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판결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2024. 9. 25. 선고 2024고단615 판결

주문

피고인은 무죄.

이유

1.

공소사실

피고인은 횡성군 B에 있는 의료법인 C의료재단 D병원의 대표자로서 상시 84명의 근로자를 사용하여 의료서비스업을 경영하는 사용자이다.

사용자는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에는 그 지급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지급기일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위 사업장에서 2013. 10. 2.경부터 2020. 10. 15.경까지 근로하다 퇴직한 의사 E의 퇴직금 합계 163,481,317원을 당사자 사이의 지급기일 연장에 관한 합의 없이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하지 아니하였다.

2.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

의료법인 C의료재단(이하 '이 사건 의료재단'이라 한다)은 2013. 10.경 의사 E과 사이에 급여에 퇴직금을 포함하여 매월 1,200만 원(세후)을 지급하기로 하는 소위 '네트제' 근로계약을 체결하였고, 이 사건 의료재단은 위 계약에 따라 퇴직금을 모두 지급하였으므로 이 사건 의료재단 및 피고인에게는 더 이상의 퇴직금 지급의무가 없고 퇴직금 미지급에 관한 고의도 없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 사건 의료재단은 E에 대하여 기 지급한 퇴직금 명목 금원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고 있고, 위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삼아 퇴직금 채권의 1/2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상계권을 행사하였으므로 퇴직금 중 1/2을 초과하는 부분에 관해서는 퇴직금 지급의무가 없고,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3.

판단

가.

관련 법리

1)

퇴직금이란 퇴직이라는 근로관계의 종료를 요건으로 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것 으로 근로계약이 존속하는 동안에는 원칙적으로 퇴직금 지급의무는 발생할 여지가 없는 것이므로, 피고인과 근로자 사이에 매월 지급받는 임금 속에 퇴직금이란 명목으로 일정한 금원을 지급하기로 약정하고 피고인이 이를 지급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은 근로기준법 제34조 제1항에서 정하는 퇴직금 지급으로서의 효력은 없다(대법원 2002. 7.12. 선고 2002도2211 판결 등 참조). 또한, 사용자와 근로자가 매월 지급하는 월급이나 매일 지급하는 일당과 함께 퇴직금으로 일정한 금원을 미리 지급하기로 약정(이하 '퇴직금 분할 약정'이라 한다)하였다면, 그 약정은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한 최종 퇴직 시 발생하는 퇴직금청구권을 근로자가 사전에 포기하는 것으로서 강행법규에 위배되어 무효이고, 그 결과 퇴직금 분할 약정에 따라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하였다 하더라도 퇴직금 지급으로서의 효력이 없다. 이처럼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실질적으로 지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퇴직금 지급으로서의 효력이 인정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법 제18조 소정의 임금 지급으로서의 효력도 인정되지 않는다면, 사용자는 법률상 원인 없이 근로자에게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함으로써 위 금원 상당의 손해를 입은 반면 근로자는 같은 금액 상당의 이익을 얻은 셈이 되므로, 근로자는 수령한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부당이득으로 사용자에게 반환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 공평의 견지에서 합당하다(대법원 2010. 5. 20. 선고 2007다90760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2)

다만 퇴직금 제도를 강행법규로 규정한 입법취지를 감안할 때, 위와 같은 법리는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실질적인 퇴직금 분할 약정'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여 비로소 적용할 것인바, 사용자와 근로자가 체결한 당해 약정이 그 실질은 임금을 정한 것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퇴직금의 지급을 면탈하기 위하여 퇴직금 분할 약정의 형식만을 취한 것인 경우에는 위와 같은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즉,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월급이나 일당 등에 퇴직금을 포함시키고 퇴직시 별도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합의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임금과 구별되는 퇴직금 명목 금원의 액수가 특정되고, 위 퇴직금 명목 금원을 제외한 임금의 액수 등을 고려할 때 퇴직금 분할 약정을 포함하는 근로계약의 내용이 종전의 근로계약이나 근로기준법 등에 비추어 근로자에게 불이익하지 아니하여야 하는 등, 사용자와 근로자가 임금과 구별하여 추가로 퇴직금 명목으로 일정한 금원을 실질적으로 지급할 것을 약정한 경우에 한하여 위와 같은 법리가 적용된다 할 것이다(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8다9150 판결 등 참조).

3)

아울러 퇴직금 지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다툴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사용자가 그 퇴직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어서 사용자에게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31조, 제9조 위반죄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임금 등 지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다툴 만한 근거가 있는 지 여부는 사용자의 지급거절이유 및 그 지급의무의 근거, 그리고 사용자가 운영하는 회사의 조직과 규모, 사업 목적 등 제반 사항, 기타 임금 등 지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한 다툼 당시의 제반 상황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할 것이며, 사후적으로 사용자의 민사상 지급책임이 인정된다고 하여 곧바로 사용자에 대한 고의가 인정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7도1539 판결, 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09도8248 판결 등 참조).

나.

구체적 판단

이 법원이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피고인이 이 사건 의료재단의 대표자로서 E에 대한 퇴직금 지급의무가 있음에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퇴직일(2020. 10.15.)로부터 14일 이내에 E에게 퇴직금 지급하지 아니한 데에 관하여 퇴직금 지급의무위반죄에 대한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 ① 퇴직금 포기약정의 존재: ○

이 사건 의료재단은 2013. 10.경 E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E은 2013. 10. 2.경부터 2020. 10. 15.경까지 이 사건 의료재단 산하 병원인 F 소재 D병원에서 야간 당직 의사로 근무하였다. 이 사건 의료재단은 당시 E에게 매월 1,200만 원(세후)을 지급하기로 하는 "네트제<1>" 방식의 근로계약을 체결하였고 근무기간의 경과에 따라 50만 원씩 지급액의 인상이 이루어지면서 퇴직 무렵에는 매월 지급액이 세후 1,400만 원(이 사건 의료재단은 E에게 인근 요양원 진료수당 등을 추가로 지급하기도 하였다)이 되었다.

위 매월 지급액에 E의 퇴직금이 포함된 것인지 여부에 관해서는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다. 이와 관련된 처분문서로는 아래와 같은 "각서"와 "근로계약서"(이하 '이 사건 각서', '이 사건 근로계약서'라 한다)가 있다[한편 E은 자신이 이 사건 각서 및 근로계약서에 날인한 사실이 없어 이는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나, 각서에는 E 본인의 서명이 기재되어 있고, 그 서명은 E이 중부지방고용노동청원주지청에 출석하여 직접 기재한 서명과 필체가 매우 유사하며(수사기록 39, 57, 59쪽 참조), 이 사건 각서 및 근로계약서가 위조된 것이라는 점을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증거나 정황자료가 없다. 이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각서 및 근로계약서는 진정하게 작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사건 각서와 근로계약서의 기재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의료재단과E 사이에 E이 향후 퇴직하더라도 퇴직금의 지급청구를 포기하기로 하는 '퇴직금 포기약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판단된다.

덧붙여 피고인은 이 사건 의료재단과 E 사이에 퇴직금 분할 약정(= 매월 지급액 1,200만 원은 월 세후급여 10,668,127원 + 퇴직연금 부담금 1,331,873원이 포함된 것으로 이 사건 의료재단이 퇴직금 명목의 돈을 미리 지급하였다는 취지)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나, 이 사건 근로계약상 임금과 구별되는 퇴직금 명목의 액수가 특정되지 않고, 피고인 주장과 같이 2013. 10.경 당시 E의 세후 급여를 10,668,127원으로 약정하고 위 급여와 구별되는 퇴직금 1,331,873원을 별도로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고 어색하다. 즉, 이 사건 의료재단이 E에게 매월 1,200만 원을 지급키로 한 약정은 그 실질이 임금을 정한 것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의료재단이 퇴직금의 지급을 면탈하기 위하여 이 사건 각서와 근로계약서를 통해 퇴직금 분할 약정을 체결한 것이라고 보이므로, 이 사건 의료재단과 E 사이의 약정은 퇴직금 분할 약정이 아닌 "월급여 1,200만 원(세후)을 지급하되 추후의 퇴직금 지급청구는 포기한다"는 내용의 약정으로 보는 것이 당사자들의 의사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해석으로 판단된다.

②

E의 퇴직 후 사정

E은 2020. 10. 15.경 이 사건 의료재단에서 퇴직하였다. 그 후 약 2년 10개월 가량 경과된 후인 2023. 8. 24.경 중부지방고용노동청원주지청에 피고인의 퇴직금 미지급을 이유로 한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E은 2023. 8. 24.경까지 이 사건 의료재단에 퇴직금의 지급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E은 그 이유에 관해 "알아서 지급하겠거니 해서 요청하지 않았고, 사측에서 지급을 안 하면 지연이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지연이자까지 지급받고자 별도로 요청한 사실은없다"라고 진술하였다(수사기록 55쪽).

그러나 위와 같은 E의 진술은 퇴직금 제도의 목적, 통상의 관념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 퇴직금 포기약정이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등에 위반되는 것으로 무효임은 분명하나 그 효력과는 별개로 이 사건 의료재단과 E 사이에 퇴직금 포기약정을 하였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E으로서도 퇴직금을 청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상당해 보인다.

③

피고인의 고의 여부

실제 이 사건 의료재단을 비롯한 의료계에는 의사들에게 고액의 급여를 보장하되 그 급여에 퇴직금을 포함하여 지급하거나 퇴직금을 포기하기로 하는 약정, 즉 네트제 방식의 근로계약 관행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고, 그 관행에 따라 의사들은 고액의 급여를 받는 대신 퇴직금을 지급받지 않는 경우도 실제로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으로 돌아와 보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은 퇴직금 포기, 퇴직금 분할 약정등의 관행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더군다나 이 사건 의료재단과 E 사이에는 이 사건 각서로 확인되는 명확한 퇴직금 포기약정이 존재하는 점, E이 퇴직 후 약 2년 10개월가량 이 사건 의료재단에 퇴직금의 지급을 청구하지도 아니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이 사건 의료재단이나 피고인이 E의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것을 두고 피고인에게 퇴직금 지급의무 위반죄에 관한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④

기타 사정

한편 대법원은 '사용자가 사법상의 효력이 없는 "매월의 월급이나 매일의 일당 속에 퇴직금을 포함시켜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내세워 퇴직한 근로자에 대한 퇴직금의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 이를 퇴직금지급의무의 존부에 관하여 다툴 만한 근거가 있어 사용자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고 볼 수 없고, 이러한 사용자에게 퇴직금 등의 기일 내 지급의무 위반죄에 관한 고의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대법원 2007. 8. 23. 선고 2007도4171 판결 참조)'라고 판시한 바 있다.그러나 이는 적어도 퇴직금 지급사유 발생일 무렵 근로자의 퇴직금 지급 청구가 있었거나 퇴직금 포기약정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입장에서) 근로자가 퇴직금의 지급을 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경우를 전제한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과 같이 실제 퇴직금포기약정이 존재하고, 퇴직자가 소멸시효 완성에 가까운 시일까지 퇴직금의 지급 청구를 하지 않았던 경우에까지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4.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 단서에 따라 무죄 판결의 요지는 공시하지 아니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황해철

각주1) "네트제"란 근로자가 부담하여야 할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제세공과금 등을 사용자가 대신 납부, 정산하고 사용 자는 근로자에게 세후 금액으로 약정한 급여를 지급하되 일정한 경우에는 퇴직금도 별도로 지급하지 않기로 하 는 방식의 근로계약을 말한다. 이러한 네트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이유는 병원은 네트제를 활용하여 상대적으 로 더 적은 총액 인건비로 의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고, 의사는 병원의 실질 인건비 지급 능력을 넘는 월 급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