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벌금 2,000,000원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1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위 집행유예의 선고가 실효 또는 취소되고 피고인이 위 벌금을 납입하지 않는 경우 10만 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피고인을 노역장에 유치한다.
이유
항소이유의 요지(사실오인)
피고인은 근로자 E과의 합의에 기초하여 퇴직금을 매월 임금에 포함하여 분할지급하였으므로 피고인에게는 퇴직금 지급의무가 없다.
설령 위와 같은 방식의 퇴직금 지급이 사법상 무효라 하더라도 피고인은 이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피고인으로서는 퇴직금 지급의무의 존부에 관하여 다툴만한 근거가 있어 피고인이 E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바 이 사건 범행에 관한 고의가 없다.
피고인이 E에 대한 퇴직금 지급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체불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은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
직권판단
피고인의 항소이유에 관한 판단에 앞서 직권으로 살펴본다.
원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현행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44조 제1호(법정형: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를 적용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는 행위시법이자 법정형이 더 가벼운 구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2021. 4. 13. 법률 제18038호(시행일 2022. 4. 14.)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4조 제1호(법정형: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가 적용되어야 하는바, 원심판결에는 법령을 잘못 적용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다만 위와 같은 직권파기 사유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의 사실오인 주장은 여전히 이 법원의 심판대상이 되므로 이에 관하여 살펴본다.
사실오인 주장에 대한 판단
피고인의 퇴직금 지급의무 및 이 사건 범행에 관한 고의 존부
관련 법리
퇴직금제도를 설정하려는 사용자는 계속근로기간 1년에 대하여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퇴직금으로 퇴직 근로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제도를 설정하여야 하고(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 제1항), 사용자는 근로자의 주택구입, 전세보증금 부담, 6개월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의료비 부담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근로자가 요구하는 경우에 근로자가 퇴직하기 전에 해당 근로자의 계속근로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미리 정산하여 지급할 수 있다(같은 조 제2항).
사용자와 근로자가 매월 지급하는 월급이나 매일 지급하는 일당과 함께 퇴직금으로 일정한 금원을 미리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면, 그 약정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 제2항 전문 소정의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한 최종 퇴직 시 발생하는 퇴직금청구권을 근로자가 사전에 포기하는 것으로서 강행법규인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에 위배되어 무효이고, 그 결과 퇴직금 분할 약정에 따라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하였다 하더라도 퇴직금 지급으로서의 효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10. 5. 20. 선고 2007다9076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09도8248 판결 등 참조).
퇴직금지급청구권은 퇴직이라는 근로관계의 종료를 요건으로 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것으로 근로계약이 존속하는 한 퇴직금지급의무는 발생할 여지가 없으므로 매월 지급받은 월급이나 매일 지급받는 일당 속에 퇴직금이란 명목으로 일정한 금원을 지급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은 근로기준법 제34조에서 정하는 퇴직금의 지급으로서의 효력은 없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이 매월의 월급이나 매일의 일당 속에 퇴직금을 포함시켜 지급받기로 하는 약정은 최종 퇴직 시 발생하는 퇴직금청구권을 사전에 포기하는 것으로서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 제34조에 위반되어 무효라 할 것이고, 사용자가 사법상의 효력이 없는 ‘매월의 월급이나 매일의 일당 속에 퇴직금을 포함시켜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내세워 퇴직한 근로자에 대한 퇴직금의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 이를 퇴직금 지급의무의 존부에 관하여 다툴 만한 근거가 있어 사용자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고 볼 수 없고, 이러한 사용자에게 퇴직금의 기일 내 지급의무 위반죄에 관한 고의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7. 8. 23. 선고 2007도4171 판결 취지 참조).
구체적 판단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의 사실 내지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체불하였고 이에 관한 고의도 있었음이 인정된다. 따라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근로자 E은 피고인 사업체인 D에서 2011. 3. 16.부터 2021. 8. 31.까지 근무하였고, 근무 첫해인 2011년부터 2016년까지는 연봉을 12개월분으로 나누어 지급받았으며 2017년부터 퇴직할 때까지는 13개월분으로 나누어 지급받았다.
E은 퇴직할 당시 2017년부터 2021년까지는 퇴직금 명목으로 일정 금원을 지급받은 점은 인정하나 2011년부터 2016년까지의 기간에 해당하는 퇴직금은 지급받지 못하였으니 이를 지급하여 달라고 피고인에게 요구하였다. 이에 피고인은 이미 임금에 포함하여 지급하였다고 하면서 거절하였고, E은 2021. 10. 19. 피고인의 퇴직금 미지급을 이유로 중앙지방고용노동청 안양지청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피고인과 근로자 E이 작성한 2014. 3. 13.자 근로계약서에는 “피고인 사업체는 연봉제를 지급하는 회사로서 연봉에 상여 및 퇴직금을 포함하며 별도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위 관련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설령 피고인이 위 약정에 따라 E에 대한 퇴직금을 매달 임금에 포함하여 중간정산의 형태로 선지급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유’로 인하여 ‘근로자 E이 요구한 것’이라는 등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 제2항에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중간정산이 아니므로 강행법규에 위배되어 무효이다.
피고인은 2016년까지는 퇴직금 포함한 연봉을 12개월분으로 나누어 지급하다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저촉되지 않게 급여체계를 바꾸어 2017년부터는 월급 외에 퇴직금 명목으로 일정 금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등 연봉을 13개월분으로 나누어 지급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E이 피고인으로부터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매달 지급받은 금원 중 월급 명목과 퇴직금 명목의 금원이 각 얼마인지 특정할 수 있는 아무런 자료가 없다.
피고인은 퇴직금을 별도로 지급하지 않되 이를 매달 임금에 포함하여 지급하기로 하는 인쇄업계의 오랜 관행이 있었고, 위와 같은 지급방식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위배되어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나 이는 법률의 부지에 불과하다.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은 나름대로 2017년부터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의 취지에 맞게 급여체계를 바꾸었다고 주장하는바, 종전의 퇴직금 지급방식에 대해서는 위법의 소지가 있음을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의 퇴직금 미지급이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관련 법리
형법 제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어떠한 행위가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인지는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합목적적, 합리적으로 가려져야 할 것인바, 정당행위를 인정하려면 첫째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이익과 침해이익과의 법익균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대법원 2000. 2. 25. 선고 99도4305 판결 참조).
구체적 판단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이 주장하는 퇴직금 중간정산은 강행법규인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에 위배되어 무효일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중간정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피고인의 퇴직금 미지급행위는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을 찾기 어렵고, E의 퇴직금 지급요구에 대하여 이미 지급하였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지급을 거절하는 등 수단이나 방법이 상당하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피고인의 영업의 자유 내지 재산권 등 그 보호이익에 비하여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의 입법취지 및 근로자 E의 생활보장 등 침해되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된다. 그 밖에 피고인의 퇴직금 미지급행위의 긴급성, 보충성을 인정할만한 다른 사정도 보이지 아니한다. 따라서 피고인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결론
그렇다면 원심판결에는 위와 같은 직권파기사유가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2항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