원고에게 이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
예비적 청구원인에 대한 주장
설사 피고의 부당이득반환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한 상계가 무효인 이상 이 사건 각 공제금 상당액에 관한 원고의 퇴직금 및 수수료지급청구권은 소멸하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각 공제금 상당액의 미지급 퇴직금 및 수수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주위적 청구(부당이득반환청구)에 관한 판단
이 사건 각 공제금 상당액의 부당이득반환청구에 대하여
상계 또는 상계계약이 자동채권의 부존재 등의 이유로 효력이 없다면 그 대상이 된 상대방의 수동채권은 소멸하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므로 상계 또는 상계계약을 내세워 수동채권의 소멸을 주장하는 자가 단순히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만으로는 법률상 원인 없이 이익을 얻었다고 할 수 없고, 그 채권이 이후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채권 소멸로 인한 이득은 소멸시효라는 별개의 법률상 원인에 기초한 것일 뿐이므로 채무자가 법률상 원인 없이 이익을 얻었다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1992. 5. 12. 선고 91다28979 판결, 대법원 2005. 4. 28. 선고 2005다3113 판결 등 참조).
그러므로 원고의 주장대로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할 퇴직급여 및 수수료에서 이 사건 각 공제금을 상계한 행위가 무효라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피고가 법률상 원인 없이 이익을 얻고 원고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할 수는 없다.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이 사건 회수금 상당액의 부당이득반환청구에 대하여
민법 제103조에서 정하는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는 법률행위의 목적인 권리의무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 내용 자체는 반사회질서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여도 법적으로 이를 강제하거나 법률행위에 사회질서의 근간에 반하는 조건 또는 금전적인 대가가 결부됨으로써 그 법률행위가 반사회질서적 성질을 띠게 되는 경우 및 표시되거나 상대방에게 알려진 법률행위의 동기가 반사회질서적인 경우를 포함한다(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다37251 판결 등 참조).
또한 민법 제104조에 규정된 불공정한 법률행위는 객관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하고, 주관적으로 그와 같이 균형을 잃은 거래가 피해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하여 이루어진 경우에 성립하는 것으로서, 약자적 지위에 있는 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한 폭리행위를 규제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고, 불공정한 법률행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인 궁박, 경솔, 무경험은 모두 구비되어야 하는 요건이 아니라 그 중 일부만 갖추어져도 충분한데, 여기에서 '궁박'이라 함은 '급박한 곤궁'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경제적 원인에 기인할 수도 있고 정신적 또는 심리적 원인에 기인할 수도 있으며, '무경험'이라 함은 일반적인 생활체험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어느 특정영역에 있어서의 경험부족이 아니라 거래일반에 대한 경험부족을 뜻하고, 당사자가 궁박 또는 무경험의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는 그의 나이와 직업, 교육 및 사회경험의 정도, 재산 상태 및 그가 처한 상황의 절박성의 정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며, 한편 피해 당사자가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의 상태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상대방 당사자에게 그와 같은 피해 당사자 측의 사정을 알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의사, 즉 폭리행위의 악의가 없었다거나 또는 객관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하지 아니한다면 불공정 법률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대법원 2002. 10. 22. 선고 2002다38927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으로 돌아와 보건대, 갑 제1, 8, 9호증, 을 제3, 4, 5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이 사건 각서와 그 경위에 관한 시말서 등이 작성된 시기는 2004. 2. 29.경부터 원고의 퇴직일 이전인 2014. 3. 16.경인 점, 피고가 대리점계약 지원자 면접을 실시한 일시는 2004. 3. 15.인 점, 원고는 피고 대리점계약의 지원자로서 대리점계약체결을 앞두고 있었던 시기인 점, 피고는 당시 원고와의 대리점계약체결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있었고, 원고가 떠안은 미수금채권은 피고의 판매활동과 관련한 채권인 점, 피고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원고가 매출증대를 위해 편법적인 영업을 하였다는 것일 뿐 원고가 개인적으로 착복하였다는 취지가 아닌 점, 피고는 원고가 요청한 계약조건처리전을 건별로 결재하여 왔으므로 원고의 편법운영을 충분히 감독할 수 있었던 점 등의 사정은 인정된다.
그러나 한편, 원고가 법인고객을 유치하는 차원에서 중고장비연계조건의 거래가 아님에도 중고장비연계조건의 거래인 것처럼 허위의 서류를 작성하여 피고로부터 중고차수수료를 받아 이를 거래상대방의 구매담당자 등에게 리베이트 명목으로 교부하고, 중고차 처분대금을 용인중장비 발행의 약속어음으로 결제하도록 하였으나 용인중장비의 부도로 미수금채권이 발생한 사실, 원고가 위 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하고 그 구체적인 이행방법으로 이 사건 각서를 작성하였음은 앞서 본 바와 같은바, 위 사실에 의하면 원고가 피고의 중고차처리지침을 위반함으로써 피고가 이 사건 각서에 기재된 금원 상당의 손해를 입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는 원고가 퇴직할 당시 원고에 대하여 이 사건 각 공제금 및 회수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을 보유하고 있엇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다가 갑 제1호증, 을 제3, 4, 5호증의 각 기재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① 원고가 작성하여 피고에게 교부한 이 사건 각서, 시말서, 보고서 등은 모두 원고가 자필로 그 내용을 기재하고 주소와 성명,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한 뒤 인감도장을 날인하거나 서명을 한 서류들인 점, ② 원고는 퇴직 후 피고의 대리점을 운영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서류를 작성하지 않으면 피고와 대리점계약을 체결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위 각 서류를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갑 제8, 9호증의 각 기재만으로는 피고가 대리점계약의 체결을 빌미로 원고에게 위 각 서류 작성을 종용 또는 강요하였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는 점, ③ 원고가 이 사건 소를 제기하기 전까지는 퇴직한 때로부터 약 10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피고의 위와 같은 상계 및 미수금 회수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이 원고가 대리점계약체결을 앞두고 있어 심리적으로 궁박한 처지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이 사건 각서의 작성행위가 민법 제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하는 법률행위라거나, 원고의 궁박 상태를 피고가 이용하여 폭리를 취한 불공정한 법률행위라고 볼 수 없고, 원심 증인 F의 증언은 원고에 대한 것이 아니어서 원고의 주장을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로 삼기 어려우며,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따라서, 피고가 이 사건 각서에 따라 2005. 1. 31. 원고로부터 이 사건 회수금을 회수한 것이 부당이득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예비적 청구(퇴직금 등 지급청구)에 관한 판단
피고가 한 제1공제금에 대한 상계의 효력에 관한 판단
구 근로기준법(2007. 4. 11. 법률 제8372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42조 제1항 본문은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여 이른바 임금 전액지급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그 취지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을 공제하는 것을 금지하여 근로자에게 임금 전액을 확실하게 지급 받게 함으로써 근로자의 경제생활을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그 보호를 도모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근로자의 임금채권을 상계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할 것이지만, 사용자가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근로자의 임금채권에 대하여 상계하는 경우에 그 동의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때에는 구 근로기준법 제42조 제1항 본문에 위반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다만 임금 전액지급의 원칙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그 동의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라는 판단은 엄격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대법원 2001. 10. 23. 선고 2001다25184 판결 참조).
원고가 퇴직할 당시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이 사건 각서에 기재된 금원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을 보유하고 있었음은 앞서 본 바와 같고, 피고가 위 손해배상채권으로 원고의 퇴직금채권과 상계한다는 내용이 기재된 이 사건 각서를 원고로부터 작성받은 행위가 민법 제103조 혹은 민법 제104조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려움은 앞서 3.의 나.항에서 판단한 바와 같다.
위 3.의 나.항에서 설시한 사정 비추어 보면, 피고가 이 사건 제1공제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으로 원고에게 지급할 퇴직금채권과 상계한 것은 원고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한 동의를 얻어 이루어진 것이라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피고가 이 사건 제1공제금 상당액의 손해배상채권으로 원고의 퇴직금채권과 상계한 것이 무효라고 할 수 없고, 피고가 한 위 상계가 효력이 없어 이 사건 제1공제금 상당액에 관한 미지급 퇴직금채권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그 미지급 퇴직금을 구하는 원고의 이 부분주장은 이유 없다.
피고가 한 제2공제금에 대한 상계의 효력에 관한 판단
이 사건 각서의 작성행위를 무효로 보기 어려움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피고가 이 사건 각서에 따라 이 사건 각서상의 미수채권과 원고의 피고에 대한 대리점 수수료 채권을 상계한 것이 무효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고의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판단(예비적 판단)
피고는 원고의 퇴직금채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항변하는바, 퇴직금은 임금의 후불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서 퇴직금채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고, 퇴직금채권의 소멸시효는 근로자가 퇴직한 다음날부터 진행하는 것인데(대법원 2001. 10. 30. 선고 2001다24051 판결 참조), 원고의 이 사건 소는 원고의 퇴직일 다음날로부터 3년이 지난 뒤인 2014. 3. 26. 제기되었음이 기록상 명백하므로, 설사 원고의 주장대로 피고가 이 사건 제1공제금 상당액의 손해배상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가 무효라고 하더라도 원고의 퇴직금채권은 이 사건 소 제기 전에 이미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할 것이다. 원고의 위 주장은 이러한 점에서도 이유 없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① 법률전문가가 아닌 원고로서는 피고가 이 사건 제1공제금 상당액에 관하여 한 상계가 위법하여 효력이 없는 것을 알지 못하였고, 이 사건 소송에서도 위 상계의 효력이 다투어졌는바, 이 사건 소송에서 위 상계가 무효인 것으로 확인되기 전까지는 원고가 미지급 퇴직금채권의 발생 여부를 객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상황으로서 이를 알지 못한 데 원고의 과실도 없으므로 위 퇴직금채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할 수 없고, ② 원고에게는 위와 같은 이유로 객관적으로 위 퇴직금채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원고와 동일한 조건에 있는 다른 퇴직금채권자인 H이 피고를 상대로 미지급 퇴직금의 지급을 구한 울산지방법원 2012가합9108호 사건에서 피고에게 미지급 퇴직금에 상당하는 금원의 지급을 명하는 화해권고결정이 내려졌고, 이에 피고가 이의하지 아니하여 위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됨에 따라 H이 미지급 퇴직금을 수령하였는바,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피고가 원고의 퇴직금 채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소멸시효의 진행은 당해 청구권이 성립한 때로부터 발생하고 원칙적으로 권리의 존재나 발생을 알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소멸시효의 진행에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대법원 1992. 3. 31. 선고 91다32053 판결 등 참조). 그러나 법인이나 사단의 결의가 부존재함에 따라 발생하는 제3자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처럼 법인이나 사단의 내부적인 법률관계가 개입되어 있어 청구권자가 권리의 발생 여부를 객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상황에 있고 청구권자가 과실 없이 이를 알지 못한 경우에도 청구권이 성립한 때부터 바로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보는 것은 정의와 형평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에도 부합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객관적으로 청구권의 발생을 알 수 있게 된 때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대법원 2003. 2. 11. 선고 99다66427, 73371 판결, 대법원 2003. 4. 8. 선고 2002다64957, 64964 판결, 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0다78470 판결 등 참조).
한편,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1994. 12. 9. 선고 93다27604 판결, 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2다37565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위와 같은 특별한 사정 중 채권자에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사정을 들어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변함없이 적용되어 왔던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기초적인 구분 기준을 일반조항인 신의칙을 통하여 아예 무너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 그리고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경우'는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큰 상태에서 채무자가 동일하게 시효가 완성된 다른 채권자에게는 임의로 변제를 하면서 당해 채권자에 대해서만 소멸시효 완성을 들어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 시효 완성을 인정하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한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등의 경우를 의미한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4. 9. 4. 선고 2014다208194 판결 등 참조).
피고가 이 사건 제1공제금 상당액에 관하여 한 상계의 효력 유무를 원고가 알지 못하였다는 사정은 원고가 주관적으로 피고에 대한 미지급 퇴직금채권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상의 장애에 불과하므로, 법인이나 사단과 같은 단체의 내부적 법률관계가 개입되어 있어 채권자가 권리의 발생 여부를 객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거나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
한편, 갑 제11, 12호증의 각 기재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와 마찬가지로 피고에 고용되어 재직하다 퇴직한 H이 울산지방법원 2012가합9108호로 피고가 자신에게 지급할 퇴직금 중 66,672,356원을 부당하게 상계처리하였고, 미수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여 자신으로부터 83,275,824원을 받아 갔으며, 자신과 체결한 대리점계약을 위반하여 손해를 가하였다는 등의 청구원인을 주장하면서 피고에게 총 218,515,902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한 사실, 위 법원은 2013. 12. 20. '피고는 H에게 67,000,000원을 2014. 1. 29.까지 지급하고, 원고는 나머지 청구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화해권고결정을 한 사실, 위 화해권고결정은 H과 피고 모두 이의하지 않음에 따라 확정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위 각 증거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H은 위 소송에서 퇴직금에 대한 부당한 상계 이외에 대리점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등 다른 여러 청구원인도 함께 주장하면서 총 218,515,902원의 지급을 구하였고, 위 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H이 주장한 개별청구원인의 당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H의 청구 전체에 대하여 공평한 해결을 도모하고자 모든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화해권고결정을 내린 것이므로 위 법원이 위 화해권고결정에서 피고에게 67,000,000원의 지급을 명하였다고 하여 H의 여러 주장 가운데 퇴직금에 대한 부당 상계로 인한 청구 부분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② 피고가 위 화해권고결정에 이의하지 않은 행위는 H이 위 소송에서 구한 여러 청구에 대하여 분쟁 전체의 원만한 해결과 상호 간의 이익을 고려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을 뿐 H의 미지급 퇴직금청구를 그대로 수용하여 임의로 변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는 없는 점, ③ 원고와 마찬가지로 피고에 고용되어 재직하다 퇴직한 근로자들이 퇴직금을 부당하게 상계당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과 같은 청구원인을 들어 서울동부지방법원 2014가합105842호로 피고를 상대로 미지급 퇴직급 등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나 위 사건의 제1심에서 위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이 선고되었고, 위 원고들이 제기한 항소 또한 기각된 사실(서울고등법원 2015나2021729호) 등에 비추어 볼 때, 앞서 든 사실만으로 원고와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원고의 퇴직금채권의 소멸시효가 상계의 무효를 알게 되었을 때까지 진행되지 않았다거나,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는 원고의 위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주위적, 예비적 각 청구는 모두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할 것인바, 주위적 청구에 관하여 이와 결론을 같이 제1심 판결은 정당하므로, 원고의 항소와 당심에서 추가된 예비적 청구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안영길(재판장) 김수영 윤미림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