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이유
기초사실
당사자의 지위 등
피고는 철도승차권의 예약 및 발매 등의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로, 한국철도공사법에 따라 설립된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이다.
원고들은 피고의 근로자이거나 근로자였던 사람들이다(원고 B, C, D은 사망한 근로자인 E의 자녀들이다).
피고의 사업장에는 총 4개의 노동조합이 있는데, 그중 F노동조합(이하 ‘이 사건 노조’라 한다)의 G지부(이하 ‘이 사건 지부’라 한다)는 피고의 전체 근로자의 과반수가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노동조합으로, 원고들도 이 사건 지부의 조합원이다.
H은 2018.8.8. 피고의 대표이사로 취임하였다가 2020.8.6. 해임된 사람이고, I는 이 사건 노조의 위원장, J는 이 사건 지부의 지부장이었던 사람이다.
정년연장 합의와 이사회에서의 부결
피고의 인사규정 제34조제1항은 ‘직원(무기계약직 포함)의 정년은 만 60세로 한다. 다만, 역무직 및 주차직의 정년은 만 61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9.12.30. 당시 피고의 대표이사 H과 이 사건 지부장 J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현안합의서(이하 ‘이 사건 현안합의서’라 한다)를 작성하였다.
피고의 이사회는 2019.3.12. 이 사건 현안합의서의 내용에 따라 인사규정 제34조를 개정하는 안건에 관하여 표결하였으나, 부결로 의결하였다.
2020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상견례 개최
J는 2020.7.22. 피고에게 2020년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제1차 본 교섭 개최를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2020.7.24.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개최된 노사간의 상견례 자리에는, 피고 측에서 H 등 총 9명이, 이 사건 노조 측에서 I, J 등 총 10명이 참석하였다. 이 상견례 자리에서 교섭사항으로 이 사건 현안합의서 이행, 전환자 처우 개선, 임금인상 등 안건이 상정·논의되었는데, 이때 파업기간 동안의 파업 참여자에 대한 임금 지급에 관하여는 논의된 적이 없다. 노사는 향후 위 논의된 안건들에 관하여 향후 간사간의 협의를 통해 교섭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사건 노사합의서의 작성
H과 J는 2020.7.24. 17시부터 18:30경 사이에 피고의 대표이사 사무실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의 노사합의서(이하 ‘이 사건 노사합의서’라 한다)를 작성하였다.
이 사건 노조의 파업
앞서 본 2020.7.24.자 상견례를 시작으로 개시된 노사간의 단체교섭은 2020.10.경 결렬되었고, 피고와 이 사건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과정을 거치면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에 원고들을 비롯한 이 사건 노조의 조합원들은 2020.11.9.경부터 파업(이하 ‘이 사건 파업’이라 한다)에 돌입하였으며, 이 파업은 2021.2.경까지 계속되었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에서 4, 7, 8호증, 을 제1에서 10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판단
당사자의 주장 요지
원고들
피고는, 이 사건 노사합의서에 따라 이 사건 파업에 참여한 원고들에게 파업 참여기간에 대하여 평균임금의 70%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피고
이 사건 노사합의서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무효이므로, 피고는 이 사건 노사합의서에 따른 임금 지급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이 사건 노사합의서의 체결은 이사회의 결의를 요하는 사항인데도 이사회의 결의가 없었으므로 전단적 대표행위에 해당하고, 이 사건 노조가 이를 알고 있었으므로, 이 사건 노사합의서는 무효이다.
이 사건 노사합의서는 피고의 이익이 아니라 오로지 이 사건 노조 및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체결된 것으로서 대표권의 남용에 해당하고, 이 사건 노조는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 사건 노사합의서는 무효이다.
이 사건 노사합의서는 이 사건 파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하여 2020.10.경 소급하여 작성된 것으로서, 당시 H은 대표이사의 지위에 있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노사합의서는 대표권 없는 자가 작성한 위조문서로 무효이다.
이 사건 노사합의서는 H의 배신적, 배임적 행위에 따라, 오로지 이 사건 노조 및 조합원들의 이익만을 위해 체결된 것이므로, 민법 제103조에 반하는 반사회질서적 법률행위로서 무효이다.
이 사건 노사합의서의 효력 유무에 관한 판단
전단적 대표행위 주장에 관한 판단
관련 법리
노동조합법 제29조제1항은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그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을 위하여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노동조합의 대표자에게는 단체교섭의 권한뿐만 아니라 교섭한 결과에 따라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이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 규약에서 노동조합의 대표자가 단체교섭의 결과에 따라 사용자와 단체협약의 내용을 합의한 후 다시 그 협약안의 가부에 관하여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 그 노동조합 규약은 노동조합 대표자의 단체협약체결권한을 전면적, 포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단체협약체결권한을 형해화하여 명목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어서 노동조합 대표자의 단체협약체결권한을 규정한 노동조합법 제29조제1항의 취지에 반한다(대법원 2013.9.27. 선고 2011두15404 판결 등 참조).
구체적 판단
앞서 든 증거와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피고의 정관 제27조제1항은 ‘이사는 이사회를 조직하고, 대표이사의 선임과 회사업무 집행에 관한 중요사항을 결의하며 의장은 대표이사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사회 운영규정 제6조제1항은 ‘경영목표, 예산, 자금계획 및 운영계획의 수립 및 변경(제1호)’, ‘취업규칙 및 보수규정의 제정 및 개폐(제14호)’ 등을 이사회 심의·의결 사항으로 정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볼 때, 만일 피고의 정관이나 이사회 운영규정이 피고의 대표자가 노동조합의 대표자와 체결한 단체협약이 피고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는 취지라면, 이는 피고 대표자의 단체협약체결권한을 전면적, 포괄적으로 제한할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대표자의 단체협약체결권한을 사실상 형해화하여 명목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어서 노동조합 대표자의 단체협약체결권한을 규정한 노동조합법 제29조제1항의 취지에 반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노사합의서에 관한 피고 이사회의 의결이 없었음을 이유로 이 사건 노사합의서의 효력이 인정될 수 없다는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대표권 남용 주장에 관한 판단
관련 법리
노동조합법 제29조제1항은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그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을 위하여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30조제1항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는 신의에 따라 성실히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여야 하며 그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그 대표권의 범위 내에서 한 행위는 설사 대표이사가 회사의 영리목적과 관계없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그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일단 회사의 행위로서 유효하고, 다만 그 행위의 상대방이 대표이사의 진의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무효가 되는 것이다(대법원 2005.7.28. 선고 2005다3649 판결 등 참조).
구체적 판단
앞서 든 증거에다가 갑 제5, 6호증, 을 제11에서 37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또는 영상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노사합의서는 피고의 전 대표이사인 H이 대표권을 남용하여 체결한 것으로서, 상대방인 이 사건 노조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무효라고 할 것이다(이와 같이 이 사건 노사합의서를 무효로 판단하는 이상, 이 사건 노사합의서의 체결이 무효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나머지 주장에 대하여는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않는다).
이 사건 노사합의서 체결 당시 피고의 노사협력처장 K이 작성한 사실확인서에는, ㉠ 2020.7.24. 2020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상견례가 종료된 이후인 13시부터 14시경까지 J 지부장을 비롯한 집행부 7~8명이 사전예고 없이 피고의 대표이사 사무실을 방문하여, H과 피고의 주요부서 처장들이 동석한 가운데 이 사건 현안합의서의 이행을 요구하였는데, 이때 H은 이사회의 부결 등의 사유를 들어 즉시 합의이행은 불가하다는 답변을 제시하였고, ㉡ 이후 16:30경부터 13층 대회의실에서 H과 이 사건 지부 집행부 및 7명의 정년퇴직자 등이 참석하여 이 사건 현안합의서 이행에 관한 면담을 추가로 진행하였으나, H은 현재 여러 정황상 이행이 어렵다는 취지로 답변하였으며, ㉢ H과 J는 17시부터 18:10경까지 피고 대표이사 사무실에서 단 둘이서 별도의 협의를 진행한 다음, J는 정년퇴직자들을 설득하여 18:30경 이후 회사를 떠났고, H도 퇴근하였으며, ㉣ K은 당일 대표이사실에서 있었던 상황파악을 위해 19:30경부터 H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하였으나 결국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 K은 2020.7.27. 월요일 출근하여 H과 면담을 통해 2020.7.24. 별도 합의가 있었는지 물었으나 전혀 별도의 약속이나 합의를 한 바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또한, 관련 형사사건의 수사기관에서 이루어진 피의자신문 당시 H과 J는 모두 ‘2020.7.24. 저녁 피고 대표이사의 사무실에서 J와 H 둘만 있을 때 이 사건 노사합의서를 작성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위와 같은 사실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노사합의서의 내용에 관하여 노사 간에 아무런 사전 논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는 상황에서, 피고의 당시 대표이사 H은 피고의 직원, 임원 등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사전에 내부적 검토나 논의 등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이 사건 지부의 지부장 J와 둘 만이 있는 자리에서 이 사건 노사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노사합의서는 ‘향후 이루어지는 파업에 관하여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에게 평균임금의 70%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하고, 파업 참여 조합원 및 파업참가일수는 조합이 결정하여 제출한 자료에 따른다’는 내용으로서 이 사건 노조 및 조합원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피고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다. 실제로 원고들이 이 사건에서 구하고 있는 청구금액 합계액은 25억 원을 초과하는데, 피고의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간 평균 당기 순이익이 약 7억 8,000만 원에 지나지 않는 점, 피고는 모회사인 한국철도공사로부터 각종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회사로, 피고의 근로자가 파업에 참가하여 근로를 제공하지 않게 되어 위탁계약에서 정하여진 인력과 시간이 위탁업무에 투입되지 않을 경우 그만큼 계약금액을 감액 당하게 되는 점 등을 더하여 보면, 이 사건 노사합의서에 따라 피고가 입게 되는 손해는 막대하다고 볼 수 있다.
H은 이 사건 현안합의서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그 효력 유무가 문제되는 상황에서 이 사건 노사합의서를 작성해 주었고, 약 2주 뒤인 2020.8.6. 대표이사의 직위에서 해임되었다.
한편, 이 사건 노사합의서는 작성 이후 노사 양측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J는 단체교섭이 결렬되어 이 사건 파업이 개시된 무렵인 2020.10.20. ‘파업 시 평균임금의 70%를 보전한다’는 내용의 합의서가 있다면서 조합원들의 파업을 독려하는 취지의 인터뷰 영상을 유튜브에 게시하였고, 2020.12.22. 조합원들이 가입되어 있는 네이버밴드에 이 사건 노사합의서를 게시하였으며, 2021.1.12.경 이에 대한 언론보도가 이루어졌다. 피고 측은 위 네이버밴드 게시글과 언론보도를 통해 비로소 이 사건 노사합의서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노사합의서가 아무런 사전 협의나 절차 없이 J와 H 둘만이 있는 자리에서 비밀리에 체결되었고, 이후에도 이 사건 파업이 개시되기 전까지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으며, 이 사건 노사합의서의 내용이 피고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고 오로지 이 사건 조합과 조합원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노조(J 또는 I)는 H이 피고의 영리목적과 관계없이 이 사건 조합 및 조합원들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독단적으로 이 사건 노사합의서를 체결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결론
이 사건 노사합의서는 피고에 대하여 효력이 없으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들의 임금 청구는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청구는 모두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판사 구광현
판사 신진경
판사 이승은
[별지]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