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항소이유의 요지(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피고인이 근로자 E과 작성한 퇴직금 기타 근로관계로 인한 채권채무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는 강행법규 위반으로 효력이 없으므로 E이 퇴직금, 미사용 연차수당의지급청구권을 포기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에게 근로기준법위반 및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데도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고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판 단
관련 법리
형사재판에서 공소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유죄의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1. 8. 21. 선고 2001도2823 판결 등 참조).
퇴직금지급청구권은 퇴직이라는 근로관계의 종료를 요건으로 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것으로 근로계약이 존속하는 한 퇴직금 지급의무는 발생할 여지가 없으므로 매월 지급받은 월급이나 매일 지급받는 일당 속에 퇴직금이란 명목으로 일정한 금원을 지급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은 근로기준법 제34조에서 정하는 퇴직금의 지급으로서의 효력은 없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이 매월의 월급이나 매일의 일당 속에 퇴직금을 포함시켜 지급받기로 하는 약정은 최종 퇴직시 발생하는 퇴직금청구권을 사전에 포기하는 것으로서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 제34조에 위반되어 무효이다(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2도2211 판결, 2002. 7. 26. 선고 2000다27671 판결 등 참조).
임금 등 지급의무의 존재에 관하여 다툴 만한 근거가 있는 경우라면 사용자가 임금 등을 지급하지 아니한 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어서 사용자에게 근로기준법 제36조, 제109조 제1항 위반죄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임금 등 지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다툴 만한 근거가 있는지는 사용자의 지급거절이유 및 지급의무의 근거, 사용자가 운영하는 회사의 조직과 규모, 사업 목적 등 제반 사항, 기타 임금 등 지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한 다툼 당시 제반 정황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하며, 사후적으로 사용자의 민사상 지급책임이 인정된다고 하여 곧바로 사용자에게 같은 법 제36조, 제109조 제1항 위반죄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10도14693 판결 등 참조).
구체적 판단
인정 사실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가) E은 2015. 10. 2. 피고인(원심과 동일하게 당심에서도 근로계약서 상의 당사자는 D의 대표 G이나, D의 대표자 명의만 G으로 하였을 뿐 실질적으로는 피고인이 대표로서 운영하였다고 판단된다)과 사이에 근로시간 10시부터 20시까지 주5일, 임금 월 180만 원으로 하는 근로계약서(이하 ‘이 사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였는데, 위 근로계약서에는 “퇴직금은 월급에 포함하여 지급된다.(다만, 퇴직시 퇴직금을 원할 때에는 퇴직금은 공제 후 지불하기로 한다.)”라는 약정(이하 ‘이 사건 퇴직금 분할약정’)이 기재되어 있다. D의 다른 근로자들도 그 무렵 위와 같은 약정이 기재되어 있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였다고 보인다.
피고인은 2016. 12. 29. E과 사이에 합의금으로 1,749,000원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위 합의금은 “갑(G)이 을(E)에게 지급할 퇴직금을 포함한 일체의 채무에 대해 상호 원만하게 합의하는 것으로서, 이후 갑(G)이 을(E)에게 지급할 채무는 일체 없음을 확인하며, 퇴직금 기타 근로관계로 인한 채권채무와 관련한 어떠한 민/형사상의 이의(노동부 진정 포함)를 제기치 않을 것이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음을 확약합니다.”(이하 이 조항을 ‘이 사건 부제소합의’)라는 내용의 합의서(이하 ‘이 사건 합의서’)를 작성하였다.
미사용 연차수당 및 퇴직금 지급의무의 존부에 관하여
원심은 그 판시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인과 E 사이에 작성된 이 사건 합의서는 효력이 있고, 이 사건 합의서로써 E은 퇴직금, 미사용 연차수당의 지급청구권을 포기하였으므로 피고인에게 퇴직금 및 미사용 연차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에게 퇴직금 및 미사용 연차수당 지급의무가 있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으므로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우선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 퇴직금 분할약정의 효력에 관하여 살피건대, ① 이 사건 근로계약서에는 임금만 기재되어 있고 퇴직금이 얼마인지 구분되어 있지 않은 점, ② 다른 근로자인 J, K는 근로계약시 월급에 포함되는 퇴직금이 얼마인지는 듣지 못했다고 진술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퇴직금 분할약정은 최종 퇴직시 발생하는 퇴직금 청구권을 잠탈하기 위한 것이거나 사전에 포기하는 것으로서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 제34조에 위반되어 무효이다. 또한,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매년 5월에 E에게 지급한 50만 원이 상여금이 아니라 퇴직금이라 하더라도 이 지급금원 역시 퇴직금 청구권을 사전에 포기하는 것으로서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무효이다. (2) 다음으로 이 사건 합의서의 효력에 관하여 살펴본다. 사문서는 본인 또는 대리인의 서명이나 날인 또는 무인이 있는 때에는 진정한 것으로 추정되므로(민사소송법 제358조), E이 이 사건 합의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서명한 사실을 인정하는 이상, 이 사건 합의서의 진정성립이 추정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기재내용인 이 사건 부제소합의대로 법률행위가 있음이 인정된다.
그런데, ①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이 사건 합의서상 합의금인 1,749,000원은 일할 계산된 12월 월급 1,300,000원과 퇴직금 449,000원을 합한 금액인데, 3년 이상 일한 E의 근무경력에 비추어 지급된 퇴직금 액수가 너무 적은 점, ② 원심판시 법리와 같이 최종퇴직시 퇴직금과 관련하여 부제소합의를 하는 것은 퇴직금의 사전포기에 해당하지 않아 유효하나, 검사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민사적으로 강행법규 위반으로 무효인 퇴직금 분할약정을 전제로 하여 부제소합의를 하였다면 이를 무효로 볼 여지도 있는 점, ③ 이 사건 합의서에는 미사용 연차수당에 대해서 명확히 기재되어 있지 않고 피고인도 수사기관에서 이 사건 합의서 작성시 미사용 연차수당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아 E에게 이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했던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만약 이 사건 부제소합의가 강행법규 위반으로 무효인 이 사건 퇴직금 분할약정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이 역시 무효라고 볼 여지가 있고, 그 내용만으로 미사용 연차수당까지 포기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또한, 이 사건 합의서 작성 경위에 관하여 E은 수사단계에서부터 일관하여 ‘노안으로 눈이 잘 안 보여 이 사건 합의서 내용을 읽어보지 못했고 피고인이 H에게 D을 양도하는 데 필요하다고 하여 이 사건 합의서를 들고 와서는 합의금에 대해 12월 월급과 매년 50만 원의 상여금을 일할 계산한 금액이라는 설명만 듣고 서명하였을 뿐그 합의금이 퇴직금이라거나 미사용 연차수당까지 포기하는 내용인 줄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점 및 2019. 12. 19.경 피고인에게 이 사건 부제소합의를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로서 취소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낸 점(증거기록 169면)을 종합하면, 이 사건 부제소합의가 퇴직금뿐만 아니라 미사용 연차수당까지 포기하는 내용이라고 보더라도 민사적으로 이 사건 부제소합의는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부분에 관하여 착오한 경우에 해당하여 취소될 여지도 있어 보인다.
근로기준법위반 및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의 고의에 관하여
원심은, 그 판시증거에 의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피고인은 퇴직금을 비롯한 근로관계상의 일체의 채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였고 이에 따라 합의금을 지급한 점, ② E은 이로부터 오랜 기간이 지난 이후에야 퇴직금 및 미사용 연차수당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며, E은 애당초 피고인이 아닌 H에게 퇴직금의 지급을 구하면서 피고인 측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피고인 측은 이를 도와주기도 한 점, ③ 피고인이 운영한 D은 영세한 규모의 사업장인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설령 피고인에게 미사용 연차수당과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미사용 연차수당과 퇴직금의 지급의무 존부에 관하여 다툴 만한 근거가 있는 경우로서 피고인이 이를 지급하지 아니한 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 피고인에게 근로기준법위반 및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살피건대, 당심에서 고의성 여부에 관하여 새로이 심증의 형성에 영향을 미칠만한 객관적 사유가 드러난 것이 없다. 나아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해 알 수 있는 다음과 사정, 즉 ① 앞서 살펴보았듯이 피고인이 이 사건 합의서 내용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서명한 이상, 이 사건 부제소합의 내용대로 법률행위의 존재를 인정하여야 하는 점, ② J, K 등 일부 근로자는 근로감독관과의 통화에서 합의서 작성시 퇴직금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 서명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③ 피고인이 H에게 D을 양도하면서 기존 근로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이 사건 합의서를 작성하고 합의금을 지급함으로써 더 이상 금원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믿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④ 이 사건 부제소합의의 무효 또는 취소 여부에 관하여는 추후 민사에서 가려질 문제인 점까지 보태어 보면, 피고인에게 퇴직금 및 연차미사용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존재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원심판단과 같이 이 사건 당시에는 그 지급의무 존부에 관하여 다툴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어 범행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소결
결국 원심이 설시한 여러 사정들을 기록과 면밀히 대조하여 보면, 원심의 판단에 일부 미흡한 점은 있으나 결론에 있어 원심의 무죄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검사의 주장과 같은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검사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 론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따라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문보경(재판장) 김동욱 서제석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