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항소이유의 요지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직무를 유기하고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를 손상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됨에도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판단
공소사실
피고인은 2010. 2. 24.부터 2013. 2. 20.까지 C에 있는 대구지방고용노동청 D 근로개선지도과에서 재해발생상황 파악, 재해발생 원인조사 및 조치 등의 업무를 담당한 근로감독관으로서 2011. 4. 1.경 위 근로개선지도과 사무실에서 삼성에버랜드 주식회사(이하 '삼성에버랜드'라 한다) 소속의 E으로부터 "2011. 3. 30. F에 있는 'G' 건설공사 현장(이하 '이 사건 공사현장'이라 한다)에서 H이 굴삭기 작업을 하던 중 굴삭기가 전복되어 사망하였다."라는 내용의 신고를 받으면서 그로부터 사고경위서, 사망자의 신분증 사본, 사망진단서, 건설기계등록증 사본을 제출받았다.
이러한 경우 근로감독관으로서는 신고사건을 정식으로 접수한 다음 재해발생상황을 파악하여야 하고, 위 사망사고가 중대재해(근로자가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하여 사망한 사고)에 해당할 경우에는 이를 알게 된 시각부터 24시간 이내에 신속한 방법으로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이를 보고하고 즉시 재해발생 원인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여야 하며, 재해조사결과 법령 위반사항을 확인한 경우에는 수사에 착수하여야 함에도, 피고인은 그 무렵 평소 알고 지내던 공인노무사 I으로부터 전화로 "이 사건을 수임하였는데 H이 근로자는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을 듣자, 위 신고사건을 정식으로 접수하지 않은 채 위 H이 위 주식회사에 고용된 근로자인지 여부, 위 사고와 관련하여 위 주식회사의 안전관리의무 위반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한 장비임대차계약서 또는 근로계약서 확인, 현장소장·목격자 등 관련자 조사 등 재해발생상황, 재해발생 원인 등에 대한 조사를 전혀 하지 않고, 그 무렵 위 제출서류들을 모두 임의로 폐기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직무를 유기하고,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를 손상하였다.
관련 법리
형법 제122조에서 정하는 직무유기죄에서 '직무를 유기한 때'란 공무원이 법령, 내규 등에 의한 추상적 성실의무를 태만히 하는 일체의 경우에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의 무단이탈,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과 같이 국가의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시킬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리하여 일단 직무집행의 의사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 경우에는 그 직무집행의 내용이 위법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만으로 직무유기죄의 성립을 인정할 것은 아니고, 공무원이 태만·분망 또는 착각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아니한 경우나 형식적으로 또는 소홀히 직무를 수행한 탓으로 적절한 직무수행에 이르지 못한 것에 불과한 경우에도 직무유기죄는 성립하지 아니한다(대법원 2007. 7. 12. 선고 2006도1390 판결, 대법원 2011. 7. 28. 선고 2011도1739 판결 등 참조).
원심의 판단
직무유기의 점에 관한 판단
원심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를 처리함에 있어 그 직무상 과오가 있었음은 별론으로 하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위 사고 처리에 관한 자신의 직무를 의식적으로 포기하였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2011. 3. 30. 이 사건 공사현장에서 사망한(이하 위 사망사고를 '이 사건 사고'라 한다) H은 2010. 2. 12.경 'J'이라는 상호로 건설업에 관한 사업자등록을 마쳤다. H은 자신이 소유한 굴삭기(이하 '이 사건 굴삭기'라 한다)에 관하여 삼성에버랜드와 사이에 1일 40만 원의 임대료를 지급받기로 하는 장비임대차계약을 체결한 후 이 사건 공사현장에서 굴삭기를 운행해 오던 중 위와 같은 사고를 당하였다. 따라서 H은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의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고, 그에 따라 이 사건 사고는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 제7호, 산업안전보건 업무담당 근로감독관 집무규정(고용노동부훈령 제63호, 이하 '이 사건 집무규정'이라 한다) 제23조에 따라 근로감독관의 조사의무가 인정되는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H과 삼성에버랜드 사이에 임대차계약서가 작성된 바 없어 근로감독관인 피고인으로서는 E으로부터 이 사건 사고에 관한 신고를 접수한 후 사고현장 및 관련자 조사 등을 통해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장비임대차계약 체결 여부를 조사하여 H의 근로자성에 관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은 E으로부터 제출받은 건설기계등록증을 통해 H이 이 사건 굴삭기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고, 삼성에버랜드의 직원으로서 H과의 임대차계약 체결 업무를 수행한 K은 원심 법정에서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후 근로감독관과 통화하여 사고 및 장비임대차계약 체결 경위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고 진술하였다.
이 사건 집무규정은 감독관이 조사하여야 할 재해 중 하나로 '중대재해'를 들고 있을 뿐(제23조), 공사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였을 경우에 감독관이 준수해야 할 일반적인 대응수칙에 관하여는 정하고 있지 않다.
피고인이 I으로부터 이 사건 사고 처리에 관한 부정한 청탁 또는 그 대가를 받았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공용서류손상의 점에 관한 판단
원심은 앞서 든 증거들에 의하여 피고인이 2011. 4. 1. E으로부터 건설기계등록증 등 관련 서류를 넘겨받고도 이 사건 사고가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후 위 서류를 정식 문건으로 접수 처리하지 않았고, 수사기관에서부터 현재까지 위 서류를 캐비닛에 보관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을 뿐 위 서류의 행방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못한 점을 인정하였으나, 형법 제141조 제1항의 공용서류손상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용서류를 손상하려는 범의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일관되게 위 서류의 행방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였을 뿐 위 서류를 폐기하였다고 진술한 바는 없고(피고인이 검찰에서 한 자백은 수사기관의 범죄성립에 관한 법률 적 판단에 수긍한다는 취지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피고인이 캐비닛에 넣어 둔 서류가 피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분실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어려우므로, 앞서 인정한 사정 및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에게 공용서류 손상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당심의 판단
직무유기의 점에 관한 판단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E으로부터 신고를 받고 건설기계등록증, 사업자등록증에 의하여 H이 'J'이라는 상호로 사업자등록을 마친 자로서 이 사건 굴삭기의 소유자임을 확인하였고, K에게 전화를 하여 H과 삼성에버랜드 사이에 장비임대차계약을 체결한 것을 확인한 사실,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는 사고에 대해서는 근로감독관의 조사의무를 인정할 아무런 규정이 없으며, 사망 사고에 대한 신고가 있는 경우 '중대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하여 반드시 '접수'라는 절차를 거쳐서 신고를 접수하고 이를 처리하도록 하는 규정도 찾아볼 수 없는 사실이 인정된다.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은 이 사건 사고에 대한 조사 초기에 H이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이 사건 사고는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더 이상 조사에 나아가지 않은 것으로, 실제로도 H은 근로자가 아니어서 이 사건 사고는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피고인에게 조사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점과 원심이 설시하고 있는 위와 같은 사정들을 모두 종합하여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H과 삼성에버랜드 사이의 임대차계약 여부 확인 등에 있어서 소홀히 직무를 수행한 탓으로 적절한 직무수행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을지는 몰라도 피고인이 그 직무를 의식적으로 포기하는 등으로 직무유기의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라고 본 원심판결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되고, 거기에 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실오인의 위법은 없으므로, 검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
공용서류손상의 점에 관한 판단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을 기록과 대조하여 면밀히 살펴보면, 원심판결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되고, 거기에 검사의 주장과 같이 사실을 오인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은 없다(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사고 신고에 대해서는 피고인에게 조사의무나 처리의무를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신고 당시 접수된 서류는 피고인이 스스로 판단에 따라 이를 신고자에게 반환하거나 폐기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피고인에 대하여 공용서류손상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부분 검사의 주장도 이유 없다.
결론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따라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성수(재판장) 김동혁 강태호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