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처분의 경위
원고의 아버지인 B(C생)은 D 주식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분진작업에 종사한 근로자였다.
고인은 2013. 5. 27. 진폐정밀진단 결과 '진폐병형 제1형(1/0), 심폐기능 F1/2(경미 장해), 합병증 미코박테리아'로 판정되어 장해등급 11급 결정을 받고 요양하던 중 2017. 1. 5. 사망하였다(이하 위 B을 '고인'이라 한다).
원고는 2019. 3. 13. '고인이 사망 전인 2015. 8. 5. 실시한 폐기능 검사(이하 '이 사건 검사'라 한다) 결과에 따라 장해등급이 상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피고에게 미지급 보험급여 및 위로금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2019. 12. 2. '위 폐기능 검사결과는 신뢰도가 부족하고, 고인의 진폐장해등급은 변동이 없다'는 이유로 부지급 처분을 하였다(이하 '1차 처분'이라 한다).
원고는 1차 처분에 불복하여 서울행정법원 2021구단58762호로 1차 처분 중 미 지급 보험급여 부지급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이하 '관련 행정소송'이라 한다)을 제기하였고, 서울행정법원은 2022. 11. 24. '이 사건 검사를 기준으로 고인의 심폐기능의 장해정도를 판단할 수 있고, 고인은 이 사건 검사 당시 진폐병형이 제1형 이상이며 심폐기능에 고도 장해가 남은 사람으로서 진폐장해등급은 제1급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하였으며, 위 판결은 2022. 12. 20. 그대로 확정되었다.
관련 행정소송의 결과에 따라 피고는 2023. 2. 27. 고인의 진폐 장해등급을 제1급으로 재결정하는 한편, 2023. 7. 25. 원고에게 '고인의 경우 장해 제1급에 따른 진폐보상연금 청구 소멸시효 기산일은 제1급 진단일인 2015. 8. 5.이고, 2018. 6. 12. 법률 제15665호로 개정되어 2018. 12. 13. 시행된 산업재해보상법 시행 당시 이미 3년의 소멸시효가 경과하였으며,<1> 미지급 보험급여 청구서는 3년의 소멸시효 완성 이후인
2019. 3. 13. 제출되었다. 그러므로 1차 처분을 취소하고 고인의 진폐장해등급을 제1급으로 재결정하였으나 소멸시효가 도과되어 부득이 부지급한다'는 내용의 미지급 보험급여 부지급 결정을 하였다('2차 처분'이라 한다).
원고는 2024. 9. 20. 피고에 미지급보험급여를 재차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2024.11. 13. 위와 동일한 이유로 부지급 처분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6호증, 을 제2, 3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이 사건 처분의 위법 여부
원고의 주장
피고는 원고의 최초 미지급 보험급여 청구(2019. 3. 13.) 이후 1차 처분을 한 4년 4개월 동안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지 않았던 점, 이 사건 검사가 있은 후 8년 6개월이 경과한 시점에서야 임의검사 결과로도 장해급여를 지급할 수 있다는 업무처리지침이 마련되어 원고가 이 사건 검사로부터 3년 이내에는 미지급 보험급여를 청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였던 점, 진폐보상연금이 도입된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2010. 5. 20. 법률 제10305호로 개정되어 2010. 11. 21. 시행된 것) 시행 전 요양을 개시한 진폐근로자의 장해급여 신청에 대해 소멸시효 항변을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판결이 선고되었고 피고의 업무처리지침 역시 이 경우 소멸시효는 관련 지침을 마련한 날 기준으로 5년이 경과한 후의 접수분부터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부지급하도록 하고 있는 점, 피고가 관련 행정소송 판결 확정 후 원고에게 보험급여 지급 예정임을 안내하기도 하였던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
판단
소멸시효의 완성
관련 법리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2018. 6. 12. 법률 제15665호로 개정되어 2018. 12.13. 시행되기 전의 것, 이하 특별히 특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 법률을 '구 산재보험법'이라고 한다) 제112조 제1항 제1호는 구 산재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를 받을 권리는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무릇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진행하므로(구 산재보험법 제112조 제2항, 민법 제166조 제1항), 구 산재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를 받을 권리의 소멸시효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해근로자의 업무상 재해가 산재보험법령이 규정한 보험급여 지급요건에 해당하여 보험급여를 청구할 수 있을 때부터 진행한다. 나아가 구 산재보험법 제91조의3, 제91조의8에 따른 진폐보상연금의 경우 진폐근로자의 진폐병형, 심폐기능의 정도등 진폐 장해상태가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2018. 9. 18. 대통령령 제29180호로 개정되어 같은 달 21. 시행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산재보험법 시행령'이라고 한다) 제83조의2 [별표 11의2], [별표 11의3]에서 정한 진폐장해등급 기준에 해당하게 된 때에 진폐장해등급에 따른 진폐보상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진폐보상연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진폐근로자의 진폐 장해상태가 구 산재보험법 시행령에서 정한 진폐장해등급 기준에 해당하게 된 때부터 진행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근로자가 사망 후 그 유족이 구 산재보험법 제81조에 따라 사망한 근로자에게 지급되지 않은 진폐보상연금의 지급을 청구하는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대법원 2019. 7. 25. 선고 2018두42634 판결 참조).
판단
이에 기초하여 보건대, 고인의 미지급 보험금 청구권은 구 산재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 청구권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으로 폐기능검사가 이루어져 그 결과가 나타난이 사건 검사일인 2015. 8. 5.부터 행사될 수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위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그때부터 진행한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고는 그로부터 앞서 본 소멸시효기간인 3년이 지난 2019. 3. 13.에야 고인의 미지급 보험금을 청구하였으므로, 위 청구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하였다.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관련 법리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다.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08. 9. 18. 선고 2007두2173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인정사실
앞서 든 증거들, 갑 제9 내지 12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피고는, 진폐보상연금 등의 수급권자가 사망한 후 그 유족이 이미 결정된 진폐장해등급과 다른 진폐장해등급에 해당됨을 전제로 이에 따른 진폐유족연금 등을 청구하면서 그 증거로 임의검사 결과를 제출할 경우, 고인이 사망하기 전 진폐판정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정을 들어 그 지급 결정을 거부하여 왔다.
위와 같은 경우에 '고인이 사망하기 전 진폐판정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가 진폐유족연금 등의 청구를 거부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2022두33385호)이 2022. 5. 26. 선고되었다(이하 '관련 대법원 판결'이라 한다).
피고는 관련 대법원 판결 선고 후인 2023. 1. 26.경 '사망한 진폐근로자의 경우 임의검사 결과라고 하더라도 이를 진폐심사의 대상으로 삼아 보험급여 지급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진폐 진단을 거치지 않은 사망자의 임의검사 결과에 대한 진폐증 장해상태 판정 업무처리기준」(이하 '이 사건 개정 업무처리지침'이라 한다)을 마련하여 시행하였다.
구체적 판단
앞서 본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가 관련 대법원 판결 선고 시점까지는 임의 검사 결과에 근거한 유족의 진폐유족연금 등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온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이는 원고와 같은 유족들의 권리행사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법률적 판단을 잘못하여 장해등급을 부여하지 않아 온 것이지 이들의 권리행사 자체를 방해한 것은 아니다. 원고 또한 이 사건 개정 업무처리지침이 마련되어 시행되기 이전인 2019. 3. 13. 피고를 상대로 고인의 미지급 보험급여 및 위로금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므로, 위 업무처리지침의 시행 이전 임의검사 자료에 기초한 유족의 보험급여 등 지급청구를 거부하던 피고의 업무처리 관행이 원고가 미지급 보험급여 등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객관적인 장애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고인으로서는 사망전 법령에 따른 진폐판정절차를 거쳐 피고에게 미지급 보험급여 등을 청구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였다.
피고가 원고의 권리행사를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다거나, 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원고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원고의 주장은 피고가 당연히 미지급보험급여 지급을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청구하지 아니하였다는 취지로 해석되나, 이는 소멸시효 완성일로부터 7개월 후 미지급 보험급여 등을 청구하고 1차 처분에 불복하여 관련 행정소송을 제기하기까지 한 원고의 행위와 모순된다. 뿐만 아니라 원고의 의사 결정에 피고의 적극적·구체적인 방해 행위가 개입되었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고, 원고가 주관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서 청구를 포기하였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피고가 원고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또한 소멸시효 관련 처리기준을 변경한 날(2017. 5. 8.)부터 5년이 경과한 후의 접수분(2022. 5. 9.) 부터만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부지급 하고 있는 피고의 업무처리기준은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2010. 5. 20. 법률 제10305호로 개정되어 2010. 11. 21. 시행된 것)의 시행에 따라 진폐보상연금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요양 중인 진폐근로자의 경우에 관한 것으로서 위 법률 제10305호로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 중 요양을 개시한 고인의 경우와는 사안을 달리하여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나아가 관련 행정소송의 쟁점은 이 사건 검사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지 여부로 소멸시효 완성은 다투어지지 않았고, 피고가 원고에게 2023. 4. 26. 보낸 보완요청은 미지급 보험급여 지급 여부를 검토하기 위한 단계에서 필요한 서류의 보완을 요청한 것일 뿐이므로, 이를 두고 피고가 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거나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소결론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지 않다.
결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박은지
각주1) 그와 같이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법 제112조 제1항 단서에서는 진폐보상연금의 소멸시효기간이 5년으로 변경되었다.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