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항소이유의 요지(법리오해)
근로기준법 제36조 등에 의한 형사처벌 절차<1> 등은 인간의 자유와 권리에 해당하는 금품청산의무 불이행, 근로계약해지 등 인간 세상에서의 범죄일 수 없는 부분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죄형법정주의<2>에 위배되어 폐지되어야 하고, 이 사건 공소사실을 근로기준법에 의해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에 의한 범죄가 인간세상에서의 범죄인지 여부'에 관하여 변론주의 원칙에 따른 권리다툼형 재판을 하여야 한다.
판단
피고인은 원심에서도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하였지만,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자세히 설시하여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원심이 설시한 사정에다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의 사실 및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근로기준법 제36조 등에 의한 형사처벌 절차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고, 법원은 근로기준법위반에 따른 검사의 공소제기에 대하여 형사소송법이 정한 증거조사와 심리를 거쳐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은 형사 항소심에서 검사를 반소피고로 삼아 근로기준법 제36조 등에 따른 형사처벌 절차의 폐지를 구하고, 나아가 헌법 제27조 제1항 중 '법률에 의한' 부분, 헌법 제12조 제1항 중 '법률' 부분의 삭제 등을 주장하고 있다. 피고인은 이와 관련하여 근로기준법이나 형사소송법과 같은 실정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변론주의 원칙에 따른 이른바 '권리다툼형 재판'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변론주의 원칙은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 활동을 존중하여 법원이 판단하는 심리원칙에 불과할 뿐, 실정법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법률에 근거한 형사절차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형사재판에서 적용되는 실체법과 절차법은 모두 법률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 변론주의 역시 그러한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작동하는 원칙일 뿐이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변론주의를 이유로 실정법의 적용을 부인하고, 나아가 형사처벌 절차의 폐지를 구하고 있는바, 이는 변론주의의 의미와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 기초한 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근로기준법 제36조 등의 위헌성 여부는 법원이 개별 형사사건에서 판결로 직접 선언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고, 헌법 제107조 제1항에 따른 위헌법률심판제청이나 헌법재판소법에 따른 헌법소원 절차를 통하여 다투어질 수 있을 뿐이다. 법원에 대하여 특정 법률조항의 폐지나 헌법 규정의 삭제를 판결로 명할 것을 구하는 것은, 현행 헌법 질서와 권력분립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
나아가 법률의 위헌 여부나 존폐는 법치주의와 죄형법정주의의 근간에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으로서 엄격하게 정해진 헌법적·사법적 절차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이러한 절차를 도외시한 채, 개별 형사재판에서 자신의 주장만으로 실정법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형사처벌 제도를 부정하려 하고 있는바, 이는 현행 법질서 전반에 대한 독자적 인식에 기초한 주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법원이 심판할 수 있는 범위를 명백히 벗어난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
피고인은 이 사건 공소사실에 적용된 근로기준법 제36조 등은 사용자인 회사와 경영자 중 누가 형사 피고인인지 특정되지 아니하여 사용자가 거듭 처벌될 수 있는 사태를 초래하여 전통적인 죄형법정주의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른 사용자의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인간 세상에서 범죄일 수 없는 것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인의 위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36조에서 말하는 '사용자'의 개념은 같은 법 제2조 제1항 제2호에서 '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로 규정되어 있다.
대법원은 사업주가 법인일 경우, 퇴직금 등 금품의 지급 사유 발생일로부터 14일이 경과할 당시 그 지급 권한을 보유한 대표자가 원칙적으로 체불에 대한 형사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한 바 있고(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도5044 판결 참조),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대외적으로는 회사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업무집행권을 가지는 지위에 있으므로, 탈법적인 목적에서 특정인을 명목상 대표이사로 등기하여 두고 실제로는 모든 업무집행에서 배제하여 아무런 실질적 권한도 행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용자'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1997. 11. 11. 선고 97도813 판결, 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2도6198 판결 등 참조). 이처럼 이 사건 규정의 '사용자'의 개념이 일정 부분 보충적 해석을 필요로 하나, 실질적으로 회사의 업무를 지배·집행하는 대표자가 근로기준법상 형사책임을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해석은 확립되어 있다. 따라서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위 규정에서 정한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나아가 그 조항에 따른 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이고, 집행자의 자의가 개입될 여지는 없다.
사용자의 금품청산의무 위반에 대하여 민사상 이행지체책임과는 별도로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입법 취지는 사용자로 하여금 임금 등 금품을 법정기한 내에 확실히 지급하도록 강제함으로써 근로자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적용법조는 사용자가 근로자의 주된 생계수단인 임금 등을 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지급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수단 또한 적합하다.
또한, 이 사건 적용법조는 경영상의 자금 사정 등으로 기한 내 지급이 곤란한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지급기일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임금부지급의 고의를 제한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사건 적용법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사용자는 근로의 대가로 임금 등을 지급할 민사상 의무를 부담하는바, 위 규정은 그러한 기존의 의무를 근로자의 생활보장이라는 공익에 부합하도록 기한 내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데 그치고 있다.
나아가 임금은 일반적인 민사채권과 달리 근로자의 생계유지에 직결되는 급부로서 그 보호의 필요성이 특히 크므로, 이에 대한 형사적 보호는 사용자의 계약 자유나 기업활동의 자유보다 우선시될 필요가 있다.
피고인은 검사가 피고인을 소환하여 조사하지 아니한 채 근로감독관의 고발 내용을 아무런 확인이나 점검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검사가 반드시 피고인을 소환하여 직접 조사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근로자 E에 대한 대면 조사, 근로계약서 및 상환의무면제 기간 약정서, 근로자 E과 피고인이 주고받은 이메일 출력물 등 관련 증거가 제출되어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므로, 위 주장은 이유 없다.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