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판결

서울행정법원 2026. 5. 8. 선고 2024구합78276 판결

주문

1.

피고가 2023. 5. 19. 원고에 대하여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

망인은 2000. 7.경 B 주식회사(이하 '이 사건 사업장'이라 함)에 입사하여 2019.12.경까지 적층설비 보전, 전자소자 배치공정 작업, 전자소자설비 보전 등의 업무를 하였음.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에서 수행한 업무 이력은 아래와 같음

○

망인은 2019. 12. 13. 'NK/T세포림프종'(이하 '이 사건 상병'이라 함) 진단을 받고 요양하던 중 2021. 2. 20. 직접사인을 패혈증, 선행사인을 이 사건 상병으로 하여 사망하였음

○

망인의 배우자인 원고가 2021. 8. 10. 피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례비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2023. 5. 19. '망인이 이 사건 상병 원인물질인 벤젠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이고, 방사선 노출도 제한적이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상병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례비 부지급 결정을 하였음(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함)

○

원고가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재심사를 청구하였으나, 위 위원회는 2024. 5. 24. 원고의 재심사청구를 기각하였음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5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위법 여부

가.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두12530 판결, 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두3821 판결 등 참조).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산업 종사자 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등 참조).

나.

판단

앞서 든 증거, 갑 제6 내지 13, 16 내지 22호증, 을 제1 내지 4호증의 각 기재, 이 법원의 C병원장, D협회 의료감정원장에 대한 각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또는 사정을 종합하면,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노출된 유해물질, 유해요소가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하여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으로 인한 망인의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이와 다른 전제에서 내려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

이 사건 상병은 비호지킨림프종의 하위 아형 중 하나로서 자연살해세포(NK세포)또는 세포독성 T세포에서 기원하는 악성 혈액종양임. 이 사건 상병은 우리나라 및 동 아시아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빈도로 발견되고, 주로 50대~60대에서 발생하는 것 으로 보고되고 있음. 이 사건 상병의 발병에 관여하는 요인으로 앱스타인바 바이러스(EBV) 감염, 면역기능의 저하, 벤젠, 트리클로로에틸렌(TCE), 포름알데히드, 유기용제등 화학물질 노출, 전리방사선, 유전적 소인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발병 기전이 명확하게 규명되어 있지 않으며, 위와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 사건 상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

이 사건 사업장은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인덕터, 칩 저항기 등의 전자기기부품을 생산하고 있는데, 망인은 MLCC 제조 설비 중 적층설비 유지·보수, 전자소자 제조파트의 인덕터 라인 설비 유지·보수, 전자소자 배치공정의 원재료 배합 및 교반 업무등을 수행하였고, 아래와 같이 망인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 사건 상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물질에 노출되었던 것으로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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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공정 :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약 4년 7개월 동안 전자소자 배치공정에서 탱크에 원재료를 배합 및 교반하여 액상 슬러리(slurry)를 만드는 작업을 하였음. 슬러리는 자성체를 형성하기 위한 액상물질로 파우더, 첨가제, 용제를 배합하여 제작하는데, 이 사건 사업장에서 슬러리 제작에 사용한 파우더는 니켈, 아연, 철, 구리 등의 금속 파우더이고, 첨가제로 사용한 물질은 톨루엔, 에틸알코올, 솔벤트 나프타 등이 함유된 결합제이며, 용제로 사용한 물질에는 에틸알코올, 톨루엔 등이 포함되어 있음. 망인은 위와 같은 원재료를 이용하여 하루에 5시간 정도 계량 및 배합 작업, 슬러지 기포 제거 작업을 하였는데, 하루에 4~5회에 걸쳐 60~120L 정도의 원재료를 배합하였음. 망인이 수행한 원재료 투입 및 교반 작업에서는 유기용제의 증기가 작업 공간에 직접 비산되고, 교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로 인하여 유기용제의 휘발 속도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음. 또한 배합 비율을 확인하고 탱크에 재료를 직접 투입하여야 하는 작업의 특성상 망인이 유해물질을 포함한 원재료에 근접하여 작업하면서 일반적으로 대기 중에 비산하는 양보다 더 높은 농도의 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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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보전공정 :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약 13년 7개월 동안 설비보전 업무를 수행하였음. 설비보전 업무는 유해물질이 포함된 유기용제 등의 원재료를 직접 다루는 작업은 아니나, 설비의 유지·보수 작업을 위하여 작업 현장을 순회하면서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특히 공정이 진행되는 중에 유지·보수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에는 생산공정에 종사하는 근로자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유해물질에 그대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망인이 설비보전 업무를 수행한 기간이 약 13년 7개월로 상당히 장기임을 고려하면, 소량의 유해물질 노출이 누적되어 이 사건 상병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정도에 이르렀을 가능성도 낮다고 할 수 없음

○

직업환경연구원은 이 사건 사업장의 2004년부터 2006년까지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검토하여 이 사건 사업장 배치공정에서 발생하는 혼합유기화합물 평균 농도는 0.153(범위 0.039~0.280)으로 고용노동부 노출기준(1)의 1/6, 에탄올 평균 농도는 31.682ppm(범위 14.566~53.109)로 고용노동부 노출기준(1,000 ppm)의 1/31, 톨루엔의 평균 농도는 11.870ppm(범위 1.102~ 32.066)으로 고용노동부 노출기준(50 ppm)의 1/4, 니켈의 농도는 고용노동부 노출기준(1 mg/㎡)의 1/3,000 수준으로 추정하였음. 설령 직업환경연구원이 추정한 유해물질 노출수준이 노출기준의 범위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장기간 노출될 경우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경우에는 유해요소들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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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연구원은 '이 사건 사업장 배치공정 작업자를 대상으로 한 작업환경측정결과 톨루엔 농도가 평균 11.870ppm, 최대 32.066ppm으로 높게 측정되었으나 톨루엔은 이 사건 상병의 원인 물질이 아니고, 우리나라 석유화학 제품의 벤젠 함유량이 2003년경 이후부터 급격히 낮아진 것을 고려하면 망인이 배치공정 작업 중 톨루엔에 노출되었다고 하더라도 벤젠 노출량은 미미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나, 망인이 실제로 설비보전업무와 배치공정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노출된 벤젠, TCE 등 유해물질의 정도에 관한 측정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고, 망인이 배치공정에서 작업하였던 2001년~2002년 기간 동안 솔벤트의 벤젠 함유량은 1.28%, 2003년 이후 0.5~1.1%로 나타났으며, 톨루엔에도 미량이기는 하나 벤젠이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망인이 배치공정에서 일한 기간이 4년 7개월로서 짧다고 할 수 없고 유해물질에 장기간 누적적으로 노출되었을 경우에는 질병 발생의 위험성이 커질 것으로 보이는 점, 망인이 근무할 당시 이 사건 사업장에서 사용한 유기용제들의 정확한 종류와 성분을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TCE가 설비 세정 공정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므로 이 사건 사업장에서도 TCE가 포함된 용제를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점, 솔벤트 나프타가 포함된 용제가 산화되는 과정에서 포름알데히드가 생성될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망인이 벤젠, TCE, 포름알데히드 등 이 사건 상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았거나 노출수준이 미미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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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2013년에 이 사건 상병을 포함한 비호지킨림프종 환자 발생 건수는 4,828건으로, 그중 50대가 22.7%, 70대가 21.4%, 60대가 20%로 전체 비호지킨림프종 환자의 약 64%가 50대 이상에서 발생하였음. 망인에게 이 사건 상병과 관련한 유전적 소인, 병력, 가족력은 확인되지 않고, 망인은 20대 초반에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를 시작한 후 이 사건 상병의 평균 발병연령보다 상당히 이른 42세에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였는바, 앞서 본 유해물질에 대한 누적적·복합적인 노출 외에 뚜렷한 발병 원인이나 위험인자를 찾기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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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원의 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가 '망인의 업무 관련 유해물질(유기용제, 중금속, 방사건) 노출 수준이 이 사건 상병 발병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고, 이 사건 상병의 확립된 원인물질(벤젠 등)에 대한 노출이 확인되지 않았다. 망인의 이 사건 상병 발병 및 악화는 작업환경보다는 EBV 감염을 포함한 비환경적 요인의 기여도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는 하였음. 그러나 EBV는 전 세계 성인의 90% 이상에서 검출되는 바이러스로, 감염 후 평생 동안 체내에 잠복하면서 제거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음.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한 대부분의 환자에게서 EBV가 검출되고 있으나, EBV에 감염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는 것은 아니고, 유해물질 노출 등 다른 요인에 의하여 면역 기능이 저하될 경우 체내에 잠복한 EBV가 활성화되어 종양을 유발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함. 따라서 망인이 EBV에 감염되었다는 점을 주된 근거로 이 사건 상병의 발병에 업무적 요인이 기여한 정도가 낮다고 판단한 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의 위 의견은 채용하기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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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원의 다른 감정의(혈액종양내과)가 망인의 업무가 이 사건 상병 발병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감정의견을 제시하기는 하였으나, 감정의(혈액종양내과)의 위 의견은 망인의 유해물질 노출 정도가 낮다고 판단한 직업환경연구원의 보고서에 기초한 것인바 앞서 본 바와 같이 망인의 유해물질 노출 정도가 직업환경연구원에서 평가한 수준 이상일 경우에는 유지되기 어려운 결론인 점, 위 감정의(혈액종양내과)는 망인에게서 이 사건 상병의 발병에 개인적 취약성이 작용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제시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감정의(혈액종양내과)의 의견은 규범적인 관점에서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함에 있어 장애가 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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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첨단 전기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노출되는 유해 화학물질의 위험성이 제대로 인식되기 이전인 2000년대 중반 이전에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한 근로자들에게서 비교적 이른 나이(20대 또는 30대)에 이 사건 상병, 림프구성 백혈병, 골수성 백혈병등 림프구 및 골수에서 유래한 혈액암이 발생한 사례가 다수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중 일부에 대하여는 업무상질병이 인정되기도 하였는바, 이러한 사정도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긍정하는 사정이 될 수 있음

판사 호성호(재판장) 강상우 이슬아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