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 B 주식회사가 2018. 11. 8. 원고에게 한 해고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원고의 피고 C에 대한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피고 B 주식회사가 부담한다.
이유
기초 사실
D 그룹의 개관
D 그룹은 규조토(diatomite) 및 펄라이트(perlite) 등의 광물과 관련된 제품 생산 및 판매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프랑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이다.
D 그룹은 전 세계 50여 곳에 생산공장과 판매망을 가지고 있는바, 그중 PFM(Performance and Filtration Minerals; 기능성 충진제 및 여과제용 광물) 사업부는 유럽-중동-아프리카 / 아메리카 /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업부를 두고 있다. 피고 C는 D 그룹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업을 관장하는 싱가포르 소재 회사이다.
한편 미국의 E 사(社)는 1995. 6. 14. F 주식회사를 투자 설립하였는데, D 그룹이 2005년경 위 F 주식회사를 인수하고 2013. 10. 10. B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여 현재의 피고 B가 되었다. 피고 B는 서울에 본사를 두고 상시근로자 7명을 사용하여 규조토 및 펄라이트 제품의 수출입 및 판매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원고와 D 그룹의 관계
원고는 2002. 6. 20.경 피고 C에 입사하여 기술 마케팅 매니저(Technical Marketing Manager)로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2008년경 D 그룹이 사업부를 개편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PM(Performance Minerals; 기능성 충진제용 광물) 사업은 중국 베이징에 소재한 G(D그룹 PM 사업부의 아시아-태평양 조직으로 법인은 아니다, 이하 'G'이라고만 한다)에서 관장하게 되었고, 피고 C에서 위 PM 사업을 담당하는 직원은 원고만이 남게 되었다.
이에 G은 원고의 소속을 피고 C에서 피고 B로 변경하기로 하였고, 원고, 피고 B, G은 2008. 11. 27.경 별지 기재와 같은 근로계약(Labor Contract)을 체결하였다(이하 '이 사건 근로계약서'라고 한다). 이 사건 근로계약서에는 피고 B의 대표자(legal representative)로서 당시 대표이사 H이, G을 대표하여 피고 C의 당시 대표자 총괄 매니저(GM; General Manager) I이 각 서명하였다.
2009. 1. 1. 이후 원고는 피고 B 소속으로 4대보험에 가입하였고, 피고 B로부터 급여를 지급받았으며, 소득세 등을 국내법에 따라 납부하였다. 피고 B는 원고에게 급여, 출장비, 활동비 등을 지급한 후 피고 C 및 G에 위 금액에 5%의 수수료를 더한 금액을 청구하여 지급받았다.
한편 원고는 C의 대표자인 I 및 후임 대표자인 J로부터 업무상 지시를 받았고, 피고 B 대표이사 등으로부터는 업무상 지시를 받지 않았다. 원고는 우리나라에서 재택근무를 하였는데, 피고 B의 사무실에는 원고의 근무 장소가 없었다.
원고에 대한 해고처분
피고 C 대표자인 J는 2018. 10. 15. 원고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장(warning letter)을 보냈다(이하 '이 사건 경고장'이라고만 한다).
피고 B 대표이사 H과 피고 C 대표자 J는 2018. 11. 8. 원고에게 연명으로 다음과 같은 해고통지서(letter of termination of employment)를 보냈다(이하 '이 사건 해고통지서', '이 사건 해고처분'이라고만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2, 4, 8, 9, 10, 12호증, 을 제8, 17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당사자들의 주장 요지
원고
주위적 피고인 B에 대한 청구
피고 B는 원고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4대보험에 가입시키고 매월 급여를 지급한 원고의 사용자이다. 그런데 피고 B는 원고에게 이 사건 해고처분을 하면서 '원고가 경고장에도 불구하고 업무 수행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취지만을 기재하였을 뿐 해고의 실질적 사유가 되는 구체적 사실을 전혀 기재하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 해고처분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효이다: ① 이 사건 해고처분은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를 정한 근로기준법 제27조 제1항을 위반하였다. ② 설령 해고사유를 특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피고 B는 경고장을 보낸 지 약 3주 만에 원고를 해고한 것인바 '경고장에도 불구하고 업무 수행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해고사유는 인정되지 않는다. ③ 해고통지서가 아닌 이 사건 경고장에 기재된 사유들은 적법한 해고사유가 될 수 없고 사실도 아니다. ④ 이 사건 해고처분은 징계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다.
예비적 피고인 C에 대한 청구
만일 피고 B가 원고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원고에게 구체적인 업무상 지시를 해 온 피고 C가 원고의 사용자인바, 피고 C에 대하여 이 사건 해고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한다.
피고 B
비록 피고 B가 원고를 4대보험에 가입시키고 매월 급여를 지급한 사실은 있지만, 이는 행정 편의를 위한 것에 불과하였다. 피고 B는 원고에게 어떠한 업무상 지시를 하거나 보고를 받은 바 없다. 오히려 원고는 D 그룹 내에서 피고 B의 대표이사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었는바, 원고가 피고 B의 근로자라고 할 수 없다.
이 사건 경고장 및 해고통지서의 기재를 종합하면 해고사유를 특정할 수 있는바, 이 사건 해고처분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피고 C
원고는 피고 C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다. 즉 이 사건 근로계약서에는 "I, 총괄 매니저, G"("I General Manager G")라고만 기재되어 있는바, 피고 C의 상호인 "C"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I은 피고 C를 대표하여 이 사건 근로계약서에 서명한 것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서명한 것에 불과하다. 결국 원고는 피고 C의 근로자도 아니다.
이 사건 해고처분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피고 B와 같은 주장).
피고 B에 대한 청구에 관한 판단
원고가 피고 B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관련 법리
처분문서는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경우 그 문서에 표시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부정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내용되는 법률행위의 존재를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00. 10. 13. 선고 2000다38602 판결 등 참조). 한편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실질에 있어서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며, 전체적으로 보아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다고 인정되는 이상, 근로자에 관한 여러 징표 중 근로조건에 관한 일부의 사정이 결여되었다고 하여 그러한 사유만으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1. 2. 9. 선고 2000다57498 판결 등 참조).
구체적인 판단
기초 사실에 갑 제1, 2, 4, 8호증, 을 제5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면 다음 사정들이 인정된다.
이 사건 근로계약서는 그 제목부터가 근로계약(labor contract)이고, '피고 B와 G이 당사자(party A)로서 원고와 근로계약을 체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피고 B 대표이사는 이 사건 근로계약서에 당사자들의 대표자(representative)로서 서명하였고, 이 사건 해고통지서에도 피고 B를 대표하여(for and on behalf of) 서명하였다.
이 사건 근로계약은 제1조에서 이 사건 근로계약이 대한민국 노동법(the Labor Law of Korea)에 의한다고 정하는 한편, 원고의 근무시간(월~금, 09:00~18:00, 제4조 제1항), 연차휴가일수(제4조 제2항), 기본급(basic salary)·수당(allowance)·상여금(bonus/incentive)·4대보험 및 복지혜택(benefits related to pension and medical, 이상 제5조) 등의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피고 B는 이 사건 근로계약에 따라 원고를 4대보험에 가입시키고 매월 급여를 지급하였으며, 4대보험료와 근로소득세 등을 원천징수하였다. 한편 원고는 G의 출장 규정(travel policy)을 준수하여야 했다(제4조 제1항 C호).
피고 B는 원고가 재택근무를 하고, 피고 C 내지 G의 대표자로부터 업무상 지시를 받고 보고를 한 점을 들어 피고 B는 원고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 근로계약 제3조 제1항은 '원고는 G의 총괄 매니저에게 보고한다'고 정하고, 제3조 제2항은 '원고는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되 업무상 회의 등을 위하여 피고 B 사무실을 이용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즉 피고 B가 들고 있는 원고의 근무장소나 보고체계 등이 이 사건 근로계약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원고가 피고 C 내지 G의 대표자로부터 업무상 지시 및 지휘·감독을 받았다는 점에 관하여는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다. 달리 원고가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거나 업무수행을 통한 이윤이 원고에게 귀속되었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원고가 피고 B의 경영 결정에 참여하거나, 피고 B 소속 근로자들을 지휘·감독한 사실을 인정할 자료도 없다.
위 사정들을 종합하면, 다국적기업인 D 그룹은 원고로 하여금 G, 피고 C의 업무상 지시 및 지휘·감독에 따라 D 그룹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업을 위한 각종 업무를 수행하게 하되, 원고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대한민국 법률에 근거한 근로관계의 규율·임금 지급 등을 위하여 그 소속을 피고 C에서 피고 B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피고 B는 원고의 사용자로서 원고와의 법률관계에서 발생하는 법적 의무와 책임을 부담하기로 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원고가 피고 B의 대표이사로부터는 직접적인 업무상 지휘·감독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근로계약 제3조 등에 따라 D 그룹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업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G, 피고 C의 업무상 지휘·감독을 받아 온 이상, 원고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피고 B의 근로자라는 실질이 달라질 수 없다. 이러한 해석은 처분문서인 이 사건 근로계약서의 문언 기재에도 부합한다.
[피고들의 주장은 결국, 원고는 피고 B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업무상 지시를 받지 않았으므로 근로자임을 주장할 수 없고, 피고 C에 대하여는 형식상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역시 근로자임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주장을 모두 받아들일 경우, 원고는 임금을 목적으로 다국적기업인 D 그룹의 업무상 지휘·감독 하에 근로를 제공한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 근로관계에 관하여 다투거나 구제받을 법적 수단이 없게 되고, 이는 D 그룹이 다국적기업이라는 점을 내세워 근로기준법에 따른 심사를 회피하는 부당한 결과가 되어 받아들일 수 없다. 그 밖에 원고와 피고 B 사이의 법률관계는 근로관계가 아니라 다국적기업의 특성인 모기업과 종속기업 사이의 지배종속관계가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주장 역시, 원고가 피고 B의 업무집행권을 가진 임원이 아님이 명백한 이 사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소결론
원고는 피고 B의 근로자에 해당한다.
원고에 대한 해고가 적법한지
근로기준법 제27조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를 통해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를 해고하는 데 신중을 기하게 함과 아울러, 해고의 존부 및 시기와 그 사유를 명확하게 하여 사후에 이를 둘러싼 분쟁이 적정하고 용이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에게도 해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취지이다. 따라서 사용자가 해고사유 등을 서면으로 통지할 때는 근로자의 처지에서 해고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하고, 특히 징계해고의 경우에는 해고의 실질적 사유가 되는 구체적 사실 또는 비위내용을 기재하여야 하며 징계대상자가 위반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의 조문만 나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11다42324 판결 등 참조). 근로기준법 제27조의 규정 내용과 취지를 고려할 때, 해고 대상자가 해고사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사용자가 해고를 서면으로 통지하면서 해고사유를 전혀 기재하지 않았다면 이는 근로기준법 제27조를 위반한 해고통지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21. 2. 25. 선고 2017다226605 판결 참조).
기초 사실에서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 B가 이 사건 해고통지서에 기재한 해고사유는 "이 사건 경고장에도 불구하고, 업무 수행이 개선되지 않았고 회사가 기대하는 태도 및 요구사항도 계속해서 준수하지 않았다(there have been no improvements in performance and continued incompliance of expected behaviours and requirements by the Company)"는 것이다.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해고통지서에는 근로자의 처지에서 해고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해고사유가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 이에 대하여 피고 B는 이 사건 경고장을 보태어 보면 해고사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나(2021. 8. 23.자 준비서면 6쪽), 이 사건 해고통지서에 기재된 해고사유는 이 사건 경고장에 기재된 사유들 자체가 아니라 이 사건 경고장에도 불구하고 원고의 업무 수행 및 태도 등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추상적인 내용에 불과한 것이어서, 피고 B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더구나 원고가 이 사건 경고장을 받은 것은 2018. 10. 15.인데, 피고 B는 그로부터 약 3주 만인 2018. 11. 8. 이 사건 해고처분을 하였다. 피고가 제출한 증거들 중 위 2018. 10. 15.부터 2018. 11. 8. 사이의 증거로는 을 제18호증(2018. 10. 31.자 이메일)이 유일한데, 이 사건 해고통지서의 기재만으로는 위 2018. 10. 31.자 이메일 관련 사실관계가 이 사건 해고사유에 포함되는지 불분명할뿐더러, 그 기재만으로 이 사건 해고처분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기도 부족하다.
결국 이 사건 해고처분은 근로기준법 제27조가 정한 해고통지의 방식을 위반한 것인 데다가, 정당한 이유도 인정되지 않아, 무효이다.
결론
원고의 피고 B에 대한 이 사건 해고처분 무효확인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인용한다. 한편 주위적 피고인 B를 원고의 사용자로 인정하므로, 예비적 피고인 C에 대한 청구는 기각하되, 소송비용은 주위적 피고인 B가 전부 부담하도록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기선(재판장) 박수진 현재언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