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벌금 3,000,000원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1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집행유예 선고가 실효 또는 취소되고 피고인이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 100,000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피고인을 노역장에 유치한다.
이유
소송의 경과
원심은 2020. 11. 26.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여 피고인에 대하여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하였고, 피고인은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환송전 당심은 2021. 8. 13.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사는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2023. 9. 21. 검사의 상고를 받아들여 환송전 당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이 법원에 환송하였다.
항소이유의 요지
의사 E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므로, 피고인은 E에 대한 퇴직금 지급의무가 없으며, 피고인에게 퇴직금 미지급에 대한 고의도 없었다. 설령 E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더라도 피고인은 C조합 대표자로서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므로 이는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
항소이유에 관한 판단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서울 중랑구 B에 있는 ‘C조합(이하 ‘이 사건 조합’이라 한다) D의원(이하 ‘이 사건 의원’이라 한다)’의 대표로서 상시 근로자 6명을 사용하여 보건업(일반외과 등)을 경영하는 사용자인바, 사용자는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에는 그 지급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등 일체의 금품을 지급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위 사업장에서 2017. 8. 1.부터 2019. 7. 31.까지 근로한 E의 퇴직금 14,380,435원을 당사자 간 지급기일 연장에 관한 합의 없이 그 지급사유 발생일인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하지 아니하였다.
판단
E의 근로자성에 관하여
원심의 판단
피고인은 원심에서도 이 부분과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하였고, 이에 대하여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비록 피고인과 E 사이에 외형상으로는 위탁계약이 체결되어 있지만 그 실질에 있어서는 E는 이 사건 의원의 진료실 또는 원장실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인 피고인에게 근로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공소사실은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당심의 판단
관련법리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비추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고, 여기에서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의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다만,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였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하여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등 참조).
판단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을 종합하면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피고인은 이 사건 조합의 대표자로 2012. 4. 13. 이 사건 의원을 개설하여 운영하다가 당시 재직 중이던 의사 V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2013. 4. 1.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근로기준법 위반죄로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피고인은 V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정식재판을 청구하였으나 같은 법원에서 벌금 200만 원의 판결을 선고받았고, 이에 불복하여 항소, 상고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피고인은 그 이후 공인노무사의 도움을 받아 위탁진료계약 형식의 계약서를 제공받아 노무관계를 해결해 오다가 2017. 8. 1. E와 사이에 E가 그때부터 2018. 7. 31.까지 이 사건 의원에서 진료업무를 수행하고 매월 600만 원 및 현금 135만 원을 받는 내용의 위탁진료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고, E는 피고인으로부터 위 금액을 고정적으로 지급받았다.
E는 이 사건 의원의 유일한 의사로 근무시간(주중 09:00~18:00, 토요일 09:00~15:00)이 일정하게 정하여져 있었고, 근무 장소도 진료실(원장실)로 특정되어 있었다.
이 사건 계약에 따라 E는 월 1회 상호 조정 하에 진료업무 수행의 현황 및 실적을 피고인에게 통지하여야 했고(제6조 제4항), 피고인은 보고의무를 해태하거나 불성실하게 행한 경우 이 사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제8조 제2항 제5호).
E가 근무 중 사용하는 각종 의료장비나 사무기기 등은 피고인이 제공한 것이다.
E는 이 사건 의원을 사업장으로 한 건강보험 가입신고가 되어 있었다.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 나타난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E는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인다.
이 사건 계약의 형식이 위탁진료계약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건 계약 내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E가 정해진 시간 동안 이 사건 의원에서 진료업무를 수행하고 피고인은 E에게 그 대가를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이 사건 의원에서 진료업무를 수행하였던 유일한 의사인 E는 주중 및 토요일 대부분을 이 사건 의원에서 근무하면서 매월 진료업무 수행의 현황이나 실적을 피고인에게 보고하여야 했으므로, 피고인은 E의 근무시간 및 근무장소를 관리하고 E의 업무에 대하여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E는 피고인이 제공하는 의료장비나 사무기기를 활용하여 진료업무를 수행하였고 피고인으로부터는 환자 치료실적에 따른 급여의 변동 없이 매월 고정적으로 돈을 받았으므로, E가 지급받은 돈은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E가 비록 진료업무수행 과정에서 피고인으로부터 구체적, 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이는 의사의 진료업무특성에 따른 것이어서 E의 근로자성을 판단할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퇴직금 미지급에 대한 고의 및 정당행위 해당 여부에 관하여
이 부분 주장은 항소이유서 제출기간이 도과된 이후의 주장으로서 적법한 항소이유가 아니고, 직권으로 살펴보더라도, ① 앞서 본 사실 내지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에게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에 관한 고의가 인정되고, ② 증 제9호증에 의하면 2019. 9. 20. 개최된 이사회에서 E에게 퇴직금 상당액을 지급하는 안건이 부결된 사실이 인정되나, 이는 E의 퇴직일인 2019. 7. 31.로부터 약 50일이 경과한 이후이고, 안건의 요지는 E가 근로자인 것은 아니어서 퇴직금을 지급할 것은 아니지만 조합의 이미지 및 원활한 운영 등을 위해 퇴직금 상당액을 지급한다는 것일 뿐인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E의 퇴직금을 그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하지 않은 것이 이사회의 결의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 역시 이유 없다.
직권판단(양형부당)
직권으로 원심판결에 양형부당 사유가 있는지 살펴본다.
이 사건 미지급 퇴직금 액수 등에 비추어 죄질이 가볍지 않은 점, 피고인은 과거에도 동종 범죄로 벌금형의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점 등은 불리한 정상이다. 이에 반하여 E가 이 사건 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의 소 항소심(서울북부지방법원 2021나32966)에서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이 사건 조합이 E에게 14,380,435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는 등의 내용)이 확정되어 이 사건 조합이 2023. 11. 30. E에게 28,323,991원을 지급하였고, 피해자의 대리인은 당심에서 2023. 12. 4.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점, 피고인에게 벌금형을 초과하는 범죄전력은 없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다. 그 밖에 피고인의 나이, 직업, 환경, 범행동기 및 경위,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기록과 변론에 나타난 모든 양형조건을 종합하여 보면,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판단된다.
결론
그렇다면 원심판결에는 위와 같은 직권파기 사유가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2항에 따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