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판결

서울행정법원 2024. 6. 20. 선고 2023구합74321 판결

주문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는 서울 금천구 I에서 ‘E(이하 ’이 사건 사업장‘이라 한다)’이라는 상호로 축산물 도소매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나.

F(F, G생, 중국 국적, 이하 ‘망인’이라 한다)은 2015. 11. 28.경부터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면서 축산물 가공 업무를 담당하였다. 망인은 2016. 2. 22. 07:39경 쓰러진 상태로 동료 근로자에 의해 발견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같은 날 09:07경 급성 심근경색(이하 ‘이 사건 상병’이라 한다)을 직접사인으로 하여 사망하였다.

다.

망인의 유족은 2016. 12. 29.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피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는 2017. 3. 24. ‘망인이 업무와 관련하여 과중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받았을 만한 요인이 확인되지 않으므로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부지급 결정’이라 한다).

라.

원고는 2017. 8. 4. 피고에게 이 사건 사업장에 관한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이라 한다)의 보험관계성립신고서를 제출하였다.

마.

망인의 유족은 2018. 7. 30. 피고에게 재차 동일한 취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는 2019. 11. 29. ‘망인의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당 평균 60시간으로 고용노동부 고시의 만성 과로 기준을 충족하고, 육체적 강도가 높은 정육업무를 수행하였던 점 등을 고려해 보면, 망인은 업무상 과로가 원인이 되었거나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하였던 기초질병이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이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렀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이유로 망인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여 망인의 유족에게 유족보상일시금 106,726,130원 및 장의비 10,061,800원을 각 지급하였다(이하 ‘이 사건 지급결정’이라 한다).

바.

피고는 2020. 4. 17. ‘원고가 산재보험관계의 성립신고를 게을리한 기간 중 망인의 사망이라는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였다’는 이유로,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이하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이라 한다) 제26조 제1항 1호, 같은 법 시행령 제34조 제1항에 따라 원고에게 53,363,060원(피고가 망인의 유족에게 지급한 유족보상일시금의 100분의 50 상당액)의 보험급여액을 징수하는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을 제1, 3 내지 8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1)

망인의 유족은 2016. 12. 29. 피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 청구를 하였으나 피고가 2017. 3. 24. 이 사건 부지급결정을 하였고, 위 결정은 불복기간의 경과로 확정되어 더 이상 다툴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망인의 유족은 이 사건 부지급결정에 대한 불복절차를 밟지 않은 채 그 불복기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동일한 내용의 청구를 하였고, 피고는 이 사건 부지급결정과 저촉되는 이 사건 지급 결정을 하였다. 이 사건 지급결정은 확정된 이 사건 부지급결정에 반하는 것으로서 위법하고 그 하자가 중대·명백하여 무효이며, 이를 토대로 한 이 사건 처분 역시 위법하다.

2)

망인은 평소 잦은 음주와 흡연으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고, 이 사건 사업장에서의 업무시간이 실제로는 하루 평균 7시간 정도에 불과하여 과중하지 않았으며, 업무강도 역시 높지 않았다.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볼 수 없음에도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함을 전제로 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나.

관계 법령

별지 기재와 같다.

다.

인정사실

1)

피고 소속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2019. 6. 3. 특별진찰 소견서를 작성하였는데, 이에 의하면 ‘재해자 측과 사업주 측 모두 망인이 주 6일, 매일 07:00부터 19:00까지 근무한 것으로 주장이 일치한다’고 되어 있다. 피고 역시 망인의 유족과 원고의 주장 등을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2019. 6. 10. 재해조사서를 작성하였는데, 여기에도 ‘망인이 주 6일, 매일 07:00부터 19:00까지 근무하였다는 점에 대해 재해자 측과 사업주 측의 주장이 일치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에 따라 피고는 망인의 발병 전 1주간 업무시간, 발병 전 4주 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 및 발병 전 12주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을 각 60시간으로 산정하였다.

2)

한편 원고는 이 사건 부지급 결정의 기초가 된 재해조사 당시에는 ‘망인이 통상 15:00~16:00경까지 근무하였고, 바쁠 경우 17:00~18:00경까지 근무하였으며, 명절 전일부터 약 4일 간은 19:00~20:00경까지 근무하였다’고 진술하였다. 피고는 이 사건 부지급 결정 당시 원고의 위 진술을 토대로 망인의 발병 전 1주 간 업무시간을 54시간으로, 발병 전 4주 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을 48시간으로, 발병 전 12주 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을 50시간 30분으로 각 산정하였다.

3)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발골 작업이 끝난 돼지고기를 날카로운 칼로 정리하여 부위별로 다듬는 작업을 수행하였는데, 대부분의 작업은 줄곧 일어선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작업시간 중 휴식 여부나 시간은 확인되지 않는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4호증, 을 제1 내지 5, 7호증의 각 기재, 증인 J의 일부 증언, 변론 전체의 취지

라.

판단

1)

이 사건 지급결정이 이 사건 부지급결정에 저촉되어 위법하다는 주장에 관한 판단

가)

일반적으로 행정처분이나 행정심판 재결이 불복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확정될 경우 그 확정력은, 그 처분으로 인하여 법률상 이익을 침해받은 자가 당해 처분이나 재결의 효력을 더 이상 다툴 수 없다는 의미일 뿐, 더 나아가 판결에 있어서와 같은 기판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 처분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나 법률적 판단이 확정되고 당사자들이나 법원이 이에 기속되어 모순되는 주장이나 판단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1993. 4. 13. 선고 92누17181 판결, 대법원 1998. 3. 13. 선고 96누15251 판결, 대법원 2002. 3. 29. 선고 2000두6084 판결 등 참조).

나)

따라서 이 사건 부지급 결정이 불복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확정되었더라도,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 청구권이 없다는 내용의 법률관계까지 확정된 것은 아니므로, 망인의 유족으로서는 소멸시효에 걸리지 아니한 이상 다시 그 급여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고, 피고 역시 종전 결정에 기속되지 않은 채 새로운 처분을 할 수 있다. 이에 반하는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2)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

가)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조 제1호 소정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기 위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재해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라도 간접적인 사실관계 등에 의거하여 경험법칙상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추론에 의하여 업무기인성을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라고 보아야 하고(대법원 2000. 1. 28. 선고 99두10438 판결 등 참조),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두12530 판결 등 참조).

나)

앞서 인정한 사실에다가 앞서 든 증거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의 주장 역시 이유 없다.

①

망인의 근로시간에 관한 자료는 사업주인 원고의 지배·관리 영역에 있다고 할 것인데, 원고는 기록이나 전산 등을 통해 망인의 근로시간을 객관적으로 관리하지 않았다. 망인과 함께 근무하였던 직원인 J은 늘 망인보다 먼저 퇴근했기 때문에 망인의 퇴근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망인의 근로시간 산정은 사실상 원고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망인의 유족으로서는 원고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이는 이를 증명하는 것이 어렵다. 위와 같은 사정으로 말미암아 망인의 근로시간 산정에 정확성이 담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망인의 근로시간을 객관적으로 관리하지 않은 사업주의 책임에 기인한다.

②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 재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방법이 사용자에게 편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근로자의 증명 곤란을 완화하기 위하여 피고에게 업무상 재해 발생의 원인을 조사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1> 피고는 이러한 권한을 토대로 하여 원고를 대상으로 망인의 근로시간에 관하여 조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지급결정의 기초가 된 재해조사 결과에 의하면, 원고가 망인의 근로시간을 07:00부터 19:00까지로 인정한 것으로 되어 있고, 이에 따르면 망인은 발병 전 1주간 60시간 가량 근무할 정도로 과로하였다. 위 재해조사 결과가 원고의 주장과 같이 허위 또는 위조된 자료에 기초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사정은 딱히 찾아볼 수 없다. 나아가 이 사건 부지급 결정에 앞서 이루어진 재해조사 결과에 의하더라도, 망인의 발병 전 1주간의 업무시간은 약 54시간에 이르는바, 이 역시 근로기준법 제50조 제1항에서 정한 1주간 기준근로시간(주당 40시간)을 35% 초과하는 수준이다.

③

망인은 업무 시간 내내 계속 서 있는 상태로 근무하였다. 망인이 수행한 업무는 무거운 중량을 다루고 날카로운 도구로 육류를 손질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으로서 육체적으로 강도가 높은 편에 속하고, 작업 중 부상 우려가 있어 항상 긴장 상태에서 집중하여 수행하여야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④

망인은 이 사건 상병 발생 전에 약을 복용하거나 질병 치료를 받은 바 없다. ‘망인이 과거에 가슴통증으로 두 번 정도 쓰러진 적이 있다고 들었다’는 취지의 증인 J의 증언이나 사망 당시 망인의 혈당 수치가 높게 측정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망인이 이 사건 상병과 관련된 중대한 기저질환을 갖고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망인이 평소 흡연과 음주를 한 것으로 보이나, 그 빈도나 정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만한 자료도 찾을 수 없다.

⑤

원고는 망인이 이 사건 사업장에 출근하기 전에 쓰러졌으므로, 출퇴근 재해에 해당될 수 있을 뿐 업무상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업무상의 과로가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유발 또는 악화된 경우에도 업무와 사망의 원인이 되는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고, 업무상의 과로가 그 원인이 되는 이상 그 발병 및 사망 장소가 사업장 밖이었고 업무수행 중에 발병, 사망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업무상의 재해가 인정될 수 있다(대법원 1991. 10. 22. 선고 91누4751 판결 등 참조). 따라서 망인이 원고의 주장처럼 출근 직전 이 사건 사업장 근처에서 쓰러졌다고 하더라도,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함에 지장이 없다(나아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3호에서 정한 출퇴근 재해는 외부로부터 우연히 발생한 ‘사고’로 인한 업무상 재해에 속하는 것이므로, ‘질병’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이 사건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3)

소결론

따라서 망인의 사망은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제26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한 사업주가 보험관계 성립신고를 게을리한 기간 중에 발생한 재해에 해당하므로, 위 규정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4조 제1항에 따라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주영(재판장) 송명철 고철만

출처: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 수집일 2026.10.25.