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판결

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2다52626 판결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1.

원심은 그 채용한 증거들에 의하여, (1) 원고는 피고의 안성지점 차장으로 근무하던 중 1996. 1. 23.부터 같은 해 12. 12.까지 사이에 원고 등의 상담을 거쳐 지점장인 의 전결로 등 6인에게 이 사건 각 대출을 한 사실, (2) 피고의 인사위원회는 1997. 11. 11. 이 사건 각 대출금의 취급 및 사후관리에 대한 책임을 조사·심의한 결과 합계 279,862,000원이 상호교차 중복입보 후 분할여신 취급 및 자금용도외 유용 등 부당여신 취급에 의하여 부실화되었다고 판단하여, 원고가 1998. 2. 11.까지 111,944,920원을 변상하고, 위 이 나머지 167,917,380원을 변상하도록 결의한 사실, (3) 그 후 원고가 납부기한까지 위 변상금을 납부하지 아니하자, 피고는 1998. 2. 12.자로 인사위원회의 책임심의 변상부책 결의 불이행을 퇴직사유로 하여 인사위원회규정 제21조 및 인사규정 제28조를 근거로 원고에 대하여 '기타퇴직' 처리를 하고(이하 '이 사건 해고'라 한다), 원고의 퇴직금채권을 가압류하는 한편, 1998. 8. 17. 원고를 상대로 위 변상금의 지급을 구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위 사건에서 제1심은 1999. 6. 18. 피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이에 대하여 피고가 항소하자 제2심은 2000. 3. 10.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으며, 피고가 상고를 포기하여 위 판결은 2000. 4. 1.경 확정된 사실, (4) 한편 피고의 인사위원회규정에 의하면, 인사위원회는 직원의 표창·징계와 사고로 인한 피해 처리 및 대출금 책임심의를 위한 기관으로서, 사고피해라 함은 은행 재산에 손해를 입혔을 때를 말하고(제1조, 제12조), 사고로 인한 은행의 피해액은 관계자 전원이 연대하여 책임을 지며 그 피해액 전액을 변상하게 하여야 하는데 변상의 범위와 시기는 위원회가 정하는 바에 의하고(제15조), 사고피해금 또는 변상금을 지정시한까지 변상하지 아니한 자는 은행장의 특별조치가 없는 한 직원으로서의 자격을 잃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제21조)고 규정하고 있으며, 피고의 인사규정에 의하면, 직원의 퇴직은 의원퇴직, 정년퇴직, 재고용퇴직, 징계면직, 기타퇴직으로 구분되고(제24조), 직원이 인사위원회의 결의로 면직처분을 받았을 경우에는 징계 면직되며(제27조), '기타 관련규정 및 법령에 의한 퇴직사유가 발생하였을 때'를 '기타 퇴직'으로 처리하는 사유의 하나로 정하고 있으며(제28조), '고의 또는 부당여신 취급으로 부실채권을 발생하게 함으로써 은행에 손실을 발생시키거나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자'를 징계대상으로 정하고 있고(제48조 제10호), 징계는 면직, 정직, 감봉, 견책으로 구분되어 있는(제50조) 사실을 인정하였다.

위 인정사실에 기하여 원심은, 이 사건 해고는 원고가 변상금 납부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것을 사유로 피고 은행의 인사규정에 따라 기타퇴직 처리를 한 것인데,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제기한, 변상금의 지급을 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고의 패소판결이 확정됨으로써 원고의 변상금 납부의무가 존재하지 아니한다는 것이 확정되었으므로 이 사건 해고는 결국 정당한 사유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한 다음, 이 사건 해고가 실질적으로는 징계해고로서 원고에게는 규정에 위반하여 여신을 취급하여 부실채권을 발생하게 함으로써 은행에 손실을 발생시킨 징계사유가 있는 이상이 사건 해고가 정당하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하여, 피고 인사위원회의 변상금부과 결정을 변상금미납부를 정지조건으로 한 징계면직이라고 볼 수 없고 또 변상금 납부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음을 이유로 기타퇴직처리를 한 것을 가지고 면직이라는 징계처분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

그러나, 사용자가 어떤 사유의 발생을 당연퇴직 사유로 규정하고 그 절차를 통상의 해고나 징계해고와는 달리 한 경우에 그 당연퇴직 사유가 근로자의 사망이나 정년, 근로계약기간의 만료 등 근로관계의 자동소멸 사유로 볼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에 따른 당연퇴직 처분은 근로기준법의 제한을 받는 해고라 할 것이므로, 이러한 당연퇴직 처분의 유효 여부는 근로기준법 제30조 제1항 소정의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대법원 1993. 10. 26. 선고 92다54210 판결, 1995. 3. 24. 선고 94다42082 판결 등 참조). 그런데, 피고는 종전 소송에서 비록 패소하였지만 이 사건에서 원고에게는 이 사건 각 대출과 관련하여 부당여신 취급으로 부실채권을 발생하게 한 잘못이 있으므로 이 사건 해고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이 분명한 데다가, 기록에 의하면, 종전 소송에서 피고가 패소한 것은 원고가 이 사건 각 대출 당시 타인명의 이용 대출 및 용도외 유용 등의 사정을 알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고 피고에게 구체적인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그 판결에도 원고가 이 사건 각 대출 중 적어도 부분에 관하여는 피고의 여신총칙규정을 위반하였음이 지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각 대출은 그 실질에 있어서 주식회사 과 에 관련된 친인척이나 직원이 상호교차 중복보증 등을 함으로써 이루어진 불량 신용대출로서, 인사위원회의 조사 당시 원고도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음을 시인하였던 사실, 그 후 이 사건 각 대출채권은 정상적으로 회수되지 못하다가 결국 부실채권이 되어 피고가 총 172,540,739원의 채권을 예금보험공사에 매각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점은 종전 소송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아니한 결과 보증인들의 자력 때문에 대출금 일부의 회수가 예상된다는 점도 피고의 패소이유의 하나가 되었던 사실, 또한 원고는 위 변상금 부과처분이 이루어질 당시 이 사건 각 대출 이외의 다른 대출과 관련하여 견책의 징계처분을 받기도 하였던 사실 등을 알 수 있는바, 사정이 이러하다면, 비록 종전 소송에서 피고 패소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이 사건 해고가 무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므로, 원심으로서는 피고의 위 주장에 대하여 더 나아가 그 당부를 구체적으로 심리·판단하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종전 소송에서 피고 패소판결이 확정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사건 해고가 무효라고 단정하였으니, 거기에는 당연퇴직 처분의 정당성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고,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제1점의 주장은 이유 있다.

2.

원심은 이 사건 해고무효 확인청구가 신의칙 또는 실효의 원칙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하여, 이 사건 해고가 있은 후 곧이어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변상금의 지급을 구하는 종전 소송을 제기하여 이 사건 해고의 원인이 된 변상금 납부의무의 존부에 관하여 법원에 소송이 계속중이었던 점, 종전 소송의 항소심에서 피고의 항소가 기각되어 위 사건이 2000. 4. 1. 피고 패소로 확정된 후 얼마 지나지 아니한 2000. 5. 8. 원고가 피고에게 복직을 요청하는 서면을 보낸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의 이 사건 청구가 신의칙 또는 실효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위 주장도 배척하였다.

그러나,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고용관계(근로자의 지위)의 존부를 둘러싼 노동분쟁은, 그 당시의 경제적 정세에 대처하여 최선의 설비와 조직으로 기업활동을 전개하여야 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물론, 임금 수입에 의하여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신속히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실효의 원칙이 다른 법률관계에 있어서 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하여 필요한 요건으로서의 실효기간의 길이와 의무자인 상대방이 권리가 행사되지 아니하리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우마다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장단과 함께 권리자측과 상대방측 쌍방의 사정 및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정 등을 모두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으로서, 이 사건과 같은 해고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분쟁에 있어서는, 해고 사유와 그 무효 사유 및 해고된 근로자가 그 처분이 무효인 것을 알게 된 경위는 물론, 그 근로자가 처분의 효력을 다투지 아니할 것으로 사용자가 신뢰할 만한 다른 사정, 사용자가 다른 근로자를 대신 채용하는 등 새로운 인사체제를 구축하여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지 여부 등을 모두 참작하여 그 근로자가 새삼스럽게 해고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는 결과가 되는지의 여부를 가려야 한다(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다30118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원심이 확정한 사실관계 및 기록에 의하면, 원고는 1998. 2. 12.자로 이 사건 해고를 당한 직후 피고가 가압류하지 아니한 원고의 퇴직금 중 2분의 1 부분을 아무런 이의 없이 수령하였으며,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종전 소송에 있어서도 1999. 6. 18. 원고 승소의 제1심판결을 선고받고도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해고가 무효라는 주장을 한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 제2심 판결이 2000. 4. 1.경 확정되어 원고의 퇴직금 중 나머지 2분의 1에 관한 피고의 가압류가 해제되자 곧바로 아무런 이의를 보류함이 없이 나머지 퇴직금마저 수령하였던 사실, 또한 원고는 이 사건 해고 후 에 입사하여 종전 소송중에도 거기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사실, 원고가 피고에게 복직을 요청하는 서면을 처음으로 보낸 2000. 5. 8.경은 이 사건 해고가 있은 때로부터 2년 이상이나 경과한 시점이었고 원고가 나머지 퇴직금을 수령한 이후였던 사실 등을 알 수 있는바, 사정이 이러하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신의칙 또는 실효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으므로, 원심으로서는 원고가 종전 소송 당시 피고의 청구에 응하면서 취한 입장과 이 사건 해고 후 위 등 다른 직장에서 근무한 기간 및 형태 등의 사정을 구체적으로 심리하여 앞서 본 법리에 따라 이 사건 청구가 신의칙 또는 실효의 원칙에 반하는지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하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앞서 본 이유만을 내세워 이 사건 청구가 신의칙 또는 실효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단정하였으니, 거기에는 신의칙 또는 실효의 원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따라서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제2점의 주장도 역시 이유 있다고 할 것이다.

3.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용우(재판장) 박재윤(주심) 서성 배기원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