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요지
피고인은 동해시 B에 있는 학교법인 C(이하 'C'이라 한다) 이사장, D는 C 사무처장, E은 C 산하 F대학교 총장, G은 F 대학교 교무처장으로 근무하였던 사람이다. E과 G은 수업일수가 모자라는 학생들에게 부당하게 학점을 부여하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졸업사정을 하여 학사학위를 수여한 혐의로 고등교육법위반으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피고인은 D와 공모하여 법인회계자금에서, 2012. 6. 7. E의 고등교육법위반 사건 변호사 선임비용 550만 원을, 2012. 9. 3. G의 고등교육법위반 사건 변호사 선임비용 330만 원을 지급하도록 승인하여 위 돈을 횡령하였다.
원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피고인은 자기나 제3자의 이익이 아닌 C의 이익을 위하여 소송에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변호사 선임비용 지출을 승인한 것이므로 불법영득의사나 횡령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원심은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횡령죄에서 불법영득의 의사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위탁의 취지에 반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하여 권한 없이 그 재물을 자기의 소유인 것처럼 사실상 또는 법률상 처분하는 의사를 의미하므로, 보관자가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소유자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처분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1982. 3. 9. 선고 81도3009 판결 등 참조). 타인으로부터 용도가 엄격히 제한된 자금을 위탁받아 집행하면서 그 제 한된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자금을 사용하는 것은 그 사용행위 자체로서 불법영득의사를 실현한 것이 되어 횡령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03. 5. 30. 선고 2002도235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할 때에는 피고인이 불법영득의사의 존재를 인정하기 어려운 사유를 들고 있고 이에 부합하는 자료도 있다면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함부로 위탁받은 돈을 불법영득의사로 횡령하였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1도1904 판결 등 참조). 사립학교법 제29조는 학교법인의 회계를 학교회계와 법인회계로 구분하고 학교회계 중 교비회계자금은 다른 회계로 전용할 수 없도록 용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위 2002도235 판결 등 참조). 반면 법인회계자금에 관해서는 법령에서 용도나 사용기준을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인회계자금을 사용한 행위 자체로 불법영득의 의사를 실현한 것이 된다고 볼 수 없다.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따르면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감사원은 2011. 7. 7.부터 2011. 9. 23.까지 C 소속 F대학교를 포함한 22개 대학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하였고, F대학교 교수들이 수업일수를 미달한 학생들에게 학점을 부여하거나 부정하게 학사학위를 수여한 사실을 적발하였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12. 1. 20. F대학교 총장과 C 이사장에게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라 학생들에게 학점·학위를 부당하게 수여한 교수 52명을 중징계할 것을 통보하였고, 그중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한 교수 2명(V, W)을 고등교육법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다. V, W이 수사를 받으면서 F대학교 총장과 교무처장이 부정학위수여 등을 지시하였다고 고발함에 따라 E, G에 대한 수사도 개시되었다.
검찰은 V, W과 함께 E, G을 고등교육법위반으로 약식 기소하였다. G은 중징계 통보대상자인 교수 52명 중 한 명인데 교무처장으로서의 직무수행과 관련해서는 기소되지 않았고, 행정학부 부교수로서 총 10명의 학생에게 출석부를 조작하는 등 부정하게 학위를 수여하였다는 것이 공소사실이다. E에 대한 공소사실은 총장으로서 교수들이 학칙에 위배하여 졸업사정을 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총 86명의 학생에게 부정하게 학사학위를 수여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C은 2004. 5.경부터 교육 관청의 제재 조치에 따라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어 왔는데, 피고인은 임시이사로 선임되어 2011. 10.경부터 무보수·비상근 이사장으로 근무하였다.
피고인은 C 법인회계자금에서 E, G에 대한 형사사건의 변호사 선임비용을 지급하는 자금집행 안건을 결재하였는데, 당시에 다음과 같은 사정을 고려하였다.
C은 임시이사 체제로 불안정한 운영이 계속되어 온 상황에서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교수들에 대한 중징계조치 등의 요구와 함께, 요구사항이 지정된 기한까지 이행되지 않으면 고등교육법 등에 따른 엄중한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고등교육법은 대학교 총장이 고등교육법을 위반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정상적인 학사운영이 불가능한 경우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학교법인에 대하여 학교의 폐쇄를 명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감사원이 2011년 22개 대학교에 대한 감사를 한 이후 여러 대학교가 폐교되었고 추가로 폐교되는 학교가 나올 것을 예상하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E, G에 대한 형사사건에서 F대학교 총장과 사무처장이 학사부정행위를 주도한 것으로 확정되면 F대학교가 폐교될 수 있으니 위 형사사건에 대하여 C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였다.
피고인이 지출을 승인한 변호사비용은 법인회계자금 중 일반관리비 지급수수료 항목에서 지출되었다. C의 정관은 학교회계는 당해 학교의 장이, 법인회계는 C 이사장이 집행한다고 정하고 있고, 법인회계자금의 용도에 관하여 별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위에서 본 사실관계와 법리에 비추어 보면 다음과 같이 볼 여지가 있다.
E은 총장으로서의 학사관리에 관한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기소되었고, G은 교무처장으로서의 업무가 아닌 행정학부 부교수로서의 업무로 기소되었으나 피고인은 공소장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총장과 함께 교무처장으로서의 행위로 기소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여기에 위에서 본 바와 같은 C의 상황, 교육과학기술부가 C에 통보한 내용, 고등교육법의 규정,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폐교된 학교 현황 등의 사정을 종합해 보면, C으로서는 E, G에 대한 형사사건의 결과에 따라 학교가 폐교될 수도 있어 C의 이익을 위하여 위 재판에 대응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할 것이고, 피고인 역시 당시 그와 같은 객관적인 사정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피고인이 위와 같은 필요성과 객관적인 사정을 충분히 인식한 후에 C의 법인회계자금으로 E, G의 재판에 관한 변호사 비용을 지급한 것은 C을 위한 합리적인 지출이라고 볼 수 있고, 달리 피고인이 E, G과 친분관계가 있어 그 재판의 결과에 이해관계가 있다거나, 위와 같은 동기나 인식 외에 그 자신이나 이들의 이익을 위하여 위 비용을 지출하였다고 볼 증거가 없다. 나아가 이와 같은 자금의 집행이 법인의 정관 등의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는 근거도 없다.
따라서 피고인에게 업무상횡령의 고의나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후에 E, G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었고 피고인의 우려와 달리 유죄 확정의 결과가 C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은 위와 같은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원심으로서는 피고인이 자금집행을 승인할 당시의 여러 상황 등을 면밀히 살펴 피고인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이 아니라 C의 이익을 위하여 자금을 지출한 것인지를 신중하게 살펴보았어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러한 심리를 충분히 하지 않고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원심의 이 부분 판단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업무상횡령죄의 고의 또는 불법영득의 의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피고인의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피고인의 상고는 이유 있으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권순일(재판장) 박정화(주심) 이기택 김선수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