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
이유
항소이유의 요지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피고인은 이 사건 웹팩스<1>에 접속할 정당한 접근 권한이 있었다. 설령 피고인에게 이 사건 웹팩스에 대한 정당한 접근 권한이 없었다 하더라도, E단체(이하 ‘이 사건 연맹’이라 한다)의 임원들에게 이 사건 웹팩스의 아이디․비밀번호가 공유되어 왔고, 임원들 또한 자유롭게 이 사건 웹팩스에 접속하여 왔으므로, 피고인은 이 사건 웹팩스에 대한 정당한 접근 권한이 있다고 인식하였다.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
양형부당
원심의 형(벌금 50만 원)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에 대한 판단
관련 법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8조 제1항은 이용자의 신뢰 내지 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정보통신망 자체의 안정성과 그 정보의 신뢰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위 규정에서 접근 권한을 부여하거나 허용되는 범위를 설정하는 주체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라 할 것이므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계정 명의자가 아닌 제3자가 정보통신망에 접속한 경우 그에게 위 접근 권한이 있는지 여부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부여한 접근 권한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7. 22. 선고 2010도63 판결 등 참조). 비록 이용자가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사용을 승낙하여 제3자로 하여금 정보통신망을 사용하도록 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제3자의 사용이 이용자의 사자(使者) 내지 사실행위를 대행하는 자에 불과할 뿐 이용자의 의도에 따라 이용자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되는 경우와 같이 사회통념상 이용자가 직접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거나, 서비스제공자가 이용자에게 제3자로 하여금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하는 권한을 부여하였다고 볼 수 있거나 또는 서비스제공자에게 제3자로 하여금 사용하도록 한 사정을 고지하였다면 서비스제공자도 동의하였으리라고 추인되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그 제3자에게는 정당한 접근 권한이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대법원 2005. 11. 25. 선고 2005도870 판결 참조).
피고인에게 이 사건 웹팩스에 대한 접근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
인정사실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인정할 수 있다.
이 사건 연맹에 대하여 2007. 11. 16. 노동조합 설립 신고가 이루어졌다. 피고인은 2018. 11. 17.부터 2021. 1. 7.까지 이 사건 연맹의 사무처장으로 근무하였다. 이 사건 연맹은 2019. 5. 20. F 주식회사(이하 ‘F’라 한다)가 제공하는 ‘웹팩스’ 이용 서비스에 가입하였다. 이 사건 웹팩스 사용자 정보 조회 내역의 ‘고객 사항’에는 이 사건 연맹의 명칭 및 고유번호 ‘(사업자등록번호 1 생략)’이 각 기재되어 있다(증거목록 순번 6, 7, 14번).
피고인이 F에 제출한 서비스 신청서에 의하면, 신청자로 피고인이, 고객과의 관계란에 사무처장이, 위임자에 이 사건 연맹의 대표자인 O, 위임받는 자에 피고인이 각 기재되어 있다(증거목록 순번 54번 51쪽).
이 사건 연맹의 규약 중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증거목록 순번 56번 7~31쪽).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당시에는 이 사건 연맹에 가입한 가맹 노동조합 중 하나인 P노동조합(이하 ‘P노조’라 한다)의 위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증 제5호증, 공판기록 132쪽 참조).
구체적 판단
앞서 본 법리 등을 바탕으로 본다. 이 사건 연맹은 비법인사단으로, 사단법인에 관한 민법 규정 중 법인격을 전제로 하는 것을 제외한 규정은 비법인사단에 대하여도 유추 적용된다(대법원 1996. 9. 6. 선고 94다18522 판결 등 참조). 민법에 의하면 법인은 이사를 두어야 하고, 이사가 수인인 경우 법인의 사무집행에 관한 정관의 규정이 있으면 사무집행은 이에 따르게 된다(제57조, 제58조).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 제2항에 따라 준용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제1항은 노동조합의 임원 자격은 규약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 연맹의 규약 제38조, 제39조는 임원의 유형을 정하고, 임원의 유형별 직무를 정하고 있다. 이 사건 연맹은 사무 처리를 위하여 이 사건 웹팩스에 가입하였으므로, F는 이 사건 연맹의 사무를 집행하는 이 사건 연맹 임원에게 이 사건 웹팩스에 대한 접근 권한을 부여하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2>
이 사건 연맹의 규약은 이 사건 연맹에 가입한 가맹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이 사건 연맹의 조합원이 되고, 위 가맹 노동조합의 조합원에 대하여 이 사건 연맹 임원으로 선출될 수 있는 권리 등을 부여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으므로(제9조 제3항, 제11조 제2항),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당시 이 사건 연맹의 가맹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조합원 지위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F는 이 사건 웹팩스에 대한 접근 권한을 이 사건 연맹의 임원에게만 부여하였다고 봄이 합리적이므로, 이 사건 당시 조합원 지위만을 보유하고 있던 피고인에게 이 사건 웹팩스에 대한 접근 권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피고인이 이 사건 연맹의 임원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수 있는 자료도 없다.
피고인은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연맹과 P노조 등 사이의 결의무효 확인 사건(서울남부지방법원 2021가합110463)에서 피고인 사임 후 이 사건 연맹 사무처장으로 D를 임명한 것에 대한 제청추인 결의가 무효임을 확인하는 판결이 선고되었고, 그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으므로, 피고인은 민법 제691조의 유추 적용에 의하여 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무처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어 이 사건 당시 정당한 접근권한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민법상 법인의 이사 전원 또는 그 일부의 임기가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임 이사의 선임이 없거나 또는 그 후임 이사의 선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선임결의가 무효이고, 임기가 만료되지 아니한 다른 이사만으로는 정상적인 법인의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 임기가 만료된 구 이사로 하여금 법인의 업무를 수행케 함이 부적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구 이사는 후임 이사나 감사가 선임될 때까지 종전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5도8875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임기 만료된 임원의 업무수행권은 급박한 사정을 해소하기 위하여 그로 하여금 업무를 수행하게 할 필요가 있는지를 개별적․구체적으로 가려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이지 임기만료 후 후임자가 아직 선출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당연히 포괄적으로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06. 10. 27.자 2005마10 결정 참조).
위 법리에 비추어 살피건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이 사건 연맹 규약은 임원의 결원이 있는 경우에 대하여 정하고 있지 않고, 위 제청추인 결의가 무효임을 확인하는 판결이 선고되어 그대로 확정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위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이 사건 연맹규약은 사무처장이 가맹 노동조합 위원장이나 임원을 겸직할 수 없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고 있으므로(제40조 제4항), 사무처장 사임 후 가맹 노동조합인 P노조의 위원장으로 취임한 피고인이 사무처장의 역할 또한 수행할 경우 위 규약이 정하고 있는 임원의 자격에 반하게 되는 점, ② 사무처장이 이 사건 연맹에서 담당하는 역할의 내용, 이 사건 연맹의 업무량<3>, 규약에 따라 다른 임원에게 부여된 역할의 내용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 사임 당시 잔존하는 다른 임원의 사무집행을 통하여도 이 사건 연맹의 활동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하면, 후임 사무처장 제청추인 결의가 무효임이 확인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당시 피고인에게 사무처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권한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피고인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피고인에게 제3자로서 접근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
이 사건 당시 이용자가 아닌 제3자에 해당하는 피고인이 이 사건 웹팩스에 접속한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당한 접근 권한 없이 정보통신망에 침입한 행위에 해당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과거 이 사건 연맹 사무처장으로 근무할 당시 이 사건 연맹의 임원 및 가맹 노동조합 위원장들이 참여하고 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아이디․비밀번호를 공유하였고, 이 사건 연맹이 피고인 사임 이후에도 이 사건 웹팩스 접속을 금지하지 않았으므로 피고인은 이 사건 당시에도 정당한 접근 권한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이 위와 같이 아이디 등을 공유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정보통신서비스 이용자인 이 사건 연맹이 가맹노동조합의 위원장에게도 이 사건 웹팩스에 대한 사용을 승낙하였던 것으로 보이긴 한다.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피건대 위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위 사용 승낙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게 제3자로서 정당한 접근 권한이 있다고 볼 수 없다. 피고인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피고인은 이 사건 당시 P노조 위원장으로서 이 사건 웹팩스에 접속하여 수신된 문서를 열람하였는데, 그 당시 이 사건 연맹과 P노조를 포함한 일부 가맹 노동조합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이 사건 연맹은 갈등으로 인하여 가맹 노동조합에 송부하던 문서 등의 송부를 중단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웹팩스에 접속한 것이 이 사건 연맹의 의도에 따라 그 이익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 사건 연맹과 이에 가입한 가맹 노동조합은 대표자, 주소지 등을 달리하는 별개의 단체이고(증 제5호증, 공판기록 129~132쪽),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인 F는 이 사건 웹팩스 서비스 제공의 상대방을 이 사건 연맹으로 명확히 특정하였다. 이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F가 이 사건 연맹에게 제3자인 가맹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하여금 이 사건 웹팩스 사용을 승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F가 이 사건 연맹으로부터 가맹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하여금 이 사건 웹팩스를 사용하도록 하였다는 사정을 고지받았으면 이에 동의하였을 것으로 추인된다고 볼만한 사정도 없다.
고의에 대한 판단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피고인은 이 사건 당시 이 사건 연맹의 임원이 아닌 조합원에 불과하였던 점, ② 피고인 또한 이 사건 당시 이 사건 연맹의 이익을 위하여 이 사건 웹팩스에 접속한 것으로 인식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③ 피고인이 과거 아이디 등을 공유한 사정이 있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으로는 F가 임원의 지위를 벗어난 피고인에게 접근 권한을 부여하였다고 보기 어려워 피고인의 고의를 부정하기는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정당한 접근 권한 없이 이 사건 웹팩스에 접속한 사실을 인식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양형부당 주장에 대한 판단
피고인은 사무처장 재임 당시 알고 있던 아이디 등을 이용하여 통상적인 방법으로 이 사건 웹팩스에 접속하였으므로, 정보통신망 자체의 안전성에 별다른 침해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사건 연맹이 수신하는 문서는 다른 노동조합 홈페이지에도 공개되어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정보의 신뢰성 침해 정도는 가벼운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이 사건 당시 가맹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재임하고 있었고, 가맹 노동조합은 이 사건 이전부터 상당한 기간 업무처리 편의를 위하여 아이디 등을 제공받아 별다른 제약 없이 접속하여 왔다. 이 사건 연맹은 피고인 사임 이후에도 접속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이 사건 연맹이 가맹 노동조합과의 분쟁으로 인하여 그간 송부하여 주던 문서를 송부하지 않자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되어 범행 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다. 피고인은 미필적 고의로 이 사건 범행을 하였다. 피고인은 당심에 이르러 이 사건 웹팩스 이용자인 이 사건 연맹과 합의하여 이 사건 연맹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고 있지 않다. 피고인은 초범이다. 그 밖에 피고인의 나이, 성행, 환경, 범행의 동기 및 경위,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양형조건이 되는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원심의 형은 다소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인정된다.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은 이유 있다.
[다시 쓰는 판결 이유]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